이봉희
나는 오월이 좋다. 자카린다 꽃이 보라색으로 거리를 수놓고 어머니 날과 결혼기념일이 있어서다. 결혼기념일이면 남편과는 주로 여행을 떠난다. 많은 곳을 다녔지만 아들과 딸이 깜짝 선물로 보내준 기차여행이 단연 최고다. 바다에 머무는 아들과는 전화나 이메일도 자주 안되는데도 딸이 계획하여 준비하였기에 더 감동이었다.
십 이년 전 결혼 40주년이 되는 오월 초, 항공모함을 타고 바다로 나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워싱턴 주 에버렛에 있는 집에 다녀올 수 있는 지 물었다. 우리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여행을 떠나며 집에 들릴 계획이라 말했다. 다음 날 아들은 40년 동안 이혼 안 하고 살아주어 고맙다며 에버렛에서 나이아가라로 가는 기차여행을 예매했으니 즐거운 여행을 다녀오시라며 우리에게 메일을 보냈다. 돌아오는 비행기와 호텔은 누나가 예약했다고 한다.
기차 일정은 워싱턴 주 에버렛에서 출발하여 시애틀로, 시애틀에서 6시간 시내 관광을 한 뒤 다시 에버렛으로 돌아가 승객을 태운 후 밤새 어둠을 가르며 시카고로 간다. 시카고에서 7시간 머문 뒤 기차를 바꿔 타고 버팔로로, 그곳에서 5시간 머문뒤 나이아가로 가는 대륙횡단 코스다. 13개 주를 통과하는 멋진 여행이다. 나는 어린 아이같이 너무 신이 났는데 남편은 난처한 표정으로 황당해하며 갈 수 없단다.
그날 밤 나는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새벽 4시쯤 남편이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켠다. 놀라서 물으니 취소해달라고 아들에게 메일을 보낸단다. 미국에서 처음 타는 기차인데 한 번 타서 곧장 가는 것도 아니고 중간중간 한 나절을 짐을 끌고 다닌다니 그건 여행이 아니라 고생이라며 도저히 못 가겠단다. 이 나이에 편안한 여행도 힘든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가기도 전에 혈압으로 쓰러질 것 같단다.
아들이부대를 옮길 때, 샌디에고에서 동쪽 끝 메인으로 대륙횡단을 하며 아들과나는 나이아가라폭포를 들렸다. 2년 후 메인에서 서쪽 끝 워싱턴 주 에버렛으로 근무지를 옮길 때는 딸이 합류했다. 열흘이 넘는 긴 여행중에 우리 셋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들렸다. 가족중에 남편만 가보지 못한 것을 생각해 아들이 아빠에게 선물한 것임을 알기에 그냥 다녀오자 했지만 결국 남편은 아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다음 날, 놀란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취소하면 100% 환불도 안되고 1년안에 사용할 수 있는 승차권으로 준단다. 음식값도 이미 포함되어 식사때마다 새로운 사람과 앉아 친구도 사귀고 좋으니 다녀오면 안되느냐고 묻는다. 짐은 역에 맡긴 뒤 시내 구경하고 밤에는 별을 볼 수 있게 천장도 유리로 된 칸이 있어 그냥 즐기면 된다고 아들은 설득한다. 식사 때마다 낯선 사람과 앉아 밥 먹는것도 소화가 안 될텐데 짧은 영어로 얘기해야 하니 더 못 가겠다고 남편이 말한다. 듣다못해 나는 말했다. “식사때도 내가 다 얘기하고 짐도 내가 다 끌고 다닐께 나만 믿고 가자.” 어이없어 하는 남편의 모습이라니.
4월 말 아들의 집에 가서 며칠 여행을 다니다 렌트카를 반납하기 전 역을 가보았다. 그곳은 한국과는 다르게 넓고 웅장했다. 마침 역무원이 한국사람이어서 기차표를 보여주니 “아드님이 효자네요. 침대칸 중에서도 제일 넓어 가장 비싸요” 라며 부러워 했다. 남편은 에버렛에서 시애틀로 갔다가 다시 에버렛으로 오는데 그 코스는 취소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바다를 끼고 가는 코스로 경치가 좋아서 넣었을거라며 정 원하면 취소해 주겠다고 말했다. 나의 의견을 묻는 남편에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차를 타고 달리며 보는 바다는 노을을 품어 붉게 물들고 그 황홀한 광경에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힘차게 앞만 보고 달렸다. 40년 삶속의 힘들고 지친 마음을 바람이 휘감아 다 날려주었다. 몬테나 주를 지날 때가 제일 좋았다. 푸른 숲이 우거진 사이사이로 기차가 달리고 유유히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와 폭포들이 장관이었다. 높은 산을 오를때는 힘에 겨운듯 기적을 토해내며 천천히 구불구불 돌아 정상을 향해 달리는모습을 보며 스페인과 미국으로 옮겨오며 힘들어 숨이 찼던 날들이 떠 올랐다. 우리는 그날들이 있었기에 오늘 이렇게 행복한거라며 이혼 안 하기를 잘 했지? 하고 서로를 안아주었다. 힘들게 오른 정상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덮힌 벌판과 흰 눈꽃을 피운 나무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시카고에 도착해 한 나절 관광하고 늦은 밤 기차를 타니 역장이 준비한 와인 바로 침대칸 고객들만 안내하였다. 각종 와인과 치즈, 간단한 안주를 마음껏 맛보며 돈의 위력을 맛 보았다. 매끼마다 제일 비싼 음식을 팁만 내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아주 좋았다. 세심하게 준비해준 아들의 사랑을 느끼기에 더 행복했다.
나이아가라 폭포앞에 선 남편은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을 했다. 딸이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고 우리는 바다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기차를 타고 누렸던 많은 것과 행복을 담아 띄웠다. 취소했으면 어쩔뻔 했느냐며 남편은 아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우리는 좁은 오솔 길을 걸어가며 가차여행 중 느끼고 보았던 많은 것을 나누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서로의 삶을 나누었다. 미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우리를 반기듯 쌍무지개가 폭포위에 다리를 놓은듯 걸쳐 있었다. 두번 다녀간 덕에 며칠을 내 집처럼 자유로이 찾아 다니며 관광을 할 수 있었다.
힘든 시간 속에 이혼 안하고 살아주어 고맙다는 아들의 유머가 얼마나 멋진가! 부모의 40년 삶을 인정해주어 여행을 계획한 딸의 깊은 사랑 또한 최고다. 언젠가 아이들의 곁을 떠나면 나의 삶이 그들에게 따스한 사랑으로 남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기쁨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훗날 아이들도 기적소리가 들리면 기차여행을 하며 행복해 했던 엄마를 기억하고 함께 살아 온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겠지.그럴때마다 나에게 준 아이들의 사랑이 되돌아 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리라 믿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기적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눈에 선한 그 풍경들, 식사 시간마다 함께 했던 사람들,그들에게 은근히 아이들 자랑을 하며 느꼈던 행복, 그 추억을 선물한 아이들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했기에 잊을 수가 없다. 그 추억은 노년의 쓸쓸함을 덮어주는 이불처럼 따듯하게 내 마음을 채워준다.
오월이 성큼 다가온다. 몇 일 후면 결혼 기념일이다. 보라색 꽃망울을 맺으며 자카린다 꽃도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으려고 오월을 기다린다. 보라색 자카린다 꽃과 여행을 좋아하기에 나는 오월이면 행복하다. 나는 오월이 주는 추억과 행복을 소중하게 감싸안으며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