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옥상정원
1.
세탁소 옥상에 올라 옥탑방 앞에 서서 고개를 들면 사방으로 고층 아파트들만 보인다. 20층이 넘는 아파트들이 빙 둘러서서 옥상을 덮칠 기세로 내려다보고 있다. 아파트숲 속 한 복판에 외딴 섬처럼 남은 3층짜리 다가구 빌라들의 동네, 뉴타운의 광풍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았다. 그 동네 한복판, 길음시장으로 내려가는 네거리 한 귀에 이정표처럼 우뚝 서있는 붉은 벽돌의 3층 빌라가 마치 숲속의 성채 같다. 옥탑방 지붕 위에는 빨간 고추가 가지런히 누워 반짝이고 있다. 아파트 숲을 빠져나온 햇살이 바람과 섞여 삼베 홑이불처럼 고추들을 덮어준다. 길에서 올려다보면 옥상 난간 위로 껑충하게 자란 옥수숫대가 마치 깃대처럼 솟아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옥수숫잎이 서석서석 소리를 내며 깃발처럼 나부끼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2.
“집이 넘어간단다.”
전화 수화기를 타고 들려온 해윤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평소 자식들에게 전화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터라, 준영은 순간 겁이 덜컥 났다.
“갑자기 뭔 소리예요? 누구 집이 넘어가요?”
“우리 집이, 아니 세탁소가 경매로 넘어간다는데 우짜믄 좋노.”
미아리 집은 그 후 주인이 한 번 바뀌었다. 노부부에 이어 건설 사업을 한다는 새 집주인은 집을 사면서 바로 집을 허물고 신축하겠다고 했다. 당시는 단독주택을 허물고 다가구주택을 짓는 바람이 불었을 때였다. 해윤은 쫓겨나게 될까 봐 불안했다. 다행히 집 지을 동안만 딴 곳으로 가 있으면 1층에 가게를 만들어서 그 자리를 꼭 다시 세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안심했다. 마침 처음 정릉에서 미아리로 와서 세탁소를 시작했던 건너편 가게 자리가 비게 되어 그리로 옮겨 몇 달 임시로 영업하다가, 새로 지은 깔끔한 3층 건물 1층 가게 자리에 개업이라도 하듯이 입주했다.
1층에 좀 더 널찍한 가게 두 칸을 내느라 가겟방이 없어졌다. 설 자리가 없어진 살림방을 옥탑방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30년 가까이 이어온 가겟방 살이를 처음으로 면하게 되었다. 상임은 옥상 꼭대기까지 어떻게 오르내리나 심란했지만, 궁색한 살림살이를 가게 손님들에게 그대로 드러내 보이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옥탑방은 좁긴 해도 부엌 공간이 별도로 나 있고 싱크대도 놓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옥상 전체를 내 집처럼 쓸 수 있었다. 상임에게 옥상은 고향 집 삽짝문 안에 있는 텃밭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런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다. 큰 사달이 나고 말았다. 하던 사업이 잘못됐는지 주인집 남자가 쓰러져 거의 반신불수 상태가 되더니, 집이 경매로 넘어가 버렸다. 문제는 세탁소에 들어간 전세보증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배당 순위가 은행 채권액보다 후순위여서 빈털터리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물론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있어서 소액 임차인의 경우 선순위로 보호받을 수 있지만, 살림방이 가게에서 빠지고 옥탑방으로 올라가 분리되는 바람에 세탁소는 그저 점포일 뿐이어서,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해윤은 백방으로 알아보고 따져보았지만, 법적으로 구제받을 길이 없었다. 집을 낙찰 받는 방법밖에 없었다. 낙찰을 받지 못하면 보증금 한 푼 못 챙기고 무일푼으로 길거리에 나앉아야 했다. 기가 막히는 상황이었다. 금액을 높게 써낼수록 낙찰받을 가능성이 커지기는 하지만, 그게 얼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높게 써내면 낙찰은 받아도 손해가 크고, 그렇다고 너무 낮게 들어가서 딴 사람이 낙찰받게 된다면, 그냥 쫓겨나고 마는 것이다. 피를 말리는 전쟁 같은 게임이었다.
법원 경매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경매정보 책자 하나씩 말아 쥐고 어슬렁대고 있었다. 해윤이 세탁소 하면서 복덕방도 겸업을 한 지 오래여서 이 방면에 아주 생짜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경매장은 처음이라 얼떨떨했다. 일단 첫 기일은 들어가지 않고 지켜만 보기로 했다. 통상 1차 경매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다들 유찰될 것을 예상하고 넘기는 게 보통이었다. 역시나 유찰되었다. 이제 2차에 들어갈 지 말 지가 고비였다. 당초 금액의 80%로 떨어진 입찰최저가에서 얼마를 더 써낼 것인가가 관건인데, 5%만 얹어도 85%의 금액이라, 경매가 감정이 다소 후하다는 걸 감안하면 시세에 비해 결코 싼 금액이 아니었다.
며칠 후, 동생뻘 친구인 마을금고 이사장이 퇴근길에 들렀다며 세탁소로 해윤을 찾아왔다. 사실은 마을금고가 이 집을 강제경매 신청한 채권자였다. 이사장은 해윤이 경매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하고는, 그게 사실인지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금액으로 들어가려고 하는지 의중을 살피러 온 것이었다. 받아내야 할 채권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낙찰이 되어버리면 그만큼 손해를 감수해야 해서, 그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였다.
