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이숙 수필가 추모
대표작 : 「봄으로 서다」 「노을처럼」
1. 봄으로 서다
ㅡ 이숙
입춘대길(⽴春⼤吉)을 쓰면서 언어필신(⾔語必愼)을 같이 써서 붙인다. 봄을 지레 느끼려는 속셈이고 올해 한 해를 말조심하면서 보내리라는 다짐에서다. 어떤 이는 말한다. 정해년(丁亥年) 올해는 옥상토(屋上⼟)이기 때문에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수난의 해가 될 거라고, 예컨대 정치인이나 변호사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특히 말조심을 해야 하는 해라는 것이 그것이다. 말조심이 어디 해를 가릴 것인가. 어느 해든 어디서든 말조심을 필수이거늘, 특히 언어를 다루어야 하는 문인들의 경우는 글 조심 이 말조심과 다르지 않아 더욱 몸을 가다듬게 되는 정해 년이다.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이 봄, 이 봄이 뜬금없이 새삼스러워지는 이유는 내 나이 탓 때문일까? 언제나 봄은 가슴을 파고드는 바람에서 느껴지곤 했다. 황사가 따사한 봄 햇살을 가려도 나의 봄은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래도 싫지는 않았었다. 그리고는 봄은 언제나 나를 밖으로 떠밀곤 했다. 햇살 속으로 들판으로 바다로 나가라 했다. 인도의 시성 R. 타고르는 「오너라 나의 봄아」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남쪽 문이 열렸다/오너라 나의 봄아 오너라/너는 내가슴에 떨리는 대로 떨리누나/ 나의 봄아 오너라/ 나무 잎새들의 속삭임 속으로/들어오너라/ 젊디젊은 꽃의 신도(信徒)속으로/피리 속으로 들어오너라/봄의 낮은 탄식 속으로 네가 털어놓은 두루마기로/ 취한 듯 비틀거리는 봄바람으로/ 사납게, 사납게 쳐다오!/ 오너라 나의 봄아 오너라’라고.
봄을 속삭임으로, 떨림으로, 비틀거림으로 사납게 인식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봄을 떠남으로 인식한다.
봄 못인 춘택(春澤), 봄 호수인 춘호(春湖), 그리고 봄 여자인 춘희(春姬) 등,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촌스럽기만 한이름을 주면서 그렇게 즐거워했다 고한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버린 봄을 아쉬워하는 마음 때문에 그랬던 듯싶다. 내 마음이 요즘 그러하다. 그래서 요즘 가요인 ‘봄날은 간다’가 새삼 좋아지는지 모르겠다. 또 조병화 시인께서도 시집을 증정할 때 ‘꿈’이라는 글자를 크게 쓰고 사인했던 것을 기억한다. 꿈을 가지라는 뜻 일 것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지 살아 있다고 할수없다는 함의적인 의미로 ‘꿈’이라는 글자를 크게 써주셨는지 모른다.
봄과 꿈. 봄속으로 들어가면 꿈이 그곳에 있다. 어수선한 꿈이라도 봄은 꿈을 꾸게 한다. 속된 말로 개꿈을 꾼다 해도 나는 봄이 좋다.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수선한 꿈은 적어진다. 젊었을 때보다 꿈은 적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봄날, 꿈이라도 꾸게 되는 날이면 그 하루가 행복해진다. 꿈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내가 봄을 행복하게 해주 는 것 같아 봄날 속으로 나는 자꾸 들어간다.
봄이 내 등을 떠민다. 이봄이 나를 부산하게 만든다. 봄이 들판으로, 바다로 떠나라 한다. 봄이 꿈을 가지라 한다. 하나하나 정리해야 할 나이인데도 새로운 일을 만들라고 한다. 그래서 봄 속에서 나는 반듯하게 서게 한다. 봄이 스스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세운다. 서 있기에 힘들더라도 봄을 만끽하며 그 속으로 들어오라 한다. 그리고 이 봄은 나에게 ‘무거운 입’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끝)
2. 노을처럼
사람은 자연에서 백세 이상의 수명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인간의 평균수명은 4천 년 전에는 겨우 18년, 2천 년 전에는 22년, 백 년 전만 해도 34~36년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의학의 진보와 국민 생활 수준의 향상에 따라 스웨덴, 네덜란드 등의 북구의 최장수국에서는 평균수명이 남자 75세. 여자 83세까지 연장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대에는 장수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 노년기의 중요성이 증가되고 있다.
