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온라인을 아우르는 패션디렉터 이현웅 대표
CEO 이현웅
- 1992년 성균관대 의상학과 수석 입학
- 1997년 천리안 패션 홈페이지 우수상 수상
- 1992년∼1998년 4년 장학생으로 의상학과 졸업/EBS 패션 유망주 선정/패션쇼크 설립
- 1999∼2000년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 ‘디펄스’ 런칭 참여/≪섬유저널≫ 선정 패션계 10대 유망주
- 2001∼2004년 패션 전문 사이트 ‘패션공작소www.firstview.co.kr’ 오픈/패션&엔터테인먼트 웹 프로젝트 참여
- 2004년 스포츠 서울 선정 코리아 베스트 웹어워드 대상 수상
“사이트에 제 이력을 올린 건 운영자가 이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회사를 소개하는 데 오너를 소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있기도 했고요.”
패션쇼크 사이트의 about에 소개된 이현웅(35) 대표이사의 프로필을 살펴보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보통 쇼핑몰 창업자가 가지는 이력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사이트에 기재된 이력은 주로 패션에 관련된 것들이지만 사실 이현웅 이사는 웹사이트 제작에도 다양한 경력이 있었다. 대학 시절 홈페이지 경진 대회에서 입상한 것은 물론 이후에도 업체나 개인(주로 연예인)의 홈페이지를 제작해왔다.
“홈페이지 제작을 직업으로 삼은 것은 아니구요. 대학 시절부터 의뢰가 들어오는 대로 틈틈이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80년대, 초등학생이었던 이현웅 대표의 집에는 이미 컴퓨터가 있었다. 그래서 컴퓨터를 이용한 여러 가지 일들은 그에겐 취미 생활과 같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프로그램을 짜고 게임을 만들었을 정도였다니 그의 컴퓨터 실력을 알 만하다. 컴퓨터는 너무도 익숙한 생활과 같았다.
그는 또한 유독 패션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독특한 스타일을 즐겼다고 한다. 상당히 튀는 패션스타일이었다는데 지금의 이현웅 이사의 모습을 보면 상상이 안 간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넉넉한 검은색 재킷에 검정 바지 차림이었고 맑은 얼굴색에 굉장히 단정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정돈된 스타일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다듬어진 것이라고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컴퓨터는 그냥 생활의 일부였고, 패션은 그에게 하나의 도전이자 목표였다는 것이다.
“패션에 대해서는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더라구요. 그러다가 패션 회사 경영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상학과를 전공으로 택한 것도 패션 회사를 경영해 보고 싶은 꿈 때문이었다.
그가 패션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시절 천리안 ‘패션 라이프’ 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다. 그 동호회는 패션에 관심 있는 학생과 패션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의 모임으로 패션에 대한 비전과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홈페이지 경진 대회에서 입상한 것도 이때다. 또 대학 4학년 때는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 ‘디펄스’의 런칭에 참여해서 약 2년간 디자이너와 마케터로서 경험을 쌓게 된다. 이때의 경험은 패션쇼크를 창업하고 운영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패션에서 판매를 위한 마케팅은 쇼핑몰을 구축하고 판매를 위한 루트를 만들어가는 작업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이처럼 화려한 이력을 지닌 이현웅 대표가 온라인 명품의류 시장에 뛰어든 이유가 뭘까? 성공한 쇼핑몰 운영자들을 만나면서 창업의 이유를 물어보면 주로 ‘옷에 관심이 있어서’, ‘본능적인 패션 감각이 있어서’ 등의 대답을 하였다. 하지만 옷을 좋아하거나 패션 감각이 있다고 해서 이것이 반드시 쇼핑몰 창업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와 같은 패션 관련 직종에 종사할 수도 있지 않은가. 더구나 이 대표는 이미 국내의 의류업체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한 이력도 있고, 자신이 원한다면 충분히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또 명품 쇼핑몰에서는 다른 패션쇼핑몰처럼 코디를 제안하지도 않는다. 단지 시장성 있는 명품 브랜드를 판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제가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있었는데 패션 하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무시하고 인터넷을 몰랐어요. 디자이너들이 인터넷을 안 했거든요. 펜으로만 그림을 그리고. 하지만 저는 직감적으로 앞으로는 패션도 인터넷으로 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패션 포털사이트를 기획했죠.”
