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나를 다독이는 여행, 해파랑길 49~50 구간을 걷다
1. 일자: 2023. 5. 6 (토)
2. 장소: 해파량길 49, 50
3. 행로와 시간
[통일안보공원(10:10) ~ (버스) ~ 통일전망대 ~(버스)~ 제진검문소(11:45) ~ (솔산봉수대/마차진) ~ 통일안보공원(12:58) ~ 금강산콘도(13:10) ~ (대진등대) ~ 대진항(13:26~14:35) ~ 초도해수욕장(14:40) ~ 초도항(14:57) ~ 화진포해수욕장(15:06) ~ 화진포생태박물관(15:24) ~ 응봉(16:05) ~ 해맞이봉(16:49) ~ 거진항(17:05) / 18.69km]
< 해파랑길 49~50 구간 트레킹를 준비하며 >
부산 오륙도에서 시작된 해파랑길은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길게 이어진다. 오늘은 그 끝인 49~50 구간을 간다. 바닷길을 따라 화진포 해변, 대진항, 마차진 해변, 통일전망대공원, 명파 해변은 걷게 되고, DMZ박물관과 통일전망대 구간은 차로 이동한다. 역방향으로 걷지만 마음은 국토의 북쪽 끝으로 향한다.
어인 연유인지 동해 고성을 가보고 싶다는 오랜 바램이 있었다. 지난 겨울 속초항에서 봉포항까지 걸으며 갈증은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또 가고 싶은 마음이 가시지 않았는데, 우연히 얻게 된 기회를 낚아 챈다.
18km 거리에 5시간 40분이 주어진다. 시간당 3km로 걸으면 된다. 제진검문소에서 50구간이 시작되며, 명파해변을 거쳐 통일안보공원까지 5,7km 거리다. 49구간은 대진항을 거쳐 거진항까지 이어지는데 강원도 20대 명산 중 하나인 응봉을 지나게 된다.
봄, 동해 바다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그리고 그 길에서 맺게 될 인연이 기대된다.
< 통일전망대 >
어린이날부터 내린 비가 토요일에도 계속된다. 봄비 치고는 이례적으로 그 양도 많다. 덕분에 남도지역에 오랜 가뭄이 해소된다 하니, 조금 불편해도 내리는 비가 고맙다.
비를 맞고 버스에 오른다. 만석이던 좌석이 몇 개 빈다. 궃은 날씨 덕에 도로는 뻥 뚫린다. 내리는 비의 기세가 매섭다. 동쪽으로 갈수록 빗방울이 굵어진다. 우산 만으로는 부족할 듯하여 휴게소에서 우의를 샀다.
진부령을 넘어 고성으로 내려선다. 해안가를 달려 통일안보공원에 도착했다. 안보교육보다는 관광안내 성격의 동영상을 시청하고 차로 통일전망대로 이동한다. 이동거리가 꽤 멀다.
통일전망대 D자형 건물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넓고 사나웠다. 날씨가 맑으면 북녘땅이 한 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아쉽다. 망배단과 예수님 고상이 서 있는 언덕을 거쳐 내려왔다. 아쉬웠지만 통일전망대를 다녀왔다는 데 의의를 둔다.
< 해파랑길 50코스 >
제진검문소를 지나 차로 조금 더 이동한 곳이 50코스 들머리가 되었다. 11시 45분이다. 명파해변을 우회하여 산길로 접어든다. 너른 군사용 도로가 무척 길다. 산허리길 밑에서 우렁찬 바다의 소리가 들려온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 으로 시작되는 노래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봉수대는 오르지 않고 우회했다. 나중에 이 길은 진뜩한 오름으로 기억되리라. 그렇게 4km쯤 산길을 걷고 언덕을 내려서니 도로가 나타난다. 마차진 이정이 보인다. 해안에 철책이 서 있고 도로 주변은 을씨년스럽다. 문을 닫은 상점들이 여럿 있다. 머지 않아 오전에 들렸던 통일안보공원이 나타난다. 5km 남짓한 해파랑길 50코스는 별 특색이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건 단지 멀고 외지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 해파랑길 49코스 1 >
비는 줄기차게 내린다. 신발과 머리가 다 젖었다. 바람이 덜 부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주유소 건물을 돌아드니 금강산콘도 건물이 우뚝 솟아있다. 해안을 파도가 흰 포말을 그리며 맹렬하게 달려든다. 날은 궃어도 비 오는 바다 풍경은 꽤 매력적이다.
대진등대를 지나 해안으로 내려선다. 비에 젖은 금빛 백사장 옆을 걷는다. 이 날씨에도 서핑을 즐기는 이가 있다. 한참을 바라보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대진항에 들어선다. 정박된 배를 보니 여행자의 흥분이 인다. 이곳에 닻을 내려야 한다.
포구 풍경이 멋지다. 배가 고파온다. 이곳 저곳을 헤매다 만석이라, 입구를 못 찾아, 결국 해수욕장 앞 식당에 들어선다. 물회를 주문한다.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은 상거지다.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이라 여겼는데 물회는 꽤 푸짐했다. 특히 오돌오돌 씹이는 해삼은 식감이 일품이었다.
먹고 나니 기운이 난다. 초도해수욕장 방향으로 한참을 걷다 식당에 스틱을 두고 온 걸 확인한다. 되돌아 왔다. 1km 이상을 더 걸었다. 결국 1시간 넘게 대진항에 머문 꼴이 되었다. 그래도 비가 그쳐 다행이다. 알바한 시간을 만회하려 걸음이 빨라진다.