“형님은 어쩌실라구요?”
“그래 말이라. 엄한 놈이 경매 받아가게 멍하니 두고 볼 수도 없고, 그릏다고 경매 드갈 돈이 있는 것도 아이고…….”
해윤은 짐짓 능청을 떨었다. 이사장은 별 정보를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일어나면서 슬쩍 흘리듯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하~ 그게 3억 2천만 넘어가면 일단 되는데…… 3억 2천 정도면 우리 금고에서 바로 잔금을 대출해줄 수도 있고……”
3억 2천이면 채권액을 전액 회수할 수 있고, 낙찰대금 대출도 전액 가능하니까 잔금 걱정 말고 써내라는 메시지였다. 해윤은 대꾸 없이 배웅을 했다. 해윤은 고심 끝에 2차도 넘겨보기로 마음을 먹고 법원으로 향했다. 85% 이상의 금액을 동원할 재간도 없고, 그렇게 낙찰을 받아서는 손해가 크다고 봤다. 또 그 계산은 다른 입찰자들에게는 더 분명한 거였다. 해윤이야 무일푼으로 쫓겨날 상황이라 다소 무리한 금액으로라도 들어갈 이유가 있지만, 투자 목적의 일반 입찰자들에게는 85% 금액은 수익을 내기가 어려운 금액임이 분명했다. 해윤은 불안했지만 자신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2차에도 다행히 응찰자가 없었다. 해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피가 말랐다. 길거리에 내쫓기느냐 집주인이 되느냐가 달린 한순간의 선택을 해윤이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3차는 무조건 들어가야 했다. 3차 최저금액은 80%에서 다시 20% 감가된 64% 금액에서 출발하니까, 64% 금액에서 얼마를 더 얹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해윤은 복덕방을 겸업으로 하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부업으로 하는 수준이라 방 한두 칸 세 얻어 주는 게 고작이었지만, 다른 부동산을 통해 주변의 비슷한 건물들의 시세를 알아보고 비교해 볼 수 있었다. 1%마다 500만 원이 왔다 갔다 하는 판이니, 해윤은 살이 떨릴 지경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현기증이 나고 멀미가 올라왔다.
세탁소 옆 가게와 지하 공장, 2층 세대들도 문제였다. 낙찰을 받는다 해도 이들이 순순히 집을 비워주지 않을 게 뻔했다. 다들 크고 작은 손해를 입은 마당이라, 한 푼이라도 손해를 벌충하려고 새로운 집주인에게 달려들게 뻔했다. 한 건물에서 오래도록 같이 살아온 이웃들이고, 경매로 넘어가면서부터는 같은 피해자로 동병상련의 처지라 같이 걱정하고 의논하던 사이였는데, 낙찰을 받게 되는 순간부터는 입장이 달라질 거라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무거웠다. 해윤은 마음을 다잡았다. ‘우쨋든 간에 내가 살고 봐야지. 일단 낙찰부터다.’
3차 경매기일 날, 입찰예정 시간보다 30분 일찍 법원에 도착한 해윤은 이제 익숙해진 탓인지 바로 자리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1999타경XXXX 사건번호가 호명되었다. 해윤은 기표소처럼 생긴 곳으로 다가갔다. 보자기를 들치고 들어가 서류를 꺼내 펴놓고 펜을 들었다. 볼펜을 쥔 손이 유난히 쭈글쭈글했다. 손등에는 군데군데 검은 반점이 나 있고, 그 사이에 푸른 핏줄이 힘없이 불거져 있었다. 해윤 나이 벌써 예순아홉, 그도 이제 노인이었다.
이미 마음먹고 온 숫자를 주저 없이 적기 시작했다. 3, 2, 2 …… 숫자 셋을 쓰고 해윤은 잠시 망설였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오래전 식구들 모두 고향에 두고 서울행 열차를 탔던 장면에서부터 병이 걸려 고향 가서 죽겠다며 내려갔다 살아 돌아온 일, 평생을 좁은 세탁소 안에서 동동거린 상임과 세 아들이 떠올랐다. 지금 써내는 이 숫자 몇 개로 30여년 서울살이가 박살이 날 수도 있고, 꿈에 그리던 집주인이 될 수도 있는 그야말로 숨이 막히도록 두려운 순간이었다. 숫자 몇 개에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저 애들 장난 같기도 하고 아무런 감각도 없이 숫자를 쓰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어서 0 여섯 개를 마저 적으면 되는데, 해윤은 1을 쓰고 그 뒤에 0 다섯 개를 적어 넣었다. 당초 계획보다 십만 원을 더 쓴 것이었다. 마치 그 십만 원이 백척간두에 선 해윤의 운명을 가르기라도 할 것처럼.
3.
