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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장르[2]
[9] Country Music
근래 우리 음악 팬들은 컨트리 음악을 많이 듣지 않는다. 컨트리 냄새가 배인 종류의 음악은 감성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미국 백인 민요라고 할 컨트리 음악은 과거 70년대 국내 가요에 주종을 이룰 만큼 당시에는 커다란 인기를 모은 바 있다. 비록 세계적으로는 답보상태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음악이 컨트리 음악이다.
컨트리 뮤직은 촌사람들의 음악, 시골음악이란 뜻이지만 대중음악분야에서는 구체적으로 미국 백인들의 전통음악을 말한다. 20세기 100년 동안 미국 백인들이 주도한 음악으로는 '스탠더드 팝'과 본래는 흑인 연주음악이나 백인들이 더 강세를 보인 '재즈'가 있다. 하지만 두 음악은 결코 민초들의 구전(口傳)에 의한 음악 이를테면 민요라고 할 수 없다.
스탠더드 팝과 재즈는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후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 이주민들 가운데서 공식적으로 음악교육을 받았거나 클래식 음악의 연주경험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왔다.
반면 컨트리 뮤직은 백인 이주민들 가운데 하층계급이나 민초들에 의해 미국이란 새로운 환경에 맞춰 정착된 것이다. 말하자면 백인민요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컨트리 뮤직은 미국 흑인민요인 블루스와 인종적으로 정반대에 위치한다.
18세기에 스코트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그리고 영국 등지에서 이주해온 궁핍한 백인들은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동부의 대도시로 정착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주로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지역 주변에 모여 살았고 따라서 컨트리는 처음에는 유럽에서 그들이 불렀던 것과 유사하다고 해서 '친숙한 노래'(familiar tunes) 또는 산(山)지역사람들의 노래라고 해서 '마운틴 뮤직'(mountain music)으로 통했다.
이 용어는 19세기 말에 와서 힐빌리(hill-billy)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때까지는 아직 매스 미디어와 대량복제기술(음반)이 가해지지 않은 전형적인 민요의 상태였다.
그러나 1920년대 들어서는 마침내 미국 전역에 라디오와 음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음악으로 변모했다.
이 무렵 랄프 피어(Ralph Peer)라는 이름의 음반제작자는 '민요 컨트리'가 '대중음악 컨트리'로 탈바꿈하는데 누구보다도 크게 기여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블루 요들'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한 지미 로저스(Jimmie Rodgers)와 미국형의 새로운 컨트리를 연주한 카터 패밀리(Carter Family) 등 컨트리 음악의 전설을 발굴했다.
여기서 요들(yodel)이란 용어가 말해주듯 유럽의 민초들이 즐겨 불렀던 요들이 미국으로 건너갔음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현악(string)밴드의 성격이 강했던 컨트리의 주요악기가 피들, 하프, 루트(옛 기타) 등 아일랜드와 스코트랜드의 토속악기라는 것도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증거가 될 것이다. 나중에는 여기에 밴조, 도브로(기타의 일종), 만돌린, 그리고 스틸 기타가 더해져 오늘날의 특징적인 컨트리 음악 사운드가 만들어졌다.
민초들의 바이올린이라고 할 수 있는 피들(fiddle)은 빠르게 줄을 켜면서 컨트리 특유의 흥을 내며, 역기 컨트리 음악에서 자주 들리는 '우는 듯한' 기타소리는 앉아서 연주하는 좌판형의 스틸 기타(steel guitar)의 몫이다. '두 악기가 없다면 컨트리도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피들과 스틸 기타는 요즘에도 컨트리 사운드의 색깔을 띠는데 필수적인 악기로 통한다.
1930년대 후반에 컨트리라는 용어가 정착되었고 음악의 종류도 많아졌다. 빌 몬로를 선조로 하는 전기 증폭음 이전의 남부지역의 블루그래스(Bluegrass), 스윙재즈와 결합한 스타일로 캐나다 남부 아카디아 지방사람들의 웨스턴 스윙(Western swing), 남부 루이지애나의 프랑스어를 구사한 사람들에 의해 정착된 케이준(Cajun), '컨트리 앤 웨스턴'이란 말을 낳으며 1940년대 영화까지 석권한 카우보이 송(Cowboy song) 그리고 술집과 무도장에서 유행한 일렉트릭 기타 주도의 빠른 홍키통크(honky-tonk) 등 지역과 풍속에 따라 여러 갈래를 치며 대중들에게 파고들었다. 이들 컨트리 음악 중에서 서부개척을 상징하는 말달리는 카우보이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도 컨트리 뮤직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용어이다. 컨트리의 본향(本鄕)이라고 할 내시빌 지역의 방송국인 WSM의 프로그램으로 주말이면 컨트리 가수가 다수 출연하는 공개방송무대를 갖는다. 1925년에 시작되어 카터 패밀리, 어네스트 텁, 행크 윌리암스 등 컨트리의 역사를 수놓은 모든 스타들이 이 프로를 거쳐간 명실상부한 컨트리 스타의 산실이다. 공연 분위기는 우리의 '가요무대'를 연상하면 된다.
그랜드 올 오프리는 방송혜택이 전무했던 블루스와 달리 백인음악이란 덕분에 컨트리가 미디어를 통해 일찍이 대중화 상업화되었음을 말해준다. 부언하면 그랜드 올 오프리에 의해 컨트리는 시골의 민요에서 벗어나 도시의 대중음악으로 뻗어간 것이다.
아울러 그랜드 올 오프리를 컨트리와 동격으로 만들어낸 내시빌에 대한 지역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 곳에는 컨트리의 명예전당, 공연장, 전문 레코드사, 스튜디오, 음악협회 등 컨트리의 모든 것이 집결해 있다. 내시빌 현지에서 만난 컨트리음악협회의 홍보이사 제프 그린은 컨트리 음악에서 내시빌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도시 중에서 바로 음악을 연상시키는 도시가 어디 있습니까? 뉴욕이나 시카고도 역사적으로 음악이 강한 도시지만 사람들은 먼저 거대도시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계인 누구에게도 내시빌하면 '아, 컨트리 음악!'하며 바로 컨트리를 떠올리지요. 내시빌과 컨트리는 이제 같은 말이 됐습니다."
내시빌을 중심으로 확산된 컨트리 음악은 1950년대 등장한 로큰롤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지만 폭발적인 로큰롤의 기세에 눌려 한때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재빨리 로큰롤과 팝의 요소들을 받아들이면서 추세를 따라잡아 대중음악 전선에서 퇴각을 당한 적은 없다.
