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읍성탐방_2023_0610
[ 내용 ]
[시] 동래읍성 북문 앞에서. 이재익
[1] 동래성 지명 역사, 동래성 전투
[2] 북장대의 시간
[3] 북문과 수문장의 인기
[4] 서장대의 시간
[5] 설화 ;
️의적 정봉서의 아내 / ️박권농과 도적 / ️12지 띠 이야기
[6] 장영실 과학동산
[7] 복천동 고분 철기 문화
[8] 팬백숲속 명시 감상
<동래읍성 북문 앞에서>
이 재 익
동래읍성 마안산 북장대에 오르니
임진년 송상현 부사의 충혈(忠血)이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얼비친다
북문 앞에 동래읍성 수축기념 내주축성비가
높이 4.2m 거대한 몸집이 걸어 다닌 얘기를 한다
처음 남문 앞에서 금강공원으로 밀려났다가
마침내 북문 앞 장영실과학동산 옆에 자리 잡고
위대한 선생과 이웃으로 지낸다
신선이 사는 동쪽이란 동래(東萊)
여기 한 관노, 과학 재주 하나로
신분을 초월해 정3품 상호군에 올랐다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아
짐짓 세종대왕 수레를 망가뜨리고
장 80대를 싱긋이 웃으며 맞고
고향으로 돌아오신 분
그분이 바로 신선 아니신가?
독로, 거칠산, 신라, 가야 그 어디메뇨
복천박물관이 짐을지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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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거대한 탑도 걸어 다닌다.
처음 개풍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되돌아 와 경복궁에 있다가 마침내 용산국립박물관 실내에 자리 잡은
고려 후기 경천사10층석탑 이야기.
[1] 동래성 지명과 동래성 전투
️고대 동래 부근에 독로국, 장산국, 거칠산국 등 여러 성읍(부족)국가.
️동래란 동쪽의 신선이 산다는 萊(래)산 이라는 의미다.
️신라 경덕왕때(757) 부터 동래 지명 시작
임진왜란 시 동래성 전투
동래부사 송상현의 충절사
내주축성비
본 자료 제작 이재익 시인
※ 시인은 힘이 세다. 장영실 과학자를 신선으로 만들어 드렸다.
➡️ <동래읍성 북문 앞에서> ( 본 자료 서두에 있는 시)
[2] 북장대의 시간
마안산 북장대
북장대
신선이 마신다는 천년 묵은 더덕엑기스!
[3] 북문 수문장의 인기
동래읍성 북문
북문
북문 수졸 인기좋아
[4] 서장대의 시간
서장대
서장대
서장대
서장대서 거수경례가 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전생에 아마도이 성을 지켰던 장수였을까?
[5] 설화
️의적 정봉서의 아내
️박권농과 도적
️12간지 띠 이야기
️의적 정봉서와 그 아내
의적 정봉서가 잡혀가서 굶어 죽자 아내가 동헌의 하마석을 번쩍들어 대문을 부셔버렀다한다.
박권농의 아들 설화
️술에 취해 모래밭에 자는데 도둑이 옷을 벗겨가려 하었다.
순라꾼에게 이 장면을 들키자 박권농은 도둑을 변명해 주었다.
도둑이 고맙게 생각해서 만덕고개에 돈을 묻어두고 찾아가서 쓰게했다.
️아들이 서동 김씨 처녀에게 구혼해서 나무껍질같은 표피를 벗겨내고 미녀 부인을 얻었다.
쥐가 소 등을 타고 가서 폴짝 먼저 뛰어내려 도착해 띠의 순번이 소보다, 빠르게 되었다.
[6] 장영실 과학동산
세종 때 과학자 장영실 박사
장영실의 업적
◈ 장영실 (蔣英實)
1) 조선초 세종 때 사람이나 그가 어디서 누구의 아들인지? 생몰 연대 미상.
세종실록에는 관노였으며 부는 원나라 때 귀화한 중국인. 어머니는 동래 기생. 아산장씨 족보에는 고려말 전서(典書)를 지낸 5형제 가운데 세번째인 장성휘의 외아들이라고 하였다.
2) 세종의 배려로 중국 유학후 상의원(尙依院 ; 의복, 금은, 보화 관리)별좌로 시작해서 상호군까지 승진.
- 갖가지 천문기구를 만들었고 경상도 채방별감으로 구리와 철의 채광과 제련을 맡기도함.
3) 1442년 세종 24년 뛰어난 공헌에도 불고하고 그가 만든 임금의 수레가 부서지는 바람에 장 80대를 맞고 관직에서 쫓겨났다.
