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음악교류 참가 일지 [초고]
1.1. [표지 사진 - 우리 하나 되어 [あなたと つなぐ] 기러기합창단 사진
[사진 – 공연 팜플렛 (일본) 사진]
[초청장] 페이스북 인용
日本と朝鮮半島の市民が、心交わす互いの顔が見える交流を!と、続けてきた音楽交流20年。これを記念した音楽会が東京で開催されます。今回の取り組みに対し、韓国・光州から「青い松合唱団」「キロギ合唱団」「五月オモニ会合唱団」と韓国民衆歌謡歌手 金元中(キム・ウォンヂュン)さん、光州民衆抗争の真実を証言して下さるオモニ キム・スンジャさん、韓国・仁川より「文化の風」、ソウルから民衆歌謡歌手 孫炳輝(ソン・ビョンフィ)さん、日本の民衆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原田義雄さんと「山上茂典とその一座」の皆さん、日本の大企業の横暴と闘いながら歌い歌い続ける「JAL争議団合唱団フェニックス」をはじめ、多くのうたごえ合唱団の皆さんが「ともにうたう合唱団」を結成して参加!など、呼び掛けに応えて下さいました。日本と朝鮮半島で平和と民主主義、人権を守り、市民が主人公の社会を目指し、市民の願いを乗せた音楽が一同に会します。新たな世界の平和と、朝鮮半島の統一へ向けて、新たな礎となった東アジアから、市民の交流も更に深く広くなっていくことを願って…
<일본과 한국 한반도의 시민들이 마음을 나누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교류를!>이란 주제로 계속해 온 음악교류 20년.
이를 기념하는 음악회가 도쿄에서 개최됩니다.
이번 모임에 대해, 한국 광주에서 [푸른솔합창단], [기러기합창단], [오월 어머니회합창단]과 한국민중가요 가수 김원중 씨,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증언해 주실 어머니 김순자 씨, 한국 인천에서 [문화의 바람], 서울에서 민중가요가수 손병휘 씨,
일본에서 민중 싱어송라이터 하라다 요시오(原田義雄) 씨, 야마가미 시게노리(山上茂典) 씨와 그의 극단 여러분, 일본 대기업의 횡포와 싸우면서 계속 노래 부르는 [JAL쟁의 합창단 피닉스]를 비롯해
많은 노래 합창단 여러분이 【함께 부르는 합창단(ともにうたう合唱団)】을 결성하여 참가호소에 응해 주셨습니다.
일본과 한반도에 평화와 민주주의, 인권을 지키고, 시민이 주인인 사회를 목표로, 시민의 소원을 실은 음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새로운 세계의 평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향한 새로운 초석이 된 동아시아에서,
시민의 교류도 더욱 깊고 널리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흥사단 기러기합창단 한일음악교류 참가 일지 이 글은 기러기합창단 일본 교류 행사에 참가한 개인 일기메모를 근거로 여행기를 정리한 것임. 따라서 그 내용이 주관적이고 기록 사실도 내가 보고 들은 단편적 지식일 뿐임을 밝혀 둡니다.
한일음악교류 20주년 기념음악회
우리 하나 되어 [あなたと つなぐ]
일정 : 2019. 1. 17. - 1. 20.
장소 : 일본 도쿄(日本 東京都 荒川區)
닛포리 렁우드호텔 서니 홀 (Nippori Lungwood Hotel Sunny Hall)
동행 : 기러기합창단 34명
일본서 울려 퍼지는 평화·민주주의 하모니 무등일보 기사] 유대용 기자 mailto:ydy2132@srb.co.kr 입력시간 : 2019. 01.17. 00:00
광주흥사단 기러기합창단은 일본 우타고에 합창단의 초청을 받아 1월 18일 오후 3시와 밤 6시 30분 두 차례, 일본 동경 닛포리 렁우드호텔 서니 홀(Nippori Sunny Hall)에서 공연을 갖는다.
이번 공연은 '우타고에 합창단'의 한일교류 20주년과 창립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우타고에 합창단은 1999년 이후 매년 5·18민주화운동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 하나 되어[あなたと つなぐ]'를 주제로 한국의 단체를 초청, 평화를 노래하는 이번 행사에, 광주지역에서는 광주흥사단 기러기합창단을 비롯해 푸른솔합창단, 오월어머니회, 민중가수 김원중 등이 참여한다.
고수연 씨가 지휘, 김보은 씨가 피아노 반주를 맡는 기러기 합창단은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와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나라', '철망 앞에서'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전 출연진이 함께하는 합동공연에서는 '상록수'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져 의미를 더한다. 또 일본 곡인 '인간의 노래', '이 다리를 건너서'도 노래한다.
기러기 합창단은 평화통일, 민주주의 등을 노래하는 단체로 2017년 3월 창단됐다. 흥사단 회원이 주축으로 결성돼 현재는 일반 시민을 포함한 50여 명의 단원으로 구성됐다. 40대 직장인부터 60대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단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5·18 기념식과 6·10 민중항쟁 기념식에 참여한 것은 물론, 6월에는 DMZ를 방문, 평화통일 정신을 알리기 위한 임진각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1.2. ◉ 제1일 2019. 1. 17. 목요일
◈ 출발
08:00 광주비엔날레주차장 집결.
08:30 버스가 출발한다. 스카이여행사 김효분 사장님이 모든 준비를 완료하여 우리는 소풍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허파에 바람만 잔뜩 부풀어 있다. 비록 부산 김해공항까지 지루한 버스 여정이지만, 이 또한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즐겁지 아니하리요?
해외여행을 해외에 도착한 때부터 치면 광주에서 공항까지 버스 타는 시간, 한국에서 외국 현지공항까지 닭장보다 좁은 비행기 속이 지루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 또한 여행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덜 지루하고, 알찬 시간으로 채울 여유가 생긴다. 30년 여행의 노하우(know-how)이다.
일행 한 분이 핸폰을 집에 두고 왔다. 버스가 출발하면서야 집에 연락하는데, 남편이 고속도로 곡성휴게소까지 쏜살처럼 달려와 전해준다. 와! 멋진 남편데쓰네!
평일 낮 시간이라 고속도로 통행이 원활하다.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버스가 멈춘 곳이 부산 시내인데, 김해공항 인근인가보다. 여기저기에 공항이전반대 현수막이 건물옥상에 걸려있다. 김해공항이 비좁아 부산권역의 부산 가덕도 이전 주장과 대구 경북권역의 밀양신공항 지지 등 지역갈등 조짐을 오래 전 뉴스에서 보았는데, 현지에서 현수막을 보니 ‘이곳도 별수 없는 한국이로구나~.’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되니 순기능이 많지만 지역 간의 갈등이 전보다 노골화된 것은 문제점이다.
