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둠이 두 어둠의 혀일 줄이야,
작은 설움이 큰 설움의 깊은 눈일 줄이야,
얇은 한숨이 두꺼운 한숨의 피일 줄이야,
한 무덤이 두 무덤의 나부끼는 속눈썹일 줄이야,
고통구름 하나 산길, 무덤 옆으로 걸어간다
아야아―
짧은 눈물이 긴 눈물의
속가슴일 줄이야!
※<오늘의 세 개의 치료>
1) 여기 오신 것으로서 당신은 이미 공동체 참여에서 오는 '안도감'을 얻으셨습니다.
2) 시 소리내어 읽음의 반복·합창으로서 당신은 이미 '의식의 휴식'을 얻으셨습니다.
3) '시의 노래'를 들음으로써 당신은 새로운 이미지를 길어 올리셨습니다. '새로운 세계에의 눈뜸'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 탁영완 편
낭송시
안개(2)
공허를 가다
그림 속의 시(1)
풍경(4)
릴스에 관한(2)
생선뼈 매운탕
성주사 가는 길
/탁영완 시인은 1971년 동아대 국문학과 졸업하고 '86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동아문학상(69), 부산여성문학상 수상(97) 시집으로 『보로메 군도를 떠돌던 안개』등 7권 출간.
현재 <국제 PEN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시협회원, 현대시협중앙위원, 부산시협부회장, 부산여류문인협회 부회장
/안개(2)
한번도 아득한 거리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
허공에 다리 놓아
점점이 그리움 찍어 가면
어느 듯 깊은 골
그대 가슴께 기어오르고
암벽이듯 찬 이마
시린 지성조차
내 안에 파묻혀 있다.
한번도 내 형상을
고집해 보지 않았다.
산 가까이 산처럼
물 가까이 물처럼
그대 만나
끝도 보이지 않게 절망하고
흩어 둔 연민 거두어들 듯
훌쩍 집착의 골 넘어서면
새파랗게 또 다른 세상하나
처연히 펼쳐 둘 줄 아느니.
/공허를 기다
자벌레가 그리움으로 기어
자성(自性)의 키만으로 기어
초록벌레 사는 잎푸른 곳 간다.
넓푸른 잎사귀 위
와붙(臥佛)이듯 누운 풀벌레는 없고
나비가 살풋 앉아 있다.
내가 알던 잎푸른 나무숲
예전에 벌레였던 몸 벗은 나비,
황홀히 바라보다
지척이 왠일로 슬픔인 몸
공허를 더듬어 기어오르던
감각의 몸이 그립다.
※자성(自性):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불성
/그림 속의 시(1)
―장욱진·켄버스의 유채 '나무'
초록색 둥근 나무 한 그루 있다.
왼쪽 겨드랑이 아래로 붉은 해
오른쪽 옆구리로 푸른 반달 거느리고
우주만큼 크고 둥근
제 공간을 지니고 있다.
그 나무 꼭대기에
집 짓고 사는 사람아
고독을 밥지어 먹고도 외롭지 않다는 사람아
그대가 집 짓고 사는 나무는 섬세해
밑바닥 올 하나하나 생명으로 일어서
그대를 받히고 무한의 선과 점으로 나를 이어서
내 사는 집을 지탱케 하는구나
/풍경(4)
―2000년, 해가 떴다
몸 낮추고 무릎 꿇어야
새벽 하나 얻는가.
기장 척판암은 풍란 두어 포기 올라붙듯
불광산 중턱에 가파르게 앉았다
두터운 어둠을 깨는 독경으로
보일스님 길을 낸다.
눈 못 뜨면 천년이 한 가지로
두터운 구름 업만 쌓다가
꼭 같은 만상도
눈뜨는 순간 경이로운 해로 뜬다.
서원은 일제히 동쪽으로 가서 모이고
뿌우연 허공을 닦아낸다.
지난 천년, 인간의 이름으로 쏟아낸 업장
바다를 덮고 하늘을 가렸다.
한 시각 한 곳을 향하는 간절한 기운
순만 수억 가닥을 묶어
기어이, 황금 두레박을 끌어올린다.
소나무 가지에 걸린 함성―
소망할 것이 하 많아
아무 생각 없이 새 천년의 해가 떴다.
오늘만이라도 즈믄 해가 제 것인 양
너도나도 가슴에 품고 산을 내려갈 때
어디에나 불은 켜져 있고
어느 것이나 빛을 발하고 있었다.
