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 춘자고교 왕따 오춘자. 11편 에서 15편

[꼬까쓴눈사람]

※꼬까쓴눈사람 [ieunmini@hanmail.net]※ 

※싸이 : ggogga dream[http://www.cyworld.com/ieunmini]※

※까페 : LOVE♡꼬까쓴눈사람[http://cafe.daum.net/LOVEsnowman]※

───────────────【 춘자고교 왕따 오춘자 】───────────────






※춘자고교 왕따 오춘자※






[11]





“왜?”


“네?”


“왜 너만 봐야 돼? 난 설우도 보고 싶은데.”




선생님께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내 발언을 우스개 소리로 넘기셨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도통 모르겠으니까. 설마 그걸 고백이라고 한 건 아니겠지? 오춘자. 

난 행여나 선생님께서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눈치라도 채실까봐 나름대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선생님께서 안경을 끼신다면 시력이 너무 좋아서 어질어질하고, 

체육시간은 일주일에 2번 밖에 안 들었는데 그렇게 되면 오늘처럼 넥타이를 하지 않으셔도 

아이들은 언제나 체육시간을 기다릴 거예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하자면 선생님은 

무슨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실 것 같다는 거죠.”




나 지금 뭐야? 완전 횡설수설이 따로 없다. 

선생님과 설우가 서로를 쳐다보며 서로의 생각을 눈빛으로 교환한다. 

하지만 눈빛이 통할 리 없고 내 말을 헤아릴 수 없었던 두 사람은 결국 어깨를 뜰썩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설우가 내게 의문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


“응? 아니, 난 그게 아니라.”




으아, 진짜 수습이 안 된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이렇게 식은땀을 흘리게 될 줄이야. 

선생님께서는 이 알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우뚱하셨고 설우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언제 그렇게 가르쳤냐고.”


“뭔데 그래?”




내게 주었던 시선을 설우에게로 옮기시는 선생님. 그의 질문에 설우가 짜증스런 투로 대답을 했다. 




“눈은 어따 팔아 처먹었냐?…원래 이렇게 말해야 되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헛소릴 하잖아.”




내가 꼭 큰 잘못이라도 한 것 같다. 사실 체육선생님도 엄연히 이 학교 선생님이신데 학생인 내가 어찌 그런 

불량스런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건 너무나도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다. 

하지만 설우에겐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선생님께 말하는 저 꼬락서니를 보라.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좋은 선생님께서는 그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아니 오히려 우리 또래와도 같은 모습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 걸 왜 가르쳐?”


“가르칠 만 하니까 가르치는 거지. 얘는 국•영•수 같은 것 보단 인생교육이 가장 우선이거든.”




이설우, 쟤가 창피하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선생님이 나를 어떤 아이로 보실까? 




“인생교육? 그건 네가 더 필요하지 않나?”


“뭐야? 뭘 모르나 본데, 난 알 건 다 안다고! 이거 왜 이러셔?”




소리를 꽥 지르는 설우를 무시하곤 나를 향해 몸을 돌리시는 선생님. 내 머리를 쓰다듬으신다. 




“춘자야, 설우가 가르치는 건 그냥 한 귀로 흘려버려. 눈은 어따 팔아 처먹었냐니. 

눈을 파서 어떻게 먹어? 징그럽게. 설우는 완전 엽기라니까. 그치?”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 많이 모자란 저로서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사옵니다. 

설우는 선생님의 말씀에 더 펄쩍 뛰어대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능숙하게 무시해버리며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둘이 나란히 집에 가는 거야? 사이좋네.”


“쳇! 됐어. 야, 저런 놈은 상대하지 말고 빨리 가자!”




나를 보며 웃어주시는 선생님을 붉어진 얼굴로 보고 있으니 설우가 고함을 치며 나를 잡아 이끌었다. 

난 조금 더 선생님과 있고 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같았지만 설우의 성화에 힘없이 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설우야, 생각은 해봤어?”




운동장으로 내려가고 있는 설우를 향해 선생님께서 외치신다. 

