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변에 골프장이 있었다고 하면 웬만큼 구력이 되는 골퍼들은 “아~!” 할 테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 젊은 골퍼들은 의아해 하거나 잘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불과 2004년까지만 해도 한강에는 분명 골프장이 있었다. 1968년 6월 개장한 사실상 한국 퍼블릭 골프장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뚝섬골프장”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은 2004년 4월 서울시가 뚝섬 일대에 서울숲공원을 조성하면서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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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한강에 골프장이 있었다. 운영 당시 한강 뚝섬골프장 전경
원래 뚝섬에는 1950년대부터 경마장이 있었다. 1968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하루는 경마장을 시찰하다 경주로 안쪽에 놀리고 있던 풀밭을 보고는 골프장을 지으면 좋겠다고 하자 일사천리로 공사가 진행되어 골프장이 만들어졌다. 폐장되기 전까지 저렴하고 가까운 도심 골프장으로 골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뚝섬골프장은 처음에는 총 60,461㎡(약 18,300평)의 면적에 7홀 규모로 조성되었다. 그러다 그 해 6월에는 44타석의 연습장과 1,461㎡(약 442평) 규모의 번듯한 2층짜리 클럽하우스도 문을 열었다. 3년 뒤에는 9개 코스로 시설이 확장되고 이름도 기존의 뚝섬골프연습장에서 아예 뚝섬골프장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도심에서 가까울 뿐 아니라 정규 골프장 못지않은 시설에 1라운드에 평일 14,000원, 주말 21,000원의 저렴한 이용료 덕택에 2002년 한 해에만 총 11만8,100명이 골프장을 찾아 하루 평균 350명이 한강에서 골프를 즐겼다. 골프 삼매경에 빠져 출근 전에 골프를 즐기다 지각하는 직장인도 적지 않았던 꿈 같은 시절이었다. LPGA에 진출하기 전 박세리도 여기서 골프 실력을 쌓았다. 그러던 것이 2004년 서울시가 뚝섬 일대를 35만평에 이르는 대규모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나마 이미 서울시에서 뚝섬골프장을 폐장하는 대신 새롭게 조성되는 상암동 월드컵공원 내에 더 큰 규모와 현대식 시설로난지골프장을 조성하기로 약속한 터라 골프팬들은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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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골프연습장은 지금과 달리 사진처럼 전담 직원이 일일이 티에 공을 올려주었다.
2004년 3월 드디어 월드컵공원 내에 195,043㎡(약 59,000평)의 넓은 부지에 총9홀 규모의 난지골프장이 준공을 앞두고 있었다. 48타석의 골프연습장과 넓은 주차장까지 갖추어 많은 골프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서울시와의 계약으로 모두 146억 원을 투자해 골프장 개발 및 운영을 위탁받았던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서울시 사이에 그린피 책정 문제로 법적 분쟁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애초 작성한 사업계획서 상에는 15,000원으로 책정하기 로 되어 있었으나, 개방을 앞두고 국민체육진흥공단 측에서 물가상승 등 여건 변화로 적자가 예상된다며 33,000원으로 현실화해 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했다.
서울시는 처음 약속대로 할 것을 요구하며 공단의 제안을 거부해버렸다. 서울시는 여기에 한 술 더 떠 요금을 아예 15,000원으로 못 박는 서울시 조례까지 개정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공단은 여기에 다시 반발해 조례 무효 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4년에 걸친 법적 공방 끝에 공단이 승소하였으나 서울시는 이번에는 계약 자체를 파기하고 공원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한다. 공원화를 공약으로 내건 새 시장이 당선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2008년 6월 공단 측이 공사비로 이미 투자한 145억원에 계약 파기에 따른 위약금 등을 포함 총 185억 원을 물어주고 추가로 40억원을 더 투자해 공원으로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시민 공원 조성이라는 명분도 좋지만 결과적으로 애초 골프팬들에게 했던 약속은 물론 무려 225억 원에 이르는 소중한 국민의 돈만 허공에 날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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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공원이 되버린 난지골프장
정식 개장도 못해보고 문을 닫은 난지골프장이지만 여기서 라운드를 해본 운 좋은 골퍼들도 꽤 있다. 법정 소송 중이던 2005년 10월부터 공단 측에서는 선착순 방식으로 골프장을 무료 개방했는데 오전 6시26분부터 8분 간격으로 하루 55팀이 골프를 즐겼다. 인터넷으로 예약 신청을 받았는데 경쟁률이 150 대 1을 웃돌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으며, 2008년 6월 문을 닫기 전까지 하루 평균 약 180명씩 모두 11만 명이 넘는 골퍼들이 공짜로 라운드를 즐긴 것으로 집계됐다. 이때 골프장을 찾았던 골퍼들에 따르면 비록 9홀이지만 난지골프장은 긴 전장과 훌륭한 잔디관리로 회원제 못지않을 만큼 시설이 좋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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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개장 당시의 난지골프장
사업만 따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사업성 없는 가격을 제시한 뒤 말을 바꾼 국민체육진흥공단 측도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는 정치 바람에 따라 10년 전 골프장 조성계획을 내놓을 때 “시민이 가까운 곳에서 싼값에 대중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다 나중에는 “골프장은 소수를 위한 공간이고 ‘다수를 위한 행정’을 위해 공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하루아침에 말을 뒤집은 서울시가 더 문제다.
“노동자도 골프를 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창한 정치 구호로 출발해 결국에는 공원으로 바뀌어버린 난지골프장은 그렇다 치자. 오랜 시간 주머니사정이 넉넉지 않은 골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뚝섬골프장이라는 소중한 도심 골프장 하나를 표를 노린 정치인들의 애꿎은 정치 놀음에 결과적으로 두 눈 멀쩡히 뜨고 억울하게 “네다바이” 당한 셈이니, 골프팬들로서는 요즘 한 인기 개그 프로의 유행어처럼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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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 이 글은 지난 11월 23일자 '골프뉴스'(www.golfnews.kr) 및 '골프&라이프'(www.golfpeoples.co.kr) Vol.2에 기고했던 칼럼입니다.
[출처] 그 옛날 한강에는 골프장이 있었다네|작성자 쿠바시가
첫댓글 처음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