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여유 있을때 마다 각 원정기및 원정 사진을 올려 보려하지만 역시 고되고 힘든 작업이다. 2002년을 포함해 그 전 원정은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기 때문에 올리기가 어렵고 해서 일단 자료가 정리되는대로 기록으로 남겨본다.
사진이 많지 못합니다.
이때만 해도 필름 카메라를 쓸때인데 날씨도 안좋고 해서...
원정후기는 대원들과 제가 작성한 기록들입니다.
사진 몇장은 인도산악협회에 보고용으로 만든것을 첨부합니다.
이것은 인도산악협회에 보고한 영문 보고서및 사진 입니다.
[브리그판스 (7,772m)전경 이곳에서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베이스캠프 -- 2006년 탈레이&죠긴 원정때 전진베이스캠프[ABC]역활을 수행한 곳이다. 이때의 등반이 2006는 탈레이&죠긴 원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각 캠프지에서 쓰레기를 수거하였다. 우리나라제 쓰레기가 많이 나왔는데 10여차례의 탈레이샤가르 원정에 소모되었던 것이다.
물론 전 세계 각국의 쓰레기도 많이 나왔다. 우리 팀은 각 캠프지의 쓰레기를 베이스로 수송 태울 수 있는 쓰레기는 소각하고 소각하고 남은 재와 타지 않는 캔과 병등 쓰레기를 완벽히 처리하여 두 카고분의 쓰레기를 인도산악협회에 반납했다. 이에 인도산악협회는 상당히 놀라워하고 우리 팀에게 경의를 표했던 기억이 남는다. 자연을 보호하는 산악인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행위이지만 이런 고산 원정에서는 십지만은 않은 행동이다. 등반 후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쓰레기 수거는 힘든고 위험한 작업일뿐 아니라 그것을 운송하는데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일단 베이스까지는 대원들이 수거해 태울수 있는 것은 태우고해서 정리해 포장하면 포터를 이용해 산 아래까지 수송해야 하고 다시 차량으로 또 수송하는 번거로움과 경비가 생각보다 많이 소요된다.
이 사진은 C1 ~ C2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고종열 대원] 빙하 저 아래 캠프가 있는데 날씨때문에 보이질 않는다.4 ~ 5백미터 고정 로프가 소요될 꺼라 예상했는데 이 보다 훨씬 많은 로프가 소모되었다.
이 원정은 주방의 쿡과 헬파 이외의 고용인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장비와 식량을 대원들이 수송했다.
빙하 저아래 빨간색 텐트1동과 녹색 텐트 한동이 보인다. 앞쪽 대원이 고용준대원,뒷쪽이 고종열 대원이다.
사진에서 보면 좌측이 탈레이 샤가르쪽 벽이다.
캠프2를 떠나면 바로 바위 지대를 통과하여야 하는데 낙석이 심해 상당히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이곳에서 고용준 대원이 낙석에 대퇴부를 맞아 베이스로 하산 원정이 마무리 될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정상 직전의 바위지대[구은수 등반대장] 바위 상태가 좋은 지점을 골라 장비를 설치해야 한다.
정상에서 태국기를 들고 촬영중인 김관철 대원 - 정상에 들어가는 날 또한 좋지 못한 일기임에도 불구하고 ~ 대원들의 정신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날 정상에 선후 그 다음 날 바로 하산 하였다. 예정 된 스케즐에의해 원정대는 움직이기에 ++++ 대원들이 정상에 선 시각에 이미 베이스 캠프에는 포터들이 짐을 수송하기 위해 마을에서 올라와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The Ice Axe Will Remember Us.
2002년 브리그판스 원정기 - 서 우석 -
2002/7/28
수유리 원정대 사무실에서 모든 짐을 정리하고 대원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인천공항으로 여러 대의 차에 분승 공항에 집결하여 먼저 개인 카고를 화물로 보내고 서울특별시 산악연맹 강태선 회장님과 여러 대원들의 배웅과 기념 촬영 후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동안 이번 원정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여러 선, 후배님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마음 썩힌 모든 것을 뒤로 접어두고 오직 이번 원정을 아무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이젠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면세점에 들러 약간의 술과 담배를 구입하니 탑승이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나올 때 못 뵌 아버님께 전화를 드려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드리고 비행기에 오르니 좌석이 만석이다. 오후7시40분 비행기가 8시가 되어서야 이륙한다. 대원들이 시장기가 도는가 보다. 빨리 저녁 식사가 나왔으면 좋으련만 .....
피로한 몸으로 약 7시간의 비행 끝에 인도의 인디라간디 국제공항에 도착 짐을 찾고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니 폭염이 장난이 아니다. 현지시간 오전02시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공항은 매우 분주하다. 북적거리는 공항에서 미리 예약한 전세버스에 짐과 함께 몸을 싣고 인도등산협회에 도착 여장을 푼다.
긴 비행시간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도착함에 안도의 한 숨이 나온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세면을 한 후 피로한 몸의 숙면을 위하여 한 잔의 위스키로 잠을 청하나 쉽게 잠들지 못한다.
우리가 이용한 기숙사는 지하에 있는 방보다 1인당 100Rs가 더 비싼 350Rs의 방으로 룸에 한국산 금성소형에어콘 2대가 설치되어 혹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고 특히 단체가 10명 내외의 인원일 경우 대원 모두가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2002/7/29
피곤한 몸을 느즈막이 일으켜 세면을 한 후 인도등산협회<IMF>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식사를 한 후 대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하여 일부 대원들은 시장으로 남은 대원들은 짐 정리로 모두 분주하게 움직인다.
IMF 디렉터와 미팅을 하고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건네고 늦은 입산신청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제들이 원만하게 해결된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세관에 보낼 편지를 부탁함으로써 미팅을 마무리한다.
이곳 델리에서는 한 낮에 샤워를 하면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온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래도 샤워를 하고 에어컨 바람을 쐬면 더위가 싹 가신다.
오후가 되어 시장에 같던 대원들이 시장 조사를 마치고 약간의 과일과 식료품 그리고 식기를 매입해 들어와 저녁은 직접 이곳 주방을 이용해 지어먹는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간장게장 덕분에 푸짐한 저녁이 되었다.
내일은 현지 매입 식량과 식기 등을 매입하고 일부대원은 세관으로 보내 먼저 보낸 짐을 찾기 위한 서류작업 및 현지대행사를 선정 물건 찾는 일이 시작된다.
대원 개개인에게 업무를 분담하고 자유시간을 준다.
2002/7/30
아침 조식은 항상 그랬듯이 IMF에서 제공하는 밀크 차와 토스트 그리고 계란 후라이와 쨈으로 껄끄러운 식사로 시작한다.
이곳의 거의 모든 상점과 관공서는 오전10시에 업무가 시작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추어 업무를 진행한다.
오늘은 나와 최성오 대원이 공항 세관에 들어가고 다른 대원들은 인도 INA시장으로 물건을 구입하러 나간다. 우리 통역 및 가이드로 인도 현지인인 핀투(한국명 김소월)와 세관통관 에이젠트와 공항 세관에서 멍청하다고 생각들 정도로 오전 오후를 다 보내고 IMF에 들어오니 시장에 나갔던 대원들도 숙소로 복귀를 시작한다. 저녁을 먹고 다시 한 번 대원들이 구입하여 온 물품을 체크리스트와 대조 확인하고 부족한 것이나 더 구입하여야 할 물품을 더 구입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2002/7/31
항상 똑같은 아침이다.
박주훈,김관철 대원을 공항세관으로 핀투 딸려 보낸다. 오늘은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다른 대원들은 각자 자유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오후에 우리 팀의 정부 연락관인 바라트가 숙소에 도착했다. 작은 키의 소유자인 정부연락관은 연방 웃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스타일의 소유자로 꼭 옛날 무성영화 시절의 그 유명한 코미디 배우인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킨다.
그는 우리가 갈 강고트리 산군의 등산 시점인 우타르카쉬 출신이며 자기 집 또한 그곳에 위치해 있으며 그곳 국립등산학교인 NIM의 강사이기도 하다.
오후에 그곳에서 포터 대행사를 운영한다는 사람과 대화가 잘되 간단한 가계약으로 일이 잘 처리되었다. 아주 저렴하고 우리 원정대 입장에서는 유리한 계약조건이었다
계약의 내용은 포터 1일 120Rs/쿡1일300Rs/헬파1일200Rs/에이전트 커미션8%등...
에이전트 그 친구는 준비한다고 급히 우타르카쉬로 돌아가고.....
오후에 세관에 같던 두 대원이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내일은 통관되리라는 핀투의 말로 위안을 삼는다.
2002/8/1
시계바늘 돌 듯 똑같은 아침이다. 똑 같은 식사와 무더위 ...
오전에 박주훈, 김관철 두 대원을 핀투를 딸려 공항세관으로 다시 보내고 INA 시장에 주문한 야채를 확인한다. 점심 식사후 IMF 측과 브리핑 일정을 잡아 브리핑을 시작하여 입산료 USD2,000$ 과 환경분담금 USD400$ 정부연락관 장비비 USD500$ 지급하고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약간의 주의사항과 행운을 빈다는 소리와 함께 브리핑을 마무리하고 IMF에서 판매하는 우편엽서 100통을 구입하여 그 동안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고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주신 분들에게 엽서를 써 모든 대원들의 서명을 받아 정리한다.
