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
박은희(2024.5.20.월)
5월 중순 나뭇잎들은 연두색에서 진녹색으로 변하고 있다. 작약과 모란은 쌍둥이처럼 피어나고 있다. 담장에는 장미들이 울긋불긋하다. 연못가에는 노란 창포 꽃이 빛난다. 비 온 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아무도 없는 학교에 출근했다. 수업 준비를 하고 있으면 7시 30분부터 아이들이 하나둘 등교한다. 아빠가 데려다 주기도 하고 걸어서 오기도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 버스를 타고 8시쯤 온다.
8시도 안됐는데 열린 앞문으로 3학년 철민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다 간다. 아이들 신발장에서 복도로 들어서자마자 첫 번째 교실이 1학년 교실이다. 그 옆으로 6학년 지수가 지나간다. 그 뒤로 배시시 웃으면서 수민이가 들어온다.
“어, 버스 타고 안 왔어?”
“엄마 차타고 왔어요.”
“그랬구나, 어제 엄마 집에서 잤어?”
아무 말이 없다.
“아빠 집에서 잤어? 엄마도 같이 잤어?”
고개만 끄덕인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수민이는 늘 하던 대로 가방에 있던 숙제를 꺼내 선생님 책상에 냈다. 안내장을 정해진 바구니에 두고, 가방을 사물함에 넣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친구들이 왔다. 각자 아침에 등교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같이 놀러 나갔다. 잠시 후 복도에서 예지와 수민이를 만났다.
“선생님, 민수가 여자 화장실 앞에 서 있어서 창피해요.”
“그래? 왜 그랬을까? 민수는 어디 있니?”
“몰라요. 너무 창피해요. 남자가 여자 화장실 앞에 있으면 안 되잖아요.”
지나가던 민수 누나가 동생 편을 들어준다.
“민수가 집에서 무서운 거 본 다음에 혼자 있으면 무서워서 그래요.”
“그랬구나, 얘들아 민수가 무서워서 그랬데.”
“그래도 여자 화장실 앞에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 예지는 남자가 여자 화장실 앞에 서 있어서 신경 쓰이고 창피했다는 말이지?”
“네, 선생님 민수 혼내주세요.”
“음, 일단 선생님이 민수와 이야기 해볼게.”
수민이는 별 얘기가 없는데 예지가 계속 불편함을 호소했다.
민수가 돌아왔지만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복도에서 서성였다.
“민수야, 여자 친구들이 네가 여자 화장실 앞에 서 있어서 창피하다고 뭐라고 해서 속상했어?”
품에 파고들어 어헝 어헝 운다. 한참을 안아주었다.
수민이는
“민수야 괜찮아, 들어와, 다음부터 안 그러면 돼.”
예지는
“지난번에 약속했잖아. 또 그러면 안 되는데... 창피한데....”
한참을 문 앞에 있다가 교실에 들어왔다.
수민이가 날짜와 시간표를 알려달라고 재촉한다. 내가 깜박할 때면 언제나 수민이가 알려준다.
“오늘은 5월 17일 금요일 햇님.”
“1교시와 2교시는 도자기 만들러 갈 거예요. 중간놀이하고, 3교시와 4교시는 수학 공부할게요. 오늘은 수학을 2시간 합니다.”
“와, 좋아요.” 아이들 모두 수학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한글을 아직 몰라 숫자가 더 편한가보다.
“선생님이 중간놀이 시간에 비타민 2개를 주고, 점심시간에 3개를 주면 오늘 받은 비티민은 모두 몇 개일까요?”
손가락을 펼치고 하나하나 센 후에
“5개요.”
“텃밭에 토마토가 9개 달려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선생님이 토마토 3개 땄어요. 그럼 몇 개 남았을까요?”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한참을 계산하더니
“6개요.”
자신 있게 외친다.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덧셈 뺄셈을 1학년 아이들은 신중하게 공들여서 한다. 처음으로 셀프 주유소에 기름 넣을 때가 생각난다.
“점심 먹고 5교시는”
아차, 한 가지를 빠뜨렸다. 이럴 땐 수민이가 꼭 짚고 넘어간다. 검지 손가락을 세워서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고 눈을 찡긋거리면서 다시 말해달라고 한다.
“점심 먹고 놀고 5교시는 병원 가서 건강검진을 받을 거예요.”