[사진 – 공항이전 반대현수막]
공항 부근에서 점심을 먹고서 김해공항에 여유롭게 도착한다.
14:20. 부산김해공항에서 비행기(일본항공 JL 958)는 이륙한다. 단거리 운행하는 소형기종인데, 좌석의 앞뒤 거리가 쬐끔 여유로워 다행스럽다.
◈ 일본 도착
16:10. 도쿄 나리타(成田) 공항에 도착하다.
우타고에 합창단의 야마다(山田) 선생과 여성 2분이 마중 나왔는데. 환영 플래카드까지 들고 오는 정성을 보여준다.
[사진 – 공항 마중]
동경(東京) 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여러 메뉴 중 난 우동이다. 휴게소에서 찍은 사진 중 우리 지휘자 선생님 얼굴이 가장 밝다.
[사진 – 고속도로 휴게소, 지휘자 선생님]
19:30. 숙소에 도착하다. 일본 동경 닛포리 (日暮里, Nippori) 렁우드 호텔Lungwood Hotel)이다. 18일 공연이 모두 끝나고 이자카야로 이동할 때 보니 호텔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닛포리 역(日暮里 驛)이 있다.
이곳에서 내일 오후와 저녁의 2회 공연을 하며, 출국 때까지 3일간 머무른다. 방배정이 끝나자 짐을 방에 던지고 온 성질 급한 사람 순서대로 우리 방에 모여든다.
늦은 밤까지 10여명이 좁은 객실에서 정의돈수를 실천하다. 한국에서 가져간 소주, 호텔로비 자판기에서 사온 맥주, 짐 가방에서 나온 육포와 고추장, 정용민 샘이 밖에서 사온 튀김 --- 흥을 돋우기에 딱 어울린 여행의 첫날밤 정경이다.
흥사단은 조직 초창기부터 정의돈수(情誼敦修)를 강조했거늘, 오늘도 그 실행 중이다. 일부 활달한 단원은 호텔 밖으로 나간 듯하건만, 방안통수가 더 이상 알 바 없다.
[사진 – 객실의 정의돈수]
1.3. ◉ 제2일 2019.1. 18. 금요일
오늘은 음악공연 하는 날.
일본 동경 닛포리 렁우드호텔 서니 홀(Nippori Lungwood Hotel Sunny Hall)
07:00. 호텔에서 뷔페식 조식이다. 아침 호텔의 뷔페식 식사는 여행 추억 중 하나이다. 평상시 집에서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침식사인데, 여행 중의 뷔페에서는 다른 사람이 된다.
오전 연습시간 전에 피아노반주 김보은 선생이 도착하다. 이제 34명 모두 합류하다.
[사진 – 반주 김보은 선생님]
호텔의 공연연습장 시설이 비좁아 참가단체별 30 분씩의 연습이 허용된다. 전체합동공연 연습은 공연장 무대에서 하는데 참가단체 수가 많아 진행이 우왕좌왕이다. 총연출을 맡은 고바야시 선생이 감기로 연습시간에 참석하지 못하여 매끄럽지 못하다는 안내멘트이다. 와까리마시다.
[사진 – 연습하는 공연장 ]
◈ 공연
공연장 복도에는 ‘JL 부당해고 철회하라’는 어깨띠를 맨 사람들이 홍보물을 전시·판매한다. 어제 우리를 마중 나온 여성 한분도 어깨띠를 매고 안내를 하고 있다.
[사진 – 공연장 밖 복도 풍경]
5·18 어머니합창단 일행으로 참석한 사람 중에서 우리 흥사단아카데미 출신인 정현애 전 시의원, 홍인화 전 시의원을 그곳에서 상면하다. 생각치도 않던 곳에서 고향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정 의원은 72학번 광주교육대학 아카데미 출신이고, 홍의원은 2014년 8월 시베리아횡단열차로 함께 여행하다가 아카데미 후배임을 알게 된 친숙한 사이이다.
[사진 –정현애, 홍인화]
점심은 연습장 구석지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오후 3시에 공연이 시작된다. 인천의 합창단, 광주에서 푸른솔합창단, 5·18 어머니합창단, 흥사단기러기합창단 등의 한국 합창단과 일본의 우타고에 합창단이 함께 모이니 제법 큰 규모의 공연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에서 참석한 합창단이 우타고에 뿐 아니라 확대된 규모의 합창단이다.
1000석 규모의 객석에 오후는 물론 밤의 입장권도 일찍 매진되었다니, 일본인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나 보다. 아니면 주최 측의 관중동원 실력이 상당하든지. 입장 티켓 가격은 싸지도 않다. 오후, 밤 각 2,500엔이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진행하는 오후 1부 공연 중 우리 기러기합창단의 차례는 맨 마지막이다. 별도 대기실이 충분하지 않아 3시 이전부터 공연장 무대 밖의 복도에서 대기하며 서성거린다. 우리 팀 오후 공연복장이 정장인데, 여성단원들의 복장은 우아하면서도(장점) 거추장스러워(
단점) 비좁은 복도 대기시설에서 편치 않은 기다림이다.
차례를 기다리다 지쳐버린다
[사진 – 대기중인 합창단원]
앞 팀의 끝남을 복도에서 바라보다 우리 팀의 차례가 되니 오히려 홀가분하여 연습 때보다 더 흥겹게 합창을 마친다. 오후 공연에서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 [단결한 민중은], [아름다운 나라] 등 세곡이다. 우리 팀의 마지막 합창에 이어, 초청가수 손병휘, 가수 김원중의 열창이 이어진다.
[사진 – 1부 공연]
이렇게 오후 공식공연이 끝나는데, 의기투합한 우리는 가수 김원중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직녀에게’를 부르며 즐거운 종지부를 맺었다.
[사진 – 김원중과 함께]
저녁식사도 밤 공연시간 때문에 도시락으로 간편하게 해결한다. 그리고 7시에 2부 공연을 시작한다. 우리 팀의 2부 공연복장은 간편복(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다.
밤 공연에서 우리 합창단은 [철망 앞에서], 합창으로 [상록수], [임을 위한 행진곡], [인간의 노래], [이 다리를 건너서 –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의 곡을 부르다.
[사진 – 2부 공연]
[인간의 노래]는 ---
[이 다리를 건너서] ----- 보충 요함(노래 해설)
공연 후 전원이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이자카야(居酒屋) 술 종류와 그에 따른 간단한 요리를 제공하는 일본 음식점. 주로 주류를 제공하고 있는 점에서 일반 식당과 다르다.
로 이동하여 합동 회식을 하다.
100명 가까운 인원이 2층 한 홀에 모여 맥주와 사케를 맛있게 마시면서 즐거운 국제적 정의돈수 시간을 갖다.
