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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수집책-나의 스무 살 이야기
내 스무 살, 어느 하루의 기록
김인숙
스무 살의 나는 ‘죄수생’이었다. 학생의 본분을 다하지 못해 대학에 떨어졌으니 굳이 죄목을 대자면 ‘직무유기죄?’, ‘괘씸죄?’, 그도 아니면 엄마의 얼굴을 창피하게 만든 ‘불효죄’일지도 몰랐다.
물론 현실의 나는 수갑을 차고 철창에 갇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어느새 굳게 수갑이 채워졌고 나는 스스로 감옥 안에 들어앉았다. 그 감옥 안은 을씨년스러웠고 나는 몸서리치게 외로웠다. 물론 아무도 나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보는 사람마다 나를 다독였다.
“긴긴 인생에 한 번 실패는 아무것도 아니지.”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가면 되지 뭐.”
“재수하면서 정신 차리고 몇 단계 위 대학에 가는 아이들도 많더라.”
딴에는 위로한다고 하는 말들이 내 가슴을 들쑤셨다. 말이 채찍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채찍의 강도가 세서 나는 아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그냥 바라만 보아도 상대방의 얼굴에서 뭔가 불쌍하게 생각하고 안쓰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자격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네가 알아서 학원에 다녀!”
엄마는 딱 잘라 말했다. 내가 국문학과에 간다고 우길 때부터 엄마는 못마땅해했다. 엄마는 처음부터 간호학과나 전산학과 등 졸업해서 바로 취업이 가능한 학과를 원했다.
“국문학과 나와서 어떻게 먹고살래? 국문학과가 취업이 잘 되는 과도 아니고…….”
나는 원서를 쓰면서부터 엄마와 어지간히 싸웠다. 그래서 내가 대학에 떨어졌을 때 오히려 엄마는 기뻐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학과를 변경하지 않는 한 학원비는 줄 수 없다고 엄마는 강경하게 나왔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엄마가 그럴수록 오기가 생겨 보란 듯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다. 내가 일자리를 찾아 출근하겠다고 말하자 엄마는 기막히다는 듯 말했다.
“본격적으로 3월에 시작해도 대학에 갈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학원비까지 벌면서 잘도 가겠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그렇게 잘났으면 네 맘대로 한번 살아봐라, 딸 하나 없는 셈 치지 뭐.”
엄마는 등 뒤에서 소리쳤다. 나는 대답 대신 현관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출근을 선언한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지하철역에 들어서자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의 모습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승강장으로 전동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나 역시 마음이 급해져 두 계단씩 뛰다시피 내려갔다. 줄이 길어서 이번 전동차를 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몸을 욱여넣어야 했다. 뒷사람에게 밀려 겨우 전동차를 타기는 했으나 이리저리 치여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전동차가 을지로4가역에 멈추자 나는 도망치듯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에 도착했다. 허름한 5층 건물의 4층까지 올라가려면 마흔여덟 개의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3층으로 올라가는 열일곱 번째 계단부터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많은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1층에서 2층을 오르는 열여섯 개의 계단은 방금 쓸어놓은 듯 언제나 깨끗했다. 2층 식당 주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대걸레를 들고나와 청소하기 때문이었다. 식당 주인이 방금 물걸레질한 곳을 밟고 지나가려면 행여 발자국이 찍힐까 봐 조심스러웠다.
대걸레로 쓸어서 모아놓은 쓰레기를 매번 맨손으로 주워 담는 식당 주인은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 내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이거야 원, 꽁초를 버리는 손모가지를 분질러 놓든가 해야지, 이러다가 식당 손님 다 떨어지면 제 놈들이 날 벌어먹일 건가, 빌어먹을 놈들.”
정작 욕을 먹어야 할 사람은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3층 심부름센터 직원들이었으나 그들이 지나갈 때도 욕을 할는지는 알 수 없었다.
3층 심부름센터에는 남자 사원들이 많았다. 출근길에 그들은 비좁은 계단과 복도에 죽 늘어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가 들었을 일회용 종이컵을 들고 왁자지껄 떠들었다.
