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맞춰서 터미널 안쪽으로 들어왔건만 시간이 한참 지나도 해당 버스는 오지 않는다.
뭐 한두번 있는 일 아니니까 하면서도 저으기 밤 시간 꾸스코에 도착하여 숙소를 잡아야 하는 마음에 지연될 수록 초조해진다.
근 30여분이 지나서 매연을 가득 뒤에 달고 오는 차가 보인다. 계속 시동을 걸어 거무튀튀한 연기를 뿜어내더니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미심쩍어 이 차가 꾸스코행 맞냐고 물어보니 아까까지 계속 기다리리던 아줌마는 그제야 우리 존재가 생각난 듯 빨리 타라고 한다. 그럼 물어보지 않았으면 그냥 출발할 생각이었나??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확보된 좌석에 앉았다.
통상 우리는 가능하면 좋은 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1-4번을 선호하는데 이곳 사람들 생각은 사고가 나면 위험하다고 중간좌석을 더 찾는다고 하는데 그런 연유에서인지 원하는 좌석을 쉽게 끊을 수 있었다.
차 소리가 영 시원찮다. 옆으로 살짝 내다보니 매연도 여기 기준치가 얼마인지-아예 없는 것 같다-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진즉 폐차감 같은데 말이다.
우리는 3,4번에 앉았는데 1,2번 좌석은 혼자 여행을 다니는 듯한 아가씨가 책을 펼치며 보고 있다.
흘깃 살펴보니 '다빈치 코드'다. 베스트 셀러는 잘보지도 않고 보아도 한참 바람이 잠든후에나 펼쳐보는 게 습관이 된 나지만 예서 책읽는 사람을 보는 것이 반갑다.
1시간여 달렸을까. 검문이 시작된다.
"아니, 난 이나라 경찰들 이해를 못하겠네. 경제도 원활하지 않은데 무슨 그리 조사할 게 많다고 승객들 짐을 맨날 검사하고 뒤지면 장산들 제대로 하겠나."
박교수님이 어차피 누가 알아듣지도 못하니 생각난대로 말을 뱉는다. 국경을 통과하면서야 사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국내에서도 이런 검문과 짐검사는 자주 경험하는 낯익은 남미의 풍경이었다.
듣고보니 그렇다. 우리같은 이방인 여행객은 이럴 땐 열외가 되어 편리하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이 된통걸렸는지 경찰의 호통소리에 쩔쩔매며 농산물같은 짐을 내리고 있다.
올 봄에 헝가리에서 루마니아로 넘어갈 때 공안들이 올라오자 내 어머니 연세뻘 되는 분들이 젊은 제복에 굽실거리며 몰래 돈을 쥐어주는 영상이 떠올라 씁슬해진다.
칠레에서도 한밤중에 국경도 아닌 데서 짐 검사를 당한 불쾌한 기억때문인지 박교수님은 계속 못마땅한가보다.
우리 버스를 한쪽으로 열외를 시키고 승객들을 내리라 하더니 다른 버스들은 요식상 검문을 하고 바로바로 통과를 시키는 것이 무언가 문제가 있는가 보다.
아까 우리를 안 태우고 그냥 가려던 아주머니가 휴대폰으로 계속 통화를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니 저으기 또 불안해진다.
"헤이, 세뇨리따. 이 버스 무슨 문제가 있나요?"
"글쎄요. 나도 모르겠어요. 근데 좀 이상하네요. 다른 차들은 다 통과하는데..."
그러다 경찰이 다른 버스를 세우고 버스회사 아줌마도 재빨리 달려가 무어라고 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는데 그 상대편 버스는 목소리를 높이더니 그냥 발차를 한다.
이어 다른 버스가 오자 아까와 똑 같은 행동이 연출된다.
"버스가 고장나서 더 못간다네요. 저기 버스에 올라타야되요."
한번 질문을 나눈 사이라서 책임감이 발동하였는지 아가씨는-좀 노티는 나는데-나보고 짐을 다 가지고 내리란다.
불안불안 하더니 결국은 이렇게 되는가보다.
