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유도를 하신다니 전세계적으로 일본 유술중 압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실 겁니다.
바로 카노 지고로의 강도관 유도입니다.
카노 지고로는 쿠베르탱과 비견될 정도의 국제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일본내에서도 그와 비견될 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일본내에서부터의 유도의 획기적 발전뿐 아니라 카노의 국제감각이 유도를 오늘날의 유도의 위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고교야구에서 갑자원(고시엔)대회를 말하자면 한국야구와 일본야구의 저변차이를 알 듯이 일본의 각종 유도대회와 한국의 유도대회는 규모의 차이가 크지요. 올림픽 금메달이 많았던 종목이란 점외에는 한국인들에게 "친숙한"종목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올림픽금메달을 따내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일본내에서 그많은 유술이 존재하는데도 어째서 최강의 무술중 하나로 유도라는 특정유술을 꼽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Kenn님께서도 아시지만 강도관 대 유술계의 대결은 강도관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고 말씀하신대로 "강도관의 발"은 당시 유술인들에게는 거의 쇼크일 정도로 타 유술인들이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경우에도 자기의 스타일이란 것에만 계속 골몰했다면 결과는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유도 자체가 타유파와의 승부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성장해온 탓에 실전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재적응"기간도 그만큼 짧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만큼 통하던 기술이고 강했으니까요. 현재도 최고의 재능을 지닌 많은 젊은이들이 유도에 투신하고 있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도 과장은 아닐 것이라고 봅니다.
일본에서 90년대를 전후해서 유술(쥬유주츠)의 존재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대중"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K-1을 알게 되고 프라이드를 알게 된 것처럼 일본 대중도 기타 유술이란 것에 대해 알게 된 감이 많습니다.
제가 추측하는 바로는 기타 유술이 알려지게 된 계기도 "주지추"란 이름으로 남미 중미 북미를 휩쓸었던 브라질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유술-쥬우주츠-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였던 것 같습니다. 시기적으로 일치할 뿐더러 일본내의 젊은이들의 경우 주지추는 알아도 쥬우주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향마저도 있었던 것도 고려하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붐에 힘입어 스포츠가 아닌 "유술"이며 사람도 죽일 수 있는 것이라는 식의 소개가 많았습니다. 특히나 군소유파의 경우 신비화되는 경향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유술계에서 아는 사람들에게만 잘 알려져 있던 다케다 소가쿠란 인물의 대동류유술(대동류합기유술)이 일본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키도의 원모체란 사실과 함께 대동류가 일본에서 "합기"의 신비문파로 다시 한번 "뜹니다"
더우기 아이키도의 경우보다 더 한층 합기를 강조하거나 비술이니 비전이니 극비전이니 하며 자기소개에 나섰고 오늘날 일본 고류유술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인기있는 고류유술이 되었습니다. 이상황에서 비전이란 말 자체가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들이 내세우는 인물이 바로 다케다 소가쿠이며 일본 검술계의 독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영어표현으로는 "street fighiting"을 통해 일본내에서 무적을 자랑했다고 소개되는 이 인물의 일본 근대무술계에 있어 일개인의 "강함"으로는 지존급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내용이 더 많이 소개되면서 강함에 굴복하는 경향과 몹시 맞아 떨어졌습니다.
더욱이 독자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던 창시무술로서의 아이키도가 실제 대동류기술중 일부만을 추린 것이란 주장마저 대동류측에서 나오기 시작하면서 대동류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높아졌던 것이지요.
대동류가 현재 다시 널리 알려진 이유는 이정도로 하고
유도와 대동류와의 교류는 두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앞에서 제가 유도의 세계화를 이야기 한 것도 이를 위한 것인데 카노 지고로의 무도가로서의 "비견할 수 없는 성공"은 여타 유술인들에게는 큰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었고 이에 강도관유도는 질시와 타도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하기도 했습니다.
다케다 도키무네에 따르면 카노 지고로와 다케다 소가쿠는 친구사이라 할 수 있어 도쿄에서 자주 만나고 했답니다.