1970년대에는 로레타 린, 태미 와이네트, 멀 해거드 등 불세출의 컨트리 스타들이 나와 대중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으며 1980년대 초반에도 케니 로저스, 돌리 파튼, 에디 래비트, 알라바마 등이 활약하여 다시 전성기를 누렸다.
근래에도 '컨트리의 마이클 잭슨'이라는 가스 브룩스, '컨트리의 스파이스 걸'격인 딕시 칙스 그리고 백스트리트 보이스보다도 더 많은 앨범 판매고를 수립한 샤니아 트웨인 등 슈퍼스타가 잇따라 출현해 또다시 중흥기를 맞고 있다. 백인의 전통음악이라는 유리함 때문에 미국사회에서 잊혀질 때면 다시 고개를 들고 살아나 위력을 뽐내고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컨트리는 어떠한가. 지금은 컨트리 색채가 있는 음악을 좀처럼 듣지 않으려고 하지만 과거에는 가요의 맹주역할을 했다. 그만큼 컨트리는 국내 가요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포크시대였다는 1970년대에도 통기타로 연주되었을 뿐 실은 포크보다도 컨트리 스타일이 더 많았다.
예를 들어 조영남이 불러 유명한 '내 고향 충청도', 윤항기의 '노래하는 곳에', 서수남 하청일의 '서울 구경'은 모두 미국 컨트리 송을 번안해 부른 노래였다.
트위스트로 알려진 1961년 한명숙의 '노란 셔츠의 사나이'의 전주도 피들이 주도하는 컨트리음악 형식을 취하고 있을 정도다.
가요관계자들은 "포크는 단순한 가사의 나열로 멜로디가 부각되지 않는 반면 컨트리는 경쾌하고 낭만적인 선율패턴과 리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훨씬 한국인의 정서에 맞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시대를 풍미했던 컨트리가 국내에서 맥이 끊긴 것은 1980년대 이후 헤비메탈과 랩의 강세 때문이었다. 청취자들의 귀가 강하게 바뀌어버린 것이다. 또한 신세대들은 컨트리 음악이 너무 미국적이며 기성세대의 케케묵은 소리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실정이다.
지금처럼 흑인음악 힙합과 팝 댄스가 판치는 상황에서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컨트리가 부활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컨트리가 기성세대의 젊었던 시절을 지배한 음악임을 감안하면 컨트리를 넘지 않고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음악문법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컨트리 음악은 실로 지금의 댄스와 발라드가 왜 인기를 누리고 있는가를 역으로 살펴볼 수 있는 거울이다.
[11] 라틴 음악(Latin Music)
NO JUEGES CON EL AMOR... 잘 나가는 꿈비아 노래 제목이다.
우리 가요에도 이런 비슷한 노래 말이 있던데 아마 사랑이라는 감정은 세계 공통 인가부다. 꿈비아에 대해서 아래에 설명해뒀다.
최근에서야 흔히 라틴 풍이라는 장르로 우리 나라에 소개되기 시작한 라틴의 대중 음악들은 그 한 단어 집약되기에는 그 종류가 셀 수도 없이 아주 다양하다.
세계화(?)라는 말에 걸맞게 대중 음악의 유행을 선도하는 미국-주로 미국화가 바로 세계화라는 야릇한 추세로의 록부터 팝, 리듬엔 블루스를 거쳐 테크노, 하우스, 랩까지... 오늘날 라틴 대륙에서 인기를 얻는 대중 음악들이 라틴 풍에 짬뽕이 되어 있다. 이를 여기선 라틴 록, 라틴 팝, 라틴 테크노, 라틴 랩이라고 부른다. 마치 우리 나라 대중 가요가 그러하듯이. 사실 라틴 풍 리듬으로는 레게, 살사, 메렝게, 보사노바, 차차차, 꿈비아, 바예나또, 삼바, 룸바, 맘보 등등 대부분 춤곡이 그 주류다.
아! 물론 탱고도 어쨌든 라틴 풍이다. 거기에 멕시코에선 마리아치, 께브라디따, 노르떼뇨가 있고. 그러나 이곳에서 유행하는 노래들 중에 애절한 발라드도 역시 한 몫을 한다. 그럼 라틴 발라드인가?
서로 다른 대륙과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넘어서 가장 쉽게 받아들이고 다가설 수 있는 것이 노래라고 했던가. 유럽군의 스페인을 비롯하여 수 십개의 나라로 나뉜 라틴 대륙은 스페니시로 연결된 동일 어를 쓴다는 이점으로 한 가수가 뜨면 나라를 불문하고 어디서나 그의 노래를 들을 수가 있다. 심지어 미국 령인 뿌에르또 리꼬와 뉴욕, 로스엔젤레스의 히스파닉 계열의 가수들도...
[12] 살사(Salsa)
살사는 스페인어로 '소스', '향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20년대부터 '펑키(Funky)'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음악장르로서의 살사는 기원과 본질이 쿠바에서 유래한다. 살사는 푸에르토리코 노동 계급의 삶과 꿈을 표현하는 음악으로 라틴의식을 표현한 음악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많은 뮤지션과 관계자들에게 살사는 쿠바음악을 완강하게 지칭하는 말로 그 장르가 1960년대 말 뉴욕에서 대중화되기 전부터 수년간 쿠바 뮤지션들에 의해 사용되었으며, 또한 카스트로가 주도한 1959년 혁명으로 인해 미국이 쿠바에 경제 봉쇄 정책을 가할 때 그것을 우회하기 위한 중립적인 마케팅 명칭을 제공했다.
콩코드 재즈 회사 산하의 살사 레이블인 콩코드 피칸테는 1980년대에 이 장르가 대중화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살사의 여왕으로 알려진 셀리아 크루즈(Celia Cruz)와 맘보 밴드 리더 티토 푼테스 등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뮤지션이다.
살사에 나타나는 주요한 음악적 요소인 손(아프리카 리듬을 스페인의 선율과 결합한 것으로, 미국의 블루스에 해당하는 쿠바의 음악 형식이다.)과 클라베(물통 묘양의 딱딱한 나무 2개로 이루어진 타악기로, 모든 라틴 음악의 기초가 된다. 기본적인 박동을 만들어 내는 악기이다.) 등은 본질적으로 쿠바 스타일로부터 파생된다.
그럼에도 살사를 쿠바와 직접 연계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데 이는 살사가 대부분 뉴욕이나 푸에르토리코에 거주하는 쿠바인과 푸에르토리코인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음악에서도 여타 많은 특징이 발견된다. 봄바와 같이 푸에르토리코의 '민간전승' 형식, 빅 밴드 재즈, 소울, 노동요에서 나온 콜 앤 리스폰스(Call & Response) 패턴, 그리고 심지어 펑크(Funk)나 록의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살사는 일종의 혼종 장르라고 보는것이 더 적합할수 있다.