/릴스에 관한(2)
―그럴지도 몰라
어쩌면 그는 본디 존재한 적이 없었는지도 몰라
아무것 없는 허공에
암호인듯 별들은 흐르고
익명의 소리 무성했네
아무것 없는 허공에
파장인듯 꽃잎 지는 마음 파르르 떨구고
동그라미 엮듯 교신 했네
몸 하나 다 태워도
손 안에 잡히는 형상은 없고
우우, 무상의 먼지만 쌓였네
어쩌면 그는 본래 이 세상 온 적이 없고
존재한 적 없어
거두어 떠날 것도 없는
이 산 저 산 깊은 계곡과 울울 숲에서
햇빛 뒤에 업고 건너뛰는
산울림이던가
본듯 아닌 듯 순간과 영원을 그네 타는
고운 환영일런지도 몰라
/생선뼈 매운탕
그의 그것이 먹고 싶다
싱싱하게 튀는 생살은 발라 욕망의 빚잔치 다 주고 그는
뼈만 남았다.
대해를 휘저어 헤엄쳐 다니던 팔팔한 푸른 피 번쩍이는 비늘 다 주어버리고
아가미만 조용히 살아 남았다.
목에 슬픔처럼 걸리는 가시나 수월하게 넘어가지 않는 머리와 내장만
고독처럼 남았다.
남겨져 있는 그의 그것이 먹고 싶다.
살살 입에 녹는 가슴살 달디단 뱃살 말고 추려먹기 골치 아픈
남은 그것을 하나 버림 없이 푹 끊여 먹고 싶다.
한 냄비에 쏟아 진국을 우려먹고 싶다.
식으면 한번 더 데워서 남김없이 훑어 먹고 싶다.
붉은 혓바닥과 날렵한 칼날이 두고 떠난 마지막 그것을 먹고 싶다.
고뇌의 사리가 박힌 생존의 등뼈와 세월의 쓴맛이 녹아든 허무의 내장을
속속들이 맛보고 싶다.
더러 뼈와 뼈 사이 잊혀진 단백질, 기막힌 살점을
녹여내 핥고 싶다.
나는 그대 담백한 맛 위에 한 스푼 쓰린 고추가루와 대파로
한 냄비에 얼큰히 섞여 부글부글 끓고 싶다.
막판에 오른 조촐한 반상, 그 진국의 세상맛을 보고싶다.
/성주사 가는 길
명진아 사랑한다.
성주사 가는 길 느릅나무에 매달린 하얀 리본
하루도 빠짐없이 1월 16일, 17일, 18일……
3월 21일, 22일, 23일 명진아 사랑한다.
성주사 가는 길 어귀에는 녹지 않는 눈꽃이 있겠다
1월에 시작해 3월까지 가슴을 오려 송이송이 피운 꽃.
언제까지 보는 이 가슴에 향기 피겠다.
'옐로리본' 고운 전설의 노래, 생으로 주렁주렁 매달렸겠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또 몇 번을 더해
언젠가는 그대 가슴에 와르르 쏟아질 하얀 진실
내가 매달고 있는가
매일 매달고도 꼭 같은 이름으로 눈부신가.
오늘도 내 안에 느릅나무 가득 별빛에 젖고 있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랑의 이름, 명진아
제발 그 슬픈 꽃들 보았니.
눈이 내리지 않는 우리의 겨울
다시 그 길을 가보고 싶다
눈부신 설화, 녹지 않는 슬픈 꽃을 보고싶다.
◇ 김창근 편
*김창근 시인은 1942 부산 출생하여 부산고, 부산대 및 부산대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70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1996 제8회 봉생문화상 수상. 시집 '미납편지'(75) '겨울에 세우는 묘비'(83) '사자의 눈'(93) '동해남부선'(00), 논저 '문학의 원리' 등
현재 동의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인문대학장. '시와 자유' 동인. 부산시인협회장
Tel : 051-890-1200 H.P 011-552-1529
/일치와 불일치의 여름
벼르다 틈 비집어
군에 간 아들놈 면회를 갔다.
그해 여름의 병촌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마지리에서
내가 만난 육군 일등병 계급장은
그로부터 30년 전의 한촌
강원도 고성군 간성면 교동리에서
내가 달았던 계급장과 정확히 일치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제대를 한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곳 정류장에 홀로 남겨진 것은
아들이 아니라 30년 전의 바로 나였고
낡은 군복을 입은 내가
찌그러진 그 토담집
조물락촌의 토방에 걸터앉아
희부연 막걸리를
체념 섞어 퍼마시고 있었다.
물이 불어난 북천변의
해당화 꽃송아리에
초년병 시절의 막막한 여름이 밀리면
참호 속 빗물처럼 고이는
우리네 사랑의 식은땀
나는 아들과 함께
자꾸만 억울하였다.
아들은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처진 어깨가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나는 하릴없이 차만 몰았다.
나의 차는 아들을 제외한 우리 세 식구를 싣고
문산을 거쳐 귀경길에 올랐고
서울에서 얼마 후 부산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나들이 끝에서야
다시 엄청난 불일치로 돌아와야 했다.