그러나 기술흡수를 위한 교류는 다케다의 경우는 거부했다고 합니다. 또 대동류측의 기법은 상당수가 잡기를 하고 들어올 때 이를 관절기를 통해 잡기자체를 포기하게 할 만큼 위력적인 것이 많았다고 하고 실제 그런 기법과 대동류 아테미(타격술)의 교묘함(?)은 대동류에 대해 고심하고 고심하여 대처하기 전에는 순진하게 한방에 보내질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쉽게 말해 유도에서 반칙인 기술이 상대에겐 아주 이용해 먹기 좋은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스포츠유도인들이 엇 이건 반칙인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이미 상황끝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타 유술과 달리 대동류의 발움직임은 검술과 일치하는 것으로 대단히 빠르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검을 든 두 사무라이가 대치하면서 좌우로 전후로 발을 끌며 밀며 뛰다시피 하는 장면을 본적 있으십니까? 그것이 그대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면에서 말씀하신대로 과거의 강도관 유도란 것이 타유파와 싸울때 현재의 반칙룰을 다 따른 것이었을까 의문도 있고 그것을 지키면서도 싸워 이겼다면 그야말로 유도가 강한 것이었을 겁니다. 후자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유도에서 타격기를 쓰지 않는 것은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하니까요. 그마만큼 유도란 것이 강했기에 널리 퍼진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날도 무슨무슨 유술이 있다해도 유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칼을 든 유술을 전제로 한다면 모를까....
물론 기법상 상극의 기법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쓸 줄 아느냐와 상대가 어느정도의 수준이냐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이에 대해 말씀드릴 것은 유도에 대해 이런 식의 비교우위를 주장하려는 경향이 여타유술계에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대동류 아이키도 뿐아니라 일본소림사권법(쇼린지켐포)의 경우에도 공공연히 그런 류의 "광고"를 하기도 합니다 한국합기도에서도 그런 주장이 있었습니다(서복섭선생님)그렇지만 다시 말하지만 상대적인 면이 있고 각각의 광고성 멘트와 실제 비교는 다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어느 무술이 어느무술보다 낫다 어느무술이 어느무술은 밥으로 여긴다라는 말은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그누가 유도 100kg급의 "괴물"도 우리의 밥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같은 급에서 유도는 기술이 노출되어 있고 상대기술은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칫 쉽게 승부가 날 수도 있고 그것이 유술가들이 자기 기술을 노출시키려하지 않았던 주요한 이유였고 다케다 소가쿠도 마찬가지 였음은 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또 유도에서도 깃을 잡자마자 팔꿈치를 굽히고 달라붙는 것도 팔꿈치를 펴게 하려는데 대한 방어술이기도 하듯이 상대성은 다 있습니다.
이런 논의는 말 그대로 탁상공론일 수 있습니다. 다만 알려진 바 대로 유도가 타유술들을 제압했다는 것,당시 유술계나 검술계에서 다케다 소가쿠는 불세출의 인물이었고 대동류나 아이키도에 대해 카노 지고로가 높이 평가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두번째 흐름으로 동경에 황무관을 차린 다케다의 수제자란 우에시바란 인물과 강도관의 교류가 있습니다.
