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충주 문학기행(3)권오순 노래비, 박재륜 시비
신경림 시비를 출발해서 우리들은 남한강을 따라서 올라갔고 충주댐에 닿았다. 그 곳에서 우리들이 처음 만난 것은
충주댐 휘호가 쓰여진 비 인데 전두환의 이름이 있었는데
누군가 정으로 쫀 흔적이 있었다. 참으로 아픈 역사적 현실을 보며 바로 옆에 있는 권오순님의 '구슬비' 노래 비를 만났다. 원래 해주 출신인데 월남해서 그 지역에서 활동을 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노래 시작으로 구슬비를 부르면서 기념촬영을 했는데 노래비가 참 예쁜 모습이었고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리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달빛 새는 창문가에 두라고
포슬포슬 구슬비는 종일
예쁜 구슬 맺히면서 솔솔솔
그 곳을 출발해서 한참 후에 닿은 곳은 충주 체육관이었는데 그 곳에서는 16일부터 복숭아 축제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 곳에서 우리들을 기다린 시비는 바로 '박재륜'님의 시비인데 시비에는 '남한강'이 버티고 서 있었고 그 곳에서 많은 수석을 보았는데 멀리서 보면 꼿 부조상이라 생각이 될 정도인데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남한강에서 헬기까지 동원되어 도굴하려다가 결국은 싸움이
붙어 그 곳에 머물게 되었다는 수석을 보면서 욕심이 허망하다는 것을 느꼈다. 박재륜 시인은 1910년 중원에서 출생했고 2001년 5월 14일 별세 했는데 1932년 월간중앙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그는 1930년대 크게 대두되던 모더니즘의 경향으로 많은 작품 발표했는데 시집으로 '궤짝 속의 왕자(59)' '메마른 언어(69)' '田舍通信(72)''흰수염 갈대 풀(81)'등이 있고 내륙문학회장과 제4대 예총 충주시지부장(1980-82년) 등을 역임한 시인이라고 했다. 다음은 그의
'편지'라는 시이다
편지
내 마음 적막한 때는
바다 저편 나라 벗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는 그 사람의 마음의 전신
오늘 내 쓰는 말도 이같이 애절하다
벗이여
어디에 나의 연인은 있느냐
어디에 나의 행복은 있느냐
아아
인생의 거치른 바다 위에
그 아름다운 섬은 헛되이 사라져 없어지고
오늘의 나는
기이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이름 모를 항구와의 무역엔 실패하다
다시 어느 지각을 저어
거치른 물결 이는 마음을 잠재우리.
다만 여기에 남긴 인생은
사랑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그렇다고 방탕조차 아니어도
젊음은 헛되이 늙으려 하고
남은 가재는
홀로된 어머니의 마음 동산의
또 하나의 꽃의 향기를 뺏으려 한다.
얼마나 나는 불효자냐.
어느 지점에 이르르면
나에게도 말하고 남는 자랑을 얻으리.
벗이여
편지는 오늘 내 마음 싣고
너를 찾아 표박의 길에
아름답게 꾸며진 한 척의 범선.
벗이여
사람에게 말하고 남는
나의 큰 자랑이여
멀지 않은 시일이 지나면
너에게서
감격에 넘친 글발이 올 줄로 믿는
오늘날 나의 적막한 마음의
바램을 끊지 마라.
아쉬움을 간직하고 시내를 지나 우리들이 향한 곳은 탄금대인데 그 곳은 충주에 가면 반드시 가 봐야 할 곳 중 한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탄금대는 공원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곳에서 문화해설사인 '반현숙'님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분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다. 공원 전체를 지나면서 하나하나에 얽힌 얘기를 술술 풀어나갔고 개인적인 감정까지 표현해서 우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도 선사해 주었다. 그 곳에는 충주문화원이 있었고 충혼탑과 많은 조각을 만날 수 있었는데 여성의 나체상이 4개가 있었는데 서로 다르게 여인의 곡선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는데 K모 회원은 여인의 몸에 손을 대면서 사진을 찍어 그의 천진스러움에 웃음을 자아냈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여기고 또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을 쑥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으나 나에게 사진을 찍으라는 말에는 나는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아마 나의 머릿속에 고정된 그런 의식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