이로서 IMF 측과의 모든 행정 절차는 마무리되었다. 물품통관이 문제를 계속 일으키는 모양이다. 다시 두 대원이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2002/8/2
아침은 어제와 같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 출발을 예상 개인 짐을 모두 정리 꾸리게 하고 어제 공항세관에 나갔던 두 대원을 다시 공항세관에 보내고 현지에서 구입한 야채도 신문지로 포장한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물품 통관은 안되고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점심을 국내에서 준비한 라면으로 식사를 하니 벌써 오후다. 공항세관에서는 천만다행으로 짐을 싣고 IMF로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다. 별도의 짐을 실을 트럭을 준비하지 않고 버스를 큰 버스로 바꿔 한번에 출발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출발하니 오후5시이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델리 시내는 벌써 러시아워를 이뤄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델리를 벗어나 한가로운 길을 좀 달리니 우리가 거쳐 가야하는 리쉬캐쉬 방향은 힌두교의 무슨 축제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반대에서 진행하는 차선을 모두 통제하고 한 차선 만을 이용하니 마음과는 달리 더디기가 한없다.
저녁 식사를 도로변 인도식 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리쉬캐쉬를 향해 하염없이 달린다. 그러나 리쉬캐쉬를 관통하는 메인 도로는 차량을 통행시키지 않아 우회도로를 끝없이 달려야 했다. 날씨는 비가 내리고 그치질 않는다.
2002/8/3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눈을 뜨니 새벽4시이다. 그래도 버스는 쉬지 않고 계속 달린다. 우리 버스의 운전 기사는 나이가 많은 분인데 시크 족 특유의 터반이 잘 어울리는 체력이 대단한 노인이다.
아침겸 점심으로 산길 옆에 있는 식당에 정차하여 인도식 식사인 달과 짜파티로 식사를 해결하고 우타르카쉬 방향으로 위태하기 그지없는 산길을 잘도 달린다. 부슬거리는 비는 그치질 않고 이젠 버스 지붕이 새어 빈약하기 그지없는 신세가 처량하기만 하나 그래도 산으로 간다는 설레임에 모든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오후 4시 드디어 학수 고대 하던 우타르카쉬에 도착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롯지에 여장을 풀고 신선한 야채를 구매하고 오랜만에 풍성한 식사로 저녁을 먹는다. 대원들의 흐뭇한 미소가 계속 입가에 지우고 그래도 입에 맞는 음식을 배불리 먹이니 나 또한 즐겁다. 식사이후 이곳에 위치해 있는 포터 에이전트가 찾아와 델리IMF에서 맺은 가계약 서를 정식 계약서로 체결하고 내일 강고트리로 출발을 기약하며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버스에서 밤새 시달려서 그런지 몹시 피곤하나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2002/8/4
롯지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강고트리를 향해 출발이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고 운전기사와 대원들의 피로 도를 고려하여 느긋하게 10시쯤에 출발한다. 이곳 우타르카쉬에서부터 강고트리는 도로가 아주 험한 편이어서 속도를 낼 수 없고 마주 오는 차량이 있을 적마다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는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도로 옆의 계곡은 아찔하기만 한데 우리 기사 아저씨는 콧노래를 부르고 즐거워한다. 도로 옆 롯지에서 점심 식사로 짜파티와 달 그리고 인도 차이로 해결하고 계속 올라가니 강고트리이다. 이곳은 해발 3000M가 넘는 고지대이다. 강고트리에 도착 서둘러 호텔 기숙사를 잡고 포터를 이용해 짐을 수송하고 짐을 재 포장하고 나와 선배들은 김치를 담근다고 야단이다. 배추를 바로 쪼개 소금에 절이고 옆에는 고용인들이 딸랑무와 마늘 생강들을 다듬어 놓는다. 김치에 버무릴 양념을 만드니 손이 절이절이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김치를 씻자마자 바로 양념과 버무려 드럼통에 비닐을 덮어 바로 포장한다.
이곳은 성지여서 순례자들이 많은데 모두 나와 처음 보는 광경을 구경하고 일부에게 맛을 보여주니 맛있다고들 한다. 저녁은 야채 볶은밥 과 겉절이 김치로 훌륭한 식탁이 준비되고 내일부터 시작될 도보 카라반에 대비 여러 가지 주문 사항을 대원들에게 지시하고 약간의 술로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한다.
2002/8/5
아침 일찍 기상해 세면을 하고 밤새 짐이 안전한가를 체크하니 대원들의 기상이 시작되고 있다.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개인짐의 정리를 지시한 후 호텔 앞의 전화 부수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고 있으니 포터들이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한다. 짐의 양은 총52개로 호텔 마당에 내와 먼저 올라갈 짐과 개인짐을 분리 포터의 이름을 확인하고 옆에 짐 번호를 적어 넣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포터들의 얼굴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짐을 배분하니 먼저 짐을배분받은 포터는 벌써 상행 카라반을 시작한다. 구은수 등반대장과 고용준 대원이 캉첸중가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되기에 고소 적응을 고려해 선발대로 먼저 출발시키고 일정한 간격과 시간을 두고 나와 최성오 대원이 출발한다. 그리고 우리 뒤를 고종열/김관철 두 대원이 따르고 마지막으로 김남일구조대대장과 조중호선배 박주훈대원/통역관인 핀투 그리고 우리 고용인인 쿡과 헬파가 출발한다는 무전 연락이다.
상행 카라반은 좁은 협곡을 끼고 나무 군락지가 있는 곳으로 서울 북한산의 한 자락을 걷는 기분이 들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다. 다만 저 밑의 계곡은 빙하 특유의 황토색 빛깔의 물이 거침없이 굉음을 동반 아래로 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오르막의 각도는 대단한 각을 이루고 있으며 낙석도 주의하여야 하는 구간이 드문드문 이어져 있다. 숲 지대를 통과하여 작은 풀들과 야생화를 주위에 두루는 보즈카락은 현지인과 트레커들의 비상 대피소로 양철 지붕을 이용 엉성하게 만든 곳으로 상행 방향으로 나무 군락지가 저 멀리 보이는 곳이다. 이곳 보즈카락을 지나니 주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체온을 빼앗겨 재킷을 입고 천천히 고도를 올리니 뒤에 오던 김관철/고종열 대원이 우릴 추월하고 얼마 안 있어 마지막으로 출발한 대원들과 함께 올라가다 결국은 조중호 선배와 최성오대원 나 이렇게 셋이서 어디가 끝일지 모르는 캐다르카락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에서는 사태지역 구간을 약 2Km정도 운행해야 함으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곳을 지나는 포터들도 절대 중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겨우겨우 캐다르카락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대원들과 포터들이 원정대원 천막2동과 식당텐트1동 포터들이 이용할 천막1동을 설치하여 저녁준비에 여념이 없다. 캐다르카락에 도착하니 머리가 무거운게 고소가 오나 보다. 저녁으로 된장국만 먹고 텐트에 들어와 누우니 곧이어 최성오 대원도 상태가 안 좋은지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두통 약을 복용하고 두통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2002/8/6
아침에 기상하니 머리가 무거운게 아직 고소가 안 풀리나 보다. B.C로 카라반 할 대원들과 포터들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아침 식사후 나와 최성오 대원 그리고 어제까지 멀쩡하던 고종열 대원 이렇게 셋이 이곳 캐다르카락에서 고소적응을 한 후 올라가기로 하고 대원들을 마중한다. 대원들이 출발 후 다시 텐트로 돌아와 다시 자리를 깔고 눕는다. 무슨 날씨가 계속 이렇게 지루하게 비가 내리는지 이 통에 두통이 더 안 가시는 것 같다. 오후 늦게 캐다르탈을 지나 우리가 원하는 곳에 B.C를 설치 했다는 무전연락이 날아온다. 함께 못한 마음이 영 개운치 못하다.
2002/8/7
아침에 기상하니 두통도 경미하고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나는 B.C로 진행하고 최성오대원과 고종열 대원을 B.C에서 임시 고용한 포터와 동행해 보즈카락으로 하산시켜 고소적응을 한 후 다시 캐다르카락으로 복귀시켜야 하겠다.
얼마후 가만히 생각하니 몸 상태가 안 좋은 두 대원과 포터만 내려보낸다는 생각이 어리석은 것 같아 아직 경미한 두통이 남은 내가 같이 동행하는 것이 나을 듯 싶어 B.C에서 식량을 지고 온 포터와 함께 하산을 하기로 결정하고 B.C에 무전으로 뒷일을 구은수 등반대장에게 부탁하고 고종열 대원의 배낭을 포터에게 지게 하여 하행을 재촉한다. 아무리 봐도 고종열 대원의 상태가 장난이 아니다. 겨우겨우 걷는 모양이 영 위태롭다. 낙석지대를 통과 할 때는 정말 마음이 조마조마 하기가 그지없다. 하산 길에 우타르카쉬에서 우리 통관서류를 군부대 및 그곳 경찰서등 미처 처리하지 못한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올라오는 우리 정부연락관인 바라트를 만나 그를 동행한 포터도 동행 하산을 같이 하였다.
하산 길에 바위에서 풀을 뜯는 야생 산양의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찌어찌 보즈카락에 도착 정부연락관과 동행했던 포터에게 약간의 루피를 쥐어주고 더 늦기 전에 하산하여 강고트리까지 가라고 하고 우리는 점심 저녁을 겸해 라면 한 봉을 끓여 대원들과 동행한 포터 이렇게 넷이서 나누어 먹고 보즈카락의 비상 대피소인 양철 지붕 밑으로 기어 들어가니 양 똥이 천지다. 그 위에 매트를 깔고 몸을 누우니 왜 이렇게 처량한지 한숨이 나온다. 비는 양철지붕을 세차게 두드리고 비에 몸을 누운 곳 마져 축축이 젖어온다. 잠도 설치고 위쪽 B.C의 대원들은 어떤지 걱정이 되고 여기서 하루를 지내도 고소적응에 문제가 생기면 더 밑쪽인 강고트리까지 대원들을 하산 시켜야 하겠다.