해윤이 집주인이 되었다. 서울살이 10년 동안 천신만고 끝에 장만한 땅을 사기로 빼앗긴 땅에 지어진 집의 1층에 세 들어 살아왔다. 서울 하늘 아래 내 땅을 장만하고, 그 땅 위에 살림집이 별채로 있는 세탁소를 지어 아내와 함께 일을 하며 아들 삼 형제를 보란 듯이 키우겠다는 희망이 일찌감치 부서져 버렸다. 날벼락처럼 떨어진 절망의 그 장소에서 그 절망의 통증을 끌어안고, 해윤은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가게 딸린 단칸방과 옥탑방에서 살아냈다. 서울살이 40년 만에 칠십 노인이 되어서야 해윤은 마침내 그 집의 주인이 되었다.
부부는 옥탑방을 비우고 주인이 살던 3층에 입주했다. 옥탑방 살림을 모조리 가져내려와 채웠지만, 방금 이사나간 집이라고 해도 될 만큼 휑했다. 평생 단칸방에서 복작대며 살아온 부부에게 방 셋에 거실까지 있는 집은 어색하다 못해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작은 앨범공장을 운영하는 준혁이 작업장으로 지하를 쓰고 싶어 해, 아예 들어와 같이 살자고 불러들였다. 손주들까지 다시 여섯 식구가 되니 북적북적 사람 사는 집이 되었다. 매일 3층 살림집과 세탁소를 오르내리는 해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러다가 문득 아버지 올해 제사상에 큼지막하게 아버지 사진을 올려놓고 싶었다.
“여보, 아부지 증명사진 찍어둔 거, 그거 오데 뒀는지 모르나?”
아버지와 집을 합치게 된 준혁은 날을 잡아 두 동생 식구들을 불렀다. 모처럼 직계 식구들이 다 모였다. 집안에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상임은 항상 여러가지 색깔의 야채와 길쭉한 소고기가 버무려진 잡채를 만들었다. 갖은 야채와 간장으로 양념을 해서 냄비에 자작자작 졸여낸 소불고기도 빠지지 않았다. 상임은 세살이로 아들들을 키웠지만 손주들은 3층짜리 주인집 애들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는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손주 두 놈을 앞에 앉혀놓고 다독거리고 있었다. 문득 준영은 어린 시절 해윤이 술에 취해 자기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밤, 해윤은 가게 문을 요란하게 부딪치며 들어와 비틀거리더니 가게 소파에 푹, 쓰러져 버렸다. 누에처럼 몸을 꼬부려 옆으로 누웠는데 작은 몸이 더 작아 보였다. 와이셔츠에 풀을 먹이고 있던 상임은 널브러진 해윤 옆으로 다가와 어깨에 팔을 집어넣었다. 해윤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상임이었지만, 술에 취한 몸은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죽은 듯이 쓰러져있던 해윤은 별안간 잡힌 팔을 뿌리치며 누운 채 소리를 쳤다. “누고? 술 가와라, 술!” 길어지겠다 싶었는지 상임은 대꾸도 없이 돌아서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날 아침에 안집 주인이 학교로 출근하면서, 다림질하고 있던 해윤에게 한마디 던지고 갔다. 시세를 알아봤더니 주변에 비해 세탁소가 많이 싸더라, 보증금을 더 올려야겠다. 올린 지 이제 1년 되었는데, 또다시 올려달라는 거였다.
그때 준영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학교 마치면 바로 큰길가 독서실에 갔다가 밤늦게나 집에 왔는데, 마침 그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해윤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준영을 붙들고 횡설수설하더니, 준영이 들으란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소리로 불쑥 한마디를 뱉고는 다시 소파로 픽, 쓰러졌다.
“준영아… 이 집은 원래… 우리 집이다…”
30년을 돌고 돌아, ‘원래’ 우리 집이 ‘진짜’ 우리 집이 된 것이다. 준영은 아버지가 이 집을 되찾기 위해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뎌왔구나 싶어 마음이 짠해졌다. 별안간 이 땅을 사기 친 놈이 궁금했다. 동네 사람이란 것은 알았지만 누군지는 몰랐다.
“근데 아버지, 그때 이 땅 사기 친 놈이 누구에요?”
해윤은 준영의 갑작스런 질문에 뭐라?, 되물으면서, 순식간에 30년 전으로 날아가는지 멈칫했다.
“니 친구 아부지다.”
“네? 내 친구요?”
석태 아버지였다. 석태는 준영의 국민학교 동창이다. 학년은 같았지만 한 반인 적은 없었고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준영은 놀랐다. 땅을 빼앗은 사람이 친구 아버지였다니. 석태는 좀 잘 사는 집 아이였다. 석태는 준영보다는 키는 좀 더 컸고 활달한 성격에 까불까불 항상 뛰듯이 다녔으며, 공부도 제법 잘했다. 준영이 학교 운동장에서 방과후반으로 태권도를 배울 때, 석태는 방과후 사범이 따로 운영하는 정식 태권도 도장을 다녔다. 그런데 또래 애들보다 한두 살은 더 먹은 것 같은 좀 되바라진 아이라는 인상으로 준영에게 남아있었다. 중학교 시절에 들려온 풍문에 따르면 석태 네는 미국으로 이민 갔다고 했다.
준석은 지하실에 꾸며놓은 준혁의 앨범 공장을 들여다보고 세탁소로 올라오는데 해윤이 불렀다. 해윤은 맨 아래 서랍에서 엄지마디만한 오래된 사진 하나를 꺼내 준석에게 내밀었다. 증명사진 크기로 오돌토돌한 표면에 구김이 있고 때도 많이 타 있었다.