“오늘은 밥 먹고 못 놀아요?”
“놀고 싶은데 못 놀아서 속상하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오늘은 병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해. 점심 먹고 양치하고 교실에서 기다려요. 양치 꼭 해요. 치과 선생님이 볼 거야. 냄새 안 나게 꼭 하세요.”
“네~~~ 근데 주사 맞아요?”
“아니, 주사는 맞지 않아요.”
“휴 다행이다. 선생님 언제 도자기 만들러 가요?”
“이제 도자기 만들러 갈 거예요. 가기 전에 선생님 차에 타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죠?”
“장난치지 않아요. 시끄럽게 하지 않아요.”
갑자기 수민이가 장난기가 발동해서
“똥 싸지 않아요.”
집중했던 분위기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아이들이 요란스럽게 웃는다.
“또 똥 얘기하면 똥 수민이라고 할 거야.”
수민이가 눈을 흘기면서
“그럼 저도 똥 선생님이라고 할 거예요.”
“그래 좋아, 지금부터 똥 얘기 하지 않기 시작!”
다른 두 명의 아이들은 들릴 듯 말 듯 킥킥 거리면서 똥똥 한다.
점심 먹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선생님, 병원 멀어요?”
“조금 멀어.”
“천안 이예요?”
“응, 천안이야.”
“와, 그럼 1분 걸려요?”
“응? 아, 30분 정도 걸려.”
“아하, 그렇구나. 얘들아 끝말잇기 하자.”
“그래. 기차-기러기”
“차로 시작하는 거 있잖아. 차도.”
“아, 차도-도장-도토리”
“아니, 장으로 시작해야지.”
“아 맞다. 음~~~장미-미술-술래”
“근데 너 여자 친구 있어?”
“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왜?”
“어~음~일본 갔어.”
“지금 우리 학교에는 없어?”
“몰라.”
“너는 남자 친구 있어?”
“아니, 난 나중에 남자 친구 사귈 거야.”
“선생님, 민수 실내화 신고 왔어요.”
갑자기 수민이가 큰소리로 말하고 까르르 웃는다. 계속 웃는다. 옆에 친구들도 웃는다. 숨을 헐떡이면서 웃는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웃었다.
“얘들아, 배꼽 빠졌나 봐봐.”
“선생님 배꼽이 어떻게 빠져요. 너무 웃겨요.”
또 웃는다.
병원에 들어가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낯설고 긴장이 되나보다. 키와 몸무게를 재고 시력 검사를 했다. 그 다음 소변 검사할 차례다. 수민이는 아직 오줌이 안 마렵다고 해서 간호사와 함께 구강검사를 하러 갔다. 예지는 키와 몸무게를 재고 있다. 민수가 소변 검사 어렵다고 해서 화장실까지 같이 다녀왔다. 그 사이 수민이가 내과 검사까지 하고 앉아있다. 소변 검사를 해야 하는데 요지부동이다. 6학년 언니들과 내가 괜찮다고 한 번해보라고 했더니 갑자기 울먹인다. 품에 안겨서 눈물을 뚝뚝 흘린다. 같이 간 선생님들이 모두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냈다.
“수민아, 선생님 없이 혼자 의사 선생님 만나서 무서웠어?”
고개를 끄덕인다. 한참동안 안아줬다. 6학년 여학생이
“언니랑 같이 가자. 언니가 도와줄게.”
“그래, 수민아. 언니가 도와준데. 같이 다녀올래?”
말없이 따라간다.
수민이가 눈물을 흘린 것은 두 번째다. 4월 삽교천으로 체험학습 가는 날 아침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등교했다.
“수민아, 오늘은 멀리 가야하고 놀이기구도 타야하니까 머리를 묶고 가면 좋겠는데. 선생님이 묶어줄까?”
평소에도 머리 묶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유난히 도리질을 심하게 했다.
“수민이는 엄마가 해주는 것이 제일 좋구나?”
엄마를 제일 좋아하는 수민이라서 그냥 말했는데 갑자기 울먹울먹하더니 내 품에 안겨서 흑흑 울었다. 큰소리도 내지 않고 소곤소곤 한참을 울었다. 오빠와 언니 담임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물어봤다.
“어제는 어디서 잤어? 엄마 집에서 잤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빠랑 잤어?”