2002/8/8
아침에 일어나니 최성오대원의 상태가 많아 호전되었다. 그러나 고종열 대원의 상태는 그렇지 못한 듯하다. 일부로 늦은 아침을 라면2봉을 끊여 먹고 준비한 과일 캔으로 간식까지 먹이니 눈에 띄게 대원들의 상태가 좋아 지는 게 보인다. 그동안 아무 말이 없던 고종열 대원의 입도 슬슬 열리기 시작하더니 농담도 한다. 강고트리로 내려갈 것을 다시 캐다르카락으로 올라가기로 한다. 처음 올라갈 때 보다 속도도 훨씬 나아진다. 낙석지대를 통과 할 때 맨 뒤에서 올라오던 최성오 대원에게 스치듯 지나간 낙석을 보고 가슴을 쓸어 내린다. 캐다르카락에 도착하니 고종열 대원의 몸 상태가 아주 좋아져 분주하게 움직이고 쾌활하게 움직인다.
보즈카락에서는 안되었던 무전기가 캐다르카락에서는 B.C와 무전이 가능 무전으로 B.C와 교신하고 몸 상태가 안 좋은 김관철 대원과 고용준 대원이 고소적응을 위해 하산한다는 연락이 날아온다. 우리는 B.C에 쌀 식의 식량을 부탁하고 캐다르카락의 비에 젖은 초원을 어슬렁거리며 컨디션 조절에 나선다.
위에서 하산하는 대원들과 교신이 되어 오늘 캐다르카락까지 하산이 불가능해 캐다르 탈에서 1박을 한 후 내일 오전 중으로 캐다르카락까지 내려오겠다는 연락이 온다. 식량을 지고내려온 쿡 덕분에 저녁은 밥으로 식사를 한다. 우리와 동행한 포터와 식량을 지고내려온 쿡의 식사량에 대원들의 눈이 수박 만해 진다.
충분한 식사와 휴식 .......
내일은 꼭 B.C에 입성하리라.
2002/8/9
아침 고종열 대원의 호들갑에 눈을 뜨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실로 오랜만에 쾌청한 날씨다. 우리가 등반 할 브르그판스와 탈레이샤가르 그리고 만다 연봉 그 반대편인 조깅 연봉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강고트리 방향의 4^6,000.m 대 봉우리들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B.C와 무전 연락을 하고 캐다르탈에서 하루를 보낸 두 대원에게 침낭을 그곳에 두고 짐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하산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여기에서 식사준비를 한다고 연락을 한다.
늦은 아침을 준비하고 쾌청한 날씨 덕분에 텐트가 아닌 초원 위에 매트리스를 깔고 식사를 준비한다.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기에 식사가 늦는 바람에 우리를 동행한 포터와 쿡은 여간 배가 고프지 않은가 보다. 연방 시선을 위쪽에 흘깃거리는 것이 시장기가 대단한가 보다. 하기사 어제 저녁 식사 량을 보니 그럴 만 한게 측은하기까지 하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저 멀리 능선 상에 대원들의 모습이 작은 점으로 보인다. 빈 몸이어서 그런지 하산 상태도 괜찮은 편이다. 얼마 안 있어 대원들이 도착하여 살피니 김관철 대원이 겪은 고생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얼굴은 반쪽이고 눈이 쏙 들어 간게 고생이 심했나 보다. 우리대의 막내인 고용준 대원은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연실 웃음을 흘리는 것이 반가운 모습이 역력하다. 바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두 대원에게 몸조리 잘 하라는 인사와 함께 우리는 B.C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초원의 좋은 길도 아니고 빙하 와 너덜이 형성된 지대를 하염없이 오른다.
그래도 이곳의 길은 많은 원정대 때문인지 길이 확실하고 사람이 길을 보수한 흔적이 이어진다. 쾌청했던 날씨도 가스가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 또 날씨가 애를 먹인다. 막연한 고소적응의 불안에 속도를 못 내고 천천히 올라 친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현지인 들이 말하는 B.C인 캐다르 탈에 도착했다. 이곳은 잘 닦여진 캠프장과 그림같이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호수를 옆에 끼고 있는 곳으로 많은 트레커들도 찾아온다고 한다. 아름다움에 취해 이곳에서 1박을 하고 싶은 욕심에 어제 대원들이 1박을 했던 텐트를 보니 식량이 바닥이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텐트를 철수해 위로 계속 진행한다.
한참을 오른 뒤 B.C와 교신을 하고 위쪽을 향해 오르니 저 멀리 마중 나온 대원들의 모습이 작은 점으로 보인다. 몇 번의 휴식 끝에 마중 나온 조중호 선배와 김남일 구조대 대장 그리고 정부연락관과 뜨거운 포옹과 서로를 격려하며 B.C에 입성하니 집으로 돌아온 듯 마음이 편해지는 게 흐뭇하다.
먼저 도착한 대원들의 수고가 한눈에 느껴진다. 우리의 B.C를 멋지게 지어 놓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고 성찬의 저녁에 그 동안의 피로가 싹 가신다.
2002/8/10
B.C의 첫날을 포근하고 아늑하게 보낸다. 고용인의 차들이는 소리에 눈을 뜬다. 생강차의 향기가 코를 자극 하는 게 기분 좋은 아침이다. 아침 식사시간 오늘은 전 대원이 B.C에 모일 것이라는 예상과 등반장비의 점검과 개인 장비의 정비를 대원들에게 지시하고 내일 B.C 입성식을 하기로 하여 그 준비를 구은수 등반대장에게 책임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우리 대원들이 사용할 화장실을 아담하게 만들고 소각쓰레기와 아닌 쓰레기장을 마련 보다 쾌적한 B.C가 되도록 신경을 쓴다. 내일은 B.C 입성식을 한 후 대원들과 기념 촬영 후 데포지까지 전 대원이 수송작업을 하기로 한다.
오후가 되어 하산했던 두 대원이 가랑비 속에 B.C에 도착 마침내 전 대원이 모이게되었다. 전 대원이 모이니 담프라 박스로 만든 식탁이 비좁아졌으나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2002/8/11
새벽 잠결에 밖에서 돌 나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마도 대원들이 B.C 입성식을 위하여 제단을 만들고 자리를 정돈하는가 싶다. 일어나 세면을 하고 오랜만에 머리를 감고 몸을 정결하게 하여 정성을 들여 간단한 B.C 입성식을 거행한다. 성공적인 산행과 대원들의 무사함을 기원하며 ...
간이 식순에 의해 의식이 진행되고 기념촬영을 준비하였으나 날씨가 나빠져 다음에 날씨 좋은 날에 촬영을 하기로 하고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 수송을 위하여 준비한다.
몸 상태가 안 좋아 하산했다 올라온 김관철 대원에게 휴식을 하라고 지시하고 데포지를 향해 출발이다. 빙하와 너덜을 오르내리며 약1시간 40여분이 경과하여 데포지에 도착 짐을 비닐포대에 방수포장 데포하고 준비한 삶은 계란과 간식을 먹는다. 휴식을 취한 후 2개조로 나누어 B.C까지의 가장 안전한 루트를 개척하며 하산을 시작한다. 모퉁이에 표식기와 쾌른을 설치하며 B.C로 복귀하니 몸의 상태가 갑자기 이상한 조짐을 보인다. 주방 텐트에서 차 한잔을 받아 들고 내 텐트에 돌아오니 두통을 동반한 헛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한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 싶다. 약을 복용하였으나 별반 도리가 없다. 마침내 구역질을 하니 아까 먹었던 삶은 계란이 모두 쏟아져 나온다. 계란 두 알에 이렇게 맛이 가다니 침낭에 기어 들어가 복통을 다스리고 잠을 청하나 뜻대로 되질 않는다. 저녁을 굶고 일체의 움직임을 자제한다. 저녁 늦게 텐트로 들여온 쌀죽과 새우젓으로 속을 채우니 속이 편안해지며 몸의 상태도 좋아진다. 아무래도 아까 먹었던 삶은 계란이 상했거나 언 쳤나 보다.
2002/8/12
어제 복통으로 고생을 해 오늘 운행에 나서질 못하고 하루를 쉰다. 느지만치 대원들을 데포지까지 짐 수송을 하라고 지시하고 주방텐트에서 대원들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한다. 날씨는 왜 이렇게 불안정한지 매일 바람과 비에 꼼짝없이 텐트에 붙잡혀 있으니 점점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내일은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원한다.
2002/8/13
고용인의 차들이는 소리에 눈을 뜨고 식당텐트로 이동해 아침을 먹는다. 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더 엉망이다. 모든 대원에게 운행을 중지하고 각자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하고 식당텐트에 아예 예비침낭까지 옮기고 그곳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해결한다. 하루 종일 책. 음악 게임 등을 해보지만 답답한 마음은 금할 길이 없다.
아무래도 가르왈의 여신이 나를 돕지 않는가 보다.
2002/8/14
오늘은 날씨가 미쳤나 보다. 호전되기는커녕 강풍을 동반한 비에 모두 망연자실 한다. 인도 조깅 원정대가 8월18일 쯤 올라온다는데 그때나 가서 좋아지려나 답답한 마음에 몸살이 날 지경이다.
식량으로 끌고 온 염소는 이젠 묶어놓지 않아도 도망도 안가고 헬파가 물뜨러 갈 때 졸졸 따라 다니는 모습이 강아지 같다.
캐다르카락에서 쫓아 올라온 양치기 개는 아예 내려갈 생각조차 않는다.
박주훈 대원의 텐트 밑 후라이가 제 집인 양 B.C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또 어느 틈 엔 가 수놈도 올라와 먹이에 몹시 굶주렸는지 식사 후 잔 밥이 제몫이라도 대는 듯 서로 크르릉 대며 한 입이라도 더 먹겠다고 식사 때마다 싸운다.