숫자로는 34명이 참석한 우리 팀이 가장 대 군단이다. 여기저기 “간빠이~” 소리와 즐거운 웃음이 시끌시끌하다. 5·18 어머니회는 적은 수(8명)가 참석했지만, 박관현 열사의 누님 되시는 분의 노랫가락 솜씨는 좌중을 휘어잡는다.
참석한 교포 한분(유신정권하에서 반국가인물로 내몰려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억지로 일본에서 거주했단다)의 사연(事緣) 섞인 건배사에는 본인도 우리도 모두 찡한 가슴으로 당시의 참담한 상항을 회고했다.
우리 합창단 최고령이신 양영자 단우는 카톡에 “18일 밤에 건배사하고 눈물 흘리시는 교포님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시려오네요. 공연에 오신 우리 교포님들 건강하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히 기원합니다.”라는 글을 남기셨다.
[사진 – 이자가야]
1.4. ◉ 제3일 2019. 1. 19. 토요일
호텔의 아침식사는 07:00 시작한다. 평소 집에서는 아침식사를 거르거나 식빵 한 덩어리 정도인데, 여행에서 아침식사는 나중 되새김질이라도 할 양으로 꾸역꾸역 배 속에 뷔페음식을 부어 넣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많은 음식이 되새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살로 남는다는 것이다. 후유~ 여행 후에 체중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횟수만 증가한다.
고수연 지휘자는 조식 후 바로 한국으로 출국했다. 내일 일요일 성가대 합창단 지휘자를 겸하여 바쁜 일정이란다. 지휘자가 없는 합창단은 앙꼬(あんこ) 없는 찐빵인데, 우리 모두 아쉬운 작별을 한다. 양송이 단장님이 특별히도 감사해 하신다. 역시 지도자급 단장님이시다.^^
[사진 – 지휘자 선생님]
나중에 보니 반주자 선생님도 개인일정으로 이탈해 가셨다. 이국적 미모를 가진 반주선생님, 외국 땅에서 몸조심하시게요. ~
[사진 – 반주 선생님]
우리는 그제 밤 일본에 도착하여 곧장 이곳 호텔에 들어섰다가 오늘 아침에야 처음 호텔 밖으로 나온다. 겨울이지만 날씨가 화창하고 포근하다.
[사진 – 호텔 정문] - 김왕기 선생
◈ 하코네
처음으로 관광가이드가 등장한다. 전북 진안 출신의 중년 남자이다. 이름은 김기정.
오늘 관광은 오전에는 하코네(箱根), 오후에는 시내 관광이다.
08:00. 하코네를 향해 출발한다. 출발한지 30분 만에 교외에 접어들자 눈 덥힌 후지산(富士山 : 해발 3,776m)정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날씨가 너무도 맑고 청명하다. 미세먼지에 찌든 한국의 하늘을 보다가 이곳의 맑은 하늘을 보니 부러울 정도이다. 한국의 겨울날은 오직하면 ‘삼한사미’(三寒四微-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로 가득하다)란 말이 생길 정도이다. 이제는 뿌연 하늘 속에 사는 우리가 결코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다. 후세에게 무엇을 남겨 줄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사진 – 버스 안에서 보는 후지산]
후지산(富士山). 글자를 적고 보니 흥사단(興士團)과 한자(漢字) 표기가 유사하다. 한문(漢文) 뜻만 보면 부사(富士)는 선비(?)가 풍부하다는 뜻이요, 흥사(興士)는 선비를 많이 길러내자는 뜻이니 너무 아이러니 하다. 궁금하다. 후지산의 어원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일본어의 기원이 오리무중이므로 수십 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이누어후치(할머니)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후지산(富士山)의 후지(富士)는 르완다어 huza에서 기원한 것으로, 봉우리가 아름답게 조화된 것을 의미하며, 후지산의 봉우리 모습이 신부의 젖가슴 같으므로 신부의 지참금이라는 의미를 한자로 덧붙인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 <아리랑 역사와 한국어의 기원>에서], 괜한 의심을 했나보다^^
09시 반경. 하코네 초입에 도착하여, 산길로 접어든 버스는 10시가 다 되어 하코네 산 중턱 오와쿠타니(大涌谷 Owakudani おおわくだに 해발1,044m) 정상에 도착한다.
하코네(箱根)는 일본 혼슈(本州) 가나가와(神奈川) 현에 있는 인구 11,389명(2018년)의 도시이다. 사화산(死火山)인 하코네 산의 칼데라(Caldera) 안에 있는 아시노 호(蘆の湖)의 남쪽 제방에 있다. 도쿠가와(德川) 시대에는 역참(驛站)이었으며, 지금은 후지(富士) – 하코네(箱根) – 이즈(伊豆) 국립공원의 관광기지이다. (다음 백과 참조). 칼데라(Caldera)는 화산폭발 후 수축으로 생겨난 함몰 지형, 칼데라 호는 그곳에 생긴 호수이며, 화산 꼭대기에 있는 건 화산호수라고 한다. 이름의 유래는 스페인어로 ‘냄비’를 뜻한다.
‘지옥의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유황냄새 나는 흰색 연기 가득한 우리에게 이색적이다. 유황냄새와 흰 연기 가득한 계곡을 보니, 이제야 일본 관광에 온듯하다. 요즘은 ‘지옥의 계곡’이라는 표현이 없어졌단다. 대체나 그런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엊그제 이틀간은 광주에서 도쿄까지 이동하는데 하루, 어제 하루는 오전 연습, 오후와 밤 공연으로 종일 긴장과 강행군이 계속된 날이었다.
[사진 – 오와쿠타니 (大涌谷) ]
20년 전쯤 도쿄지방재판소에 민족소송(民族訴訟) 1992년부터 2003년까지 ‘정신대’를 포함해 군속과 노무, 침략, 분단책임비용 등을 청구하는 대일(對日) 민족소송이 지익표 변호사 주도로 젊은 변호사들이 동참하여 자비(自費)를 들여 소송을 진행했다.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왔을 때 하코네에 관광 왔었다. 그때는 ‘지옥의 계곡’에서 흐르는 유황온천수에 손을 담그기도 했던 기억인데, 오늘에 와 보니 주차장과 상가 일원만 개방되고 계곡에 접근이 금지된다.
[사진 – 유황 계곡]
선명한 날씨 덕분에 후지산이 정말정말 선명하게 보인다. 돌팔매질이라도 하면 설산에 닿을 것처럼 가깝다. 가이드가 허락한 50분 내에 사진 찍고 유황 물에 삶은 달걀을 맛보기도 바쁘다. 삶은 계란은 5개들이 한 봉지가 500엔이고, 껍질 벗긴 채 삶은 계란은 5개들이 750엔이다.