옛날에는 노년기를 조락의 시기, 죽음 직전의 암흑의 시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현대는 수명이 길어지고 노년기도 길어져서 지금의 노인들은 어떻게 하면 노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있으며 어떻게 살것인가, 어떻게 하면 보람 있는 삶을 살며 빛나는 마무리를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노년기는 체력이 약해지며 피부는 쭈글쭈글 주름이 늘어가고 귀는 점점 어두워지고 기역력도 희미해지지만 오랫동안 경험을 쌓고 또면학의 결과가 종합되어 전인격의 완성으로 나타나 ‘노년만숙(⽼年晚熟)’의 경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파고다공원 근처에 간 적이 있었다. 전에는 주위에 상점이 있어 공원 안을 밖에서 볼 수 없었으나 지금은 상가가 없어지고 밖에서도 공원 안이 훤하게 보여 공원 내의 수목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었다. 전에는 입장권을 사가지고 들어갔었는데 지금은 무료입장이었다. 언제부터 무료입장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보다 공원 안은 깨끗하지 못한 것 같다. 나무가 무성해 지고 공원이 더좁아진 느낌도 들었다.
공원이란 도시인에게 있어서 전원의 추억과도 같은 곳이라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항상 깨끗하고 안식처 같은 조용하고도 차분한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도심에 있는 파고다 공원에 잠시 들어가서 쉬어 보니 너무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공원 면적에 비해 노인들이 너무 빽빽이 모여 있고 앉을 자리도 변변찮았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공원은 앉을 자리가 부족하여 신문지 등을 깔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딱해 보였다. 거의가 할아버지들이고 할머니는 불과 몇 분뿐이었는데 할머니들은 음식을 가지고 와서 잔디밭에서 흥겹게 놀고 계셨다. 그분들을 제외하곤 벤치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하는 노인, 단상을 짚고 어슬렁거리는 백발노인, 나에게는 그분들이 모두 가엾게 보였다.
나는 조금 더 걸어 다니면서 노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같이 갔던 이는 자기가 젊어서인지 늙은 모습들이 보기 싫다고 빨리 나가자고 했다. 앞으로 곧 닥쳐올 나의 모습에 생각이 미쳐서 나는 동행한 이에게 “저 노인들의 현실은 모두 자신의 장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라고 말해 주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늙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자기는 늙지 않겠노라고 스쳐 가는 세월을 붙잡아 맬 거라고 애써본들 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모두가 장차 자신의 현실 문제로서 그 시기가 올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백발은 영화의 투구'라는 말이 있다. 기쁨과 고난의 세파를 넘으며 오랜 인생 행로를 통하여 갖은 경험을 쌓아온 사람들, 그 노인들을 젊은이들은 실로 경이롭게 바라보며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부라든가, 건강이라든가, 명예라든가 하는 외면적인 것보다는 젊은이들이 아직까지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노인들이 인생의 풍부한 경험을 통하여 축적된 지혜의 귀중한 보물들-을간직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귀중한 인생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노인이야말로 이 시대와 사회의 보배가 아니겠는가.
노인이란 나이에 따르지 않고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노쇠(⽼衰)를 체험하고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노쇠체험을 장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서로 다르며, 어떤 기분으로 이 사실을 수용하는가에 따라 개개의 노화 정도가 다를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노인상(⽼⼈像)을 정하는 포인트가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끔 젊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은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행여 점잖아야 하는 노년이 애들처럼 가볍게 보여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다는 것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이 점점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국의 노인클럽 기관지 중에는 『썬셋트』라는 잡지가 있다. 저녁노을이라는 「썬 셋트』로 제호를 정한 것은 노인들이 모여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고 빛나며 장엄한 것으로 하자는 회원들의 소망이었다고 한다.
나는 톨스토이나 처칠처럼 늙은 후에도 집필을 계속하며 문학적 업적을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나의 만년을 노추(⽼醜) 없이 보람되게 살고 싶다. 사람은 노년일지라도 얼마든지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만들 수 있는 것 이기에 나도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리라.
불이 났다/서쪽 하늘 끝자락에/산불이 났다/산도 타고 바다도, 하늘도 탄다/내 심장도 타들어 간다/(중략) 산은 불덩이를 바다에 던지고/바다는 불씨를 하늘에 옮기고/하늘은 뜨거운 불륜을 끌고/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노희정의 「노을」 중 (끝)
이숙 수필가(이종숙. 1926. 6. 29. ~ 2023. 2. 16.)
1926년 6월 29일 서울 출생. 경성여자사범학교(서울대학교사범대학). 고려대학교 국문과 졸업. 초중.고 교감 역임(교직 27년) 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문교부 편수국 편수원. 한국문인협회 홍보위원 및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역임. 인천 한국수필가협회 회장.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수필집 『유정』(1968) 『내 영혼의 무지개』(1980) 『아름다운 조건』(1990) 『노을처럼』(2009) 외 다수.
통일문학상. 국제예술상. 제11회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외. 특히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 및상임이사로 있으면서 인천 예총, 인천문화원, 인천문인협회, 인천여류문학인회 등인천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인천문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2023년 2월16일 노환으로 97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