살사와 푸에르토리코 노동 계급 간의 관계는 가사의 내용분석을 토대로 논의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음악의 생산과 수용이라는 사회적 맥락과 노래 가사 간의 내재적 연관을 가정한다. 살사가 라틴의식의 표현이라는 주장 역시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13] 탱고(Tango)
라틴아메리카 댄스음악 또는 이 곡에 맞추어 추는 춤.
원형은 19세기 중엽 선원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들여온 쿠바의 하바네라와 함께 1850년 무렵까지 라틴아메리카 전지역에 퍼진 춤으로 보고 있다.
음악적으로 목동의 전통인 즉흥적 가사로 된 파요다와, 2/4박자의 싱코페이션(당김음) 리듬이 특징인 밀롱가(하바네라에서 파생한 춤곡)가 탱고 발전에 공헌하였다.
댄스는 에스파냐 안달루시아지방의 탱고(집시에 의한 춤으로 집시 플라멩코라고도 한다),
쿠바의 단손과 하바네라, 유럽의 폴카와 쇼티셰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탱고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쓰인 것은 1875년 무렵이다. 탱고는 하바네라나 밀롱가 리듬에 따라 1915년 무렵까지 2/4박자였으나, 그 뒤 4/8박자가 우세하게 되었고 55년부터 각양각색으로 복잡해진 리듬이 사용되었다.
악곡형식은 초기에 주로 3부분형식이었으나 E. 델피노가 2부분형식곡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2부분형식이 많아졌다. 이 형식에서는 주조(主調)에 대한 속조(屬調) 또는 평행조 관계가 많이 나타난다.
[14] 자이브(Jive)
1. 1927년 경 뉴욕의 하렘(Harlem)이란 흑인 거주지에서 째즈(Jazz) 음악의 일종인 스윙(Swing) 리듬에 맞추어 처음으로 추어진 춤입니다. 1936년경 전 미국을 휩쓸 정도로 인기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 GI(미국 직업 군인)들에 의해 유럽에 퍼졌고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놀랄 만한 인기는 계속되었습니다.
음악: 4/4 박자로 둘째와 넷째 박자에 액센트가 있으며 1분에 40∼46 소절의 템포입니다.
2. 자이브란 재즈 음악에 맞추어 추는 격렬한 춤을 말한다.
북미의 미시시피강 하구에 있는 루지에나주의 뉴 올리언즈(New Orleans)에서 1910년대에 발생한 재즈음악이, 1930년 무렵에는 부기 우기(Boogie Woogie) 연주법이 사용되어 이러한 음악에 맞추어 추기 시작한 새로운 댄스가 린디 홉(Lindy Hop)이란 춤이였으며, 린디 홉에다 흑인들의 도발적인 동작과 익살맞은 제스처를 가미하여 만든 새로운 형태의 춤이 지러북(Jitterbug)이다.
지러북(Jitterbug)은 1927년경 뉴욕의 하렘이란 흑인 집단 거주지에서 재즈 음악의 일종인 스윙(Swing) 리듬에 맞추어 처음으로 추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메리칸 스윙(American Swing)이라 불리기도 한다.
1936년경 미국을 휩쓸 정도로 인기가 절정에 달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군인들에 의해 유럽 전역에 퍼졌고 세계대전이 끝날 때가지 놀랄만한 인기는 계속되었다.
재즈 댄스의 일종인 지러북(Jitterbug)의 '원 스텝(One Step, Single step)'을, 영국의 댄스 강사들이 '투 스텝(Two Step, Chasse)', '쓰리 스텝(Triple Step)'으로 개량하고 발전시킨 것이 현재의 자이브이다. 댄스스포츠 10종목 가운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 자이브이며, 댄스스포츠에 입문하는 초보자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춤의 대부분이 자이브이다.
3. 미국에서 비롯된 자이브는 "지터벅Jitterbug"이라는 춤에서 곡예요소를 없애고, 테크닉을 세련되게 만들어 발전한 것이다. 자이브에 관한 설명은 런던의 무도교사인 Victor Silvester가 1944년 유럽에 책을 발간함으로써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부기Boogie, 락앤롤Rock & Roll, 아메리칸 스윙American Swing등과 같은 춤들도 이 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자이브는 매우 빠르고 에너지를 많이 요하는 춤이다. 대회에서 자이브는 제일 마지막 춤으로서, 선수들은 다른 네 종목을 추었음에도 아직 피곤하지 않으며 여전히 자이브를 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15] 볼레로와 란체라(Bolero & Ranchera)
볼레로와 란체라(Bolero & Ranchera)에 대하여
Bolero는 1800년대 아프리카의 음악(콘트라단짜 형식)이 쿠바에 정착하면서 멕시코 북부까지 퍼져나간 연인들의 사랑과 슬픔을 노래한 음악의 한 형식입니다. 현재 멕시코에서는 로베르또 깐또랄(Roberto Cantoral), 후안 가브리엘(Juan Gabriel), 아르만도 만싸네로(Armando Manzanero) 등 역량 있는 작곡가들이 계속 볼레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Ranchera는 멕시코 민속음악입니다. 멕시코 혁명 전기에 마리아치 그룹인 할리스코(Jalisco)가 유명했으며 요즘은 Bannda 그룹, Conjunto그룹이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란체라는 귀족음악에 반항하는 풍속 음악으로 발전을 했으며 롤라 벨트란, 비센떼 페르난데즈, 페드로 인판테 등이 가장 이름이 난 가수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란체라는 사랑, 애국심, 자연을 노래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고 리듬은 3/4, 2/4, 4/4 박자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란체라는 왈츠, 폴카, 볼레로에 영향을 미쳤으며 주로 쓰이는 악기는 기타, 현, 트럼펫, 아코디언을 주로 씁니다. 작곡가로는 <루차 라이에스>, <쿠코 산체스>, <펠리페 발데즈> 등이 유명하며 <호세 알프레도 히메네스>라는 작곡가는 서부 음악의 중요한 작곡가로서 란체라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1000여곡을 남겼습니다.
Corrido라는 음악이 란체라와 유사한데요, 코리도는 주로 영웅이나 농사꾼의 서사를 주로 가사로 하는 점이 란체라와 다릅니다. 란체라의 어원(語源)은 Rancho(목장노동자의 오두막집)에서 나왔으며 멕시코 변경의 지방의 오두막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란체라의 유명한 가수로는 Javier Solis와 Lola Beltran 등이 있습니다.