생각이라니…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설우는 모를 리가 없었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내 대답은 무조건 NO야! 절대로 안 해! 못해!”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정색을 하며 대답을 한다. 난 선생님께서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걱정이 돼 뒤를 돌아보았다. 

선생님은 왠지 아쉬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미소를 지으시며 손을 흔들어주신다. 

아아…제 손을 잡은 사람이 싸가지 대 마왕(설우)이 아닌, 선생님 당신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런 내 안타까운 바램을 설우는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과의 거리를 점차 멀어지게 만들었다. 


교문을 벗어나 더 이상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난 포기를 하며 고개를 돌렸다. 

설우를 보았다. 뭔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궁금하다. 이 녀석과 선생님의 관계가…. 




“너 선생님이랑 친해? 잘 아는 사이 같던데….”




하루 사이의 놀라운 발전이었다. 내가 설우에게 질문을 하다니. 

설우는 그리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다만, 내 질문에 발끈할 뿐이었다. 




“미쳤냐? 몰라! 그 자식 쥐뿔 알지도 못해!”




모르면 모르지, 왜 신경질이래? 내가 약하다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하긴, 날 무시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깟 일로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 건 없지 않은가. 

난 입술을 꾹 닫은 채 그를 따라 걸었다. 




“그러는 넌, 체육 좋아하냐?”




이때 복수라도 하려는 건지 내게 갑작스런 질문을 던져오는 설우였다. 

정곡을 찔려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등줄기에서 땀이 다 나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쑥스러운 내 마음을 이 녀석에게 들킬 순 없었다. 




“내가? 아니야. 무…물론, 좋아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선생님으로서 존경하는 거야. 다른 애들이랑 똑같아.”


“됐어. 좋아한다고 해도 내 알 바 아니니까. 네 자유까지 뺐진 않아.”




이건 완전히 내가 체육선생님을 좋아한다고 단정지어버린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나도 더 이상의 궁색한 변명을 하지 않았다. 설마 이 애가 선생님한테 얘기라고 하겠어? 

그렇게 나는 애써 설우를 못 믿는 내 자신을 안심시키기에 바빴다. 


설우를 따라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서울의 어느 혼잡한 번화가였다. 




“지금 어디 가는 건데?”




옷가게가 늘어서 있는 골목으로 들어온 나는 불안한 마음에 설우에게 물어보았다. 

그에 설우는 마치 정해둔 곳이라도 있는지 자신 있는 발걸음으로 죽죽 나아가기만 했다. 

이 곳으로 오기 전 설우는 나에게 왕따로 보이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었다. 그렇다는 건 옷이라도 사주려는 걸까? 

하지만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너무 부담스러울 뿐이다. 나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옷가게로 들어가기 전에 

그를 막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저기 나는 옷 같은 건 필요 없어. 옷은 집에도 충분히 있으니까, 그만 돌아가는 게.”


“너 무슨 착각이라도 하는 가 본데, 내가 너한테 옷을 사줄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다. 

설마 너 지금 나더러 옷을 사달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어느 가게 앞에서 멈추더니 내게 같잖다는 눈길을 보내왔다. 나는 창피해서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설우가 잡아당기며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곳에 걸려 있던 간판에는 ‘옷 수선’이라는 세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확실히 옷가게는 아니다. 난 설우가 맡긴 옷이라도 있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옷을 찾아서 나가겠거니 했는데 이것 또한 헛다리일 줄이야,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치마 벗어.”




설우는 다짜고짜 나더러 교복치마를 벗으라고 말했다. 아니 명령을 했다고 하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옷수선 집 주인으로 보이는 어여쁜 언니가 보고 있는데 말이다. 황당했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진 체 설우를 보았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치마는 왜…?”


“일단 벗어. 벗으면 알 거 아냐. 누나, 쟤 속에 입을 반바지 하나만 줘.”


“호호, 여기 있다.”




주인언니는 분홍색 짧은 건빵바지를 설우에게 주었다. 그렇게 건네받은 건빵바지를 나에게 휙 던진다. 

무의식적으로 받아버린 나는 멀뚱히 바지만 쳐다보았다. 




“아, 뭐해? 내가 직접 벗겨주리?”


“설우야, 왜 그래? 여자친구가 부끄러워하잖아.”