그들은 내가 출근하기 전부터 복도에 난 창으로 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어쩌다 나를 발견하면 거침없이 휘파람을 불어댔다. 나는 그들이 물고 있던 담배를 계단 아무 곳에나 집어 던지고 발로 비벼 끄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조금 전에는 4층으로 오르는 계단 참에서 용변을 막 마치고 나오는 심부름센터 직원을 만났다. 미처 잠그지 않은 바지 지퍼를 올리며 화장실 문을 밀치고 나온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하지 않고 씩 웃었다.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경리 여사원인 조가 먼저 나와 있었다. 나는 슬리퍼를 갈아 신고 창문을 열었다. 사무실 바닥을 쓸고 커피를 타기 전에 잠시 시계를 보았다. 8시 40분, 이제 곧 사무실 사람들이 출근할 시간이었다.
직원이 총 다섯 명인 이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잡일이었다. 청소는 기본이고 복사와 심부름, 때로는 은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3층 심부름센터 직원이나 나나 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특별한 기술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이런 종류의 일이었다. 엄마 말대로 하다못해 타이프라도 잘 친다면 좋았을걸,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무실은 온종일 시끄러웠다. 방음이 되지 않은 옆 사무실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비롯해 찻잔 달그락거리는 소리, 화투를 치다 말고 언성 높이는 소리, 바로 옆 철공소에서 두드려 대는 쇠망치 소리도 합세했다.
도로 옆 고층 건물들은 깨끗하고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 건물들 뒤쪽으로는 아직 형편없는 건물들이 더 많았다. 그것이 을지로 뒷골목의 속사정이었다.
나는 가파른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면서 되도록 고개를 들지 않았다. 금이 간 벽에 물이 새서 흥건히 젖은 얼룩과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페인트칠이 보기 싫어서였다.
문득 허름한 사무실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자신이 점점 흉물스럽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계단은 매우 가팔라서 두 층을 올라간 뒤 계단참에서 숨을 돌려야 했다.
계단이 그 모양이니 화장실은 더 볼만했다. 물 내리는 손잡이는 떨어져 나간 지 이미 오래되었고 물은 자주 나오지 않았다. 사무실 사람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건물주인은 큰 밤색 물통에 때 묻은 바가지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바가지는 너무 작아서 대변을 보고 나면 한참을 퍼부어야 겨우 내려갈 것 같았다. 물론 나는 화장실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재래식 비좁은 화장실에 물통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소변을 보려고 화장실에 쭈그려 앉으면 물통이 얼굴 앞을 가로막았다. 그래도 물통이 공간을 차지하는 불편함이 코를 감싸 쥐게 하는 지린내보다는 훨씬 나았다.
소변 하나도 제대로 조준하지 못하고 바닥에 질질 흘리는 남자들이 이 건물에는 많이 있었다. 나는 화장실을 드나들 때마다 문화의 척도는 화장실에서 잴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고는 했다.
그놈의 물통만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그럭저럭 소변은 보겠는데 물통이 답답해서 나는 길옆 빌딩 화장실을 이용했다. 수위의 눈이 번뜩이는 현관을 지나 지하 커피숍으로 내려가는 척하다가 1층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화장실로 살며시 들어갔다.
오늘따라 사무실 계단을 오르며 이 허름한 건물이 ‘죄수생’인 나와 분위기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나는 어쩌면 영원히 이 건물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창가 쪽을 바라보고 앉은 나는 사무실의 움직임을 소리로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되니 전화를 받는 말투나 억양에 따라 오늘 그 사람의 컨디션이 어떤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뒷자리에 앉은 최는 매사에 신경질적이었다. 전화기를 기분 좋게 내려놓는 적이 거의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상대방에게 하지 못한 두어 마디를 못마땅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하루에 한두 번씩 언성이 높아지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이 사무실에서 그가 맡은 역은 악역이었다. 그는 경우 없는 세상 사람과 싸우느라 늘 피곤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몸은 쇠꼬챙이처럼 말랐다.
반면 왼쪽에 앉은 강은 용감했다. 목청도 크고 씩씩했다. 너무 씩씩해서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는 사무실 사람 모두에게 털털한 웃음으로 농담을 건네고 개개인에게 소소한 친절을 보이기도 했다.