우리정부연락관 바라트는 앞니 치료차 강고트리에 하산해서 올라올 생각을 안하고 연료와 닭고기를 사러보낸 현지 고용인은 오늘도 감감 무소식이다. 전 대원이 식당 텐트에서 바둑. 카드게임. 음악. 책 등의 소일을 하며 망중함을 즐기고 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내일운행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갑자기 밖에서 쿡의 비명 소리에 나가보니 우리 주방 텐트가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붙잡고 있어 대원 모두 비바람을 맞으며 주방 텐트를 다시 설치하느라 홀딱 젖어 버렸다. 식당 텐트도 걱정이 되어 박주훈 대원에게 오늘은 식당텐트에서 자면서 지키라고 하고 우산을 쓰고 내 텐트로 돌아온다. 같은 텐트를 쓰는 최성오 대원이 안 불편한지 모르겠다.
2002/8/15
오늘은 광복절 이곳 인도도 광복절 이다. 광복절 이어서인지 아침 날씨가 쾌청하다. 박주훈.고종열.김관철.고용준 대원을 데포지까지 짐 수송을 시키고 나와 등반대장은 루트 관찰차 반대편 6.000M대 맞은편 산으로 정찰을 나간다. 그곳에서 보니 팜플렛 사진이 브르그판스가 아닌 탈레이사가르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우리가 등반 할 등반 선이 보이긴 하는데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고민이 많다. 암벽상의 릿지와 벽은 각도가 매우 크고 매우 날카로우며 바위의 상태도 매우 불안정하여 자연적인 낙석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노멀 루트도 보이긴 하는데 상당히 먼 거리를 돌아야 하며 정상부분 4^500M정도의 벽을 등반하여야 한다. 탈레이샤가르와 브르그판스 사이의 플라토는 크레파스와 히든크레파스가 잘 발달되어 이곳을 피해 가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원정대의 대장으로서 등정주의와 등로주의의 선택기로에 서서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대원들의 안전도 확보해야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다시 날씨가 흐려져 비가 내린다.
아마 저위에는 눈이겠지...
저 멀리 데포지에서 하산하는 대원들이 작은 개미가 줄을 지어 이동하는 듯 보이고 내리는 비에 서둘러 하산을 하여 B.C에 도착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고 몸을 말리니 대원들도 속속 B.C로 복귀한다.
내일부터는 날씨와 상관없이 운행을 하여 C1 구축을 해야겠다. 새로운 마음가짐과 정신력으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앞니 치료차 하산했던 연락관 바라트와 연료와 닭고기 구입차 하산했던 포터도 복귀 B.C는 다시 활기에 찬다. 비디오 밧데리도 풀로 충전하고 어렵게 구해온 닭고기에 저녁을 먹으며 우타르카쉬와 강고트리를 연결하는 도로가 많은 비에 유실됬다는 소식과 지금 강고트리에는 한국에서 관광온 여대생들이 도로 유실 때문에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 등 새로운 소식에 목마른 대원들의 갈증을 해소한다.
2002/8/16
헬로우 써 하는 고용인의 차 배달소리와 김관철 대원이 기상을 알린다. 텐트 지붕위로 흰눈이 가득 한 게 날씨가 좋아지려는 듯하다. 아침 식사 후 기상상태를 살피니 좋아지고 있다. 오늘은 무조건 C1구축이다. 등반대장을 필두로 고종열.고용준.박주훈.김관철.김남일 구조대 대장이 출발하고 나와 조중호.최성오 대원은 지원 및 루트를 망원경으로 확인해가며 진행방향을 지시한다. 대원들의 젖은 물건도 널어서 건조시키고 대원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체크한다. 대원들이 데포지에서 나와 가파른 너덜을 힘겹게 오르는 것이 망원경을 통해 확인하니 같이 못하는 마음 또한 심란하다. 시간은 무작정 흐르는데 대원들이 플라토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고용인을 시켜 점심을 라면으로 시켜 전망대로 가져오게 하고 한시라도 망원경에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다. 오후4시가 다 되어온다. 대원들에게 B.C로 복귀하라고 지시한다. 등반대장과 박주훈 대원의 선 등으로 로프가 픽스된 곳까지 대원들이 짐을 데포시키고 하산 하겠노라 는 무전연락을 받는다. 하산 또한 싶지 않은 길이 되겠다. B.C에서 기다리는 마음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저녁 어둠이 내릴 쯤 에야 겨우B.C에 도착한 대원들의 모습에 피곤함이 역력하다. 내일은 내가 직접 C1 건설에 참여하여 C1을 구축하고 데포지를 설선 밑까지 이동시켜 등반에 활성화를 기하여야겠다.
2002/8/17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다. 이른 아침을 먹으며 운행에 관하여 간단한 지시사항을 전달한다. 등반대장인 구은수를 비롯하여 박주훈.김관철.고용준.나는 C1을 건설 구축하고 조중호선배 최성오.고종열.헬파.정부연락관은 데포지를 옮기고 데포지 캠프장 주변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등 환경정화 작업을 하고 김남일 구조대 대장에게는 B.C에서 루트 정찰을 부탁하고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출발이다. 처음 구축한 데포지에 도착 상당량의 짐을 짊어지고 신 데포지로 향한다. 어제 망원경으로 볼 때와는 달리 거리가 엄청 멀고 너덜지대의 경사도 만만치 않다.
한참을 올라 조그마하게 닦여 있는 곳에 데포지 용 텐트 1동을 설치하고 C1 조는 곧바로 20여M의 빙설벽 상으로 쥬마링을 시작하여 플라토에 진입하고 남은 대원들은 하이데포지 주변의 쓰레기 등을 청소한다. 플라토에 오르니 브르판스 쪽은 진입이 불가능하고 탈레이사가르쪽 사면을 이용 크레파스와 히든크레파스를 피해 계속 오른다. 구간구간 획스로프가 설치되어 확보를 하고 진행한다. 발 밑의 크레파스들은 엄청 크지는 안은 듯하나 위험하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겠다. 탈레이사가르쪽 사면을 계속 오르다 다시 20여M의 빙,설벽을 쥬마링 하면 넓은 플라토가 나오며 이곳 또한 크레파스와 히든 크레파스를 조심하여야 한다. 이곳에서 브르그판스와 탈레이샤가르로 연결되는 능선의 중간지점 하단에 눈사태와 낙석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지점으로 길게 휘어져 루트가 형성되어있다. 박주훈대원과 구은수 등반대장이 루트를 개척하고 고용준 김관철 대원이 뒤따르고 내가 마지막으로 따라가는 형국이다. 대원들의 주력에 보조를 맞추기가 힘들다. 어렵게 C1 건설 예정 지에 도착하니 대원들은 삽질을 하며 설 사면을 깎아 텐트2동(알파인드림1동.뉴까반돔1동)을 설치하여 C1을 구축하고 있다. 그 동안 나는 거친 숨을 고르며 메고 있는 배낭을 풀어짐을 내리고 짐을 C1에 데포하고 주력이 대원들에게 딸리는 것을 고려해 먼저 하산을 시작한다. 혼자서 플라토에서 내려오며 많은 생각이 교차된다. 첫 번째 하강 지점에서 하강준비를 하니 바로 대원들이 쫓아 와 대원 모두가 함께 운행을 한다. 체력은 계속 하강 곡선을 그린다. 플라토를 빠져나와 마지막 하강을 하니 바로 하이데포지 텐트다. 그곳에서 장비를 해체하여 데포하고 휴식 밑 간식을 먹는다. 하이데포지 주변은 깨끗이 정화되어 있어 기분이 상쾌하다. 많은 한국대의 원정에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과자봉지며 식량등 창피한 마음이 들 정도다. 물론 다 한국산 쓰레기는 아니지만 함께 산을 다니는 산악인으로써 각성을 해야 겠다. 너덜 지대를 지치고 배고픈 몸을 이끌고 내려오니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마음은 급하나 체력이 따라주질 않는다. 아직은 익숙하게 걸음을 옮기나 대원모두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배낭에서 렌턴을 꺼내 불을 밝히나 B.C가 왜이리 먼지.......
저 멀리 렌턴 빛이 반짝인다. 아마 대원들이 마중을 나와 있나 보다. 대원들과 만나 준비한 따뜻한 차 한잔에 몸의 피곤이 싹 가시는 듯 개운해진다. 지친 몸을 이끌고 B.C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준비를 다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오전 일찍 운행을 시작하여 벌써 오후9시이니 13시간이 넘는 운행이다. 식사시간에 한국에서 가져온 P.T병 소주를 가져와 C1건설에 고생한 대원들과 환경정화 작업에 참여한 모든 대원들에게 소주한잔을 권한다. 환경정화 작업에 참여한 정부연락관과 고용인에게도 한잔의 술을 권하며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하이 데포지에서 수거한 쓰레기만 하더라도 카고빽 2개 분량으로 소각용과 비 소각용으로 분리하여 정리 해 놓았단다. 식사 후 구은수 등반대장이 쓴 소리를 한소리 한다. 대장님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아무래도 발목 부상으로 1년여를 산행을 못 했던 게 치명적으로 작용을 하는 가 보다. 개인적으로는 카라반도 걱정을 했는데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다. 내일은 하루의 휴식을 취하고 고소 캠프 생활을 준비한다. 아무문제 없이 성공적이고 경제적인 원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2/8/18
오늘은 늦잠을 잦다. 9시가 다되어 기상을 하니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에 뜨거운 태양 빛이 쏟아진다. 늦은 식사와 커피 ....