“여자친구? 지금 누가 내 여자친구라는 거야? 쟨 그냥 내 짝일 뿐이야!”




주인언니의 생각 없는 발언이 설우를 화나게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설우의 뜻을 알 순 없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바지를 치마 속에 입은 후 설우가 원하던 대로 치마를 벗어주었다. 나에게 건네받은 내 교복치마를 주인 언니에게 주며 설우가 말했다. 




“이거 예쁘게 좀 줄여줘. 우리 바쁘니까 그것부터 해줘.”


“무슨 소리야? 해야 할 게 얼마나 많이 밀렸는데. 너 자꾸 이러면 곤란해.”


“에이, 진짜 왜 그래? 내가 누나 가게 한두 번 애용하는 것도 아니잖아. 소중한 단골손님을 이렇게 잃을 거야?”


“나 참. 넌 꼭 ‘단골’을 들먹이더라? 알았어. 20분 정도는 기다릴 수 있지?”


“20분이야, 뭐. 기다려주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왜 남의 치마를 함부로 줄인다, 만 다냐고. 

나는 울상인 얼굴로 설우와 주인 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런 내 울고 싶은 심정을 눈치 챘는지 설우가 이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일단 왕따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깔끔하고 강렬한 인상을 보여줘야 되는 거야. 

무슨 월남치마도 아니고, 길고 펑퍼짐한 치마를 입고 다니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건 일찌감치 포기해야 된다고. 

범생이들의 상징이 바로 팔푼이 같은 큰 교복이 아니겠냐? 뭐, 교복조끼는 그 정도면 됐고 치마만 줄이면 되겠다. 불만 없지?”




내가 불만이 있다고 하면 네가 내 의견을 반영해줄 거야? 곧 무시해버릴 거면서 묻기는 왜 묻는데? 

난 정말 원치 않았지만 내 나약함 때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주인 언니가 드디어 내 치마로 작업에 들어가자 

설우가 가게 문을 열며 나가려고 했다. 

내가 ‘나를 이 낯선 곳에 버리고 어디 가냐’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문을 닫다말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잠깐 근처에 좀 다녀올게. 아마 30분 안으로는 올 거야. 그러니까 어디 가지 말고 여기에 꼼짝 말고 있어. 누나, 걔 좀 부탁해.”




탁. 


결국 난 낯선 곳에 낯선 언니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정말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순간이다. 


달달달달-. 작은 공간의 침묵을 조금이나마 깨트려주는 건 언니의 재봉틀 소리였다. 

내 교복을 이리저리 다듬으시는 언니의 손놀림이 예사롭지가 않다. 설우가 나간 지 한 5분쯤 지났을까? 

주인 언니가 나에게 말을 건네셨다. 




“설우가 여자친구를 데려온 건 오늘이 처음이야.”




언니의 말은 마치 남자의 집에 놀러갔을 때 어머니에게서나 많이 들을 수 있는 대사였다. 




“저흰 정말 언니가 생각하시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그냥 짝궁일 뿐이라고? 호호. 아무 사이 아닌 것 치고는 설우가 너한테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던데?”


“그건 그럴 사정이 있어서….”


“알았어, 알았어. 본인들이 아니라는데 제3자가 아는 척 큰소리칠 순 없지. 

그건 그렇고 너, 설우 녀석 이상형이랑 꼭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언니는 끝까지 설우와 나를 그렇고 그런 사이로 몰아갈 생각이신 것 같았다. 

내가 설우의 이상형이라는 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이상형이요?”


“그래. 설우의 이상형이 얌전하게 생기면서도 조숙하고…하여튼 어른스러운 여자를 좋아하거든.”




그게 나랑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지. 내가 말이 없어 얌전하다곤 해도 조숙한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고 본다. 

나는 내가 설우의 이상형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니 왠지 아니었으면 한다. 

그러니까 설우는 자기 여자친구한테도 못되게 굴 것 같기 때문이다. 




“설우는 얼굴은 안 본데요?”


“귀엽게 생긴 여자가 좋데.”


“봐요. 전 아니라니까요.”