[16] 크로스오버(Cross over)
1. 어떤 장르에 이질적인 다른 장르의 요소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음악
2. 퓨전음악·크로스오버라고도 한다. 원래는 미국에서 어떤 곡이 몇 종류의 차트에 동시에 등장하는 현상을 의미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크로스오버라는 말의 정의는 '교차' 또는 '융합'으로, 이러한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퓨전 재즈 등 음악 장르에서부터이다. 그 이후 음악 장르 전반에서 크로스오버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현재는 음악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서로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퓨전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음악 장르는 재즈이며, 1969년 트럼펫 연주자인 마일스 데이비스가 처음으로 재즈에 강렬한 록비트를 섞어낸 음악을 선보였다. 이로써 재즈록 또는 록재즈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음악이 등장하였다. 이어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동서양의 크로스오버가 일어나고 이념과 문화를 초월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무렵, 이런 분위기를 받아들인 새로운 음악 장르인 퓨전 재즈가 등장하였다.
이후 좀처럼 변화를 꾀하지 않는 클래식계에도 퓨전이 접목되어 포퓰러뮤직(팝)·재즈·가요 등에 클래식을 이용한다든가, 가요와 클래식을 접목한 콘서트를 개최하는 행사가 늘어갔다. 1980년대 초 성악가인 플라시도 도밍고와 미국 포크음악 가수인 존 덴버가 함께 부른 〈퍼햅스 러브(Perhaps Love)〉는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그후 성악가가 포퓰러뮤직을 부르고 포퓰러뮤직 가수가 성악을 부르는 일이 많아졌고, 국내에서도 국악을 이용한 크로스오버 음악이 시도되었다. 서태지의 《하여가》는 국악과 랩을 잘 조화해냄으로써 큰 호평을 받았고, 그 후 가요계는 국악과의 결합에 새로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 크로스오버 음악의 종류/대표적음악가
1.막심 므라비차 (Maksim Mrvica)- "피아노계의 바네사메이"
크로아티아 출신의 일렉트릭 피아노 아티스트 (1975년생) 지난 유고내전 당시, 포탄이 우박처럼 떨어지고 총알이 빗발치던 거리에서, 피아노를 배우며 삶의 처절함을 경험하였던 그는 내전이 끝난 1993년 18세의 나이에이미 크로아티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또한 그는 속도감있는 일렉트릭 사운드 위에 탄탄한 피아노 연주가 더해진, 미래의 피아노 음악, 바네사 메이와 본드를 넘어 일렉트릭-클래식의 새 지평을 연 음악사에 이름을 남기는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라고 합니다.
2. 빈민의 음악 힙 합과 귀족 음악 클래식의 하모니 - 스위트박스
팝 음악에 있어서 장르간의 '크로스오버', 혹은 이를 넘어선 '장르의 해체'는 이미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 이제는 어떤 음악을 특정 장르라는 척도를 가지고 분석한다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붐을 이룬 하드코어란 '장르' 역시도 랩과 메탈 등의 장르들이 뒤범벅된 돌연변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3년 전인 1998년 봄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스위트박스의 경우는 비교적 순수한 의미의 크로스오버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클래식 선율을 관현악단의 연주로 깔고 그 위에 '거리의 음악'인 힙 합의 비트를 조화시킨 스위트박스의 음악은, 파헬벨의 '캐논'을 차용했던 쿨리오의 'C U When U Get There' 등이 시도했듯이 힙 합과 클래식의 조화라는 명제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깔끔한 클래식 멜로디의 비중이 컸기에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힙합에서 다른 장르의 음악을 소위 샘플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일반화되어있기는 했지만 기존 힙 합 아티스트들의 샘플링에 비해 클래식 멜로디의 비중이 워낙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점이 스위트박스 음악의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물론 스위트박스가 클래식 멜로디를 사용한 것은 '샘플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들의 경우는 보컬과 랩을 맡았던 티나 해리스(Tina Harris)가 미국 출신이긴 했지만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지역에서 주로 활동을 했던 덕에 유로 팝적인 감각이 가미되어 있었던 것도 이들의 음악에 독특한 세련미를 가미해주는 요소가 되었다.이들의 첫 앨범 "Sweetbox"에서는 솔트 레이크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의 귀에 익은 멜로디, 오보에의 선율과 티나 해리스의 랩, 합창단의 코러스 등이 조화를 이루었던 'Don't Go Away'와 독일 바벨스베르크 관현악단이 연주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의 멜로디가 흐르던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등의 곡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사랑받았고 티나 해리스는 프로모션차 우리나라를 찾기도 했다.
스위트박스는 보컬 티나 해리스가 전면에 나서있었지만 사실상 프로듀서 겸 송라이터로 배후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활약하는 지오(Geo)의 프로젝트 그룹이다. 지오는 원래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 바나나라마(Bananarama) 등의 노래를 프로듀스하는가 하면 컬처 비트(Culture Beat)나 세상을 떠난 팔코(Falco) 등의 노래를 클럽 댄스용으로 믹스해내며 댄스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인물인데 스위트박스라는 프로젝트를 1995년 결성해서 'Booyah-Here We Go'라는 댄스 넘버를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이탈리아 등에서 히트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음악계 전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싱글은 이탈리아와 싱가포르에서 에어플레이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후엔 'Shakalaka'라는 또 다른 댄스 넘버로 뉴욕 등 세계 각국의 클럽 신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처럼 스위트박스로 이름을 날리던 지오는 1997년 티나 해리스를 발탁해 전면에 내세우고 'I'll Die For You'를 클럽 신에서 히트시켰고 앨범 "Sweetbox"를 발매해 'Everything's Gonna Be Alright'과 'Don't Go Away',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의 곡을 리메이크한 'Shout(Let It All Out)', 이본느 엘리만이 히트시켰던 'If I Can't Have You'의 리메이크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로부터 3년여만에 선보이는 2집 "Classified"는 기본적으로는 전작인 "Sweetbox"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커다란 변화를 찾을 수 있다. 우선 보컬로 전면에 나서있던 티나 해리스가 팀을 떠나고 제이드 빌라론(Jade Villalon:1980.8.12일생)이란 새 얼굴로 바뀌었다는 점이다.미국 샌디에이고 출신인 제이드 빌라론은 등의 TV 시리즈 등에 출연한 연기 경력과 코어스와 TLC, 레니 크래비츠 등의 뮤직 비디오에 얼굴을 비친 경력도 있다고 하는데, 물론 음악적 구심점은 프로듀서 지오이긴 하지만 제이드 빌라론은 지오와 함께 작사 작곡자로도 참여하며 음악적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게다가 흑인 특유의 음색이 강했고 주로 래퍼의 이미지가 강했던 티나 해리스에 비해 보다 맑고 고운 음색을 지니고 있으며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지닌 제이드 빌라론의 가세는 스위트박스의 음악 색깔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두드러진 변화는 전체적으로 클래식 멜로디가 강하긴 했지만 힙 합 필을 감지할 수 있었던 전작에 비해 이번 음반은 팝과 R&B, 록, 클래식, 더 나아가 동양적 멜로디를 차용해 월드 뮤직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등('Every Time') 보다 다채로운 음악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고 기존 음악을 차용해오는 소스도 클래식 곡 뿐만이 아니라 영화음악으로까지 폭이 넓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7] 라운지 음악(Lounge Music)
부담없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의 한 유형
예전의 팝/록 사운드로부터 의도적으로 배제시켜온 영화음악과 이지 리스닝, 또한 실험성을 지녔으나 예전에 이미 먼저 시도되었기 때문에 떠밀려나간 전자음악,그러한 비 록적인 음악이현재 팝/록 역사권의 붕괴/변혁과 함께 재평가 되고 있다.
