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째
카미노를 준비할 때부터 이날을 기다렸다.
지금 있는 곳에서 25km 안에 성 니콜라스 알베르게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거기서 머물려 한다.
성 니콜라스는 유서 깊은 수도원이었다. 깊은 영성을 가진 소수의 수도사들이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카미노의 순례길이 생긴 후에,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많아졌다.
수도사들은 더 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곳은 알베르게가 되어 순례자의 숙소가 되었다.
카미노의 길에서 가장 오래된 알베르게 중의 하나.
오픈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
예약도 안 된다.
운이 좋으면 머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마을까지 가야 한다.
(순례자들의 숙소가 된 성 니콜라스 성당 알베르게 입구)
점심때가 조금 지났다.
보통 때 같으면 여기서 점심을 하고, 두 시간을 더 걸어 알베르게에 이른다.
그러나 오늘은 여기까지다. 멀리 성 니콜라스가 보이기 때문이다.
한눈에 보아도 심플하다.
고색창연한 건물 하나,
그리고 그 뒤에 부속 건물 하나. 고색창연한 건물은 수도원이었고, 부속 건물은 새로 지은 것.
운이 좋게도 오픈이고, 자고 갈 수도 있단다.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받고 짐을 풀었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와이파이도 없다.
주변에 인가도 없다.
간신히 프로판 가스로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었다.
배가 고팠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컵라면 두 개가 있다.
점심으로 한 개를 먹었다. 꿀맛! 나머지 하나는 저녁용.
(성 니콜라스 성당 안)
누가 말했던가?
우리는 누구나 절대자 앞에서 단독자로서 삶과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걸어가는 수도사라고.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런 수도원을 동경했다.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살아가는 것을.
그래서 은퇴 후에도 수도원을 염두에 두고 집을 구했다. 비록 낡았지만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집, 가장 마음에 들었다. 거기서 산다.
수도사처럼 살지는 못해도 수도사와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
오늘도 날이 저문다. “드디어 시작이다!” 했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13일이 지났다.
생각해 본다.
나는 오랫동안 카미노를 동경했고, 그리워했고, 품고 있었다.
품은 것은 언제인가 새가 되어 나온다.
그렇게 새가 되어 나온 이 길!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이 길을 마쳤을 때 나는 말 할 수 있으리라.
산티아고 가는 길!
내 인생 중에 가장 소중하고 가장 행복했던 길이었다고, 그래서 이 길 이후,
나는 더욱더 행복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계속〉
(글·사진=송희섭 은퇴목사)
첫댓글 "품은 것은 언제인가 새가 되어 나온다" 참 멋진 표현입니다. 목사님이 어디로 이사하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추천 꾸욱
순례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는데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의 옷차림으로 보아
초가을 분위기인 듯 하네요
내 인생 중에 가장 소중하고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가보고 싶은데 혼자 용기는 없고 대리만족 합니다 감사합니다
맘편해지는 글입니다. 사느라 아직도 아둥바둥하는 제가 부끄러워 집니다
성 니콜라스 성당 모습
석조건물의 웅장함과 심플함이 물씬 풍기네요. 전기도 안들어오니 촛불로 군데 군데 불을 밝혔을 그 옛날모습 그대로 분위기를 더 한층 물씬 느끼셨을것같네요...!!
순례자의 여행
아름다운 추억이 간직될 거예요
즐겁게 보내는 나날 이어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