“어머, 왜? 너도 충분히 귀엽게 생겼는걸?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귀엽다는 말까진 아주 좋았건만 뒤에 예쁘지 않다는 말을 붙일 건 또 뭔가요? 

난 기분 좋아해야 될지, 나빠해야 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결론은 그냥 못 들은 걸로 하자였다. 

언니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20분이라는 시간이 또 훌쩍 넘어버렸다. 내 교복도 수선이 모두 끝났다. 



“한번 입어봐.”



언니가 건네주신 치마를 뭐랄까, 아주 작아졌다고나 할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교복치마를 입은 뒤 건빵바지를 벗었다. 가게 안에 있는 검은색 테두리의 전신거울 앞에 섰다. 




“예쁘다. 역시 내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언니는 알맞게 잘 수선된 치마를 보시고는 자기 실력에 감탄을 하셨다. 치마를 입는 당사자의 생각은 들으려 하시지도 않았다. 

치마의 길이는 5cm나 짧아져 무릎의 반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고 그 넓디넓은 폭은 얼마나 줄였는지 감도 못 잡을 만큼 좁아져 있었다. 

허벅지에 딱 들어붙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색하기가 짝이 없다. 

이런 치마를 입고 학교에 간다면 나는 선도부에게 금방 잡히고 말 게 뻔하다. 




“다 끝났냐?”




어디 다녀온다던 설우가 한손에 종이가방을 들고서 돌아왔다. 그는 잠시 내가 입고 있던 치마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표정이 밝은 것이 자기 마음에는 드는 가 보다. 




“봐라. 줄이니까 얼마나 보기 좋냐? 적어도 팔푼이처럼은 안 보이잖아. 

그리고 자! 이건 널 끝까지 책임지고 도와준다는 뜻에서 산거야.”




들고 있던 정체불명의 종이가방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미심쩍게 보았다. 




“가방이야. 배낭가방은 버리고 이걸로 바꿔 매.”




가방? 종이가방 속에 들어있던 물건을 꺼내어보았다. 그것은 정말 가방이었다. 노란색의 정사각형 모양의 가방. 

앙증맞은 작은 크기의 네모가방은 완전 유치원생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더러 이런 걸 매라고?”


“그럼 내가 매고 다닐까?”




설우가 이걸 맨다면 코미디가 따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이런 가방을 맨다는 건 여간 쑥스럽고 창피한 게 아니다. 

물론, 또래의 예쁜 아이들은 잘만 매고 다니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이지 않겠는가. 나 같은 아이가 맨다면 징그러울 것이다. 

나는 제발 이것만은 참아달라는 간절한 시선을 설우에게 보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매정하기만 했다. 




“안 매면 죽인다?”




…결국엔 그 노란가방을 매고야 말았다. 

노란가방이 들어있던 종이가방에는 내 배낭가방이 들어있다. 모두들 나에겐 관심이 없는데도 왠지 날 쳐다보는 것만 같다. 

그렇게 옷 수선 가게에서 나와 길을 걸으며 나 혼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으니 설우가 미용실 안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미용실은 또 왜 온 거야? 




“어서오세, 여어- 이게 누구야? 설우잖아?”


“형, 얘 머리 좀 손질해줘요!”




가위를 들고 있던 미용사 한명이 설우를 보자 반가워했다. 하지만 곧 그와 동행한 나를 보자 호기심을 갖는다. 

분명 또 여자친구로 오해하겠지. 




“야, 이젠 여자 꼬붕까지 달고 다니냐?”




꼬붕? 여자친구가 아니고 꼬붕? 

하긴…나 같은 앨 여자친구로 보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지. 

그럼 아까 옷 수선 집 언니는 왜 그런 소릴 한 거야? 설마 날 놀린 건 아니겠지? 

그래, 이상형도 다 거짓말이었을 게 분명해. 이런 바보 오춘자, 그것도 모르고 혼자 난처해했다니…. 




“꼬붕 아니에요. 제 짝인데, 하여튼 빨리 좀 해줘요.”


“뭔데 그래? 설마 요거는 아니겠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남자 미용사였다. 그에 설우가 또 정색을 한다. 




“아니에요! 해줄 거예요, 말 거예요?”