일단은 라운지 뮤직이라 불려진 이 음악에 있어서 무의시적이지만영향력을 의식하기 시작한 이들중에는 말하자면 시간의 흐름에 구애되지 않고 처음 접하는 것과 같은 신선한 음악으로 접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그러한 라운지 뮤직의 접근을 정신작용이 예술형식으로 다양한 수법으로 표현되는 현대판 라운지 뮤직이라는 것도 속속 탄생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에 융성하는 동향은 바꾸어 말하자면 흑인 음악을 뿌리로 지닌 로큰롤으로부터 그리고 흑인 음악에의 컴플렉스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포지티브한 시도인 것이다.라운지 음악의 선구자는 본명이 후안 가르시아 에스퀴벨인 에스 퀴벨이라고 본다.멕시코 출신인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Space Age Pop 역사에 크나큰 영향력을 미쳤고 라틴 분위기의 자유스러움을 기존 음악의 고정 관념속에 삽입시켜 해방감을 안겨다 주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91년 라운지 음악은 빅 리브스라는 엘비스 프레슬리 모창자 같은 외모를 지닌 이에 의해서다시금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93년 Monty가 앨범 "A Typical Scorpio"를 공개하면서 라운지 음악은 사람들의 입과 입으로 오르내렸고, 95년에는 본격적인 활기를 띠게 된다.96년으로 접어들면서 라운지 음악은 기세가 꺽일줄 모르고 계속되어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 영화음악을 위트있게 변모시킨 옴니버스 앨범이 화제를 모았으며,
존 지로다의 앨범 "Space Age Soul"과미키 플라워스 팝스의 재미있는 리듬이 깃든앨범 "Groovy Place" 그리고 젠틀 피플의 앨범 "Sound Track Foe Revank"등이 호평을 받았다. 또한 네이키드 펑크의 앨범 "Valium"과 제이크 슬라징거의 앨범 "Grove Beat, Ja"도 라운지 음악의 색다른 시도를 전개하여 주목을 받았다.
[18] 크루닝(Crooning)
크루닝(Crooning)이란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나즈막히 노래부르 는 것'을 뜻합니다..
재즈보컬리스트들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스윙시대의 끝무렵부터 미국의 대중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노래 부르는 크루너(Crooner)들에게 심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남편을, 아들을 멀고 먼 전장에 내보낸 여인들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노래에 시름을 달래곤 했지요.. 대중음악의 총아였던 빅밴드들이 어려운 경제사정과 멤버들의 군징집, 음반취입 금지령 등 여러 문제 때문에 주춤한 사이, 사랑과 鄕愁 등을 주제로 한 발라드 보컬곡들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재즈계 일각에서 이미 일기 시작한 비밥의 물결로 인해 재즈가 대중성에서 한 발짝 물러나 감상을 위한 '그림음악'으로 진화하고, 젊은이들 사이에 록앤롤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면서 미국사회의 주류인 백인 기성세대들은 전쟁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던 크루닝 싱어들 에게 계속 매료되게 됩니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팻 분 (Pat Boone), 빙 크로스비(Bing Crosby), 멜 토르메(Mel Torme) 등 백인 남성싱어들이 당시 인기를 끌던 크루너들이었으며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은 냇 킹 콜(Nat "King" Cole) 역시 크루너로 분류됩니다. 이들은 팝 넘버들 뿐 아니라 재즈 스탠다드까지 포함한 레파토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재즈팬들 사이에 "재즈아티스트냐, 아니냐"라는 논란을 불러 일으키곤 했습니다.
혹시 팻 분의 "Love letters in the sand"라는 노래를 들어 보신적 있나요? 대표적인 크루닝 발라드 곡입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함 들어 보세요. 제가 어설픈 글로 설명드리는 것보다 직접 들어보시는게 훨씬 쉽게 이해하시는 지름길입니다. 냇 킹 콜의 "Unforgettable", 멜 토르메의"You and the night and the music"등도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19] 발라드(Ballad)
모든 대중음악은 크게 댄스음악과 발라드로 대별된다. 가요도 지난 80년대부터 댄스와 발라드 체제가 확립되어 지금도 대부분의 음악소비자들은 흥겨운 댄스 아니면
조용한 발라드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H.O.T와 S.E.S는 댄스부문의 최고 스타이며 조성모는 발라드로 부상했으며 지오디(god)는 발라드와 댄스를 겸하고 있다.
댄스와 발라드는 편곡이나 악기구성이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만드는 데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가수들이 그래서 댄스와 발라드를 함께 구사한다. 두 스타일을 나누는 기준이라곤 솔직히 템포밖에 없다. 말하자면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인 것이다. 댄스만 하면 지겹기 때문에 발라드를 섞는 것이고, 발라드일색이면 역시 쉽게 물리므로 더러더러 댄스음악을 하는 것이다.
발라드는 이처럼 댄스와 함께 주류의 음악으로 정착되었지만 애초 발라드는 민초들의 음악을 가리켰다. 이탈리아 말로 '춤추다'라는 의미의 발라레(ballare)에 어원을 두면서 중세에 처음 등장했고 16세기에는 궁중의 예술과 구별되는 민중 한 사람의 노래로 통했다고 한다.
영국 빅토리아왕조시대에 와서 오늘날에 가까운 스타일이 확립되어 이 때부터 발라드는 민초가 아닌 전문작곡가들에 의해 주로 만들어졌다. 즉 민요가 아닌 '가공해서 만드는 음악'으로 바뀐 것이다. 20세기 들어서 지금처럼 느리고, 무드가 있으며, 애상적인 사랑의 노래(love song)라는 의미로 굳어졌다.
