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우리는 온전히 선하고 온전히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되는 이 신심행위들이 결국은 하느님과의 합일로 인도하는 길에 지나지 않음을 모르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길의 끝에 도달했으면서도 여전히 길 위에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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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영혼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가 환상에 빠지지나 않을까 우려하면서 말입니다.
처음에 이 영혼은 다른 사람들처럼 길을 나섰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 신심행위들을 알았으며, 이것들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영혼으로 하여금 이런 행위들에 순종하도록 강요하려 들겠지만 부질없는 일입니다. 이 구원책(救援策)에 기대어 당신께 나아가고자 하는 영혼의 노력에 감동을 받은 하느님께서 그 앞에 친히 임하시어 그를 이 복된 결합으로 인도하는 것을 당신의 일로 삼으신 이후,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고자 하는 열망만이 존재하고 사랑에 의해서만 비로소 하느님을 소유할 수 있는 이 아름다운 영역에 영혼이 도달한 이후,
그리고 선하신 하느님께서 그의 근심과 노고를 대신하시며 당신 스스로를 그의 활동의 원리로 세우신 이후, 이 방법들은 영혼에게 효용성을 상실했으며, 영혼이 주파하고 난 뒤 그의 뒤에 남겨진 하나의 길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영혼에게 이 방법들을 다시 취하거나 이 방법들을 계속해서 따르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그가 이미 도달한 목적지를 포기하고 그를 그곳으로 인도했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게 만들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간 낭비를 하고 헛수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 영혼에게 약간의 경험이 있다면, 내적 혹은 외적으로 질타하는 소리들을 들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소음에 별로 충격도 받지 않고, 이 아우성에도 전혀 끄떡하지 않는 이 영혼은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이 너무나 유익하게 작용하는 이 내적 평화로움 속에 어떠한 동요나 흔들림 없이 머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가 바로 그가 휴식을 취하게 될 중심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몸소 내신 곧은 길이고, 그는 이 길을 계속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는 이 길을 한결같이 걸어갈 것이고, 현 순간 그가 행해야 할 모든 의무들이 그 길에 나타날 것입니다.
영혼은 이 의무들이 하나둘씩 나타남에 따라 이 길이 명하는 바를 따르면서,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이 의무들을 완수할 것입니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는, 영혼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은총의 움직임이 감지되자마자 이에 순명하고 섭리의 보살핌에 자신을 내맡길 준비가 늘 되어 있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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