침낭이며 옷가지를 텐트 주변의 바위와 돌에 널어 건조시킨다. 그래도 고산 지대여선 지 바람은 차다. 점심 식사를 마치니 다시 가스가 끼고 비가 내린다. 널어놓은 옷가지이며 빨래를 다시 걷고 무심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음이 무겁다. 무슨 날씨가 이다지도 변덕이 심하고 하루에 몇 번씩 심술을 부리니 등산이나 온전히 하려는지 모르겠다.
2002/8/19
아침 날씨가 좋다. 구은수 등반대장을 비롯하여 박주훈.고종열.김관철.고용준대원을 올려보낸다. C1에서C2까지 루트 작업을 하라는 지시를 한다. 고종열대원과 고용준 대원은 하이데포지의 짐을 C1으로 수송하라는 지시와 함께 ...
자일 운영에 관해 등반대장에게 많이 올라 다니는 구간과 암벽이 노출된 부분에는 로프를 깔고 설 사면과 크레파스 구간은 별도로 준비한 PP로프를 사용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라는 주문을 하고 대원들을 출발시키고 전망대 바위에 올라 대원들의 뒷모습을 보니 발걸음이 경쾌하고 빙하 너덜 지대를 빠르게 운행하여 바로 모습이 작은 점으로 보이다 이내 사라진다. 대원들의 무전을 카피하며 대원들의 움직임을 망원경을 통해 관찰한다.
2002/8/20
C1-C2간 루트작업을 계속해 마무리하고 하이데포지의 짐을 수송한다는 무전 연락을 받는다. 이곳 B.C의 날씨가 가스가 끼어 안 좋은 것 같아 위 쪽 상황을 물으니 그곳에는 뜨거운 태양 때문에 푹푹 찐다는 연락이다. 하얀 눈 위에 반사되는 복사열이 장난이 아닐텐데 그래도 눈보라보다는 훨씬 유리하지 않겠는가. 오후가 되어 이곳 B.C의 날은 장난이 아니다. 날씨는 바람을 동반한 비와 함께 잔뜩 심술을 부리고 있다. 위쪽도 날씨가 나빠져 C2 예정 지를 100여M을 남겨두고 다시 C1으로 철수 중이란다. 기침은 계속 괴롭히고 한국에서 준비한 기침약은 내가 혼자 다 먹은 것 같은 데 영 신통치가 않아 괜히 옆자리의 최성오대원과 다른 대원들에게 전염이 될까 걱정이 된다.
2002/8/22
오늘은 고용인이 차를 주기 전에 먼저 일어나 주방으로 가니 버너를 예열하며 차 끌일 준비를 하고 있다. 이곳의 현지 인들은 차를 아주 달게 마시는 편이라서 설탕을 조금만 넣고 차를 달라고 하고 안 통하는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서로 답답하기만 하고 이해를 못하면 웃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아침 식사 후 C1으로 교신을 하여 구은수등반대장.고용준.김관철.고종열 대원으로 C2 루트 작업 및 C2 건설을 하고 박주훈 대원에게는 운행조 지원 및 휴식에 나서라는 지시를 내린다. 아침 잠깐 개인 날씨가 또 심술을 부린다. 이놈의 날씨는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어 계획을 잡을 수가 없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에 C2 위치에 도착 캠프를 건설한다는 연락이다.
C2의 대원중 김관철 대원을 C1으로 하산 시켜 침낭의 부족을 해소하고 내일은 구은수 등반대장을 제외한 두 대원을 교체 고종열대원과 고용준 대원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고 정상 쪽의 루트 작업에 투입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2002/8/23
식당 텐트에 자리를 잡은 지 벌써 며칠이다. C1에 있던 고종열.고용준 대원을 C2에 올리고 C2에 있던 박주훈.김관철 대원을 C1으로 내린다. C2의 구은수등반대장과 고용준 대원을 1차 공격조로 고종열 대원에게는 지원을 지시하고 C1의 박주훈.김관철 대원에게는 2차 공격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새벽1시에 기상을 알리는 무전교신을 하기로 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하고 B.C의 대원들에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기를 요구한다. 대원들을 기상시키려면 자지말고 시간을 보내야하는데 바둑을 몇 판이나 두고 음악을 듣고 기다림의 연속이다.
2002/8/24
새벽1시 C2를 무전기로 불러 기상시키고 등반준비를 재촉한다. C2의 고종열 대원이 지원에 최선을 역량을 다하고 있다는 무전보고이다. 새벽2시 출발을 알리는 무전연락이 들어온다. 초조함의 연속이다. 부슬비가 내리고 유난히 낙석 소리가 심하게 들린다.
여기저기 우르릉 꽝...
등반하는 대원이 걱정이다. 침낭에 몸을 반을 가리고 한 손에는 무전기를 들고 머리에는 헤드렌턴 손목시계를 연실보며 모든 신경을 위 쪽 대원에게 쓴다.
얼마 안지나 작은 낙석사고가 발생 정상 공격조가 C2로 철수 중이라는 무전교신이다. 구은수 등반대장을 뒤따르던 고용준 대원이 낙석에 맞아 움직이기 어렵단다. C2로 복귀하여 부상의 정도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안절부절 기다린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 C1의 대원들에게도 비상 대기 시킨다.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라는 무전교신 보고가 전해오나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 인 듯 하다. 일단 충분한 휴식과 치료에 전념하고 날 이 밝으면 C1.C2의 모든 대원을 B.C로 철수하라고 지시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스린다. 비는 계속 청승맞게 계속 내리고 있다. 오전이 되어 우리 쿡 을 강고트리로 하산시켜 하행 카라반때 고용할 포터와 날짜를 약속하여 다시 올라오라고 지시하고 헬파와 정부연락관을 하이데포지에 올라가 고소캠프에서 철수하는 대원을 도우라고 지시하고 부족한 식량을 대신해 신선한 고기를 공급하기로 결정 염소를 잡으라고 지시한다. 영 찜찜한 생각이 든다. 성공하기 전까지는 피를 안 보려 했는데 상황이 어쩔 수 없다. 내 몸의 상태도 엉망이다 폐부에서 올라오는 마른기침은 영 가시질 않고 벌써 3끼니를 굶고 있다. 도무지 음식 섭취가 안되고 먹어도 구역질을 해대는 통에 미치겠다.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해 대원들이 돌아올 시간이 됐다. 먼저 헬파와 정부연락관이 복귀한다. 대원들은 며칠 동안의 고소 생활에 지쳤는지 많이 뒤쳐져 내려온다는 연락이다. 이제나저제나 대원들을 기다리는데 긴급한 무전 소리에 헬파와 정부연락관이 뛰어나간다. 빙하 모래인 지대를 내려오던 고종열 대원이 슬립을 당하면서 좌측 엉덩이 부분을 낙석이 때려 심한 타박상을 입은 모양인데 혼자서는 걸을 수가 없어 헬파에 의해 업혀 내려오는데 참으로 침통하다. 그나마 다행히 새벽에 정상공격에 나갔던 고용준 대원은 혼자서 몸을 거동하니 불행 중 다행이랄까?.
그러나 저러나 오랜만에 전 대원이 B.C에 모이니 사람 사는 곳 같다. 염소 고기에 된장을 풀어 끊여 놓으니 대원들의 식욕이 왕성하다. 전 대원들과 어울려 식사을 함께 하니 약간의 국물과 한술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내일까지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다시 한번 마지막 정상 공격을 시도해 보겠다.
이젠 B.C에도 연료도 바닥이고 식량도 거의 바닥이다. 한 마리의 염소도 대원들의 휴식을 위하여 잡고 .....
2002/8/25
모처럼 모두모인 B.C에는 한 정 없이 비가 내린다. 내일이면 이번 원정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만감이 교차된다. 날씨라도 우리 편이었다면 ....
식량이 부족한 탓에 잡았던 염소가 한 몫을 단단히 한다. 대원들의 왕성한 식욕을 보니 한 편으론 든든하나 총9명의 원정 대원 중 부상대원2명에 가용대원3명 갑갑한 노릇이다.
구은수 등반대장을 별도로 불러 내일 올라갈 일과 정상공격에 대해 문제를 상의하고 몇 가지 부분을 지시한다.
2002/8/26
오전 식사후 구은수 등반대장과 박주훈.김관철 대원을 출발시킨다. 서너 시간후 대원들이 하이데포지에 도착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는 보고이다. 전날 많은 비가 그곳에는 눈이 내려 하이 데포지 텐트가 무너져 복귀하고 C1으로 출발 이윽고 도착을 알린다. C1도 무너져 복귀하고 따뜻한 차와 간식을 먹고 C2로 출발하겠다는 등반대장의 무전보고이다. 얼마 안 있어C2로 출발한다는 연락이다. 무슨 비가 한 여름철 장마 때 내리는 비처럼 폭우가 쏟아진다. 저위에는 많은 눈에 대원들의 운행에 심각한 장애가 될텐데 하늘이 나를 돕지 않는 모양이다. 오후 늦게 대원들로부터 연락이 온다. C2에 겨우 도착해 텐트를 복귀하고 저녁 준비중이라는 보고다. 무전기가 진 눈개비에 습기를 먹어 버너 불에 건조시켜 겨우 통화를 한다는 연락과 새벽1시에 기상시켜달라는 연락이다. 다시 대원들을 기상시켜주기 위해 기다림의 시간이다. 몇 번이고 보았던 잡지를 보고 또 보고 무슨 말인지 모르는 인도 잡지를 수십번 그림만 처다 보는 그러다 담배 한 대 피고....
다행히 비는 수그러드는 듯하다.
새벽1시 C2의 대원들에게 기상을 알린다. 김관철 대원이 연락을 받는다. 새벽2시 출발한다는 C2의 등반대장 보고가 날라 온다.
