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뜸 동시 시술'에 관한 검토
≪內經≫에 침과 뜸의 병용치료를 금하고 있다(☞ http://cafe.naver.com/chimttm/122). 구당 김남수 선생님은 침과 뜸의 동시 시술로 잘 알려져 있다. 침뜸 동시 시술을 구당 선생님은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에 관해 견해를 밝힌 구당 선생님의 육성을 여기에 옮긴다. 지난 2004년 9월 금강산에서 열렸던 제2회 통일침뜸학술토론회에서 발표된 것이다.
김남수 / 침구사, 뜸사랑 회장 겸 정통침뜸연구소 이사장
서 론
침과 뜸을 동시 시술해도 되는가?
내경에서 '침(鍼)하면 뜸하지 못하고 뜸하면 침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위의 글은 <동의보감:침구편>에 나온다. 침과 뜸은 동시에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3천년 전 옛 사람들이 쓴 글을 말한 것이다. 당시의 보건위생환경을 감안하면 '뜸과 침을 같이 하면 안 된다'고 한 것은 분명히 맞는 이야기다.
옛날에는 침 만드는 사람이 귀해 가는 침을 구하기 힘들었다. 침 만드는 사람이 귀했던 이유는 야금술이 부족한 면도 있었지만 침을 만들면 재수가 없다는 미신도 있어서 침 만들기를 기피한 문화적인 배경도 있었다. 손이 들어 있어 여행을 가려해도 손 없는 날로 가고 이사를 하려해도 손 없는 날을 택했다. 이렇게 손 없는 날을 찾아 일년 중 하루만 침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침 만드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몇 안되는 손 없는 날을 골라 금은세공업자가 침을 만들었다. 일년에 겨우 몇 개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침이 매우 귀했다. 그러다 보니 가는 침이 없어 할 수 없이 대침을 썼다. 대침을 쓸 때는 환자보다 침놓는 술자가 더 무서워했다. 잘못 찌르면 복막염도 되고 병신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릎 아래, 팔꿈치 아래에만 자침했다. 그것도 잘못하면 신경을 손상시켜 손가락 발가락을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침놓는 사람도 침 한대만 놓아도 힘이 쭉 빠지곤 했었다. 맞는 사람보다 놓는 사람이 더 무서워해 침시술을 기피했다.
뜸은 큰 뜸을 떴다. 과거에 뜸은 크게 떠야 효과 있는 줄 알았다. 뜸은 쑥 성분이 효과를 나타내는 줄 알고 크게 뜨면 더 좋으려니 하여 무조건 크게만 떴다. 뜸을 크게 뜨면 몸살을 앓는다. 그것이 사흘에서 일주일을 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침과 뜸을 같이 하면 환자가 매우 힘들어 한다. 그래서 침뜸을 같이 하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과거와 현대는 사회생활 방식과 문화가 다르다. 실제로 청나라 때 침구종합서라고 할 수 있는 <침구대성> 저자 양계주는 "의료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침을 써야할 땐 침을 쓰고 뜸을 떠야할 때 뜸을 뜨고 침뜸을 동시에 써야 할 때 동시에 사용하면 된다"고 한 바 있다.
현대에는 발달된 제철기술로 값싸고 질 좋은 스테인리스 제품의 호침이 생산되고 있다. 얇은 호침이라 침을 놓아도 살이 곪거나 손상되는 일은 없다.
뜸 또한 요즈음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추알만큼 크게 뜨는 것이 아니라 쌀알 반톨 크기만큼 작게 뜬다. 다시 말해 필자가 쓰는 침은 머리카락 굵기 만큼 얇은 침이고 내가 뜨는 뜸은 쌀알 반톨 만한 작은 뜸이다.
필자는 평생 이렇게 얇은 침과 작은 뜸으로 하는 '침뜸 동시시술'을 해왔고 많은 환자를 치료하여 왔다. 물론 70년의 임상경험 중에 '침뜸 동시시술'로 탈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침과 뜸은 동시에 하면 안 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에 젖어 일부 사람들은 '침뜸 동시시술'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다.
온고이지신이라고 과거에만 집착하여 미래를 지향하는 우리의 발목을 수시로 붙잡는 '뒤돌아보기'식 사상이 되어선 안 된다. 역사를 통해서 증명된 인간의 삶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한 단계 발전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옛 것만을 무조건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것을 아는데 힘써야 한다. 당시 침과 뜸을 동시 시술하면 안 된다고 했을 때는 그만한 환경적 문화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침뜸의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치료함에 있어서 침과 뜸을 동시에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과거의 침과 현대의 침은 그 재료와 성능이 다르다. 철을 제련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침을 가늘고 강하게 만들어 잘 끊어지지 않고 녹이 나지도 않으며 균의 침입을 최소화 하게 소독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 염증이 생기는 부작용도 피할 수 있다.
뜸을 만드는 기술도 발달하여 3년 이상 말린 쑥을 잘 정제하여 일정한 온도로 연소가 될 수 있게 하는 것도 과거보다 발달하였다. 과거에 침과 뜸을 병행하지 말 것을 권한 이유의 대부분은 같이하는 치료의 효과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부작용을 염려하여 그리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침과 뜸을 병행하여 치료를 해온 경험으로 보면 부작용은 없고 치료의 효과가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본 론
우리 몸의 병은 기의 병과 혈의 병이 확연하게 떨어져 존재하지 않기에 기와 혈을 같이 치료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좋다고 할 수 있다. "침은 기를 돌리고 뜸은 혈을 돌린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기와 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행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 작용기전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으나 기전을 알지 못한다 하여 틀린 치료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존재의 본질은 있는데 우리가 아직 어리석어 그것을 인식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우리 몸의 정보를 변화시켜 몸 안으로 어떤 정보를 전할 수 있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기계적 자극, 전기적 자극, 화학적 자극은 활동전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여기에서 침은 기계적 자극과 전기적 자극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것 같고, 쑥뜸은 기계적 자극과 화학적 자극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것 같다. 침과 뜸을 같이 하는 치료는 상당히 강력한 정보를 생산하리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환자들도 침과 뜸 두 가지 중 하나만 하는 것보다 침과 뜸을 같이 하는 것이 훨씬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자극이 강한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가늘고 약한 자극이 어떤 질환에서는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일본에서 시행한 침에 대한 실험 중에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침법과 부교감 신경을 자극하는 침법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그 작용의 성격상 교감신경의 활동은 양의 성격에 가깝고 부교감 신경의 작용은 음의 성격에 가깝다. 양을 조절하는 것은 일면 강해보이고 빨라 보이나 모든 증상에 적용이 되지는 않는다. 음을 조절하는 것이 때에 따라서는 몸의 자연 치유능력에 더 기대는 것일 수 있다. 침을 강자극하는 것은 교감신경을 항진시키고 피하에 살짝 유침하는 것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것도 일관된 방향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경혈을 잘 조절하면 이런 방향으로 몸의 현상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침과 뜸을 같이할 경우에 침은 기를 돌려 양을 도와주고 뜸은 혈을 돌려 음을 도와준다. 이처럼 음과 양을 같이 다스리는 방법이 보편적인 질환에서는 어느 한쪽만 하는 것보다 더 균형 잡힌 방법이라 생각된다.
결 론
호침과 작은 뜸(반미립대 혹은 미립대)을 같이하는 방법은 평생의 임상경험을 통해 '효과가 매우 탁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가는 호침과 작은 뜸의 동시시술을 해도 되고, 그 치료효과가 침이나 뜸 한 가지만 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높다는 것이 나의 오래된 소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