“이거 느그 할아버진데, 제사 때 올리놓구로 니가 한번 잘 그리 바라.”
해윤은 당초 제사상에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올려놓으려고 했는데, 원본사진이 너무 작아 확대하면 화질이 흐려서 곤란했던 거였다. 준석은 예사처럼 별 대답도 없이 사진을 받아들고선, 몇 주가 지나도록 할아버지를 그리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해윤은 묵은 달력 종이가 매끄럽고 만만했는지, 벽에 걸린 달력 한 장을 뜯어내 세탁소 구석에 겨우 자리 잡은 조그만 책상에 뒤집어 펼쳐놓았다. 돋보기를 쓰고 앉아, 부동산 매물정보를 적을 때 쓰는 네임 펜을 들었다. 너무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 사진을 보고 또 보며 자신의 아버지를 그렸다. 어느 날, 잠깐 들렀다 돌아가는 준석을 불러 세웠다. 해윤은 손에 들고 있던 걸 슬며시 건넸다.
“내가 한번 그리밨다.”
“뭘요?”
물어놓고 아차 싶었던 준석은 돌돌 말려있는 달력종이를 얼른 받아들어 펼쳤다. 한참을 살펴보더니 대수롭지 않은 투로 한마디 했다.
“좋네요. 잘 그리셨네.”
인사치레로 한 말인지, 정말 잘 그렸다는 건지 애매했다. 한참을 보고나서 내놓은 대답치고는 좀 무심하다 싶었다.
4.
해윤은 자기 아버지 증명사진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숙여 자세히 살피기도 하고,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만에 펜을 들어 눈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난히 처진 오른쪽 눈두덩을 그릴 때는 더욱 집중했다. 하얀 종이에 두 눈만 빼꼼히 그렸을 뿐인데, 아버지의 인상이 나오자 흠칫 놀랐다. 매섭고 쌀쌀맞기조차 한 눈매가 영락없이 아버지였다. 자신감이 생긴 해윤은 코를 그리고 인중의 거리를 가늠하여 윗입술을 그렸다. 앙다문 입매의 아랫입술을 마저 그리자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아버지의 표정이 완연했다.
얼굴 윤곽을 그리는 데 또 한참이 걸렸다. 사진을 몇 번씩 확인했다. 눈가의 관자놀이 부분에서부터 하관을 따라 천천히 선을 그었다. 오른쪽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그어 내려가 턱 부분에서 두 선을 잇듯이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턱선이 못마땅했는지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마침내 턱과 구레나룻 언저리에 수염을 그리고 나서야 어색함이 사라졌는지 자못 흡족해했다. 친숙한 아버지의 얼굴이 드러났다. 사진과는 똑같지 않았지만, 해윤이 기억하는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이번엔 얼굴의 윤곽을 먼저 그리기 시작했다. 이마 위에 망건을 씌우고 나서야 이목구비를 그려 넣었다. 매번 그릴 때마다 여전히 아버지가 틀림없지만 뭔가 조금씩 달랐다. 어느덧 해윤은 그 미세한 차이를 즐기고 있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러 가지의 표정으로 나타났다. 40여 장을 연이어 그리면서 해윤은 수십 년 전의 기억을 끌어내 고스란히 그림에 담고 있었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버지가 스스로 종이 위에 나타나 해윤과 마주했는지도 모른다. 해윤의 그리움은 그렇게 그림이 되기 시작했다. 그날 준석에게, 해윤은 제일 처음 그린 아비의 그림을 내민 거였다.
그 후 준석은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미아리 집을 들러 도화지며 물감이며 필요한 화구들을 사다 날랐다.
“말라꼬 이른 걸 자꾸 사 오노, 이거 많이 비싸지?”
매번 이러면서 해윤은 좋아했다. 평소 자식들이 집에 와도 ‘왔나, 밥 묵자, 가봐라’ 세 마디면 그날 할 말은 다 한 셈인데, 화가 아들 준석과는 그림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했다. 집에 들른 준석이 나설 채비를 하면, 얼른 구석의 책상으로 가서 포개놓은 그림들을 꺼내 준석에게 내밀었다. 아마도 그동안 그린 그림 중에 스스로 괜찮다 싶은 작품들을 미리 챙겨놓았을 것이다.
“여가 고향집 뒷산이다. 니는 기억 안 나제?”
해윤은 준석이 사다준 종이가 신통했다. 두께가 도톰해서 잘 구겨지지도 않았고, 표면이 거칠지 않으면서도 까실까실한 게 미끄럽지 않아 좋았다. 물감을 묻혀 붓질을 하면, 묻어날 새 없이 잘 스며들어 덧칠이 편했다. 해윤은 평소 크기가 작은 그림에는 성에 차지 않았는데, 이를 눈치 챈 준석은 매번 2절 크기가 넘는 종이를 사다가 날랐다. 하지만 정작 작업대가 비좁았다. 작업대라고 해봐야 좁아터진 세탁소 가게 한 구석에 겨우 끼워 넣듯 놓아둔 작은 책상이라, 평소에 올려놓던 잡동사니들을 모조리 치워 서랍에 넣어두었지만, 여전히 빠듯했다. 해윤은 책상을 벽에서 조금 떼어내고, 도화지를 이리저리 옮겨 책상 모서리를 덮어가며 그림을 그렸다.