① 자격루(自擊漏 ; 물시계) ; 경회루 부근에서 한밤중 3경에 자격루가 자동으로 북을 세 번치면 그 소리를 듣고 광화문의 북을 세 번치고 종각의 북이 세 번 울렸다.
- 화폐 1만원권의 물시계 모습은 중중떄 것 물통만 5개 남은 것 뿐(국보 229호)
② 측우기 : 1441년 세자(문종)가 고안 장영실이 제작. 통설은 그 용도가 기우제 주술적 샤머니즘적.
* 이태진 교수 주장 ; 강우량을 측정, 풍흉정도를 참작하여 세금부과를 위한 것이다. 만약 주술적이라면 제사의례를 주관하는 예조에서 관장했을 것, 그러나 호조에서 담당했다.
◈ 자격루
- 1434년 세종대왕이 이천, 장영실에게 지시해 만든 물시계 '자격루'는 원래 경회루 남쪽에 있었다. 자격루는 자동시보장치를 갖춘 명실공히 세계 최첨단 물시계였다. 자격루는 2시간마다 한번씩, 하루에 12번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린다. 그리고 밤에는 종소리와 별도로 북과 징을 쳐서 시간을 알려준다. 12시마다 종을 치고 밤에는 북과 징을 치는 것은 서로 혼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12번의 종소리는 자(밤11~1시.쥐), 축(오전1~3시.소), 인(오전3~5시.호랑이), 묘(오전5~7시.토끼), 진(오전7~9시.용), 사(오전9~11시.뱀), 오(오전11시~낮1시.말), 미(오후1~3시.양), 신(오후3~5시.원숭이), 유(오후5~7시.닭), 술(오후7~9시.개), 해(오후9~11시.돼지)시에 울린다.
- 그런데 종이 한번씩만 울리니 그게 자시인지 축시인지 어떻게 알 것인가. 그래서 자시에는 쥐인형, 축시에는 소인형, 인시에는 호랑이 인형이 자격루 시보장치 밖으로 튀어나오도록 만들어 놓았다.
- 밤시간은 더욱 세밀하고 정확하다. 5등분하여 초경(初更.대략 오후7시) 2경(오후9시) 3경(오후11시) 4경(새벽1시) 5경(새벽3시)마다 경의 수에 따라 북을 치도록 만들어 놓았다. 즉 초경엔 한번, 2경엔 두번. 또한 각각의 경을 5등분(5점), 그때마다 징을 울려 알리도록 했다.
- 해가 졌으니 한양 도성의 성문을 닫겠다는 인정(人定 .통행금지. 1경 3점)이나 해 뜨기 전에 성문을 연다는 파루(罷漏.5경 3점)도 자격루의 시보에 의해 이뤄졌다.
- 자격루의 원리를 기록한 '세종실록'의 한대목. "숨었다가 때를 맞춰 번갈라 올라오는 인형들… 조금도 틀림이 없으니… 귀신이 하는 것 같았다."
- 이러한 정확성은 물시계의 기본인 물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이를 통해 제 때에 인형을 쳐올리는 완벽한 자동제어장치에서 비롯한다. (남문현 건국대 교수, 13년동안 연구하여 자격루의 작동 원리를 밝혀냄)
"커다란 물항아리에 담겨 있던 물이 우선수관을 거쳐 또 다른 물항아리로 떨어진다. 물은 서서히 위로 차오르고 미리 준비된 잣대가 함께 따라 오른다. 그 과정에서 항아리벽에 대기하고 있는 작은 구리구슬을 2시간마다 움직여 시보장치기구 안으로 밀어넣고 그것은 다시 더 큰 쇠구슬을 움직인다. 그리고 이것이 쥐인형 소인형을 강하게 내리치면 인형이 밖으로 튀어 나온다."
- 세종 당시의 자격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덕수궁에 전시 중인 것은 16세기에 다시 만든 자격루 중 물항아리 몇 개(국보229호). 그것이 바로 1만원권에 들어있는 물시계의 모습이다.
키 8척 5치
키 8척 3치
️이 기구 '수표' 라고 한다.
️설치 된 곳은 청계천
️목적은 청계천 물의 높이 측정
️처음 장영실이 만들었으나. 없어지고 현재 모습은 성종때 개량된 모습이다. 여기 것은 물론 모조품.
키 8척 6치
※ 시인은 힘이 세다. 장영실 과학자를 신선으로 만들어 드렸다.
➡️ 우측 이재익 시인 <동래읍성 북문 앞에서> ( 본 자료 서두에 있는 시)
[7] 복천고분 철기문화
철갑주 입은 장수와 말
[8] 편백숲속 명시 감상
장수같이 당당히 마안산에 올랐다가 결국 나그네 되어 돌아간다. 인생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