비 그친 초도 해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길을 나선지 처음으로 해변 모래사장에 내려선다. 사진을 부탁해 찍었다. 표정에는 지나온 험난한 여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해변 길도 무척 좋았다. 바라보는 풍경에는 바다가 있었고, 검푸른 파도가 있었고, 빨간 우산을 쓰고 해변을 산책하는 여인이 있었다. 해변에 선 이정표를 본다. 통일안보공원에서 4.7km를 왔고, 거진항까지는 7.9km가 남았다 한다. 대진항에 오래 머믄 탓으로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 부지런히 걷는데 주변 풍경이 너무 좋아 멈추어 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초도해수욕장은 다시 오고픈 멋진 곳이었다.
해수욕장에서 초도항으로 가는 길에 돌아본 풍경에는 넘실거리는 바다, 아득한 해변 마을, 검은 돌이 있는 해변, 그리고 너울지는 먼 산이 있었다. 초도항 풍경도 못지 않게 근사했다. 기분이 좋아진다. 비는 몸이 젖을까 걱정하는 시간이 지나면 무감각해진디. 이 빗속 해변을 걷는 일이 축복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맑는 날에는 경험할 수 없는 많은 일들과 인연을 맺었다. 훗날 추억이 되리가 믿는다.
초도항에서 인근에 또다른 근사한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화진포다. 해변이 무척 넓고 주변에 여러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규모로는 속초해수욕장 버금간다. 다시 해변에 내려선다. 해안 끝에 높다란 산이 보인다. 그 주변으로 파도 안개가 인다. 비 오는 날에만 볼 수 있는 속된 말로 '득템' 풍경을 만끽했다. 화진포, 기억할 이름이 하나 더 생겼다.
화진포해수욕장을 지나 다리를 건너자 이번에는 고요한 호수가 등장한다. 둘레가 16km나 된다는 화진포다. 인근한 호수와 바다의 풍경은 너무나 달랐다. 잔잔한 물결이 마음에 여유를 가져온다. 비 그친 호수의 먼 풍경은 그리운 이들의 얼굴과 옛 추억을 불러온다. 아스라했다.
20여분 화진포 호수 주변을 걸었다. 동해 북쪽 해파랑길의 또다른 묘미는 바닷가 호수를 걷는 일일 게다. 경포, 청초호, 영랑호, 화진포 그 중 화진포가 가장 너른 것 같다.
< 해파랑길 49코스 2 >
화진포생태박물관 앞에 선다. 길이 어지럽다. 이기붕, 이승만, 김일성의 별장을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굳이 입장료를 내고 가, 그들의 흔적을 찾을 필요를 느기지 못했고, 무엇보다 받아 온 트랭글 궤적은 다른 등로로 나를 안내했다. 화진포 호수를 버리고 야산으로 올라선다. 주변이 놀랍게 고요하다. 거대한 소나무들이 길가에 우뚝 선 숲에 들어선다. 이 길을 따라가면 강원 20대 명산 중 하나인 응봉에 닿게 된다. 마을 뒷산 언덕을 걷는 기분이다. 누런 황토 흙을 걷는 발 밑 감촉이 무척 좋다. 높이는 150미터에도 못 미치지만 꽤 길게 숲을 걷는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각, 응봉 정상에 선다. 화진포 소나무숲 산림욕장이라는 글귀가 정상석에 새겨져 있다. 맞다. 소나무가 참 멋진 곳이다. 내려다 보는 풍경에는 화진포와 바다가 함께 펼쳐진다. 근사한 풍경 명소다.
남은 거리는 3.5km 정도, 1시간은 부지런히 가야 한다. 잘 정비된 숲을 걷는다. 솔 숲은 최고다. 해맞이봉을 이정 삼아 부지런히 걷는다. 붉은색과 주황색이 쌍을 이루며 나붓끼는 해파랑길 안내 리본 사진을 여럿 찍었다. 더 좋은 것 찍으려는 바램이 집착이 되어 간다. 적당할 때 멈춰야 한다.
습기를 머금은 숲은 싱그럽다. 단풍나무의 푸른 잎이 매력적이다. 붉은 낙엽도 좋지만 짙한 초록도 못지 않다.
등로가 어지럽다. 거진풍물시장으로 내려서는 안내도 있다. 해맞이봉은 안내만 요란했지 정작 어딘지도 모르게 지나쳤다. 유원지처럼 테마공원이 여럿 있었다. 언덕을 내려선다. 소나무 숲 사이로 거진항이 내려다 보인다. 산에서 보는 항구는 꽤 북쩍거린다. 긴 계단을 내려서자 포구가 나타났다. 준비 없이 갑자기 길이 끝난 기분이다.
비 맞고, 몸 젓고 신발은 질척거려다. 그래도 여정의 끝은 행복이었다.
< 에필로그 >
극토의 반쪽, 동쪽 끝에 자리한 고성은 평화로웠다. 번잡하지도 않고 숲길과 바닷길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 걷기에 그만이었다. DMZ에 인접한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하여 명파, 마차진, 대진, 초도, 화진포를 거쳐 거진항까지 걸었다. 평소 글로 읽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고성의 명소들을 내 발로 걸으며 경험했다. 생각에 의한 관념이 아닌 몸의 체험은 더 생생하고 길게 내 것이 된다.
버스에 출발하고 어둑해지는 진부령으로 향한다. 오늘 빗 속을 뚫고 걸은 18km, 5시간 20분의 여정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