따라서 어떤 장르의 노래에도 발라드 스타일이 있을 수 있다. '포크 발라드'가 있고 요즘에는 'R&B 발라드'가 판을 친다. '록 발라드'는 오래 전부터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일반의 생각과 달리 발라드가 장르는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알 수 있다. 단지 느리게 사랑의 감정을 전하는 방식일 뿐이다. 트위스트 힙합댄스 라틴댄스가 장르이지, 댄스가 장르가 아닌 것과 같다.
다시 말해 댄스와 발라드는 장르라고 하기보다는 '속도의 차이'를 가리키는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발라드는 감정표현이 중요하기 때문에 댄스보다는 훨씬 가수의 역량, 즉 가창력이 요구된다. 가창력을 인정받으려는 가수들이 발라드를 고집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이래 발라드가 위력을 발해 이문세 변진섭 신승훈 등에 이어 근래에는 조성모, 김범수 등이 발라드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발라드를 댄스에 대한 대항음악으로 인식하곤 하지만 실은
댄스와 호혜공존 관계'임을 국내 인기가수 면면들이 말해준다.
[20] 라틴아메리카의 음악과 댄스
◆ 라틴아메리카 음악
중앙아메리카 및 남아메리카 일대 라틴계 이민의 민속적인 음악유산과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대중음악의 총칭으로 라틴음악이라고도 한다. 원주민(인디오) ·유럽인 ·아프리카계 흑인 등의 세 인종적 요인이 혼합되어 있다. 예를 들면 볼리비아인의 대다수는 인디오의 피가 섞여 있어 악기의 종류나 무용형태는 인디오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가사나 선율에 있어서는 오히려 스페인적인 색채가 강하다. 또한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인은 대부분 아프리카의 피가 섞여 있어 음악에서도 스페인과 아프리카의 혼합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일각에서는 중세의 스페인 음악이 다른 음악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라틴 음악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 리듬의 다양성에 있으며, 룸바 ·삼바 ·콩가 등의 복잡한 무용리듬이 확립되어 있는 점이다. 따라서 이 리듬의 기반으로 생각되는 서아프리카계의 이민이나 이베리아반도로부터의 이민도 원래는 복잡한 리듬으로 이루어진 음악전통 속에서 자라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편, 라틴음악에서는 흔히 소박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인디오의 음악이 혼합되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예를 북아메리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악기도 역시 유럽 ·아프리카 ·인디오의 것을 사용하고 있다.
라틴음악의 대부분은 무용음악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라틴리듬의 대부분은 쿠바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1930년대부터 유행한 《땅콩장수》 등의 룸바는 쿠바의 ‘송’이라는 리듬의 변형이며, 맘보 ·차차차 ·볼레로 ·비긴 ·칼립소 등도 모두 쿠바리듬에서 유래하였다. 라틴음악은 그 전체가 무용음악으로서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향으로서 주로 리듬면에서 재즈나 포퓰러뮤직에 음의 소재를 제공함으로써 세계적인 음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라틴음악 뿌리는 마야 잉카문명
- 유럽 이주민, 아프리카 노예 문화와 뒤섞여 수많은 춤과 리듬으로 발전
이 라틴아메리카는 20세기에 가장 음악적인 대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앞 세기에는 물론 유럽 대륙이 오래도록 서양음악의 주인 자리를 지켜왔지만, 유럽인들이 북미와 남미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선주민과 이주민의 문화가 뒤섞여 생겨난 수천 가지 새로운 리듬이 서양음악 전체를 놀랍도록 풍요롭게 만들었다.
첫째로 마야, 아즈텍, 잉카문명의 영향이다. 예를 들어 잉카인들의 언어는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빌어 온 음악적인 언어였다고 한다. 아즈텍과 마야인들에게도 음악은 삶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였다. 일상의 삶 자체가 제의와 명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둘째로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시대에 이 스페인, 포르투갈 정복자들은 수백만의 아프리카인들을 라틴아메리카로 끌어와 노예로 만들었다. 이때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제의와 음악을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선주민의 것과 접합시켰다.
혁명과 군부독재 등의 끝없는 혼란 속에서 희망과 좌절을 되풀이 하면서도 라틴아메리카인들은 그들의 음악적 전통을 끊임없이 새롭게 발전시키며 세계적인 춤의 유행을 선도해 왔다.
◆ 라틴아메리카 음악
― 룸바 [rhumba]
쿠바에서 알려진 민속무용과 그 음악으로 기원은 노예로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흑인들의 원시적 리듬이 바탕으로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복잡하고도 강력한 폴리리듬(2개 이상의 리듬을 동시에 사용한 것)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 아프로큐반뮤직 [Afro-Cuban music]
아프리카계(系) 쿠바인의 음악으로 아프리카 전통음악의 영향은 주술숭배(呪術崇拜)를 위한 의례음악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음악은 에스파냐음악 등과의 교류를 통해 쿠바의 독특한 새로운 리듬이나 무용을 수반하는 음악을 탄생시켰다.
― 살사 [salsa]
쿠바에서 전해진 미국 댄스음악으로 정열적이고 다이내믹한 8박자 리듬이 특징이다. 1940년대에 차랑고 등의 무도반주음악 연주양식과 맘보, 볼레로, 차차차 등의 무도 리듬이 혼합되어 생겨났다.
― 란체라 [ranchera]
중남미의 민속음악으로 농민의 춤에서 비롯된 중남미의 민속음악으로 3/4박자의 빠른 왈츠풍(風)의 느낌을 주는 명쾌한 음악이다. 란체라는 감정의 절제가 필요 없는, 감정을 폭발시키는 음악이다. 그래서 노래를 할 때 마지막 음을 최대한 길게 끌면서 감정을 고조시킨다.
― 마리네라 [marinera]
남아메리카 페루의 무곡으로 해안지대에 사는 에스파냐계 뱃사람들의 무곡으로, 사랑을 호소하는 6/8박자의 명랑한 곡이다.
― 밀롱가 [milonga]
아르헨티나탱고의 전신에 해당하는 2/4박자의 무곡이다. 19세기 후반 쿠바에서 선원들에 의해 아르헨티나에 전해진 하바네라가 아프리카계의 음악 칸돔베의 영향을 받아 본래의 우아함이 없어지고 대신 강렬한 리듬감과 빠른 템포를 곁들인 밀롱가를 낳게 하였다고 한다.