속이 타온다.
2002/8/27
새벽에 식당텐트에서 나와 내 텐트로 돌아왔다. 무전기와 예비 밧데리를 챙겨들고 ..
침낭에 몸을 반쯤 가리고 대원들의 연락에 초점을 맞추고 하염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날이 샐 무렵 헬파의 차 배달에 속을 풀고 식사는 누룽지 끊여온 것으로 대치하고 대원들에게 연락을 하니 등반 중이란다. 힘든 대원들에게 이것저것 묻기에도 아니 것 같고 무전교신도 아무때나 부를수도 없고 갑갑할 따름이다. 점심때 쯤이이면 가능할까?
점심은 건너뛰고 피 마르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오후2시를 지나 3시가 넘어간다. B.C의 모든 대원들에게 캠프 주변의 모든 쓰레기를 정리하라고 지시한다. 옛날 원정대들이 버린 캔을 포함 완벽하게 정리하고 포장하여 하산 조치시킬 수 있도록 조치한다 .벌써 시간도 오후5시가 넘어간다. 얼마 안 있어 등반대장으로부터의 연락이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B.C의 모든 대원들이 모두 나와 정상 쪽을 바라본다. 오후 6시쯤 무전교신이 들어왔다. 첫소리가 죄송하다는 소리와 함께 하루의 시간을 더 달라는 내용이다. 정상으로 착각하고 옆 봉우리를 올랐다는 것이다. 올라가 보니 옆에 약30^40M 더 높은 봉우리가 있는데 하강하여 200미터를 더 등반해야하는데 시간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무전 교신으로 그곳에서 비박이 가능한지 살펴보고 보고하라는 지시를 한다. 얼마 후 식량과 장비의 부족으로 불가능하다는 연락이 온다. 결국은 C2로 복귀하여야 하는데 야간에 만만치 않은 노릇이다. 무사히 안전하게 C2로 복귀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
또 기다림의 연속이다. 갑자기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 맥이 풀린다. 텐트로 돌아와 보온 의류를 꺼내 입고 두툼한 양말도 갈아 신는다. 오후10시가 되어 연락이 왔다. 오후 9시30분쯤 C2로 복귀 했는데 무전기가 말썽을 부려 교신이 안되었노라고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목이 쉬어라 불러 됐으니...
C2의 구은수 등반대장도 무전교신이 터지자 첫 소리가 “감사합니다”.하고 말하니 양쪽에서 어지간히 속이 탓 겠는가.
많이 지친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새벽3시에 기상시켜 달라는 부탁이다. 내일은 구은수 등반대장과 김관철 대원이 재 시도를 하고 박주훈 대원이 C2에서 정상 공격조 지원과 철수시 모든 책임을 맡아 달라는 지시를 하고 텐트에서 침낭을 식당텐트로 다시 옮기고 준비 상황을 점검한다.
2002/8/28
지금 시간 새벽 2시30분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 보온병의 커피를 한잔 먹으며 초조하게 시계를 본다. 아직 30분이 남았다. 30분이면 C2의 대원들에게는 황금 같은 시간일 것이다. 정확히 3시 C2의 대원들에게 무전 연락을 해 기상시킨다. 김관철 대원이 무전을 받는다. 막내가 무전을 받는 것을 보니 긴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서둘러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30분 후 다시 확인 무전교신을 하니 식사 준비중이란다. 새벽4시쯤 출발을 알리는 교신이 들어온다. 침낭에 들어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 노력하나 허사이다. 헬파가 차를 끊여 내온다. 날이 밝아 온다. 초조한 기다림의 연속이다. 시간은 흘러 정오를 지나가고 있다. 어제 정확히 정상으로 이어져는 루트를 확인했다는데 ...
등반대장으로부터 교신이 들어온다. 정면에서 보는 삼각봉 꿀르와르를 바로 치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등반하겠다는 내용이다. 제발 날씨라도 좋아야 하는데 ...
밑에서는 하행 카라반에 이용할 포터들이 속속 B.C로 들어와 캠프를 설치한다. 시간은 점점 촉박해지고 있고 연락은 없고 답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드디어 무전 연락이 들어온다. 정상 바로 밑이라는... 시간은 오후5시에 육박하고 드디어 오후5시20분 정상이라는 연락에 B.C는 전 대원과 고용인들 하행을 위해 올라온 포터들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정말 극적인 등정이다. 정상에서는 날씨가 안 좋아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잠시 기다리고 정상에 트랑고 아이스바일을 설치하고 최대한 사진 촬영에 노력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안전하게 철수 할 수 있도록 단단한 준비를 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C2의 박주훈 대원에게도 정상조의 안전 철수를 위해 대기 준비하라고 지시를 한다.
이젠 하산을 기다린다.
2002/8/29
새벽1시 C2에 안전하게 도착하여 따뜻한 차를 한잔하고 C2를 철수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C2에서 C1에 이르는 루트는 양 4^500M 정도의 빙설 벽을 하강하여야 하는데 지친 몸에 제대로 이끌고 내려올 수 있을는지 걱정이 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날 쓸까? C1에 도착 캠프를 철수하고 있다는 보고를 해온다. B.C가 분주해 진다. 헬파와 .쿡 .고용인 .정부연락관을 하이 데포지까지 올려 대원들의 철수를 지원하라고 지시한다. 약2시간후 하이데포지에 고용인들과 정부연락관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온다. 새벽3시 하이데포지에 도착한 구은수 등반대장에게 정부 연락관을 대동 B.C로 하산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이윽고 도착한 김관철 대원과 박주훈 대원에게 나머지 고용인들과 함께 하산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새벽4시 가스등을 들고 나가 구은수 등반대장을 마중하여 따뜻한 차와 먹거리를 먹인다. 많이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아무 말 없이 두손을 꽉 잡았다 놓는다. 다시 두 대원의 마중을 위하여 나가 두 대원과 정상 등정의 기쁨을 포옹으로 답하고 B.C에 도착 비롯서 전 대원과 고용인 포터들까지 한 장소에서 정상 등정의 기쁨과 무사하산의 고마움에 서로서로 부등켜안고 감격의 시간을 같고 축배를 위해 남겨 놓았던 위스키로 축배의 소리가 골짜기가 무너지라 외친다. 거의 탈진 상태의 대원들이 무사생환이 너무나 고맙고 감격스럽다. 새벽6시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하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자 노력하나 날이 하얗게 새고 있다.
잠깐 눈을 붙이고 10시에 기상 철수 준비를 시킨다. 일어나기 어려운 몸을 어기지로 움직이는 대원들의 모습에 측은한 마음이 앞서나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 동안 못한 사진 촬영을 하고 서둘러 캠프를 철수한다. 몸 상태가 안 좋은 고종열 대원과 고용준 대원을 먼저 하산시키고 소각하고 남음 재와 쓰레기를 비닐포대에 포장하여 포터를 이용 내리고 20여일 가깝게 사용해온 화장실도 묻고 11시에 1진을 출발시키고 조중호 선배 김남일구조대대장 그리고 나는 1시에 마지막으로 정들었던 캠프지를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내 뒤에는 정부연락관과 포터 리더가 뒤따라 내려온다. 캐다르 탈의 인도 조깅원정대 B.C에 도착하니 인도대가 축하의 말을 건넨다. 오래 머물기가 어려워 차 한잔도 같이 못하고 계속 강행군이다. 상행때 사용했던 캐다르카락 캠프지의 쓰레기를 자루에 담아 포터 리더에게 건네고 강고트리까지 반듯이 수송하라고 하니 인상을 쓴다. 보즈카락 양철 지붕을 지나니 발걸음이 천근같고 일찍 하산했던 고종열대원이 김관철대원의 도움을 받으며 하산하고 있다. 왼쪽 발은 거의 마비 증세가 오고 ... 그래도 주저 않을 수 없어 천천히 하산을 한다. 타박상을 입었던 고종열 대원의 고통이 심한가 보다. 고종열대원을 지나쳐 계속하산 강고트리 언저리에 도착하니 고종열대원이 정부연락관과 포터리더의 도움과 부축으로 겨우겨우 하산한다는 무전 연락이다. 강고트리에 도착하니 먼저 내려온 대원들이 전세버스에 짐을 싫고 대기하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인 2명을 만나 라면 10개를 건네주니 무척이나 고마워 한다. 우리원정대는 그대로 버스에 몸을 싫고 어둡고 위험한 길을 내려와 데날리라는 마을에 숙소를 수배해 잡고 하루의 여정을 푼다. 데날리에서 아주 귀한 친구를 만났는데 95년 캐다르나스 원정때 우리 팀의 헬파였던 찬다르가 그곳에 허름한 롯지를 운영한다고 하기에 고용인과 버스기사.버스기사보조 등을 그곳에 숙박시키니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루피를 주머니에 찔러주니 어딘 가에서 술을 가져와 늦은 저녁 식사 때 전 대원들과 한잔 씩 피로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 그 당시 눈밭에서 20여 일이나 함께 고생을 했는데 지금은 이곳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소리에 반갑기 그지없고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쏟는다. 이곳에서 우리 고용인들의 임금을 지급하고 약간의 보너스도 지급하였으나 포터들의 임금은 말썽이 생겨 나중에 협상하기로 한다.