[사진 – 삶은 계란] 자비미소 사진, [후지산]
유황온천수를 만지는 체험 등이 없으니 50분의 시간이 짧지만은 않다.
전에 이곳에 왔던 때에는 저 아래 쪽 마을에서 피카소 미술관 등 갤러리도 보았던 기억인데 오늘은 그곳을 지나지도 않는다.
[사진 – 후지산]
10:50 하코네에서 유람선을 타기위해 출발한다. 10분 거리의 유람선선착장에 도착한다. 오와쿠다니(大涌谷)에서 호수 선착장까지 케이블카도 있다.
아시노 코(蘆の湖, Lake Ashi)이다. 아시(蘆)는 갈대, 코(湖)는 호수를 의미한다. 호수 둘레가 18km, 최고 깊이는 43.5m, 수면 높이는 해발 723m이다. 호반 주변에는 수많은 경승지가 여기저기 있고, 낚시터로서도 알려져 있다. 호수 위에는 ‘하코네 해적선’과 ‘아시노코 유람선’, 2개 회사의 관광 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 기항지로는 도겐다이(挑源臺) 항, 모토하코네(元箱根) 항 및 하코네마치(箱根町) 항이 있다.
[사진 – 호수]
11:30 모토하코네 도겐다이(挑源臺) 항에서 유람선(해적선)에 승선한다. 해적선 모양의 치장을 한 유람선이다. 겨울이지만 춥지 않은 날씨 덕에 3층 갑판에서 호수의 전경을 구경한다. 주변 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국립공원이니 당연하겠지만, 어떻든 난개발이나 무분별한 잡상인의 떠들썩함이 보이지 않은 이곳이다. 선착장 이외에는 상가 등의 건물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일본에서 으뜸가는 관광지이건만 요란하지 않고 단정한 환경이 정말 일본답다.
[사진 - 선착장 부근의 일행]
청명한 날씨 덕분이지만 푸른빛으로 가득한 아시노코에서 후지산의 설산(雪山)을 선명하게 볼 수 있음은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노래가 하늘까지 전달되어 이번 관광의 특별 팁인가 보다.^^
해적선에서 20 여분 승선의 맛만 보고, 하코네마치(箱根町)에서 하선하여 점심을 먹는다. 식당 내부에 정돈된 좌석이 100석도 넘을 듯, 우리 일행 30여 명이 앉아도 식당 일부의 한 쪽에 불과하다.
12:50 관쇼 (関所).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선착장에서 온시 하코네 공원으로 가는 길목의 검표소가 있는 곳이 옛날 관소(関所, 세키쇼)가 있었던 곳이란다. 이곳 관소(関所)를 기점으로 동·서가 간토(関東) · 간사이(関西)로 구분된다고 한다. 관소가 있던 곳이라고 하니, 이제야 관동 관서의 어원(語原)이 이해된다.
[사진 - 관소(関所)가 있던 곳의 검문소]
하코네 세키쇼(箱根関所)
관소(関所)란 군사 · 교통상의 요지에 인적 · 물적 자원의 이동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구를 말한다.
하코네 관(箱根関, 하코네노 세키)은 하코네에 있던 관문이다. 좁은 의미에서는 1619년 도쿠가와(德川)의 에도 막부(幕府)가 세워 1869년까지 하코네에 소재했던 도카이도의 하코네 관소(箱根関所 하코네 세키쇼)를 가리킨다. 근래 하코네 세키쇼 복원 사업이 이루어져 2007년에 이곳 주변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온시 하코네 (恩賜箱根) 공원
공원으로 가는 길가에 가로수가 이채롭다. 양족 가로수가 길 중앙으로 비스듬히 숙이는데, 반 터널을 이룬다. 마치 살짝 중앙으로 기울어져 있는 가로수들이 관광객을 반겨 주는 모습이다. 가는 가지들이 라면처럼 말린 듯 보인다. 중앙으로 굽어 있다. 지금도 나무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진 – 가로수]
온시 하코네 공원은 아시노호 쪽으로 튀어나온 조그만 반도를 1886년에 공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온시공원의 이름이 내 메모장에 없다. 참가자들에게 카톡으로 SOS를 보냈더니 금방 답이 왔다. 카톡 명이 ‘자비미소’님이다. 이헤숙 선생님, 메모의 대가이시다. 은사(恩賜)공원 맞습니다. 일본식 발음은 ‘온시공원’이고요. 땡큐입니다.
[사진 – 자비미소님의 메모장]
기존 황실별장이 있었는데 큰 지진으로 2번이나 무너지고 2차 대전 후에 복원되어 현재 관광지가 된 곳이다. 복원 건물 2층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푸른빛의 호수와 그 위에 후지산 설봉(雪峰)이 선명하다. 경치 좋은 곳이니 황실 별장이었고, 시대가 변해 일반인이 들락거릴 수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계기는 자연의 조화(造化)였지만, 이 건물의 역사도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 변해 왔구나~
[사진 황실 휴양소]
하코네마치에서 하코네 세키소를 지나 황실휴양지를 지나고 약 2km에 걸친 삼나무 숲을 따라가면 다시 모토하코네가 나온다. 수백 년 넘게 자란 듯한 삼나무들이 오솔길을 내어주니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가끔씩 가보는 한재골(담양군과 장성군 경계에 있는) 편백나무 숲길이 연상된다. 한재골 숲길은 조성된 역사가 짧아서 그렇지 무성한 숲길이며 잘 조성된 맨땅 도로가 사시사철 남녀노소 모두 산책하기에 그지없이 좋다. 모두에게 강추^^한다.
[사진 – 편백나무 숲]
14:00 하코네에서 다시 도쿄 시내로 들어온다. 신주쿠(新宿) 거리 관광이다.
서쪽 신주쿠에 있는 도청사전망대를 구경한다. 도청사에 들어가 전망대에 오르기 위하여 줄을 선다. 대기 줄 맨 마지막에 섰을 때는 30분 이상 대기 예상이라고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실제로 10여 분 정도 기다렸으니 오늘은 붐비지 않았나 보다. 보안검열도 간략하고 친절하다. 재작년 여름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오르는데, 인산인해를 이루는 관광객도 그렇고 보안검색요원들의 과민한 동작 등이 미국여행 기억 중 안 좋은 경험 중 하나였다. 도쿄 도청(都廳) 청사건물의 외관이 의젓하다. 로비 곳곳에 장식된 예술품도 품위 있다.