"선생님, 아니 여기에서 왜 타세요?"
내가 사는 도시 아레끼빠 행 버스였는데 아까 헤어진 한국청년이 우리를 보자 반가워 하며 의아히 물어온다.
"우린 만날 인연이 있나봅니다."
갑자기 승객이 늘어난 차안에서 청년이 농담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한다.
그렇게되어 꾸스코와 아레끼빠로 갈라지는 훌리아까 라는 갈림길 같은 도시에 오후 3시가 되어 버스는 우리를 내려주고 청년을 태운 채 아레끼빠로 먼저 떠난다.
중간 정차 지점 대합실에서 아줌마는 이제 휴대폰도 밧데리가 다 닳았는지 사무실 전화까지 이용하여 계속 본사와 연락을 취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안스러울 정도다.
이곳 승객들은 참을성도 좋다. 많지도 않은 사람들이지만 항의도 하지 않고 계속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세뇨르, 제발 부탁입니다. 불편하지만 이따 저녁 버스를 탈 수 없나요?"
그 아주머니 먼저 다른 승객들보고 사정을 하더니 이번에 나에게 와서 말하는데 대충 감을 잡고 들은 말이 이것이다.
"왜요? 곧 바로 버스 연결 안되나요?"
이런 버스가 바로 연계되지 않고 밤중에나 자기 회사 차가 온대나. 이러니 버스회사도 신중하게 골라야지 무작정 차 시간 맞다고 탄 우리가 잘못인지...
몇 팀 안남은 사람중 메스티조 아내와 흑인남자 커플은 돈을 환불 받아서 그냥 푸노로 돌아가겠다고 나선다.
환불이랬자 더 돌려받는 것도 아니고 액면 그대로지만 시간이 어그러져 어차피 밤차를 기다릴 수 없댄다.
나머지 사람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작은 경유지 공간에 남은 이는 우리와 옆자리에 앉았던 아가씨뿐이다.
처음에는 3개월 넘은 스페인어 치고 말을 잘한다고 칭찬해주던 이 아가씨, 의례적인 대화 말고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하려하자 많이 막히는지 나보고 슬쩍 핀잔 비슷하게 더 공부해야겠다는 식으로 말한다.
돌아다니면서 느끼지만 고등교육까지 받은 사람들이 이렇게 영어가 안통할 까 싶은 절망감을 남미에서는 종종 경험할 수 있다.
이 아가씨와는 스페인어 단어만 나열해서 겨우 의사소통을 하는데 자기 직업을 말하다 간호사라는 단어만 영어로 말해준다.
박교수님 그 와중에 잠이 오는지 한켠에서 쿨쿨 주무시고 이 아가씨에게 어디 사냐니 꾸스코에 사는데 휴가차-나중에 고백하기는 실직이 된 상태라 갑갑해서 바람쐬려 왔다고-티티카카에 들렀고 마추피추에는 고등학생땐가 수학여행처럼 가본 것이 가장 최근이란다.
나이는 30대에 막 접어들었는데 여기 나이로는 정말 노처녀다.
우리 대화를 귀담아 듣던 대합실의 사무원 아주머니가 마추피추 여행사를 소개하겠다며 친절히 전화를 걸어주니 여행사에서 전화를 받은 이는 곧바로 영어를 하는 직원을 바꿔준다.
"엥, 140에서 180(14만원에서 18만원)달러요? 우, 제 계산과 달라요."
"헤이, 아미고, 비싼게 아니고 이리저리 옵션 딸려서 그래요. 잠깐 내 말 들어봐요."
우리 대화를 감으로 알아들었는지 이 아주머니 전화를 뺏어서 상대방에게 안되겠다면서 끊는다.
"너무 비싸요."
짧게 나에게 던지는 한마디.
자기들은 그정도일줄 상상을 못했다고 한다.
"가만 기다려봐요. 내 언니가 여행사를 하거든."
그때사 아가씨가 나서서 피시방에 들르자며 여러정보를 보더니 언니와 전화를 연결해준다.
