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생각 / 고향의 봄》
[ 오빠 생각 ]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 있을까?
거의 국민가요 수준에 이른 이 시를 노래한 가수만 해도 여럿입니다.
그러나 이 시가 12살 소녀에 의해 씌어 졌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듯 합니다.
최순애(1914~1998), 1925년 11월, 12살의 소녀 최순애는[오빠생각]으로 당시 방정환이 내던 잡지 [어린이]의 童詩란에 입선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4월 14세 소년 이원수(1911~ 1981) 역시 [고향의 봄]으로 이 코너의 주인공이 됩니다.
나의 살든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 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시를 보고 크게 감동을 받은 열두살의 소녀 최순애가 선생님께 편지 띄우기 시작한 것이 마산
소년 이원수와 수원 소녀 최순애는 펜팔친구가 됐고, 서로 얼굴도 모르면서 결혼 약속 까지 했답니다.
펜팔 한지 7년 후 수원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7년 후에 이원수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원수는 독서회를 통해 불온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경찰에 구속돼 1년간 감옥에 있었던 것입니다.
최순애의 집에서는 이런 예비 사위가 못마땅해 다른 혼처를 알아보고 권해 보았건만~
최순애는 완강히 거부를 하다 1년 후에 이원수가 풀려나고 최순애의 집으로 달려 오면서~~~
1936년 6월에 결혼식을 치르고 슬하에 3남 3녀를 두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요즘 세대에는 믿기지 않을 순애보입니다.
[오빠 생각]과 [고향의 봄]의 만남이라고 할까요.
노래가 만들어 지기까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위에" 로 시작되는 이은상의 시(동무생각)에 곡조를 붙이는 등...
유명한 작곡가 고 박태준(1900~1986) 선생님은 최순애를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그녀가 훗날 이원수의 아내가 되었다는 소식만을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최순애 선생님이 살아생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작 동기를 밝혔는데,
오빠생각 노래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는 중요한 부분이라 소개해봅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오빠 한 분이 계셨습니다.
딸만 다섯에 아들 하나뿐인 우리 집에서 오빠는 참으로 귀한 존재였다.
오빠는 동경으로 유학갔다가 관동 대지진 직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 사태를 피해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아 왔다.
그 이후 일본 순사들이 늘 시도 때도 없이 요시찰 인물로 보고 따라다녔다.
오빠는고향인 수원에서 소년 운동을 하다가 서울로 옮겨 방정환 선생 밑에서 소년 운동과 독립운동에 열심이었다.
집에는 한달에 한 번 정도 밖에 오질 않았다.
오빠가 집에 올때면 늘 선물을 사 왔는데 한번은
"다음에 올 땐 우리 순애 고운 댕기 사줄께"라고 말하고 서울로 떠났다.
오빠는 뜸북새, 뻐국새 등 여름새가 울 때 떠나서
기러기와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이 와도 돌아오지 않는다.
서울 간 오빠는 소식조차 없었다.
과수원 집 딸인 그녀는 오빠를 과수원 밭둑에서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움으로 울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쓴 노래가 바로 오빠 생각입니다.
♡♡~~♡♡~~♡♡~~♡♡🌷🌷
첫댓글 저도 가끔 부르는 오빠생각
사연이 있었네요
영원한 동요
명품 동요
우리 동요가 최고여^^
애틋한 사연이 있는 동요 그냥 오빠를 그리는 동요로만 알고 있었지요
어릴적 많이 불렀어요
명보님 감사합니다
어린시절 많이도 불렀던 우리동요인 오빠생각이 이런 애뜻한 여동생의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얼룩진 사연이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