[사진 – 로비의 예술작품]
공공건물은 예술적인 건물로 지어야 한다는 것이 30년 여행경력에서 나온 나의 지론이다. 우리가 못살던 시절에는 절약하고 내핍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지만, 어느 정도 여유 있다면 국가가 도시 미관과 문화 예술 보급에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다. 민간 회사는 공익보다 회사의 이윤추구가 생존 목적이니 자발적 기여를 기대할 수 없을 터, 그래서 국가나 공공기관이 예술적 명작에 투자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는 이윤을 추구하거나 회계 상 흑자를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라. 서양의 역사는 그리스 신전, 로마의 대경기장, 중세의 교회건물, 황궁 등이 당시에는 서민들의 피를 짰던 폭정의 산물이지만, 지금에는 문화재이자 관광객을 불러 후손을 먹여 살리는 보물이 아니던가? 동양의 사찰, 일본의 신사건물도 같은 유형이다. 한국의 고궁도 그런 면에서는 같다. 서양 유명도시의 시청사들이 관광코스 중 하나로 등장하고 있으며, 이제는 이웃 나라 도쿄의 시청마저도 관광 상품으로 역할을 하지 않는가?
[사진 – 도쿄시청사 내부]
동쪽 신주쿠(新宿). 번화가의 유동인구가 세계에서 제일 많다는 동쪽 신주쿠 지역으로 이동한다. 휘황찬란한 고층건물과 네온불빛, 들물 썰물이 섞여 부딪히는 듯하는 인파는 생동감 있다. 역시 신주쿠는 일본의 심장이다.
한 시간의 자유 시간에 우리 일행은 삼삼오오 시내구경 및 쇼핑을 한다. 따라만 다니는데 익숙한 나인데, 나를 따르는 우리 회원도 있다. 세상에~ 얼마나 힘들게 사셨을까? 가이드가 지적한 돈키호테라는 할인점 부근을 배회하고 더 이상 가지 못한다. 시내구경이 무서워서, 길 잃음이 무서워서, 무엇을 사야할지 헷갈림이 무서워서 -
돈키호테라는 체인점에서 사케(酒) 한 병과 사탕 한 봉지 구입으로 시내 관광 끝.
18:00 저녁식사. 쇠고기 사브사브 집이다. 맥주와 사케도 간단히 곁들이다. 종일 마음 편한 관광으로 저녁식사 분위기 좋다.
[사진 – 식당]
1.5. ◉ 제4일 2019. 1. 20. 일요일
07:00 호텔에서 마지막 아침식사를 한다. 오늘은 바쁜 일정이다. 오전에는 시내 관광, 점심때에는 합동 리셉션, 그리고 오후에는 귀국한다.
08:30 오전 시내관광 출발
전에 도쿄에 왔던 것은 변호사시절에 1990년대 중반 민족소송(民族訴訟) 지익표 변호사가 주도하고 젊은 변호사들이 동참하여 소송대리인단을 구성하여 1992. 8. 일본정부를 상대로 일제강점기 치하의 식민통치와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금과 사죄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3. 3. 이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재판으로 바쁜 일정 속에서 잠시 하꼬네만 구경했고, 2009년 법과대학장 시절에는 와세다(早稻田)대학과 게이오(慶應)대학에 방문했지만 학술발표와 로스쿨 준비를 위한 학교시설 견학에 바빴던 기억이 있고, 30년 전(1990년) 일본 문부성(文部省) 수양단(修養團) 초청을 받아 흥사단교류단의 일행으로 왔을 때에는 YMCA 호텔 (그 당시는 호텔이라기보다 유스호스텔 수준이었다. 지금은 어쩐지 가보지 않아 모름.)
의 비좁은 방에서 2인이 숙박한 기억이 있다. 아침에 호텔 앞에 [2·8 독립선언 2·8 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도쿄 유학생들이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발표한 독립선언이다.
기념비]가 조그맣지만 단정하게 서있는 것을 보고 젊은 심장이 요동친 기억이 있었다. 그곳이 1919. 2. 8. 도쿄 독립선언을 외친 역사적 장소였기 때문이다. 2. 8 도쿄 독립선언은 고국에서 3·1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금년 2월 8일은 [2. 8. 도쿄 독립선언]의 100주년이 되는 해이니 무척 의의가 큰 해이기도 하다.
[사진 – 2 8 독립선언 기념비]
◈ 아사쿠라 거리
어떻든 아사쿠사 거리는 처음 와 본다.
아사쿠사(천초淺草)는 도쿄의 옛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라고 소개된다. 가장 대표적인 명소인 센소지(淺草寺)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상점가인 나카미세 도리(仲見世通り)가 있다.
[사진 – 나카미세 거리]
아침 9시경, 이른 시각이라 한가하여 구경하기에는 편하다.
아사쿠사(淺草) 센소지(淺草寺)는 도쿄를 대표하는 가장 큰 사찰이고 간토(關東)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전설에 의하면, 628년 스미다가와(隅田川) 강변에서 어부 형제에 의해 우연히 건져 올려진 관세음보살상(觀音像)을 안치하기 위해 절을 건축했다고 한다. 그래서 절 이름을 아사쿠사 카논신사(淺草 觀音寺) 라고도 한다. 중세 이후 센소지는 바쿠후(幕府) 정권의 보호를 받아 번성하였고 일반 서민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불교 사찰이었다.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에 의해 본당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관동 대지진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 현재 본전인 관음당(觀音堂)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58년에 재건한 것이다. 센소지는 도쿄에서 역사적인 건물로는 거의 유일하고 센소지 앞에 나카미세 거리(仲見世通り)가 있어서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사진 – 센소지]
데미즈야(手水舍, てみずや)
큰 절 옆에 조그맣고 검소하게 보이는 집, 온통 검정색 판자 울타리에 판자 대문이다. 밀어여는 대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본다. 꽤 큰 비석에 지장보살 운운 써진 것으로 보아 지장보살을 모신 조그만 절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곳에서 범했던 실례를 교육용(^^)으로 공개한다.
울타리 옆 약수가 흐르는 물받이에서 소동이다. 한국 절에 가면 어느 곳에나 마실 수 있는 약수 물로 알고서 물받이 국자에 물을 떠 마시는데, 법당이 있는 안쪽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고함을 지르면서 무서운 기색으로 달려온다. 버럭 화를 내니 무슨 말인지 몰라도, 우아~ 무섭다.
설명을 듣고 보니, 이곳은 마시는 약수가 아니라 손에 물을 뿌려 가면서 씻은 후 왼손 바닥을 오므려 물을 받아서 입으로 가져가 행구는 의식을 하는 곳이란다. 성스런 곳에서 무지한 노인이 물받이 국자에 입을 대고 용감하게 물을 마신 것이다. 더 큰 죄는 공짜로!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아주머니 꾸중을 듣고서야 이곳 의식을 배웠으니, 꾸중은 수업료였나 보다.
나중 자료에서 보니, 일본의 신사나 사찰에서 참배자가 손을 닦거나 입을 가시기 위해서 물을 받아두는 건물을 ‘데미즈야(手水舍)’라고 한다. 한국의 사찰에 있는 약수터와 비슷하지만 이곳은 약수터가 아니기 때문에 물을 마시면 안 되는 곳이란다. 오늘 수업료(꾸중) 덕에 학습한 예절교육이다.