카노는 우에시바의 유술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며 제자들을 보내고 강도관에서 기술교류차원에서 보낸 제자들과 그밖에 유도를 수련받다 우에시바란 인물이 강하다는 말에 승부욕에 불타면서 대련을 신청한 유도수련자들이 우에시바의 제자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주요제자라 할 만한 두인물이 유도출신입니다.(물론 다른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지만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경우로 제 주관적인 판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명은 기아이키도의 도헤이 고이치 선생이고-이분은 미국인 레슬러를 이리 던지고 저리 던지고 하는 모습을 비디오 상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른 한명은 요신칸 아이키도의 그 유명한 시오다 고조입니다. 시오다의 경우 우에시바란 인물이 강하다는 말에 찾아가서 "붙어"봤다가 자기도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게 던져지길 반복하다 그자리에서 우에시바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현재의 화의 무도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측은 과거의 대동류시절의 우에시바의 모습과 사실 잘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실제적측면에서 기술적 유사성을 찾아보자면 다케다 소가쿠의 수련무술목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기술적 측면에서 유도와 대동류 또는 아이키도의 공통점은 상당히 많을 수도 있습니다. 대동류의 특징은 상대무게 중심흩뜨리기와 회전 전환동작이 교묘하게 사용된다는데 특징이 있는 것이지 다른 유술과 전혀 다른 기법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다케다 소가쿠에 의해 재해석 재창조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그것을 다케다 창작설로 까지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동류유술 대동류합기유술 대동류합기술이 기술의 틀에 있어 같은 궤에 있다는 것을 보면 그것은 조금 무리한 주장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특히 와술에 있어서는 누가 보더라도 더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제가 대동류와술을 많이 보지 못해서 뭐라 말 할 수 없습니다만 합기도의 과학이란 책에서도 암바 스타일(유도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네요?)의 기술을 봤던 기억은 있습니다. 몸의 중심쪽이 아니라 허벅지를 지렛대로 삼아 꺾는 것이 대동류에서의 특징이다란 설명을 본 기억이 납니다.대동류사범과 대련했을 때도 누르기를 당했던 기억도 있구요.
우선 다케다 소가쿠도 젊은 시절 그가 접할 수 있는 명망있는 무술을 여러가지 배우고 다녔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기에 대한 설명이 될 것입니다. 또 전국을 돌아다니며 결투하고 또 그와중에 자신의 것으로 또는 자신의 스타일로 받아들인 기법도 없지는 않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할 것입니다.다음번에 그가 젊은 시절 배웠던 무술을 확인해서 올리겠습니다.
둘간의 일화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이고 시로의 기법과 대동류의 기법은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라는 합기도의 과학의 한부분만 기억나는 군요. 산풍이 사이고 시로의 절기였다고 하더라도 굳이 사이고 시로의 기술을 대동류와 관련시키기는 곤란한 것이 아시겠지만 대동류기법은 유도로 치면 거의 다 "반칙"아닙니까
유도에 귀의한 사람이 강도관 시스템내에서 굳이 유도 기술외에 대동류라며 금지된 방식의 기법을 썼을 거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합기도를 잘 해도 유도배우러 다니면서 유도로 치면 반칙인 합기도 술기 를 자신의 넘버원 유도기술이라며 쓸 사람이 없을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상세한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항상 궁금증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되고있습니다. 근데 한가지 다케다 소가쿠와 사이고 시로(스카다 산시로)의 관계는 과연 어떤것이었을까요? 같은 대부(스승)을 모신 둘사이에 어떠한 일화도 남아있지 않을까요?
둘간의 일화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이고 시로의 기법과 대동류의 기법은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라는 합기도의 과학의 한부분만 기억나는 군요. 산풍이 사이고 시로의 절기였다고 하더라도 굳이 사이고 시로의 기술을 대동류와 관련시키기는 곤란한 것이 아시겠지만 대동류기법은 유도로 치면 거의 다 "반칙"아닙니까
유도에 귀의한 사람이 강도관 시스템내에서 굳이 유도 기술외에 대동류라며 금지된 방식의 기법을 썼을 거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합기도를 잘 해도 유도배우러 다니면서 유도로 치면 반칙인 합기도 술기 를 자신의 넘버원 유도기술이라며 쓸 사람이 없을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확인해 보니 다케다는 스모,호조인류(보장원류)다카다파 창술,오노하 이토류 검술을 배운 외에 지키신카게류로 유명했던 사카키바라 켄키치의 도장에서 검,봉,창,그밖의 일련의 무기술을 2~3년간 집중적으로 배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밖에 현재의 대동류측중에서도 그가 원 대동류에 그가 평생 수련하며 자기것으로 만든 것을 새로이 가미한 것으로 보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밖에도 무수히 많은 시합과 결투를 했다는 다케다의 경우 타류검술이나 타류유술을 겪어볼 기회가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