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불씨
우리 집 지휘자는 딸이다. 어른 넷이 아이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특히 중학생이 되면서 성장통을 치르는 딸이 신기해서 어른들의 시선이 모두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날도 일찍 퇴근한 내게 아이는 틈도 주지 않고 따발총을 쏜다.
“엄마, 그거 어딨어?”
“뭐?”
“머리 하얀 할아버지 지휘하는 거.”
난 수납장을 뒤져 마침 가지고 있던 레너드 번스타인의 베토벤 고향곡 5번 ‘운명’과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테이프를 찾아 줬다.
“응, 바로 이거야.”
아이는 어른들을 앉혀 놓고 그 자리에서 음악회를 열였다. 의자에 올라가 막대기를 휘두르며 명 지휘자 흉내를 내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어 손뼉 치며 장단을 맞춰 줬다.
얘긴즉슨 두 주일 후, 반 대항 음악회가 열리는데 중학교 1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 30학급이 합창 대회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저희 반 지휘를 맡았기 때문에 꼭 이겨야 한다고 각오가 대단했다.
그날부터 우리 집은 매일 음악회가 열렸다. 퇴근하고 늦게 들어가도 그때까지 비디오를 보면서 카라얀과 레너드 번스타인 흉내를 내고 있었다. 세계적인 명 지휘자의 정교한 동작과 표정, 개성 있는 연출력까지 따라 하는 그 열성이 가상했다.
드디어 공연이 있는 날 아침, 비상이 걸렸다. 가족 모두 아침 10시까지 늦지 말라는 당부와 전원이 다 참석해야 한다는 명령이었다. 우리 가족은 아예 출근을 미루고 아침 일찍 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차례가 되자, 1학년 아이들이 짧은 커트 머리와 엉성한 교복을 걸치고 주르르 악보를 들고 제 자리를 찾아 섰다. 관중석에서는 딸의 뒷모습만 보였다.
피아노 전주가 흐르고 파트 별 점검이 끝났는지 아이는 고개를 까딱하며 지휘봉을 휘두르는데 마치 마법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강약 조절을 유도하며 잘도 리드했다. 그 공연은 마치 대자연의 소리인 양 조용했다가 천둥 번개 같은 우렁찬 소리로 세상을 흔드는 것 같은 요란함이 있었다. 암튼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듣기에 따라 달라지는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냈다. 관중들도 무엇에 홀린 듯 박수를 쳤고, 앞줄에 앉은 교장 선생님과 담임들도 깔깔깔 웃으며 손뼉을 쳤다.
나는 민망하고 쑥스러웠지만 명 지휘자 흉내를 내는 딸이 대견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관중들과 함께 크게 웃었지만 지휘봉을 흔들며 파트 별로 소리를 조절하는 그 모습이 카라얀도 번스타인도 금난새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익살스러웠고 자기도취에 빠져 어떤 경지를 향하고 있었다. 아이의 지휘봉을 바라보고 소리를 줄였다 크게 터트리기도 하는 반 아이들도 모두 귀엽기만 했다. 음악이 절정에 이르자 아이가 두 팔을 번쩍 들고 대포를 쏘는 듯한 과잉 제스처를 연출할 때는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지휘 수업을 받지 않았어도 유명 지휘자 테이프를 보고 흉내 내는 것만으로 공연을 이끈 딸이 기특했다. 결국 지휘상을 따내기는 했지만 그 공연을 보면서 부조화와 미숙함, 도전을 향한 노력이 신선하다는 것을 알았다. 중간에 관중들이 왜 웃었는지 나는 잘 안다. 그 웃음을 들으며 내가 느낀 것은 인생의 아름다움은 완벽함이 아니라 미숙함, 미지를 향한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화음보다는 불협화음이, 완벽함보다는 미숙함이 긍정보다는 부정이 더 설득력이 있듯이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소녀들의 어설픈 도전이 더 값지고 산뜻했다.
난 요즘 ‘팬덤싱어 4’를 유튜브로 즐겨 본다. 그 중에서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국악과 서양음악의 만남에 관심이 끌린다, 창작 뮤지컬 ‘서편제’도 그렇고 국악인 김수인의 선곡과 목소리, 바리톤 이승민, 노래 천재 임규형, 만능 아이돌 조진호의 만남이 주는 예상하지 않은 무대가 감동을 준다. 그들은 각자 탐나는 노래 천재들이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한데 모였을 때 처음엔 매끄럽지 않아도 점점 미묘한 매력을 가지고 다가와 가슴을 적신다. 고정관념을 깨지 않으면 부조화를 조화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색다른 시각, 끊임 없는 도전과 노력만이 새로운 불씨를 만들어 낸다.
마음의 문을 열어두자. 그래야 새바람이 드나들 수 있을 것 같다. 소통이 그리울 때 난 멀리서 지휘봉을 휘두르는 딸을 찾는다. 어려서 그랬듯이 나를 원격조정하는 딸은 앉아서 한국과 미국을 오간다.
“엄마. 오늘 추우니까 밖에 나가지 말고 방 따뜻하게 해 놓고 넷플릭스 영화 보세요. 요즘에 재밌는 영화 많아요. 연두부에 바나나 반 개, 견과류 조금 넣고 믹서기에 갈아 드세요. 먹기도 편하고 단백질 보충에도 좋아요. 잘 주무셔야 해요.”
뻔한 얘기지만 그런 일상대화가 내게는 보약처럼 귀하다. 그래서 난 딸의 말이라면 무조건 OK다. 어려서도 내게 명령하는 것을 좋아하더니 아직도 엄마를 지휘하는 딸이 고맙다. 평생 살아온 내 방식이 아니어도 난 아이 앞에 굴복하는 것이 싫지 않다. 며칠 전에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갔다가 얘기 끝에 “선생님, 제가 애를 안 낳았으면 어쩔 번 했어요.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인 것 같아요.” 하고 고백했더니 “그러게 말이다. 너나 나나 애 낳은 일이 제일 잘 한 짓 같다. 하,하,하.....” 통쾌하게 웃었다.
(2024.3.11)
첫댓글 우와^^ 중학생 시절의 따님의 합창단 지휘의 열정을 생생하게 그린 수필 재밌게 읽었어요^^ 지휘자 모습을 구경하고 격려해주시는 것도 따님과 엄 안젤라 선생님이
펼치는 삶의 이중주라고 생각합니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