배워라 모르면 배워야 한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맞춰 그것을 익힌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공자(孔子) 말씀]
[사진 – 데미즈야]
아사쿠사 거리는 서울 인사동 거리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아침 9시가 넘어야 상가 문을 연다. 우리 일행은 끼리끼리 이곳저곳으로 흘러흘러 구경도 하고, 주변에 있는 할인점 돈키호테에서 쇼핑도 한다. 오찬 리셉션 행사로 오전 관광은 10시 40분까지 시간을 준다.
[사진 – 거리]
오전 관광 종료 20여분이 남았는데, 마침 커리캐쳐 그려주는 가게[상호 caricature Japan]가 보인다. 10분 안에 그려준다는 문구에 현혹되어 가게 안 진열장에 보니 제법 볼만하다. 벙글벙글 웃어대는 화가 아가씨가 20여 분만에 완성한 그림을 보여준다. 고생하여 그렸는데, 막상 그림을 보니 내 얼굴이 아니라 여성작가 본인을 그려놓은 듯하다. ㅎㅎㅎ~ 초상화는 액자 포함하여 4,000엔이다.
[사진 – 커리커쳐]
◈ 리셉션 행사
11:00. 한일음악교류 20주년 행사 리셉션(reception).
숙소인 렁우드 호텔 연회장에서 5개 합창단 전원과 주최 측 인사들이 참가하다.
주최 측 대표인 변호가의 인사말, 총연출가 고바야시(小林 光) 선생의 인사말, 참가단체 단장들의 인사말이 계속된다.
고바야시(小林 光) 선생은 1962년 일본 우타고에(うたごえ 노래소리)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1978년 세계청년학생평화우호제(큐바)에 우타고에 대표로 참가하였다. 1998년에는 제50주년 기념 일본 우타고에 제전(祭典) 기획위원장으로써 한일 음악교류를 실현하였다. 현재 직장합창단, 지역합창단, 장해자합창단 등의 합창지휘자로 활동하고 계신다(음악회 팜플릿 참조)
[사진 – 고바야시 선생]
우리 합창단 양송이 단장이 그 이름처럼 예쁘게 인사말을 마친다.
참가단체별 합창에서 우리 팀은 지휘자가 어제 먼저 귀국하였기에 이미정 선생이 임시로 지휘한다. 평소에 연습했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를 멋지게 불러댔다. “이미정 섐, 오늘 밥값 했슴다!!!”
[사진 – 합창]
초청가수 서울의 손병휘, 광주출신 김원중의 노래가 이어지고 실내에는 떠내려 갈 듯 열기가 더해진다.
[사진 – 김원중 가수]
5·18 어머니회에서 온 000 씨 모녀의 증언에는 모두의 가슴에 찡한 반향이 울린다.
그 딸은 어제 한복으로 춤사위를 보여준 여자이다. 태어나 5·18 때 부상을 당한 아버지를 보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듣는 이들이 눈시울을 적신다. 이야기를 통역하는 여선생은 목이 메여 통역하면서도 눈물을 훌쩍인다.
통역선생님이 광주출신이라고 써진 홍보물을 보고 잠시 말을 붙여본다. 전남대 일어교육과 출신이란다. 어쩐지 명문교 출신답더니~, 통역에 알알이 감정이 묻혀 나온다.
[사진 – 통역]
5·18.
광주에 사는 우리는 5·18의 짐을 지고서 살고 있다. 당시 변두리 절간에서 시험공부를 하면서 5·18 현장을 경험한 나로서는 그 때의 현상(現象)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5·18은 무엇인가? 광주에 한정하든, 대한민국 전체에서 차지하는 5·18이든. 발생한지 40년 세월 동안 당파적 입장에 따라서 아직도 역사적 가치평가가 우왕좌왕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과 투쟁을 나는 사실(事實)을 겪고 보아서 안다. 대학재학 중에는 1973년 서슬 퍼런 계엄령 하에서 호남지방에서 최초로 시국에 항의하는 시위주도 행위로 수배되고 경찰 정보과에서 일주일가량 조사를 받은 전과(?)가 있어서 내 살아온 과정에서 아픈 역사이다. 그때 나로서는 흥사단아카데미에 흠뻑 빠져있던 때이고, 그 사건으로 동료와 후배 대학생들 여러 명이 고초(지금 생각하면 추억)를 겪었다.
이점관, 조병욱 군을 비롯한 당시 법과대학 동료들, 광주 흥사단 총무를 하던 정철식 군과 이동훈, 김상기 군 외에도 여러 회원들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동료들의 자필조서를 나에게 들이대며 추궁했던 그 형사님 지금도 광주에 살아계시는지 궁금하다.
당시 열렬하게 정부를 비판하던 동아일보에 [ 요즘은 ‘조·중·동’이라고 하여 보수언론의 대표격이 되었지만, 동아일보는 자유당정권, 공화당정권 때까지 군부독재에 강력히 대항하는 대표적 정론지였다. 유신정권 이후 탄압 등을 이기지 못하고 민주언론기자들을 해직시키면서 정론지로서의 깃발이 희미해졌다고 평가된다.] 수배기사가 실리자 흥사단 본부의 어르신들이 박준 선생님에게 걱정해 오셨다는 이야기는 경찰서에서 풀려난 이후에 들을 수 있었다.
[사진 – 동아일보 당시 기사]
지금도 지구촌 여러 곳에서 내전(內戰)이 일어나고 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네편 내편에 의한 투쟁(鬪爭)이다. 중동 지방의 이슬람국가,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들, 엊그제 국제뉴스에 의하면 남미의 베네수엘라에는 대통령이 2명이 나오는 내분 직전까지 보이고 있다. 국가지도자는 국가와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읍소(泣訴)하지만, 하나 같이 국민의 삶이 어렵다. 왜들 그럴까?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원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는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작가의 경험을 기초한 소설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소설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명작이지만 접근이 쉽지 않다. 대학시절 건성으로 읽다가 마무리도 못했다. 오히려 1943년에 제작된 헐리우드 영화가 훨씬 접근성이 있고 유명하다. 당대 최고의 배우 게리 쿠퍼,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하여 명성을 드높인 작품이다. ] 자유의 위기와 인간에게 참된 가치란 무엇인가를 일깨워 준다. 독재항거나 내전 [전쟁과 내전이 전혀 다른 성격의 투쟁이므로 별론 하고, 나아가 독재항거와 내전도 전혀 다른 권리에 대한 투쟁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란 점에서는 동일한 성격도 있다.] 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비록 광주의 5·18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 각지에서 자유와 생존을 위해 부르짖다가 죽거나 다치거나 난민(難民)이 되는 슬픔이 지금 오늘도 진행형이다. 아 어찌할꼬!