2002/8/30
오전7시 아침 식사도 거르고 바로 출발한다. 점심때쯤 강고트리 지역의 등반 기점인 우타르카쉬에 도착 식당을 수배 예약하고 음식이 준비되는 시간을 이용 이발소에서 그 동안 길렀던 수염을 깎고 까막케 탄 얼굴을 마사지 하니 몰골이 많이 나아진다. 포터 에이전시 사장이 찾아와 다시 포터들의 인건비 협상을 하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 때문에 협상이 잘 되지 않는다. 상행때 6일분의 인건비를 지급했으나 하행 때는 길게 잡아야 3일치 인건비인데 상행 때와 같이 6일분을 달라는 소리에 우선 이해가 잘 안가고 포터들의 인건비를 속여 거기에서 띠어 먹는 게 분명한 것이 확실한데 더욱더 괘씸하여 IMF에 중재를 받아 지불하기로 하고 식사를 마치고 출발한다. 아마 한 두시간 하행 버스 카라반 중에 우연히 한국 캐다르돔 원정대를 만나니 기쁘기가 한량없다. 인도의 깊은 산중에서 그것도 서로 버스로 지나치다 한국의 산꾼들임을 한 눈에 알아보고 차량을 잠시 주차시키고 차와 음료수로 서로에게 격려도 나누고 인사도하니 그동안의 여독이 한번에 풀리는 듯하다. 성공의 축하와 성공적인 등반을 기원하며 길지 않은 시간을 나누고 다시 버스에 몸을 의지한 채 위험천만한길을 내려온다. 저녁 8시쯤 리쉬캐쉬에 도착하니 위험한 길은 이제 끝나고 도로의 폭도 넓어지고 상태도 양호해져 버스는 제법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상행 때는 종교 행사 때문에 우회한 도로를 바로 내려오니 시간도 절약이 된다.
도로변의 휴게소에서 피자로 늦은 저녁을 먹고 델리로 바로 진행한다. 지친 대원들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졸고 있다. 눈을 부치려도 잠이 오지 않는다.
2002/8/31
새벽3시쯤 델리 IMF에 도착 짐을 내리고 정리하여 휴식에 들어가니 새벽4시이다. 오전 9시 기상하여 이곳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식사로 아침을 해결하고 철수한 짐의 정리와 정비를 지시한다. 텐트를 말리고 빨고 분주히 대원들이 움직인다.
98년 무크트파르밧 원정때 인연을 맺은 미스 공가 브띠야가 저 멀리 다질링에서 찿아와 인사를 한다. 반갑다. 장비중 일부<매트리스*한솔제품.가스등,가스버너,코펠,헤드렌턴*코베아제품.트랑고 피켈1자루등> 장비를 인도 다질링의 국립 등산학교인 HMI에 기증을 하고 인도 IMF에 데포하여 나중에 한국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장비들을 정비한다(키친셋트). 1시에 IMF 디렉터와 면담을 해 등정에 관한 서류 제출을 하니 원정대의 성공을 축하해 준다. 면담시 포터 문제를 이야기하나 자체 해결하라는 이야기를 하며 아쉬움을 표한다. 오후에 포터들의 인건비 5일치를 계산하여 마무리하나 영 성이 차질 않는다. 2틀 운행에 6일치 인건비 요구와 고질적인 임금착취 등 원정대원들도 분개하나 어쩔 수가 없다. 히말라야 원정대에 있어서 동반자이며 꼭 필요한 포터들인데.....
포터들의 삶은 여간 고되지 않아 연민의 정을 느끼는 터라 그들을 이용 임금을 착취하는 이들에게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겠다.
항공권 부킹을 위하여 대리점에 전화를 하고 2일 비행기말고 다른 비행기를 예약 하니 부킹이 잘 되질 않는다. 그래서 조중호 선배는 먼저 귀국을 하고 다른 대원들에게 휴식을 위하여 다른 곳으로 여행 및 관광을 하기로 하고 오늘 저녁은 호텔 부폐 식당을 예약 원 없이 먹고 즐기자는 소리에 대원들의 얼굴은 희희낙락 들떠 있다. 다시 항공사에 전화하여 9일 날로 부킹을 하나 확신은 못하고 웨이팅으로 된단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라도 해야 겠지...
통역관인 핀투를 통해 다질링행 기차표를 예약하니 2일 오전 9시30분 기차란다. 델리에서 장장 1500KM를 이동후 다시 찝차로 2^3시간은 더가야 한단다. 엄청 먼 거리이다. 저녁7시 IMF를 출발 호텔에 도착 즐거운 저녁 시간이 된다. 시원한 맥주로 축배를 들며 그 동안의 노고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줄거운 시간을 갖는다. 구은수 등반대장과 정상등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지향해야 할 산악관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오후10시쯤 IMF에 도착 휴식을 취한다.
지금은 모두가 잠들어 있다. 벌써 새벽3시30분 왠일인지 잠이 오질 않는다. 조중호 선배가 일어나 모기향을 피우고 대원 옆에 여러군데 모기향을 태워 대원들이 모기등 벌레들 때문에 수면을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모습이 너무나 정겹다.
형과 남은 술을 나눠 마시며 감사의 말을 올린다. 조중호 선배 역시 고생 많았다고 위로를 해주신다.
내일이면 형은 가야 하는데 함께 못하는 마음에 섭섭함을 금 할 길이 없다.
2002/9/1
실로 오랜만에 늦잠을 잦다. 빵과 계란후라이.인도차로 구성되는 아침식사도 거른 채......... 어제 많이 먹어 배가 고푼지도 모르겠다. 대원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IMF 직원인 고다의 집에 초대를 받아 최성오.김관철 대원을 대동 택시를 대절해 방문하니 많은 음식을 준비 기다리고 있다. 새우튀김과 게를 이용한 커리인데 그 맛이 일품이다. 전 대원을 생각해 많은 음식을 준비한 모양인데 대원들이 안와 서운한 눈치이다. 고다는 생김새는 인도인이지만 정서는 한국인 정서와 비슷하여 술도 잘 마시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푸짐한 점심을 얻어먹고 작별을 하니 그냥 가면 안 된다고 찬 통에 도시락을 쌓아 다시 IMF로 와 남은 대원에게 먹이려 노력하나 대원들이 인도 음식을 꺼린다. 그러나 조금 있다 맛을 보더니 게눈 감추듯 깨끗이 비워 버리고 같이 안 같던 것을 후회한다. 오늘은 조중호 선배가 출국하는 날이다. 새벽1시 비행기이기 때문에 저녁 10시에는 공항에 나가야 한다. 저녁을 좋은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여야 하는데 라면에 밥 IMF 주방에 남은 쉬어 꼬부라진 김치로 식사를 하고 출발 준비를 한다. 2대의 택시에 끼어 타 분승 을하고 공항에 나가니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곳에서는 여권과 비행기 티켓이 없으면 별도의 요금을 내고 출입증을 사야 공항 출입이 가능하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된다. 아시아나 부스에서 짐을 붙이고 음료를 한잔 마시니 출발 시간이 가까워져 형은 출국 심사대로 향하고 우리는 뒷모습을 한참이나 보다가 형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오려니 공항 경비원 나가지 못하게 한다. 출국장에 들어 왔으니 가라는 내용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져 이쪽 저쪽 출입문을 헤매다 겨우 한 곳에서 자리가 없어 못가고 나중에 가야 한다고 하고 겨우 빠져나와 IMF에 돌아오니 새벽1시30분이 다됐다. 내일 오전에 기차를 타야하니 서둘러 취침에 들어가라고 하고 소등한다.
2002/9/2
아침7시에 기상 간단한 의류 및 세면 도구만 챙기고 짐을 패킹해 IMF 창고에 데포시키고 델리 기차역으로 출발 도착하니 너무 많은 사람과 더위 그리고 더러움에 기가 찰 노릇이다. 철도 레일을 물 청소하는데 가만히 보니 음식물 쓰레기와 배설물로 가득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참 희한한 모습에 고개가 절로 진저리 쳐진다.
플랫홈에 들어오는 기차에 오르니 비교적 깨끗하고 냉방시설이 잘 되어 있는 객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3단 침대가 설치되어 있고 옆에 인도인에게 양해를 구해 될 수 있으면 같은 자리에 않으려 노력하나 너무나 냉정하다.
차내에서 제공대는 식사로 점심.저녁 그리고 아침 장장 26시간에 이르는 긴 열차 여행이다.
2002/9/3
12시가 넘은 시간에 종착역인 스리구리에 도착 바로 차2대를 수배 곧바로 다질링을 향해 오른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지대이다. 시내를 벗어나니 더위는 가시고 약간의 빗방울이 떨어진다. 눈에 보이는 산은 거의 그 유명한 다질링의 차밭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질린다. 찻잎을 따는 아낙네들이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작업을 하는 모습이 경이롭다. 도로는 비좁고 험해 위험하기가 그지없다 3^4시간을 운행 다질링에 도착 미스 궁가브띠야 집에 일부대원과 바로 앞 호텔에 숙소를 잡고 궁가 집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저녁을 먹고 긴 여정의 여로를 푼다.