머리가 허연 노인네가 반팔 메리야스 바람으로 등받이도 없는 간이의자에 간신히 걸터앉아, 널따란 도화지를 펼쳐놓고 머리 숙여 붓질을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커다란 도화지를 펼쳐놓아, 슬리퍼를 신은 발 하나는 이미 가게 유리문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그러고 앉은 채 두어 시간이 흘렀건만, 해윤은 한 번 일어서지도 않았다.
“여보, 밥 안 잡사요? 밥 묵자고 밥! 또 시작이다. 그림만 그리만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지 차말로.”
해윤은 가는귀가 살짝 먹어, 작은 소리는 잘 안 들리기도 했다. 이미 그걸 감안하고 부르는 상임의 소리는 충분히 컸고, 손바닥만 한 가게 안에서 지르는 소리라 들리지 않을 리 없건만, 해윤은 들은 척을 안 한다. 답답한 상임가 다가가서 기척을 하며 소리를 지르면 그때서야 뭐,뭐, 오히려 버럭 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어떨 땐 부러 안 들리는 척하는 것 같기도 했다. 상임를 상대하는 해윤 나름의 요령이었을 거다.
언제 왔는지 앞집 사는 중년의 남자가 세탁소 유리문 앞에 서서 해윤을 소리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중천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졸보기마냥 빨아들이는 대머리가 반질반질 거렸다. 마을금고 이사장이었다. 누가 지켜보는 지도 모르고 그림에 열중하던 해윤은 한참 만에 기척을 느끼고 돌아봤다.
“형님, 이게 어디에요?”
“어? 아, 그기…… 내 어릴 때 고향집이라.”
“야, 형님 아주 좋은 집에 사셨네요. 진짜 멋있어요. 형님, 이 그림 저 주시면 안 돼요? 우리 집 거실에 걸어두면 딱 좋겠는데.”
“응? 이걸 뭘…… 장난삼아 기린긴데…… 조으마 가 가등가”
해윤은 겸연쩍어 하면서도 밝게 웃었다. 몇 군데 붓질을 마저 하고나서 그림 아래에 사인까지 넣어 건네주었다. 친구는 연신 고맙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그냥 받아가도 되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냉큼 그림을 받아들고 사라졌다. 때마침 집에 들른 준석이 이 장면을 다 지켜보고 말았다. 준석은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 안 돼요. 그림 이렇게 아무나 막 주는 거 아니에요.”
“니 모르나? 아부지 동네 친구다. 또 그리마 된다.”
준석은 그날 이후로 미아리에 갈 때마다 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빠짐없이 챙겼다. 그림 이야기를 잠시 나눈 후에는 그림들을 몽땅 차에 실었다.
5.
해윤이 아침부터 열심이었다. 초봄이라고는 하지만 추위가 덜 풀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데도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혔다. 드라이 할 옷들을 분류하여 세탁 기계에 넣고 다림질을 했다. 세탁기가 고속 회전하며 내는 외엥~ 소리가 잦아들면 해윤은 옷을 꺼내 옷걸이에 끼워 문 앞 처마에 가로질러댄 봉에 걸어 말렸다. 기름 냄새가 안 날 정도로 건조가 다 된 옷들을 내려 다림질했다. 상임은 다림대 옆 창가에 놓인 재봉틀에 앉아 수선을 했다. 해윤이 다림질하는 내내 상임는 해윤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마땅찮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다했다. 또 없제?”
상임의 대답일랑 애초에 들을 생각도 없었던 사람처럼, 바로 다림대에서 물러나 세탁소 문을 나섰다. 상임은 문을 나서는 해윤의 등에다 대고 눈을 흘기며 뭐라 했지만, 해윤의 귀에 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잠시 후 수선을 마친 상임는 재봉틀에서 일어나 다림대로 갔다. 해윤이 다려서 걸어 놓은 옷들을 작대기로 도로 다 내렸다. 그러고는 그 옷들을 일일이 다시 다리기 시작했다.
나이 칠십 중턱에 들도록 세탁소를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일감이 현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아래 시장통 입구에 새로 생긴 세탁소에 옷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 세탁소는 젊은 사람이 주인인 데다가 세탁공장에서 세탁하고 매장에서는 수납만 하는 신식이어서, 가게 안에 세탁기나 다림대도 없고 실내장식도 깔끔했다.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현대식 공장형 세탁소였다.