고개를 끄덕 거렸다. 등을 토닥토닥 거리면서 한참을 울게 두었다. 수민이는 언제나 내 등을 토닥거려줬는데 오늘은 가만히 울기만 했다. 30분을 울었다.
3월에 전화로 아빠와 상담을 했다.
“선생님, 제가요, 애들 엄마랑 헤어졌어요. 지금 애 엄마는 동네 빌라에서 살고 주말에만 아이들이 가요. 직장도 없이 어쩌려고 그러는지 원. 저도 최선을 다했는데 그게 마음 같지 않네요. 어떻게든 헤어지지 않으려고 지난겨울 방학에 베트남에도 다녀왔는데 이렇게 되었네요. 수민이가 지금은 엄마 앞으로 되어 있지만 내년에는 제 앞으로 다시 데려 오려구요. 수민이 잘 부탁합니다. 제가 아이들은 잘 키우려고 노력 많이 하고 있어요.”
“아, 네. 힘드시겠어요. 학교에서 잘 살피도록 할게요. 엄마를 따로 만나도 될까요?”
“네 그러셔요.”
“아버님도 직접 만나고 싶은데 시간이 될까요?”
“아이구 뭘 봐요. 저도 바쁘고 그냥 오늘 이야기 한 걸로 해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필요하면 연락드릴게요.”
“네, 안녕히 계세요.”
그 뒤로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6학년 언니 담임 선생님이 만났다고 하는데 상대 말은 듣지 않고 본인 이야기만 하다 갔다고 한다. 체육대회 날 엄마를 보고 인사만 했다. 힘들고 어려운 경기에는 큰 딸을 내 보내고, 상품 주는 경기에는 신나서 나갔다. 청팀에 있는 아들에게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엄마만 바라보는 수민이는 언니에게 맡겼다. 이제 서른다섯 살이라고 한다. 어쩌다가 이 먼 한국에 와서 아이 셋을 낳고 남편과 헤어졌을까?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알 수 는 없지만 수민이 마음에 더 귀 기울여야겠다. 작은 사람이라고 슬픔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월요일마다 주말 지낸 이야기를 한다. 수민이가 바다를 다녀왔다고 한다.
“누구랑 갔어?”
“엄마, 아빠, 언니, 오빠 이렇게.”
“하루 자고 왔어?”
“아니요. 바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어요.”
“그랬구나. 행복했어요?”
“엄마랑 아빠랑 얼레리 꼴레리. 헤헤헤헤.”
손을 비비 꼬면서 웃었다. 나도 그냥 웃었다. 그 뒤로 자주 학교 버스를 타지 않고 엄마가 등교 시킨다.
병원에서 학교로 출발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한국 한국 랄랄라.”
갑자기 민수가 노래를 부른다. 음정도 박자도 제 맘 대로다.
“박은희 선생님 박은희 선생님 룰루 랄라 쿵쿵따. 김민수 김민수 헬롱헬롱 쿠찌빠. 한수민 한수민 훌라훌라 훌랄라. 박예지 박예지 쿵팡쿵팡 쿵찌팡.”
시무룩해 있던 수민이 웃음보가 터졌다. 민수와 주거니 받거니 한다.
“시룽빵빵 쿵치루팡.”
“실루셀루 빠라라빵.”
“캉충껑따리 뚜루루 삐삐뽕.”
“또롱또로롱 뿌루뿌루 빵.”
“예지야 너도 해봐.”
“아이, 나 잘 못해.”
“그냥 아무 말이나 하면 돼. 헤헤헤헤.”
“훌룰루삥 랄라롱라.”
“뚜룩따루빵, 룰루삥삥.”
중간에 민수가 목이 막혀 컥컥 거렸지만 쉬지 않고 학교 도착할 때까지 놀았다.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 얼굴이 발그스레하고 촉촉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
한 명 한 명 안아주고 헤어졌다. 수민이가 내 등을 토닥토닥해주고 춤추듯이 돌봄 교실로 뛰어 갔다.
첫댓글 아이들의 삶에도 희노애락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제 어린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그때와는 다른 모습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듯한 대화들이 즐거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골학교 일상을 통해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었습니다. 이혼가정의 아픔을 겪는 수민이네 가정이 잘 안착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고 답글 줘서 고마워요^^ 저는 어른과 아이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배울것도 많이 있답니다. 창열님, 연옥님 글을 통해서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다시 한번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