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28 부산한살림) 한살림선언과 생명운동 후기

[딴(정종헌)]

  잠이 안 와서 후기를 썼습니다.ㅋ

 1. 사소하지 않은 사소함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슬로건에서 보이듯이, 한살림 협동조합은 개인화되고 상품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역공동체가 관계를 회복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운영되며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감성을 일깨우기 위해 실천하는 협동조합이다. 우리는 이번에 탐방할 대안운동 현장으로 부산한살림을 찾았는데, 이곳은 내가 알기로 한살림운동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가장 애쓰는 곳이라고 한다. 이윤과 경쟁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매커니즘을 누구든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상생의 가치를 우선하려는 생산자와 소비자(조합원)의 노력이 내게 뭉클하게 다가왔다. 부산한살림 사무국장으로 계신 정외숙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자신의 생업이 평화롭고 행복한 일일 수 있다면 정말로 큰 복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한살림에서 일을 하시며 느끼셨던 이야기 중 말씀하신 ‘나락 한 알 속에서도 이웃과 우주를 본다’라는 말이 기억나 글을 적으며 다시 생각해본다. ‘나락 한 알 속에서 발견되는 이웃, 우주’라고 하는 그 거대한 스케일이 사실은 사소한 것이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주는 당연히 사소한 것들도 품은 우주이면서, 우주 속 우리 일상의 작은 일들만큼 중요한 것은 찾아봐야 없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내게, 예전에는 내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게 되고 사소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소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게 되는 일이 생기고 있다. (특히 청년대안활동가교육을 몇 번 받으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야기를 들은 뒤 이렇게 가치가 전도되어버리는 깨달음을 조금 얻었다. 물론 이건 나 혼자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하지만 ‘현실’ 속에서 사소한 것으로부터 가치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90년대에 자살한 프랑스의 영화감독이자 상황주의자였던 기 드보르가 자신의 아포리즘 모음집인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맑스의 <자본>에 등장하는 문구를 차용해 쓴 첫 구절처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삶은 거대하게 집적된 스펙타클(시선이 집중되는 구경거리)이 되어 나타난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이 상품 세계의 빛나는 외양에 사로잡혀서 진정한 삶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상품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대부분 보기에 좋은 것들이다. 결국 잘 보이는 것들만 살아남아 사소하고 별 거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것은 더더욱 보이지 않게 되고 추방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 곁에 남겨진 휘황찬란한 스펙타클의 상품 세계가 스스로 자명하고 자연스러운 듯이 작동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서 주장할 뿐이다. "세상은 원래 이런 거야!"

 이런 스펙타클의 감옥을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우리가 부산한살림 교육장으로 이동하던 중 보게 되었던 어느 ‘스펙타클의 교회’였던 듯하다. 스펙타클은 언제나 스펙타클을 보는 사람을 단순한 구경꾼으로 전락시킨다. 화려한 교회일수록 교인들에게 예수의 삶을 살도록 촉발하거나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실천하도록 권하지 않고 말 그대로 마귀의 소굴인 까닭은 아마도 그런 식의 압도적인 스펙타클이 교인들을 더더욱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건물을 스펙타클화하는 한국의 교회 사업에는 분명 교인을 ‘가축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 쉽게 돈을 갈취해서 축적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선 자기네들의 교조인 예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정신 나간 교회를 지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구자상 선생님이셨던가, 어떤 분이 그 거대한 교회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것이 어떤지 권유해보았는데 그런 말은 잘 들어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태양광 발전으로 자신들의 스펙타클을 망가뜨리기 싫은 것일 것이다. 한 마디로 스펙타클 사회의 기득권을 내려놓기가 싫은 것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스펙타클의 사회가 무엇과 상극인지 알 수 있다. 거대하고 찬란해서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그것에 침범하는 ‘사소하고 하찮은 것', 그 보기 좋은 것에 오물을 튀기는 ‘잡스러운 것’과 결코 양립하지 못하며 이것에 의해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삶을 소외시키는 상품과 소비의 거대한 스펙타클 감옥을 전복할 가능성을 사소한 것들에서 본다. 이 결코 사소하지 않을 사소함은 우리가 나락 한 알 속에 깃들어있는 이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때에 얻어지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2. 유기농산물

 실은 한편으로 나는 ‘유기농 식품’에 대해 예전부터 조금 반감을 가져 왔다. 한살림 등의 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이웃생명에 대한 공감과 관심을 존경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리고 질병이 없고 편한 삶을 추구하려는 일차적인 본능 또한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심하게 말하면 내겐 유기농 먹거리를 찾아 먹는 다수의 유기농산물 소비자들이 아픈 세상에 대해서는 냉소하고 외면하면서 얼른 자기들 몸만 빠져나오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도망가버린다면 세상의 아픔에서 면제받을 수 있기라도 하듯이. 그래서 헛된 망상이지만, 개별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그것은 구원의 길이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 좋은 것만 골라 먹는 사람들이 '세상이 아픈데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 있나'라는 생각도 해봤으면 좋겠다.

 3. 사람

 몇 십 년 뒤에 혹은 백 년 뒤에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모를까, 나는 생각에 있어서는 회의주의자고 사회의 전망에 있어서는 비관주의자다. 그런데 내가 지금 대안적인 삶에 대한 방향성을 잃지 않게 되는 것은 큰 뜻이 있어서도 아니고 사회적 지성이나 공감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좋은 사람들에게 끌리고 그런 사람들이 좋아서인 것 같다.

[채상병]

왈칵 눈물이 나려네요. 이것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보람도 느껴지고요. 한살림 국장님께도 정말 감사하고요.

[정진우]

공감 100% ㅋㅋㅋㅋ, 딴의 회의주의와 비관주의를 바꿔 주고 싶다는 욕심이 드네요 ㅋㅋㅋ 좋은 사람이 되어서 ~

[딴(정종헌)]

네 저의 구원자가 되어주세요ㅎㅎㅎ

[백승호(파도)]

딴 후기를보면 '좋았다' 가 얼마나 잘 표현될수있는지를 생각하게해요

[딴(정종헌)]

제 능력 바깥의 말들을 뱉어버렸으니 이제 그 말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네요. 우씨, 고민은 더 늘어나고.ㅎ

[정우석]

잠이 안오는 밤에 쓴 글 치고는 너무 논리정연한 후기 ㅎㅎㅎ 잘 읽었어요~

[딴(정종헌)]

나중에 다시 읽고 좀 고쳐썼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