“할아버지, 여기 땟자국이 그대로 있잖아요. 어제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당장 입고 출근해야 한다며 짜증을 내는 아가씨를 앞에 두고, 해윤은 미안한 기색도 없고 별 대꾸도 안 한다. 슬그머니 약품 병을 집어 들어 얼룩진 부위에 뿌리고는 무심히 솔질한다. 눈도 침침하고 무뚝뚝한 해윤이 그나마 그림에 온 정신이 팔려 세탁일은 뒷전이라, 땟자국도 그대로고 옷 주름을 못 잡아 이중 주름일 때도 잦았다. 그러다 보니 손님들과 실랑이도 심심찮게 벌어졌는데, 낭패의 몫은 번번이 상임 차지였다. 해윤은 문제를 수습하기보다는 덧나게 하기 일쑤였고, 결국은 상임이 나서서 사정사정해서 넘기곤 했다. 손님들도 칠십 넘은 할머니가 사정하는데 더 따질 수가 없어 넘어가 주는 식이었다. 매번 해윤에게 잔소리를 해보지만 씨도 안 먹히고, 싸우는 일에도 지친 상임이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해결책이 바로 다시 다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옷을 들고 오는 사람들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거나, 그 동네에 3, 40년 이상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해윤은 한 자리에서 세탁소를 하면서, 30년 가까이 통반장을 맡아왔다. 낯선 사람이 골목에 들어서면, 해윤은 다림질하다 말고 그 사람이 어느 대문으로 들어가는지 끝까지 눈으로 좇았다. 나중에 그 집에서 누가 나오면 아까 들어간 사람이 누구냐고 꼭 확인했다. 또 동네 애들이 겨울에 양말 안 신고 다니는 꼴을 못 본다. 잘 놀고 있는 애들을 가게로 불러들여 잔소리했다. 동네 할머니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엔 꼭 세탁소 앞 평상에서 쉬어 가는데, 해윤의 상임가 재빨리 수돗물을 그릇에 떠다 바쳤다. 저녁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아이들이 세탁소 앞을 차지했다. 밤이 좀 더 깊으면 동네 엄마들이 역시 세탁소 앞 평상에 모여, 가운데 조그만 라디오 하나 앉혀 놓고 연속극에 집중했다. 세탁소는 시골의 마을회관 같은 구실을 했다. 그러니 차마 옷을 들고 해윤의 세탁소 앞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가게 문을 나선 해윤은 곧장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세 평 남짓한 작은 방의 사방 벽에는 크고 작은 작품들이 빈틈없이 붙어있었다. 보통은 액자 없이 그냥 붙여놓았지만, 버려진 소파에서 뜯어낸 가죽이나 폐가구, 심지어는 은박지 같은 것들을 이용해서 해윤이 직접 액자를 만들어 작품을 끼워둔 것들도 여럿이 눈에 띄었다. 빈티지라 하기에는 좀 허접해 보였지만, 작품의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려 개성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몇 달 전 옥탑방에 세 들어 살던 총각이 방을 비우겠다고 하자, 해윤은 옥탑방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상임은 옥탑방이 너무 낡아서 남 세주기도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비워두자니 더 망가질 것 같아 어쩌나 하던 차에 그러라 했다. 3층 주인세대에 입주할 때도 그런 정도는 아니었는데, 옥탑방 구석구석을 손수 정돈하는 내내 해윤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그 집의 가장 높은 곳에 오로지 해윤 자신만을 위한 작업 공간을 마련한 것이었다.
한쪽 벽에는 오래되어 가죽이 다 벗겨지고 움푹 꺼진 소파가 붙어있고, 맞은편 벽에는 세탁소에서 다림대로 사용하던 작업대가 놓여있었다. 복덕방 책상보다는 훨씬 커서 2절 크기의 작업에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소파와 작업대, 둘만으로도 옥탑방은 꽉 찼다. 해윤은 작업을 하다가 지치면 바로 소파에 누웠다. 소파 길이가 짧기는 했지만, 키와 몸집이 작은 해윤은 무릎만 대충 접어도 몸 전체를 다 누일 수 있었다. 그사이 비좁은 틈에 놓인 낡은 회전의자는 해윤이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 소리를 냈다. 해윤이 중간중간 그림을 보려고 고개를 들고 등을 기대면 등받이가 덜컥거려, 저러다 자빠지지 않을까 불안했다. 등받이 위에 달린 머리 받침대는 해윤의 머리 위로 반 뼘은 올라와 있어, 안 그래도 작은 해윤이 더 움푹 꺼져 보였다. 해윤은 하루 종일 그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너무 좁아 옴짝달싹할 여유조차 없어 답답해 보였지만, 별로 움직이지 않고도 손이 가닿는 곳에 필요한 것들이 다 대기하고 있었다. 거대한 비행체를 움직이는 작은 조종실 같았다.
해윤의 그림은 밝고 강렬한 색감과 더불어 생동하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또 스케일이 무척 크면서도, 작은 붓으로 조금씩 채워가듯 세세한 디테일을 표현했다. 저 넓은 화면을 언제 다 메우나 싶을 만큼 노동집약적인 과정이었다. 원근법은 물론이고 그 어떤 작법에도 구애되지 않고 그야말로 그리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대로 그렸다. 천진하리만치 자유롭고 거침이 없었다. 마치 눈앞에 펼쳐진 선명한 홀로그램 영상을 보고, 베껴내듯 그려내고 있다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해윤이 그리는 소재도 다양했다. 고향의 풍경과 시골집, 미아리의 동네이웃들, 상임과 가족들, 금강산을 필두로 하는 자연풍광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그렸다.