― 삼바 [samba]
브라질 흑인계 주민의 4분의 2박자 리듬을 지닌 춤, 또는 그 음악으로 삼바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세련된 사교댄스화한 것을 ‘삼바 카리오카(samba carioca:리우데자네이루 삼바라는 뜻)’라 하여 보통 삼바라고 할 때는 이를 가리킨다. 이 밖에 ‘삼바 디 모로(samba di morro)’, ‘삼바 바투카다(samba batucada)’, ‘삼바 캉시옹(samba can??o)’이라 하며 이것에다 모던재즈를 곁들여 발전시킨 것이 보사노바이다.
― 탱고 [tango]
포풀러뮤직의 리듬형 이름, 또는 그 리듬으로 된 곡을 말한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다운타운에서 발생하여 유럽으로 건너가 유행했다. 한편 에스파냐의 민속음악 플라멩코에도 탱고라는 음악이 있으나 이는 다른 탱고음악과 구별하기 위하여 탱고 플라멩코로 부르고 있다.
― 메렝게[Merengue]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발생한 라틴 리듬으로 원래는 흑인들의 카니발무곡으로, 탕부르라고 하는 북으로 연주되며 2마디마다 연타 리듬이 들어 있다.
― 꿈비아[Cumbia]
꿈비아란 살사, 메렝게와 더불어 중남미 특히 남미 쪽에서 많이 추워지는 콜롬비아 대서양쪽의 흑인들 사이에서 추던 춤곡이다. 꿈비아를 경험한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살사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빠르다고 한다.
― 마리아치(Mariachi)
멕시코음악의 소편성 악단으로 현악기의 앙상블에 트럼펫 등의 관악기를 곁들인 편성이다.
마리아치는 쿠바의 스페인 문화와, 인디오 문화가 혼합된 메스티소로부터 나온 음악형태다. 프랑스말로 결혼을 뜻하는 `마리아즈'에서 마리아치라는 말이 파생됐다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 라틴댄스의 종류
― 차차차
차차차의 발상지는 서인도제도이며, 1950년대 후기부터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였으며, 후에 영국에서 표준화되었다. 기초리듬은 1-2-3-4와 1-2-3-4, 또는 퀵-퀵-퀵-퀵과 퀵-퀵-퀵-퀵이며, 제2박자부터 스텝이 시작된다. 4와 1의 리듬에 차차차의 샤세를 맞추어 춘다.
"차차차"는 현재 분당 약 120박자에 맞춰 추고 있다. 한 박자 당 한 스텝을 추며, 이 때 중간의 1/2박자에 무릎을 펴면서 힙을 강하게 움직인다. 체중은 앞쪽에 두며, 전진은 토toe로 하고, 상체는 곧게 유지한다. 첫 번째 박자의 스텝을 강조하기 위해 4 & 1에 샷세를 하는데, 이 때 첫 박자의 스텝은 다른 스텝들보다 길게 하여 이 박자에 놓여진 강세와 어울리도록 한다.
― 자이브
자이브는 지르바(지터버그)가 진화한 것으로, 일부에서는 아메리칸 스윙이라고도 한다. 발상지는 미국으로 흑인의 춤에서 발생하였으며, 이것은 플로리다에 있는 세미놀(Seminole) 인디안들의 전쟁 춤과도 유사하다.
자이브라 불리는 오늘날의 버전은 빠른 분절음의 왼쪽 샷세(옆으로, 모으고, 옆으로)후 오른쪽 샷세(여성은 오른쪽 샷세 후 왼쪽 샷세), 조금 느린 후진 브레이크와 전진 리플레이스로 이루어진 베이식 스텝을 가지고 있다. 이때 힙은 각 스텝을 따라 1/2박자 움직이며, 모든 스텝은 토로 이동하고 체중은 앞쪽에 둔다. 샷세에서는, 리드하는 발은 그 발의 볼 높이만큼 유지시키고, 끌리는 발은 바닥에 평평하게 유지하여, "문워크moon walk"라 불리는 시각적 환영(幻影)을 만들어내었다. 이것으로 인해 댄서들은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매력적인 자세를 갖게 되었다.
― 룸바
룸바의 발상지는 쿠바이며, 후에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건너가서 현재의 경기형으로 표준화되었다. 룸바에는 아메리칸 룸바 또는 스퀘어 룸바와, 쿠반룸바를 채택한 독일이나 영국 타입의 두 가지가 있다. 경기에서는 후자가 우수하며, 아메리칸 룸바는 작은 홀이나 파티용으로 적합하고, 스텝도 간단하다.
이 춤은 쿠바에 들여온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춤이며, 양발보다는 몸의 동작만을 강조한 춤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 삼바
삼바의 발상지는 브라질이며, 후에 미국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건너가 경기형으로 표준화되었다. 음악은 2/4박자, 템포는 1분에 54소절 정도의 빠른 음악에 맞추어 춘다.
브라질에서는 카톨릭교 4순절의 직전, 3일에서 1주일간에 걸친 "삼바 축제일"로 제정된 국공일에 모든 브라질인들이 이 "삼바 대축제"에 참가하고 있다. 브라질의 옛 수도인 리오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에서 가장 성대하게 벌어지고 있는 "리오 카니발(Rio Carnival)"은 전 세계에서 이 "삼바 대축제"를 보고자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어 이 "삼바 대축제"에 참가하고 또한 이를 배워서 돌아 갈 정도로 유명한 댄스가 바로 브라질의 유일한 민속무용인 삼바춤이다.
― 파소 도브레
"파소 도브레"는 스페인어로 파소는 영어의 스탭(Step)을 그리고 도브레는 더블(Double)을 의미한다. 즉, 더블 스탭(Double Step)이란 의미이다. 파소도블레의 발상지는 에스파냐이며, 후에 프랑스에서 유행하여 독일 및 영국으로 건너갔다. 원래는 투우(鬪牛)하는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남자는 투우사, 여자는 케이프의 움직임을 본떠서 춤춘다.