“알았어. 해주면 될 거 아냐. 돈은 가져 왔겠지? 이번엔 공짜 같은 거 없어.”


“알았어요. 돈 내면 되잖아요. 시간 없으니까 빨리 좀 해줘요.”




남자 미용사는 설우의 성화에 못 이겨 나를 비어있던 의자로 안내했다. 

미용실은 화이트 풍의 인테리어로 밝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지금 내 옆에선 여자 손님 3명이 머리 손질에 한창이다. 

이 곳 미용실의 특징을 들자면 미용사 4명이 모두 남자라는 것이다. 




“학생, 어떻게 해드릴까?”


“머리는 펴고 검게 염색하고, 또 앞머리도 만들어줘요.”




나대신 설우가 설명을 해주었다. 태어나서 머리는 자른 적밖에 없었던 내게 그 많은 것을 하라니…. 

설우는 전생에 나에게 어떠한 원한을 졌기에 이토록 나를 못 괴롭혀서 안달인 걸까? 




“머릿결이 참 좋네. 염색은 상할지도 모르니까 그냥 매니큐어로 하자. 그런데 설우랑은 진짜 어떤 사이야? 

녀석이 미용실에 데려온 여자는 네가 처음이거든.”




어라? 이 사람도 남자네 어머니 같은 소리를 하네. 처음일 수도 있는 거지, 그걸 왜 그렇게 신기하게 여기는 거야? 

나는 설우의 눈치를 살피며 내게 속삭이는 미용사에게 무조건 아니라는 말만 했다. 


지루한 시간은 계속 이어졌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설우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샴푸실로 가자.”




벌써 몇 번째 머리를 감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트레이트를 끝내고 코팅을 했으니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인 건 확실하다. 

정말 이번 샴푸가 마지막이었다. 남자 미용사 2명이 붙어 드라이기로 열심히 말리고 있는 내 머리는 전보다 길어졌고 차분해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실히 눈에 띠는 것은 머리색이었다. 짙은 흑발로 변해있는 내 머리칼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길고 길던 5시간이 앞머리를 자름으로서 끝이 났다. 



“우와! 진짜 잘 어울린다.”


“귀엽네.”



머리가 완성된 내 모습을 보며 한가한 미용사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지루함에 잠이 들었던 설우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잠에서 깼다. 



“다 끝났어요?”


“그래, 이놈아! 형의 걸작품을 봐라.”



미용사가 가방을 매고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나를 가리켰다. 창피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의 시선을 끄는 건 여전히 얼굴 빨개지는 일이다. 




“걸작품은 무슨. 그래도 전보다는 낫네.”


“짜식, 말을 해도. 왜? 귀엽지 않냐? 앞머리를 내서 그런지 귀엽게 보이는데.”


“귀여우면 뭐해요? 예쁘지가 않은데.”


“임마, 난 예쁜 여자보다 귀여운 여자가 더 좋더라!”


“연락처 물어봐줘요?”


“야야, 네 나이랑 내 나이랑 만나면 원조교제로 오해받아!”




자기네들끼리 뭐라고 쑥덕대는 건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설우는 많은 비용을 자신이 모두 내주었다. 내가 원해서 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심히 부담이 된다. 

미용실에서 나오니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나는 이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설우에게 밥을 산다고 했더니, 




“난 친구한테 가봐야 돼. 너도 그만 들어 가봐라.”




라며 거절을 당했다. 게다가 이 말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약냄새 풀풀 풍기는 너랑 무슨 밥을 먹겠냐?”




지금 내 머리에서 지독한 헤어약냄새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도리어 큰소리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이쯤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쓸쓸히 뒤돌아서 걸어가는 나를 설우가 불렀다. 

그래서 살짝 고갤 돌려봤더니 그가 소리쳤다. 




“야! 너 지금 팔푼이로 전혀 안 보여! 형들 말처럼 귀여우니까, 어깨에 힘 좀 넣고 다녀라! 세상 다 살았냐? 

기운 내! 넌 이제 따가 아니니까! 조심해서 가라!”







............