이미 컴퓨터와 패션 양 분야를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그에게는 패션과 인터넷의 접목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미래였다. 1998년, 패션쇼크는 수익성은 배제한 채 패션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순수한 패션 포털사이트로 기획, 제작되었다. ‘패션쇼크’라는 이름 역시 ‘패션정보를 전하는 포털사이트로서 뭔가 쇼킹한 요소를 많이 보여주고 싶어서’ 만들었던 것. 명품 쇼핑몰은 그런 포털사이트의 부수적인 카테고리로 1999년부터 올려졌다. 디자이너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 명품을 소개하면서 그 판매까지 겸한 셈이다. 마침 당시에는 형님이 명품의류를 수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명품 쇼핑몰로의 접근은 더욱 쉬웠다.
“저도 물론 품질 좋은 명품을 사서 오래 입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형님은 어려서부터 명품족이었어요. 명품을 즐겼다고 할까요? 그런 형님을 보면서 ‘명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이렇겠구나, 이런 사람들한테 판매하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시험 삼아 구성하고 올려둔 명품 쇼핑몰에서 실제로 제품이 판매된 것은 이현웅 대표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당시에는 온라인으로 명품뿐만 아니라 의류를 판매하는 시장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시점이었고 오프라인상에서 명품을 판매하는 루트도 대형 백화점이나 멀티숍 정도였다. 그런데 상품을 올린 후 약 3주 후에 첫 판매가 이루어지고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3개월 만에 올려두었던 제품이 모두 팔려나간 것이다. 그는 당시 상품이 지갑 200종 정도에 넥타이와 의류 몇 점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때 이 대표는 놀라움과 함께 ‘아, 사람들이 온라인상으로도 명품을 구매하기를 원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성을 바탕으로 2000년에는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패션 포털사이트를 대신해 명품 쇼핑몰 패션쇼크를 운영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 패션의류를 공부하면서 항상 생각했던 부분이 제품에 대한 판매였어요. 내가 직접 디자인한 옷을 팔 생각을 하다가 나중에는 정말 잘 만들어진 제품을 내가 팔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인드가 바뀐 거죠. 잘 만들어진 제품에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있었고, 그러니까 저의 명품 쇼핑몰 운영은 이상할 게 없었어요. 명품과 창의적인 디자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거든요. 단지 초기에는 패션 정보가 주가 되고 부수적으로 패션쇼핑몰이 운영하였는데 지금은 쇼핑몰이 주가 되어서 아쉬울 뿐이에요. 하지만 지금 사이트 개편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앞으로 개선될 겁니다.”
패션에 관한 포털 정보 사이트를 겨냥했으나 결국 쇼핑몰로 바뀐 패션쇼크의 사례는 지난 1999년~2000년 사이의 인터넷 붐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선호되었던 비즈니스 모델은 패션쇼크와 같은 포털 정보 사이트였다. 패션쇼크는 영리 목적 없는 사이트를 지향했지만, 대개 포털 사이트들은 정보를 제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해서 수익을 창출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들은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들은 배너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으려 했지만, 광고주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형성된 커뮤니티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욕구는 계속 변화하는데 거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딴지일보www.ddanzi.com나 아이러브스쿨www.iloveschool.co.kr같이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이트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원 수만 많고 활동은 없는 유령 사이트로 죽어갔다.
이러한 흐름을 볼 때, 이현웅 대표의 선택은 적절했던 것 같다. 물론 이현웅 대표 본인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현웅 대표는 패션쇼크에 찾아온 고객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읽었고 그에 따라 발 빠르게 대응한 셈이다.
이현웅 이사의 초기 창업비용은 1천만 원. 사이트 디자인은 물론 본인이 직접 했고 당시 포털사이트로 기획을 하면서 비교적 용량이 큰 서버를 월 3만 9000원의 호스팅 비용으로 이용했다. 나머지는 사입비. 명품이라 사입비용이 많이 들어야 했지만 명품 수입 회사를 하던 형님의 도움으로 비용 부담 없이 제품 조달이 가능했다. 일단은 외상으로 물건을 받고 판매대금으로 사후 결제를 했던 것이다.