2002/9/4
아침 식사를 간단히 먹고 궁가의 안내로 다질링 시내를 관광한다. 다질링은 서부뱅골주의 주도이자 산악도시이다. 다질링은 네팔과 ,부탄을 국경으로 접하고 있으며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시킴과 주경계를 이루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 멀리서 캉첸중가 산 군을 조망 할 수 있는 아름다운 휴양지이기도 하다. 다질링 이곳에 위치한 인도국립등산학교인 HMI 방문 견학하며 많은 생각이 앞선다. 먼저 입구는 동물원과 놀이 공원을 지나치면 정문이 나오는데 그 앞에 간이매점과 입장료를 판매하는 작은 건물이 있고 시설로 보면 넓은 면적에 박물관과 사무실이 위치한 ㄷ자 2층건물을 중앙으로 두고 우전방으로 기념품 판매소와 그 뒤편에 교육생들을 위한 3^4층의 소건물이 2채 있고 좌측 건물 안에는 인도아클라이밍 시설이 있으며 우측으로는 장비 보관 건물 및 부속건물이 또 그 옆으로는 강사들의 숙소가 별도의 2^3층 건물로 지어져 있고 네팔인들의 숙소도 별도의 건물로 구분되어 있으며 건너편에 폭6M 높이 12M짜리 인공월이 설치되어 있다. 상당히 큰 규모에 놀라움과 감탄이 절로 나온다. 비록 시설이 초현대식은 아니지만 부럽기 짝이 없다. 인원 또한 강사 십수명에 스탭진 10 여명으로 잘 짜여진 진영을 갖추고 있다. 이 많은 시설과 인원을 관리하려면 입장수입으로는 턱도 안되고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갈텐데 ... 나중에 알아보니 이곳의 등산학교 강사와 스태프들은 국가공무원의 신분을 갖고 있으며 이들이 받는 임금도 일반적인 기업의 월급자 보다 훨씬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 <예: 트럭운전기사의 임금 3,500루피^ 4,500루피 등산학교 강사 10,000루피/차잎따는 아낙네 하루 일당 50루피> 이곳에 운동 하로 온 젊은 클라이머들의 꿈이 등산하교 강사라는 소리에 대단한 선망과 또 이곳 사회에서 등반가들의 위치 또한 가늠 할 수 있는 척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많은 선배님들과 산에 다니는 악우 들이 뜻을 모아 지금이라도 준비를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안나하는 생각에 한 참을 생각하다 견학을 끝내고 시내 중심 가에서 티벳 식 만두로 점심을 먹고 각자 자유시간을 주고 숙소로 돌아 왔다. 이곳은 우기인지 장마비 같은 장대비에 아름답다던 캉첸중가 산 군을 제대로 조망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2002/9/5
오늘은 이곳의 관광지인 가장 오래 됐다는 불교사찰과 미락호수에 가기로 하고 일찍 집을 나선다. 먼저 도착한 사찰은 그 규모는 3,000M 대의 고지대 산비탈에 위치해 있어서 크지는 않으나 티벳 불교의 형식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법당을 둘러싸고 있는 만다라를 돌리며 한 바퀴를 돌고 불당에 들러가 내부를 살피니 사뭇 우리와는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궁가는 부처님께 합장 을하고 예배를 드린다. 무신론자인 나도 이번 원정이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마무리 된 것에 대해 감사의 절을 올리고 한국으로 돌아 갈 때까지 아무 탈 없이 대원모두 함께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올리고 스님이 내 미는 서명록에 서명 후 약간의 루피를 시주하고 사찰을 나선다.
미락 호수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가로수가 있는 산길로 작은 마을들을 통과하여 계속 아래로 내려간다. 길 양쪽의 모든 산(구릉지)은 모두 차밭이고 그곳에서는 인도 아낙네들의 찻잎 채취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 실루엣으로 다가와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자 했으나 보수적인 그곳 아낙네의 반대로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이윽고 호수에 도착하니 우리가 예상한 맑은 물이 흐르고 유럽 알프스의 아름다운 별장이 있는 곳이 아닌 누른 물에 호수가엔 말들이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몇 마리 있고 물 속의 고기들은 비단잉어가 아닌 흑갈색의 잉어와 붕어가 관광객이 던져 주는 뻥튀기와 빵에 쌔까막게 몰려들고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다시 다질링을 향해 올라간다.
다질링에 도착 시내 외곽에 위치한 HMI 자연암장 교육장으로가 그곳 교육장을 보니 습기에 이끼가 두텁게 끼어있다. 교육이 10월달에 시작되는데 그전에 제거 작업과 안전 시설물 점검을 한단다.
저녁은 궁가집에서 제공하는 돼지고기로 오랜만에 푸짐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델리로 돌아 갈 차를 예약하고 선물로 약간의 다질링 차를 구매한다.
2002/9/6
간단한 아침을 먹고 2대에 차에 분승 하산을 한다. 김남일 구조대 대장과 구은수 등반대장은 이곳에 남아 부탄을 들어갔다 나오고 추석 명절 전에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이야기와 전화 연락을 하겠다고 하고 석별의 정을 나누고 몸 조리 잘 하라는 안부와 함께 이곳에서 헤어진다. 12시10분차를 예약했는데 비좁은 산길에 오가는 차 들 때문에 길이 정체되고 마음이 다급해 진다. 시간을 알고 있는 운전기사는 연방 크락션을 눌러 대지만 ... 이러다 기차 못타면 바로 부탄으로 가자고 농담을 하지만 속은 자꾸 시커멓게 타온다. 10분이 채 안 남은 시간에 도착 서둘러 택시비를 지급하고 열차에 오르니 곧바로 출발이다. 다질링 올 때보다 한 등급 낮은 열차인데 시설도 타고 왔던 기차보다 못하고 식사. 음료수 등도 사 먹어야 한다. 시간 때문에 점심도 못 먹었는데 열차에는 식당 칸도 없고 식사는 오후5시를 넘어야 한다고 하고 뭔가 제대로 되는 게 없는 지경이다. 기차역에 정차 할 때를 기다려 빵과 비스켓.음료를 구입 요기를 하고 식사시간을 기다린다. 5시에 된다는 식사가 8시가 넘어서 나온다. 이 기차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별도의 도시락을 준비해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우리 옆칸은 일반 실인데 객실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타고 있고 좌석과 통로의 구분이 안될 정도로 혼잡하다.
저녁 늦게 델리에 도착한다. 그것도 뉴델리가 아닌 올드델리에.... 택시에 분승하여 IMF에 도착하니 자정이 가까워진다. 우리는 장장 33^6시간 여의 기차 여행을 한 셈인데....
완전히 미친 짓이다.
피곤에 지쳐 나무토막 쓰러지듯 쓰러져 잔다.
2002/9/7
조식은 매일 그 타령이다. 가죽 같은 빵에 차. 그리고 계란후라이두알 입에 물린다.
IMF 직원이 출근하자마자 데포시킨 짐을 찾고 이곳에 보관하여 다른 한국원정대들이 사용할 짐(키친셋트2BOX)을 재 포장하여 IMF 직원에게 확인 후 다시 창고에 넣고 다른 한국대의 이용시 편지나 팩스 연락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항공사의 전화를 해 한국인 직원을 찾으나 부재중이고 핀토를 통해 예약 확인을 하니 우리대원들의 티켓 모두가 확정이 안된 상태에서 웨이팅으로 공항에 나와 보라는 항공사 직원에 말에 희망을 걸다. 대원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나와 최성오 대원 그리고 통역관 핀투를 대동하여 기념품을 사러 돌아다니지만 마땅한 게 없다.
눈에 차는 것은 비싸고 ....
산에서도 날씨 때문에 사진도 자신이 없는데.....
우릴 도와 주신 분들에게 빈손으로 갈 수도 없고 ......
어렵게 인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념품을 적은 수량 구매하고 몸으로 때우자는 심보로 마무리한다.
저녁은 인도 식으로 먹고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한다.
2002/9/8
마지막 조식이라 생각하고 꾸역꾸역 먹어치운다. 대원들에게는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고 모든 짐의 무게를 확인 공항에서 난처하지 않도록 조치를 한다. 약간 오버할 것 같아 카고 빽 1개를 뒤에 오는 대원에게 맡기라고 IMF측에 보관하고 완전하게 출발준비를 한다.
저녁 많은 짐으로 인해 택시3대에 분승 공항에 도착 출국장에 들어가기 전에 항공사 출장 사무실에 들러 부킹을 확인하나 역시 확정 상태는 아니고 가다리란다. 따로 떨어져 먼저 가는 대원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단은 출국장에 들어가며 통역관인 핀투에게 12시까지 기다리다 우리가 안나오면 한국에 전화를 해 귀국을 전해달라고 하고 밀고 들어가 X-레이로 짐을 검색하고 항공사 부스에서 기다린다. 우리가 타고 가야할 비행기에 웬 사람이 그리 많은지 점점 다급해진다.
10시45분 드디어 짐을 넣으라고 해 짐을 올리니 짐이 많다고 짜증을 부리며 총 무게를 계산하기에 한국에서 받은 추가 짐 확인서를 보여주니 추가 요금 없이 짐을 받아준다.
핀투에게 추가짐 확인서는 뒤에 오는 대원에게 전해달라고 건네주고 한국으로 꼭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출국 심사대를 통과 세관에 도착하니 대원들이 얼굴을 울그락 불그락 거리며 씩씩대고 있어 이유를 물으리 모든 짐을 확인하고 세금이야기에 한다기에 IMF에서 만들어준 서류를 제출하니 무사 통과되었다.
면세점에 들러 구경할 틈도 없이 공항 직원의 안내에 의해 정신 없이 비행기에 오르니 만석이다. 그래도 국적기를 타니 맘이 놓인다. 이륙 후 연방 맥주를 달래 먹고 눈을 붙인다. 눈을 뜨면 한국일 것이다.
2002/9/9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기내식이 조식으로 제공되어 먹는다. 국적기 인 데도 식사가 인도식 이어서 대원들이 먹는 게 시원치 않다. 얼마 안 있어 비행기는 대한민국의 영공에 들어가고 곧 인천공항에 착륙하겠다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과연 핀투가 제대로 연락을 해 놓았어야하는데 연락이 안되면 이 많은 짐을 가지고 난감하겠다는 생각에 걱정이 된다.
그러나 걱정은 기후에 불과 하고 많은 구조대 대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인천공항에서 여러 대의 차량에 분승 곧바로 상계동으로 집결 늦은 점심을 먹고 헤어지고 내일 있을 모임에 꼭 나오라는 약속과 함께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간다.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서울특별시 산악조난구조대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