경리 조의 목소리는 꿈결 같았다. 가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소리가 한 옥타브 높게 올라갔다. 웃음소리가 길어지는 날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고 온 다음 날이거나 남자친구와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 몸에 꽉 끼는 바지를 입은 조의 엉덩이는 말 그대로 터질 것만 같았다. 3층 심부름센터 직원들은 조가 나타나면 휙휙 휘파람을 불어댔다. 때로는 ‘예쁘다’하는 고함도 들렸다. 작년에 입대한 오빠를 면회 갔을 때 여자들을 보면 무작정 아무 소리나 지르던 군인들 같았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조는 애인과 통화를 했다.
“어제 영어학원 끝나고 자기 오는 줄 알고 기다렸는데, 마중 오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 오늘은 꼭 올 거지?”
조의 목소리가 애교 섞인 비음으로 변했다. 나는 부장이 던져준 서류를 타이프치다가 갑자기 무기력해져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필이면 조가 내뱉었던 ‘영어학원’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나의 귀에 쏙 박혀서였다.
‘맞아, 학원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든 올해 대학에 가려면 늦어도 6월에는 학원에 등록해야 했다. 6월에 시작해서 과연 대학에 갈 수 있을지, 갑자기 자신이 없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11월까지 학원에 다니는 것도 어림없었다. 나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퇴근 전까지 오늘 맡은 일을 끝내지 못하면 집에 가지고 가야 했다. 나는 속도를 냈다.
5시가 되자 타이프친 서류를 부재중인 부장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무실을 나왔다. 큰길가로 나오자 숨통이 트였다. 나는 한참을 서서 심호흡했다. 이제 지하세계로 들어가려면 신선한 공기를 잔뜩 마셔 두어야 했다.
‘자리에 앉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전동차가 간격이 짧아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개찰구로 들어갔다.
전철역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 유하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유하의 눈에 띄기 전에 잽싸게 옆 건물로 들어갔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하가 나를 지나치고도 한참 만에야 건물에서 나와 멀어져가는 유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유하의 왼손에는 전공 서적인 듯 꽤 두꺼운 책이 두어 권 들려있었다. 공부를 잘했던 유하는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들어갔다. 학창 시절 우린 단짝이었는데, 나도 모르는 순간 유하를 피하는 자신이 생각할수록 못나고 부끄러웠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구겨진 자존심과 나 자신의 역겨움에 속이 상해서 엎드려 울었다. 사람들이 나를 위로했던 것처럼 긴긴 인생에 1년이라는 기간은 별것 아니라는 말이 정말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울다 지쳐서 잠이 들은듯했다. 방밖에서 엄마가 한참 동안 노크를 하다가 이내 방문을 흔들었다.
“왜 그러는데, 문 열어, 문 안 열면 엄마가 열쇠 가지고 온다.”
나는 방안의 불을 켜고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니? 밥도 안 먹고 뭐 하니?”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었다. 울고 잠들었던 터라 부어오른 내 얼굴은 엉망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나를 보고 있던 엄마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졌다. 내일부터 등록하고 학원 다녀. 내가 너랑 싸워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나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갑자기 어안이 벙벙했다.
“엄마가 미안해, 우리 딸 이렇게 힘든 것도 모르고.”
엄마가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서러움에 엄마의 품에 안겨 울었다. ‘죄수생’이 드디어 출소하는 날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저녁으로 두부를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아침마다 전쟁처럼 치러야 하는 출근길과 사무실의 가파른 계단, 심부름센터 직원들의 음흉한 눈빛, 재래식 화장실을 탈출할 수 있어서 나는 너무 기뻤다.
글/김인숙
문예창작을 전공하였으며 문화일보 단편소설 부문으로 등단하였다. 잡지사, 출판사에서 20년 근무 후 자서전 전문 회사 마이라이프북(mylifebook.co.kr)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4대사화> <조선야사> <한국사 즐겨찾기> <세계사 즐겨찾기> <97젊은소설> 등이 있으며 현재 청소년 장편소설 <토닥토닥, 네 맘 알아>를 출간 준비 중이다.
주제-좌절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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