광주에서도 오늘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도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
“ - ♬♪♫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에 따르라 ~♬”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곳 행사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은 18일 정기행사에서도, 오늘 리셉션에서도 역시 감동 깊게 합창한다.
[사진 – 리셉션에서 우리 모두 손잡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권력욕·소유욕에서 나온 원죄가 아닐는지?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하신 법정(法頂)스님이라도 계신다면 [스님은 2010. 3. 1. 세상의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빈손으로 가셨다.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 가면 지금도 스님이 방안에서 참선이라도 하고 계신양 처마 밑 섬돌에는 스님의 흰 고무신 한 컬레가 놓여있다.]
졸라 물어 볼텐데-
◈ 귀국
리셉션 행사 이후 15시도 못되어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다. 대개 패키지 여행에서 가이드는 충분한 여유라는 빌미로 제빨리 공항에 밀어 넣는다. 만일(萬一)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함이지만 9,999번 우리는 가이드를 원망한다.
시간이 너무 많아 지루하다. 여행 준비와 진행에 가장 애쓴 정규만 감사님(행사 준비까지 총무)은 카드놀이를 레슨해가며 불편한 몸과 무료한 시간을 달랜다.
나도 무료한 시간에 오늘 일기를 대충 메모한다. 휴대용 테블릿 pc지만 책상이 없으면 타이핑이 어렵다. 전화기 충전용 가판(架板)대에 기대어 시간을 때워본다.
[사진 – 공항의 지루함]
18:30 나리타 공항 출발. JL 969.
부산상공에 도착하니 부산의 야경이 근사하다. 하늘에서 내려 보는 해운대 · 광안리 지역의 야경은 퍽이나 아름답다.
[사진 – 하늘에서 내려 본 부산의 야경]
21:20 부산 김해공항 도착. 아~ 한국에 도착쿠시마스네 ^^
부산공항에서 여행을 출발하고 도착하기는 이번 여행이 처음이다. 지방 공항이지만 꽤 규모가 크다. 짐을 찾는 화물 트랙도 여러 곳이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전세버스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일본에서 느꼈던 공기의 청량감이 이곳에는 없음을 금방 느낄 수 있다.
광주 도착
새벽 1시에 출발지인 비엔날레 주차장에 도착한다. 새벽 1시에, 시간상으로는 3박4일의 여행이 아닌 3박 5일 일정이 되어버렸다. 피곤하지만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진다.
여행준비를 해준 신·구 회장, 총무 등 임원진 여러분, 인솔자 역할을 해주신 박효분 사장님, 사진촬영으로 봉사해 준 최원희 선생님, 현지 통역사 역할을 해주신 정용민 선생님과 이름을 거론하지 못한 우리 단원님 여러분 모두의 덕분에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품격 있는 지휘자 고서연 박사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자 김보은 선생님. 두 분이 계셨기에 우리 기러기합창단이 자랑스럽게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두 분이 자랑스럽습니다. 땡큐입니다
.
3일 밤 내내 천둥 벼락 소리의 소음을 견디면서 한 방을 같이 써주신 정규만 총무님께 죄송스런 말씀을 드리면서, 그 인내심이 존경스럽다는 말씀도 덧붙입니다.^^
1.6. 여적(餘滴) 여록(餘錄) : 카톡으로 보내 주신 여행후기.
양송이 단장 :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일본여행, 공연 머무른 동안 일본인들의 배려의모습들을 느끼게 되었어요. 3박4일을 지내고 돌아오는 길은 가족된 친근함으로 함께했던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고서현 전 단장 :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하는데, 흥사단기러기합창단은 노래를 남겼음 합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세계만방에 울려퍼질 그날까지 쉼 없이 달려가길 소망합니다.
김용현 : 노래를 하면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함께 여행을 하면 우리는 친구가 됩니다.
노래와 여행을 같이 하면 우리는 하나같은 친구가 되겠죠?
즐겁고 보람있는 시간들 함께하여 행복합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앞장 서서 고생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3박4일 수고하신 우리자신에게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 짝짝짝
최원희 : “몸은 지쳐있지만 마음은 뿌듯함으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준비부터 마지막까지 고생한 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광주의 아품을 이겨 냈듯 세계의 아픔도 돌아보며 함께 하는 기러기합창단원이 된 것을 큰 기쁨으로 한 주간을 시작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몸도 마음도 늙어버린 울 엄마는 전화기 넘어 엉엉 울음을 터뜨립니다. 보고 싶다고~
일본 출발 당일 아침에 뵙고 왔는데 그 새 잊어버리고 매일 종일토록 전화를 하더니~
매일 울었다고 합니다. 가슴이 아려 옵니다. 빨리 고구마 쩌서 가야겠어요. 개학 할 때까지 몸도 맘도 건강하시길 “
[여행 내내 여린 몸으로 무거운 수동식 사진기 메고서 사진기록을 남기신 최원희 선생님, 동료사랑 뿐만 아니라 어머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 감동스럽네요.]
김형각 : 함께하신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하나된 합창단의 미래를 본 것 같습니다. 물 건너온 그 울림이 온 마음을 다 잡고 있는 날 ~ 일상 속에 젖어든 오늘이 왜 이리도 시리고 아픈지요. 보성 회천의 바닷가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 --- 2019년 연습시작되는 그날을 우리 함께 기다려요.
김왕기 : 우리 합창단이 한번도 워크숍 등을 갖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 3박 4일 여정에서 친목과 화합을 이루게 되어 매우 뿌듯하였습니다.
광주 MBC 초청 인터뷰에 양송이 단장님과 방극례 이사님이 출연했다. 10분 이상 진행된 방송진행에서 이번 음악공연 행사 의미와 기러기합창단에 대한 훌륭한 소개의 장이 되었다. 미모와 지성미까지 갖춘 양 단장님의 출중한 말솜씨, 애교뿐 아니라 지성까지 갖춘 방글이 이사님의 출연이 방송프로의 위상을 올려놓았다. 수고하셨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사진 – MBC 방송 출연]
이혜숙 : ‘우리 하나 되어’라는 주제로 이틀간 4차례나 개최된 공연임에도 연일 가득 찬 관객과 열렬한 환호에 남북 간의 평화와 동아시아 평화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양심적 시민이 적지 않다는 데 희망을 갖게 되었다. 특히 ‘일어서라 합창단’의 20년간 자비로 광주 5.18 행사에 참여하였다는 데 놀라고 감사했다. --- 큰 의미를 갖는 이번 행사에 우리 기러기합창단이 함께 함으로써 나 역시 평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는 자긍심을 갖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기러기는 흥사단의 상징입니다. 흥사단(興士團)의 사(士)는 기러기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기러기 그림을 미술품경매 사이트에서 낙찰받고 기쁨에 낙찰후기를 그 사이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황영준(월북화가, 공훈예술가), 기러기,
종이에 채색, 1984년 작
약8호(29.3cm x 49.7cm)
[낙찰후기] 기러기
북한에서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은 화봉 황영준 선생의 유작 [기러기]를 낙찰 받았습니다. 약 8호 크기의 소품이지만 격조 높은 기러기의 품격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화려하지 않고 은은한 분위기가 더욱 마음에 와 닫습니다.