다양한 상품 구색, 30% 저렴한 가격
패션쇼크의 브랜드 구성은 명품 브랜드 70%와 컬렉션을 열고 인지도가 생긴 신규 디자이너 브랜드 30%다. 디자이너 브랜드는 다소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물론 팔기에는 명품 브랜드가 좋지만 사이트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는 신규 디자이너 브랜드가 좋다는 것이다. 신규 디자이너 브랜드를 구성하면 트렌디한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어 사이트의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 이는 패션 포털사이트를 구상하던 디자이너로서의 접근이 함께 결합된 마인드다.
실제 구매력을 가지는 주 고객층은 20~30대이고 사이트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 많다. 따라서 이러한 브랜드 구성은 패션쇼크 고객층의 성향에 부합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40대와 50대의 구매층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성별로는 남녀 비율이 55:45 정도로 남자가 약간 많다. 2년 전만 해도 카드 결제를 잘 몰라서 오는 문의전화가 많았지만 이제는 인터넷에 익숙해져서인지 문의는 많이 줄었다. 현재 백화점에서만 구매하던 장년층이 가격비교를 많이 하면서 쇼핑몰로 유입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미시의류 시장에서 40~60대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 분화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명품을 구매하시는 분들도 사치하는 분들이라기보다는 합리적인 구매를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다른 의류들과 마찬가지로 가격비교를 많이 하세요. 백화점에 가서 보고 인터넷으로도 보고. 명품이니까 가품 문제가 많잖아요. 그래서 가격비교를 해보시고 가격이 싼 이유를 주로 문의하시죠. 저희는 백화점보다 보통 30%는 기본적으로 싸요. 30%가 저렴해지면 면세점 가격이 나오거든요. 직접 외국에서 바잉을 하고 쇼핑몰을 운영하기 위한 적정 마진을 붙인 가격인데, 지금 저희가 판매하는 가격이 정상적인 가격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백화점은 거품이 많습니다.”
결국은 오프라인보다 더 합리적인 가격이 고객들이 온라인에서 명품을 구매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리고 백화점은 구매력이 가장 큰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명품을 중심으로 구색을 갖춰 놓고 있기 때문에, 백화점에서는 볼 수 없는 20∼30대들이 원하는 다양한 제품 구색을 갖춘 인터넷 쇼핑몰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카테고리를 정리할 때 브랜드 중심으로 구성된 것도 명품 쇼핑몰 패션쇼크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쇼핑몰들의 카테고리 구성은 가방, 신발처럼 아이템별로 이루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명품은 고객들이 먼저 떠올리는 것이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명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은 ‘오늘은 구찌에서 뭘 사고 싶은데’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 벨트를 생각하더라도 ‘구찌 벨트’를 사고 싶다는 식이다. 이처럼 아이템에 앞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생각하게 되니 브랜드 중심으로 카테고리를 구성하는 것은 명품 쇼핑몰에서 당연하다.
이렇게 구성된 브랜드는 총 70개. 초기에는 구찌와 프라다 등 5개의 브랜드에서 시작했지만 매년 접촉할 수 있는 브랜드를 늘려가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구성된 브랜드 70가지가 모두 판매되는 것은 아니다. 그 중 20개 정도의 브랜드는 제품 수급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상태.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들은 제품 수입 시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어 업데이트가 늦어진다. 부족한 부분은 지속적으로 제품을 발굴해서 채워 나갈 예정이다.
현재 가장 많이 판매되는 브랜드는 발리와 페라가모, 구찌 등이다. 인기 아이템은 스니커즈. 최근 2~3년 사이에 청바지 바람이 불면서 스니커즈가 최고의 매출 품목을 이루게 되었다.
명품의류는 사이즈가 많지 않아서 판매에 한계가 있었다. 이전에는 의류와 잡화의 비율이 2:8 정도였는데, 점차 의류 구매를 원하는 고객이 많아지면서 의류의 비중을 3:7 정도로 늘려가는 상태다.
[매출두배 내쇼핑몰] 시리즈 14
《패션쇼핑몰의 젊은 영웅들2》 e비즈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