해윤의 그림에는 유독 집이 많이 등장했다. 그림을 시작한 아주 초기 작품 중에, 결혼하면서 들어가 살게 된 별채 집을 그린 25×20cm 크기의 아주 작은 그림이 있었다. 방 두 칸짜리 초가집과 소 마구간이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었다. 까만 돌담이 집과 마당을 빙 둘러쳐있었고, 바로 지척에 싱싱한 초록으로 덮인 밭뙈기가 붙어있었다. 집을 에워싼 길과 삽짝에 닿는 길이 특이하게 회색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마치 물길에 둘러싸인 것 같기도 하고, 안개 속에 잠긴 듯 아득한 분위기였다. 자루 같은 길의 형상이 어쩌면 어머니의 자궁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왠지 원초적이고 신비스런 느낌이 감돌았다. 생모는 일찍 돌아가고 계모 밑에 성장했던 어린 시절의 결핍을 짐작케 했다.
시골 풍경에서도 단연 집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계절마다 달라지는 시골집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림에 담았다. 질서정연하게 지붕에 얹힌 기와들, 촘촘한 창살 무늬 하나하나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안채와 마당, 사랑채와 별채, 소 마구간 등 집안 구석구석의 살림살이는 물론이고 소, 돼지와 개, 닭들까지 마리 수라도 맞출 듯이 상세하게 그렸다.
6.
해윤이 그림과 함께 벅찬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상임이 잠자리에서 영영 일어나지 않았다. 혈압 약을 먹고 있기는 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연속극을 끝까지 다 보고 잠들었는데, 잠든 사이 심근경색이 왔다. 해윤은 그저 허망했다. 너무 느닷없는 상임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장례 치르는 동안에는 내내 빈소도 지키고 조문객 맞이도 잘했는데, 장례를 치르고 나자 넋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심지어 안방에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일도 잦았다.
고속으로 돌아가는 세탁기에 몸 속 진액이 모조리 탈수된 사람마냥 건들면 바스라질 듯 푸석했다. 허전한 마음을 이겨내 보겠다며 세탁 일에 열중해봤지만, 고작 일주일도 버티지 못했다. 평생을 천직으로 알고 꾸려온 세탁소였지만 상임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해윤은 당황했다. 종일 허둥대다 그냥 하루가 저물곤 했다. 결국 세탁소를 접었다.
부부가 자던 안방은 방 셋 중의 제일 큰 방이었는데, 더 커져 버린 거 같았다. 해윤은 그저 휑한 방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쪼그라들다시피 한없이 작아지고 작아졌다. 해윤은 아침마다 습관적으로 세탁소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세워 옥탑방으로 옮겨야만 했다. 당연하게 지녔던 것들을 모조리 다 빼앗기고 빈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허전하고 허망한 마음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끼니도 걸러 가며 거의 온종일 옥탑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 좋아하던 그림도 도무지 손에 잡히질 않았다. 작업대 위에 쓸쓸하게 널부러진 화구들엔 먼지만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옥탑방 안이 답답해 옥상 마당에 나가 기지개를 켜다가 뾰족하게 삐져나온 노란 개나리 꽃잎에 눈이 꽂혔다. 지난 봄 상임이 동네 친목계 사람들과 산에 갔을 때 꺾어온 가지 몇 개를 화분에 꼽아놓았는데, 그새 가지가 휠 만큼 자라났다. 꽃망울이 맺힌 다른 화분들에게도 눈이 옮겨가고, 항상 푸른 푸성귀들이 실하게 자라던 사과상자 텃밭에 흙만 가득한 채 비어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해윤은 각종 채소 모종을 사다 심고, 꽃나무들 이파리들을 다듬고, 아침저녁으로 매일 물을 주었다. 그나마 마음을 쏟을 데가 생겼다.
오래전, 가겟방에서 옥탑방으로 살림집을 옮겨야 했을 때, 상임은 1층에서 옥상까지 어떻게 오르내리며 사냐고 시큰둥했지만, 널널한 옥상을 보고는 단박에 생각을 바꿨다. 힘들다던 그 계단을 하루에도 열두 번 오르내리며 크고 작은 화분을 사다 놓고, 흙을 퍼 날라 별의별 종류의 꽃과 나무를 다 심었다. 그렇게 상임의 손길 아래 옥상은 2, 3년 만에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울창한 정원이 되었다.
유난히 가을볕이 좋은 날이었다. 준혁의 아내가 고추를 비닐에 가득 담아 옥상으로 가지고 올라왔다. 친정에서 올해 딴 고추를 보내왔다며, 옥탑방 지붕에 널어놓고 내려갔다. 색도 색이지만 길쭉하고 통통한 것이 제법 실했다. 그날도 해윤은 어김없이 옥상으로 나와 화분의 꽃들을 만지고 있는데 갑자기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금새 굵어져서 누굴 부르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 해윤은 옥탑방 벽에 세워진 사다리를 기듯이 조심스레 타고 올라, 널린 고추들을 비닐 자루에 주섬주섬 쓸어 담았다. 부피도 컸지만 거의 생고추나 다름없어 무게도 수월찮았다. 비닐의 목을 한 손으로 꼭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사다리 난간을 잡고 내려오는데, 마지막 칸에서 그만 삐끗했다. 발목을 접질려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허리도 삐끗하고 말았다. 여든다섯 노인치고 그만하기 천만다행이었다. 석 달여 동안 옥탑방은커녕 문 밖 출입도 못 하고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 지내야 했다.