부산에 돌아온 지 며칠이나 됐을까
그것은 악몽이었다.
산사태 물난리가 덮쳐
아비규환인 가운데
물에 잠긴 연천과 문산 사이
아들은 거기에 그대로 있고
나는 여기에 이대로 있다.
아들의 음성을 확인한 후에도
영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아들과 내가 함께 보낸
일치와 불일치의 여름
나는 아직 제대를 하지 않았다.
1996년 7월의 일이었다.
/화진포
솔숲 푸른 구름 밖
떠 흐르는 그 바다를 접어
호수 위에 노을이 지면
고향이 먼 철새끼리
순백의 넋
꿈으로 깃을 치는 곳
해당화 꽃잎 추억에 붉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
어느 원적지에도 없는
슬픈 실향의 별장
씻겨 떠밀린 모래톱에서
눈 시리게 아픈 이름
지울 수 없는 순수의 흔적이 남아.
/통일 전망대에서
동해안 최북단
통일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 속의 북녘
멀리 말무리반도를 보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
물결치는 해금강이
하늘과 바다와 함께
영원을 베고 누워
흐물흐물 녹아 내렸다.
닦고 보고 닦고 보아도
자꾸만 아물아물
멀어지는 나의 사람아
어디에 누가 있어
이 침침한 눈을 고칠까
눈물 속에 피는 꽃으로
짓물러 이지러진 핏빛 저녁놀
어둠에 잠길 산하를 다시 보았다.
아픔도 슬픔도 다 떠내려간 터에
무슨 절망이 이리 깊은가
잠들 수도 떠날 수도 없는
깊고 삭막한 탄식을 들었다.
/굴렁쇠
어린날
兄 몰래 굴려 본
兄의 굴렁쇠
후미진 들길을 따라오던
낮달 함께 굴리며 놀았었네.
兄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가고
兄의 굴렁쇠는 하늘에 있네.
빈 하늘에 이지러진
낮달 하나 걸리어 있네.
/콩돌이 이야기
몸피가 콩만하고 하는 짓이 얄망궂어
아무데서나 콩 튀듯 팥 튀듯 하던
우리집 쫄래둥이 치와와 수캐 콩돌이
콩돌이는 아무도 못말리는 딸애가 하도 졸라
어거지로 들어와 식구가 된 셈인데
그럭저럭 한 오년을 같이 사는 동안
그야말로 온갖 잔정이 다 들고 말아
좁은 아파트를 넓은 운동장인 양
짖고 뛰고 구르고 누비고 까불며
제멋대로 갖은 횡포를 다 부려도 그만인
우리집 작은 개망나니 놀랑패 왕초로 군림
개이면서도 영 개답지 않은 개로
형편없이 살다 간 개가 되었는데
그 잔망스런 무법자로서의 콩돌이가
땅에 묻힌 날의 우리 집은
좌우지간 초상집이었다.
무너진 일상적 타성과 썰렁한 그림자의
그날 이후 우리는 콩돌이가 남긴 것들을
눈치껏 치우는 일에 골몰해야 했는데
가장 골치가 아팠던 것은 어린 아들 딸의
책상머리를 지키는 콩돌이 사진과 함께
미처 묻어 주지 못해 남아 있는 몇 개의
소꿉 같은 그릇들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다시 이사를 했다
되돌릴 수 있는 거라곤 아무 것도 없다
우리 네 식구의 가슴마다에는 저마다
하나씩의 선명하고 쬐그만 콩도장이
찍혀 있을 뿐
이제 콩돌이는 가고 없다
어떤 풍편에도 소식이 없다.
/선진 나루에서
궂은비가 내린다
옛 성터가 땀을 흘린다
시치근히 젖은 왜란이
넝마처럼 걸려 있다
여기는 아득한 역사의 벼리
하릴없이 무성한 벚나무 숲 이야기를
두고 떠나간 바다를 나는 모른다
포구에는 다만 폐선이 된
기억이 몇 척 밀쳐져 있고
그래도 떠나지 못한 바람이
꽁지 빠진 물새로 남아 있다
다들 떠나기를 바란다
종소리 같은 자유로 호수가 된 바다
사천만(泗川灣) 이 선진(船津) 나루에서 만난
젖은 물안개같이만
머물다 가리라 했다
식은 백합죽 한 그릇같이
미련한 애착이면 또 어떠랴 했다.
/핑갈의 동굴*
가두어지고 싶었다
내 어두운 사랑
박쥐처럼
어둡게 가두어져
물구나무로 매달린 운명의
그림자로 남아
사랑이란
그 마법의 선율
파도로 부서지는
푸른 바다의 환상
죽어 다시 한번을 헛될지라도
살고 싶었네
가두어져 살고 싶었네
내가 나로 환원되지 않는
동굴의 우상
꿈결 감미로운 속박
가두어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