동생과 달리 언니는 거의 미국인 수준의 영어발음과 막힘없이 자기 의사를 개진한다. 하긴 10년 넘게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일을 해왔다니 당연할 거지만 말이다.
어제부로 기존 20달러(2만원) 입장료가 2만5천원으로 올랐다는 정보도 들었고 어차피 버스는 내일 새벽에 도착하니 우리가 알아서 하는 게 타당할 것 같아 다음 기회에 당신 신세를 지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외국인과 대화라는게 직접 맞대고 하면 몸이 되었건 필담이 되었건 의사소통은 되지만 역시 전화는 한계에 직면한다.
"애들와! 이리와봐. 몇학년들이니?"
아가씨와 다시 대합실로 들어서자 계속 주변에서 얼쩡거리던 아이들이 더 늘어나 있어 말을 걸자 기다리기라도 한 듯 녀석들 우르르 주변에 몰린다.
죄다 고만고만 한 아이들이라 초등생들이고 한 여자아이만 중학생이다.
"아저씨가 말이야, 꼬레아노인데 나랑 게임할까?"
그때부터 369, 007빵,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아이들이라 그런지 역시 감각은 빠르다.
하지만 두 형제애들은 항상 숫자에서 헤매고 계속 다른 아이들에게 뭇매를 당한다.
갑자기 대합실 안은 아이들과 철없이 노는 나, 거기에 덩달아 합류한 페루비아나 세뇨리따의 소리까지 해서 활기를 띄었는지 다른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도 기웃거리며 우리를 쳐다본다.
가위바위보를 일본식 용어로 알고 있길래 끝까지 한국말로 교정을 해주었다. 나중에라도 애들끼리 놀 때 자연스레 태권도의 구호처럼 정착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끌리에라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가씨랑 박교수님, 나 셋이서 저녁 7시가 넘어 식사를 하러 한 집에 들렀다. 가장 자주 접하는 닭고기 뾰오에 질러 나가려고 하는데 식당에서 밥을 먹던 추레한 남자가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치노'하며 악센트를 심하게 내지른다.
자기한테 밥을 사달라 했나, 돈을 달라고 했나 하는 불쾌감이 뻗었지만 응대를 하지 않고 나왔다.
결국 찾다찾다 다시 그집에 들르니 그 적대감을 지닌 사람은 나가고 없다.
그니는 우리보다 1시간 일찍 저녁 8시대 차를 탄다고 한다.
몰랐는데 표를 끊을 때 가격이 우리랑 달라 8시대 차를 탄다는 것이다. 얼마나 더 얹으면 같이 차를 타고 갈 수 있느냐며 물으니 5솔(1600원정도)만 더주면 함께 차를 탈 수 있다고 해 내가 계산하겠다고 하였다.
속으로 안스러움도 들었고 기분 안상하게 마지막까지 우리를 안내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9시15분 차는 역시나 30분 늦어 9시 45분께 우리를 싣고 출발하였다.
끝까지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들과 안녕을 고하는데 땟국물 질질 흐르는 아이들이었지만 구김없는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심야차는 낮과 달리 2층버스인데 우리는 아랫층 몇자리 되지 않은 곳에 탔고 그나마 좌석이 여유가 있었는지 짖궂은 박교수님 잘해봐라는 식으로 지정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나보고 뒷 좌석으로 가라 한다.
졸지에 작은 담요를 이방의 처녀와 함께 덮고 가는 밤버스 여정이 되었다.
진짜 그때쯤 졸려서 다 이야기를 못나누었지만 여기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 싶었는데 특이하게 조상이 네델란드계라고 한다. 그리고 집에는 양자로 들인 동생들이 몇명 있다고.
다만 나중 말들이 마음에 걸린다.
"부모님들이 나를 안좋아해요."
"....."
조금 생각을 하다 한 마디 해주었다.
"이사람아. 세상 부모들은 다 똑 같아요."
근데 1층에 두분의 아주머니가 더 있었는데 이 이방인 청년과 자국의 처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었나보다.
갑자기 '그럼, 그럼' 하는 맞장구가 튀나오는 것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