해가 바뀌고 허리통증이 잦아들어 겨우 움직일 만하자, 해윤은 제일먼저 목발을 짚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동안 비워 둔 옥탑방도 썰렁했지만 옥상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 많은 화분의 꽃들이 모조리 떨어지고 없었다. 그나마 달려있는 이파리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너덜너덜 쭈그러든 채 다 얼어버렸다. 담을 타고 오르던 넝쿨은 사방으로 어지러이 뻗쳐 엉킨 그대로 말라붙었다. 구석에 꺼칠하게 서 있는 옥수숫대가 누렇게 바래어 추레했다. 준혁 부부는 졸업시즌을 앞두고 앨범 납품 기일을 맞추느라 온 식구가 매달려 있어, 누구 하나 옥상을 들여다볼 형편이 아니었다. 옥상정원의 처참한 몰골이 해윤의 마음을 더없이 심란케했다.
겨울 추위가 갈수록 매서워지면서 해윤은 옥상에 나가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옥탑방에 틀어박혀 하루하루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도 어깨를 귀밑까지 끌어올린 채 구부정하게 서서 창 너머 옥상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었다. 옥상 구석에 보자기를 덮고 비닐을 씌워둔 재봉틀이 눈에 들어왔다. 세탁소를 접으면서 상임과 40여년을 동고동락 해온 재봉틀을 차마 버릴 수가 없어 옥상 한구석에 올려다 놓았던 거였다.
해윤은 손주를 시켜 재봉틀을 옥탑방 안으로 들여놓게 했다.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서랍을 열어보았다. 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헝겊 자투리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 아래 서랍을 열자, 이번에는 규격이 다른 얇은 책자들이 모아져있었다. 전시 리플렛들이었다. 준석이 20대 젊은 시절에 전시한다고 가져온 걸 상임이 챙겨두었던 거였다. 하도 오래된 거라 누렇게 색이 바래고 가장자리는 일부 헤지기도 했다. 해윤은 꺼내 천천히 들쳐보았다. 오래전 전시장에서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나는 도판에 시선이 멈췄다. ‘철암천에서’라는 제목의 그림이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다니고, 초록의 나무들로 빽빽이 우거진 짙푸른 산, 하늘의 구름을 그대로 훤히 비추는 개천이 그려져 있었다. 해윤은 뚫어져라 보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몸을 움직여 벽에 걸려있는 묵은 달력을 바라보았다. 1-2월이 들어있는 마지막 한 장만 달랑 남아있었다. 해윤은 상임이 설을 엿새 앞두고 떠난 사실을 새삼 곰씹으며, 기일에 동그라미가 표시된 마지막 달력 장을 마저 뜯어냈다. 벽에는 달력 쫄대만 덩그러니 못에 걸린 채 흔들렸다. 해윤은 뜯어낸 종이를 작업대 위에 엎어 놓고 두 손으로 쓰다듬듯이 펼쳤다. 또 한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옆 책장을 뒤적여 12색짜리 칼라 싸인펜과 뚜껑이 말라붙은 포스타 칼라 물감을 찾아 꺼내놓았다. 물통에 개수대 물을 받아 놓고 바짝 말라버린 붓을 담갔다. 마침내 해윤은 붓을 집어 들고 물감을 듬뿍 묻혔다. 상임이 죽고 붓을 놓은 지 1년 만이었다. 그렇게 상임의 빈자리에 그림이 다시 들어섰다.
자라나는 그림 속으로 상임이 들어온다.
상임이 옥탑방 앞에 잔뜩 늘어선 화분들에게 파란 플라스틱 물조리개를 기울여 물을 주고 있다. 자잘한 초록 이파리들이 가느다란 물줄기가 간지러운지 가볍게 흔들린다. 뒤로 젖혀진 푹신한 의자에 깊숙이 들어앉은 해윤이 상임의 움직임을 무심히 바라본다. 아파트 사이사이로 드러난 황금빛 석양이 해윤의 등을 어루만진다. 너른 옥상 곳곳에 빈 곳이 없을 정도로 꽃과 나무가 가득하다. 잎사귀가 넓적한 넝쿨식물들이 옥탑방 벽을 타고 오른다. 손가락만한 오이 꽁지에 노란 오이꽃에 달려있다. 길가 쪽 옥상 난간에 바짝 붙어있는 고동색의 커다란 고무 통에는 황금측백 나무들이 서로 어깨를 겯고 방풍림처럼 나란히 늘어서있다. 그 앞에는 활짝 핀 꽃더미가 버거운 듯, 수국이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건너편 난간 앞에는 고추와 깻잎이 자라고, 그 옆에 어른 허리 높이로 나란히 줄지어 올려놓은 사과 궤짝들 안에는 청경채와 쑥갓, 치커리와 상추 등 여러 종류의 푸성귀들이 한두 포기씩 빼곡히 들어차있다. 하루 종일 해가 가장 잘 드는 옥상 구석에는 세멘으로 무릎팍 높이까지 울타리를 세우고 흙을 돋아놓은 별도의 화단이 만들어져 있다. 그 안에는 어른 키를 넘길 만큼 다 자란 옥수숫대들이 멀뚱하게 모여 서있다.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실제인 것처럼 그림 속에서 생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