기러기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의 상징입니다. 기러기는 민족의 이상·질서·단결·리더십·청결을 뜻합니다. 흥사단(興士團)의 사(士)는 기러기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금년(2018년)은 도산 선생 탄신 140 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러한 기회에 명화가의 유작 [기러기]를 소장하게 되어 너무 흡족합니다. 이 그림은 제가 잠시 보관하다가 어느 날엔가 흥사단에 기증하고자 합니다.
2018. 10. 19. 요산요수.
1.7. 사진 앨범
20 장 정도 예상
첫댓글 원문에는 참고사항을 각주로 달았는데, 이곳은 각주를 읽지 못하고 본문으로 연결되버리네요. 그래서 문장이 끊기거나 연결이 안되는 곳이 몇 곳 있슴니다.
글이 거의 완성됬습니다.
여기에 사진을 추가하기 전, 회원님들이 보시고 불편한 표현이나 미흡한 부분 지적해 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2-3일 내로 연락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여행을 처음부터 또한번 교수님덕분에 했습니다ㆍ개인적으로 보지못했던부분도 많았음을 고백합니다ㆍ교수님의 완벽한 메모와 훌륭하신 문장력으로 다시보니 더없이 의미있고 멋진 여행이였습니다ㆍ우리 지휘자님 성함은 고수연샘이십니당 ㆍ정말 잘 보았습니다ᆢ
멋쟁이 이철환 교수님,
역시 최고 최고라는말 밖에 딱히 떠올리지 않습니다~~^^
내일까지 참을 수 없어 들어와서 읽어 보았는데,
엄청납니다~대박!!~^^!!!♡♡♡
깊이 감사드리고 존경합니다~~^^
일본을 향해 3박4일의 초청 여행을 가기위해 비엔날레 주차장을 출발하여 다시 비엔날레 주차장까지의 우리의 여정이 눈앞에 그대로 그려지는듯 선명합니다.
긴 장문의 다큐멘트가 읽어보는 내내 지금도 나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곳을 지나가는듯 합니다.
멋찐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존경하고 더나아가 따랑 합니다~~
따따봉!!!
교수님 다시 여행을 하는 느낌입니다.
읽는 중에 이런곳도 있었네 라며 꼼꼼히 챙겨보지 보지 못하고 지나친 곳을 아쉬워 해 봅니다.
혹. 공항이전반대--공항 이전 반대 가 아닐런지요
이헤숙이 아니고 이혜숙
2.8독립선언은~ 발표한 독립선언이다. 대괄호가 잘못 표기된 듯 합니다
그리고 산자에-- 산자여
마지막으로 제가 쓴 글 중 몸도 마음도 늙어버린을 몸도 마음도 늙어 어린애가 되어버린으로 교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사소한것도 사소히 여기지 않고 이렇게 자세하게 엮어 주시니 우리합창단이 더욱 환하게 빛납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이철환교수님(조카님)~
참으로 대단 하십니다요~
이런 훌륭한 교수님을 가진
우리 흥사단과 기러기합창단이 자랑스럽습니다.
글을 읽으니 일본에서 느꼈던 감동이
다시 한번 되살아나 가슴이 벅차옵니다♡♡♡
대천사님
교정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부분, '몸도 마음도 ~' 부분은 카톡 [일본여행] 부분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가능하시다면,
다시 한번 보내주시면 어떨까요?
(지난번 보내주신 메일은 너무 길어서 제가 중간 발췌하다 이런 사고가 터진 듯 ^^)
교수님!
책 한권 분량이네요
와우~~
대단 하십니다
저희들의 흔적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그려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울 합창단엔 이렇게 일당백을 해 내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일취월장 하나 봅니다.
흔적이 아닌 기록과 여정으로 만들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고대합니다.앨범을ᆢ
교수님 이런 편집과 기록이 매우 어려운 작업인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기러기합창단의 발전된 모습이며, 후배 단원들이 그 마음을 잘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글을 읽다보니 일본공연을 떠나면서부터 부산 도착까지 너무 생생하고 자상하게 설명까지 맛깔나게 곁들여 잘 읽었습니다
너무 수고하셨고 우리 기러기 합창단의 보배이십니다 노고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바로위 1.6여적.여록에 있어요
최원희 글
이글은 다녀와서 아침인사처럼 올린 글인데요
^^아침 일찍부터 몸도 마음도 늙어버린 엄마에게서^^를 ^아침 일찍부터 몸도 마음도 늙어 아이가 돼 버린 엄마에게서^로 교정 해 주십사 해서요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귀국
가이드는 충분한 여유라는 빌미로^ 제빨리^
--^재빨리^ 가 맞는것 같읍니다
광주도착
품격있는 ^고서연^ 지휘자--^고수연^지휘자로
오찬중 지휘한 이미정 ^섐^-- 오늘 밥값했슴다
이미정^샘^ 정감있게 쓰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회원님들의 정겹고 상세한 댓글 감사합니다.
이제 여행일지는 그만 접고 다른 화제를 찾기로 합니다.
특별히 곤란한 표현 아니면 댓글 사양입니다.
더 다른 발전을 위해서 ~
다른분께서 칭찬일색이신데 저도 동감이고요
제가 읽은내용중 수정부분을 선생님과통화해서 보안했으면합니다 연락주시길~
교육, 회의, 총회 등 자유롭지 못한 일정의 연속으로 이제사 확인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공항에서 대기 중 일이었지요.
통화를 저리 오래하시니. . . 혹 무슨 일이 있으신걸까? 조심스레 다가가 보니
테블릿 PC로 무언가 입력하고 계시는 교수님 확인, 일단 안심하고~
연세답지 않게 신문물을 세련되게 다루시는 모습이 넘 멋져 몰카 찍으러 살금살금 다가가다 딱 걸려버렸지요. ㅎ
쪽 시간을 활용하여 여행 일기를 메모하고 계셨으니. . .
부지런 하신 덕분에 이리 생생한 기행문이 만들어졌나봅니다.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한해를 다 보내고 답글을 하게 됩니다.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고 지났습니다.
죄송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지난시간들을 느끼며
되내여 봅니다.
그리워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