[21] 파두(Fado)
=>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민요
수도이자 항구도시인 리스본의 번화가에서 많이 불리는 민중적인 노래이다. 이 노래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다듬어진 것은 19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그 기원에 관해서도 도 뱃사람의 노래, 죄수의 노래, 어떤 종류의 민요에서 파생된 노래, 브라질이나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래라는 등의 갖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음악학적·역사적으로 보아 거의 확실한 것은 1800년 전후에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크게 유행했던 도시풍이면서도 감상적인 노래 《모디냐 modinha》와 경쾌한 춤노래 《룬두 lundú》가 이 노래의 발생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운명·숙명의 뜻을 지닌 파두는 리스본 민중의 삶을 노래한 민요로서 언제 들어도 구슬프고 서정적이다. 특히 파두 트리스테(fado triste)와 파두 메노(fado menor)라 불리는 고전적인 곡조는 가슴 속 깊이 와 닿는 애조를 띤다. 2박자·4박자의 단순한 것이 대부분이며 조성(調性)은 단조가 많고, 장·단조 모두 화성구조(和聲構造)는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미묘한 싱커페이션(당김음)과 섬세한 가락으로 되어 있어 가수의 노래솜씨에 따라 매우 풍부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파두의 가수들(여성이 많다)은 보통 '파두의 집(casa do fado)'으로 불리는 레스토랑을 무대로 노래 부른다. 반주는 옛날부터 포르투갈기타 1, 스패니시기타 1로 정해져 있으므로 극장 등에서 노래할 때에는 반주자를 더 늘린다. 포르투갈 북부의 교육도시 코임브라에서 불리는 파두는 파두 다 코임브라라고 하며, 리스본의 파두와는 달리 세레나데와 같은 평온하고 밝은 멋을 풍긴다.
Fado의 기원
Fado를 이해하려면 먼저 Fado의 고향인 포르투갈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포르투갈은 B.C 8세기경 켈트인의 정착이래로 수많은 외세의 침입과 오랜 세월동안(약 428년간)의 무어인(회교도)의 지배를 받아오며 이들의 문화엔 아프리카적, 아랍적, 그리고 이베리아 고유의 로망스의 전통(오랜 기간 로마의 지배영향)이 혼합된 다양한 문화적인 요소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포르투갈의 이들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던 시기인 1415 ~1580년을 거치며, 많은 식민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바다를 향하여 나가게 되었고 이후 대서양, 태평양을 누비며 신항로의 개척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바다는 포르투갈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 되어 버린지도 모른다. 바다로의 진출이 곧 사는 길이었으니까..Fado는 라틴어의 Fatum(숙명)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Fado를 노래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Saudades란 감정의 의미를 살펴본다면 유사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Saudades(사우다지)란 사전적 의미로 '고뇌와 기쁨을 동시에 표현하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추억이나 표현,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격한 향수 또는 애정, 잃어버린 것을 찾고자 하는 복합적인 감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한'과 같은 정서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Saudades를 Fado속에 얼마만큼 녹아들게 하느냐가 곧 훌륭한 Fadista(파두 가수)를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고 한다. 어느 바다인지는 모르지만 죽어버린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바다와 함께한 불안정한 삶을 노래하며 자연히 Fado는 포르투갈인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Fado의 기원은 '룬둠(lundum)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룬둠이란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유행하였던 아프리카 춤을 말하는데 식민지 개척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유입이 되었다는 게 그들의 이야기이다
Fado의 분류
Fado는 앞서 이야기한데로 다양한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오늘날 일반적인 견해는 아프리카의 리듬에 포르투갈 전통 시인으로부터의 감수성과 시적 노랫말을 그리고 악곡 형식은 브라질 음악으로부터 녹아든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Fado는 리스본 항구 근처의 선술집에서 뱃사람들을 상대로 처음 불리워 지기 시작하였고, 서서히 귀족들의 무도회장에서도 자연스럽게 불리워졌다고 한다.
파두는 Guitarra(기타)와 Viola(비올라)만으로 연주되어 지는데 Fadista의 감미로우면서도 애절한 목소리와 함께 그 분위기를 한층 돋우게 한다. Fado는 포르투갈의 지역에 따라 두 가지 형태로 나뉘어 지는데 그 첫 번째가 리스본의 Fado이고, 두 번째가 Coimbra의 Fado이다.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바다를 끼고 있는 Lisboa (리스본) Fado는 바다와의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고독과 희한, 갈망, 원망 등의 모든 희노애락의 감정을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 노래하며 그 내면에는 오랫동안 그들을 지배하였던 무어인(아랍인)의 강력한 내세관(숙명관)을 엿볼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가수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Amalia Rodrigues(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있다. 1954년 프랑스 영화(Les Amants Du Tage)에 삽입된 Barco Negro(검은 돛배)라는 곡으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Fado를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포르투갈의 북부 교육도시(대학도시)인 Coimbra 에서는 이 도시에 유학온 리스본 유학생들과 북부항구도시인 Porto의 유학생들이 그들의 Fado를 나름대로 소화시켜 일종의 사랑의 세레나데 형식으로 연인을 위한 곡으로 바뀌게 된다. 멜로디, 리듬, 가사, 발성법에서 리스본 Fado와는 다르며 노래의 주제 또한 로맨틱하고 밝은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가수로는 Jose Afonso가 있다. 비록 두 지역의 Fado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Guitarra와 Viola의 반주 속에 인생의 비애, 실연, 고향을 떠난 외로움 등을 노래한 Fado는 포르투갈의 민족적 감성과 그들의 애환을 전 세계로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대표적인 Fadista Fado를 부르는 사람을 Fadista라고 한다.
Lisboa Fado의 대표적
Fadista라고 할 수 있는 Amalia Rodrigues는 포르투갈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불리어진다. 흔한 사랑타령에 목말라하지 않고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민중의 애환을 노래했던 그녀는99년 10월 6일 79세의 일기로 타계하였을 때,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고자 포트투칼 정부가 3일 동안의 애도기간을 공표했다고 한다. 이후, 그녀의 뒤를 잇는 신세대 파두 가수인 Dulce Pontes, 기타와 비올라 외에 아코디언, 첼로, 신디사이저 등 다양한 악기를 도입해 Fado를 현대적인 모습으로 발전시켜가고 있는 Bevinda(베빈다), Misia(미샤) 등이 있다. 특히 베빈다의 파두는 때로는 시원스런 라틴음악의 느낌에 빠지게 하는가 하면 때로는 재즈적인 감성을 느끼게 하는 등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음악 스타일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1961년 포르투갈 북부의 도시에서 태어났지만 2년 뒤 프랑스로 이주해 삶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베빈다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미세한 파편이 되어 무의식의 꿈속에서조차 더듬어 내기 어려웠을 포르투갈의 기억을 결코 잊지 않았다. 베빈다는 프랑스에서 1996년에 발표한 앨범 "terra e ar"에서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명곡 "Barco Negro(검은 돛배)"와 "Lagrima(눈물)"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영원한 마음의 고향, 포르투갈의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대개 '기따라'와 현악기 중심의 곡들로 애잔하면서도 포르투갈에 대한 짙은 향수를 느끼게 하고 있는데, 이 앨범은 프랑스에서 성장한 베빈다가 포르투갈인으로서의 자아와 영혼을 어떻게 찾아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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