순간 설우도 어쩌면 나쁜 아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그가 오늘 내게 했던 행동들이 괴롭힘이 아닌 관심으로 여겨졌다. 

설우는 정말로 나에게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 어젯밤 학교 옥상에서 나와 했던 약속은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만일 텐데 

설우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와 함께 다녀주었다. 그래. 오늘만큼은 내가 왕따라는 생각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또래아이들과 낯선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오늘 설우가 내게 해주었던 일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길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버스정류장을 지나쳐버렸다. 다시 방향을 바꿔 길을 되돌아가려는데 웬 낯선 남자 3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꼬마아가씨, 어느 학교에 다녀? 귀여운데?”


“몇 학년? 응?”


“혼자야? 오빠들이랑 같이 안 놀래?”




이…이건 드라마에서나 봐왔던 불량배들? 

그렇다는 건 지금 이 상황의 난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여 무서움에 떨고 있는 아가씨인 게 분명하다. 

우울하던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나는 무섭다기보다는 고마움을 느꼈다. 

나에게 이런 경험까지 할 수 있게 해준 설우가 가장 고마웠다. 




“1학년이야?”


“2학년인데요.”


“오우! 2학년? 한참 즐거울 때네. 애인은 있어?”


“아니요. 없어요.”


“꼬마아가씨, 이름은 뭐야?”


“오춘…오춘아요.”


“춘아? 이름도 깜찍하네.”




대게 이런 상황에선 여자가 겁에 질린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불량배들의 질문에 다소곳이 답변을 다 해주었다. 

게다가 창피함에 이름까지 바꿔버릴 줄이야. 솔직히 나도 놀랐다. 




“오빠들이랑 좋은 데 안 갈래?”


“좋은데요? 거기가 어딘데요?”


“응? 있어. 아주 아주 좋은데. 너도 가보면 깜짝 놀랄 거야.”


“킥킥킥.”




불량배들은 서로를 응시하며 마치 뭔가를 해낸 듯이 기뻐했다. 그들이 주고받은 눈빛의 의미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따라가 봐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 중 한명이 내 손을 잡았다. 



“망설일 거 없이 얼른 가자.”



나는 정말로 그들과 함께 가려고 했었나보다. 아무런 저항 한번 없이 몇 걸음이나 걸어갔으니까. 

빵빵!! 하지만 내가 그들을 따라가기를 멈췄던 것은 어느 자동차의 클랙슨소리 때문이었다. 




“춘자, 너 딱 걸렸어!”




낯익은 검은 자동차. 그것은 아침에 보았던 체육선생님이 타고 오신 고급승용차였다. 

그리고 즐거운 듯 외치시는 저 분이 바로 다름 아닌 체육선생님이셨고 말이다. 

조수석에 앉아계시던 선생님께 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조수석 창문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뭐가 딱 걸렸는데?”


“쟤가 바람피우는 장면. 우혁아, 카메라 있어? 이런 건 빨리 증거사진으로 찍어놔야 돼.”


“카메라? 내가 보기엔 깡패들한테 끌려가는 것 같은데. 저 봐. 남자들이 다 얍삽하게 생겼잖아.”


“진짜? 그럼 구해야 되는 거 아니야?”


“왜? 귀찮잖아. 그냥 가자.”


“안돼. 구해내야 돼. 설우한테 점수를 따기 위해서라도.”




철컥. 


차문을 열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께서 내리셨다. 








※춘자고교 왕따 오춘자※






[12]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지금 선생님께서 신고 계시는 신발은 슬리퍼(이하 쓰래빠)였기 때문이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나와 불량배들이 있는 곳까지 걸어오신다. 

정장에 슬리퍼라니, 뭔가 아주 언밸런스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이라 그런지 멋지게 소화를 해내셨다. 




“큭큭, 저 새끼 쓰래빠 신은 것 좀 봐라. 옷 살 돈은 있고 신발 살 돈은 없나보지?”


“꼬마아가씨, 아는 놈이야?”




불량배들은 선생님의 등장에도 크게 겁내지 않았다. 일단 머릿수가 자신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불량배 쪽은 3. 선생님 쪽은 2. 아니 운전석에 앉아있는 남자는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니까 빼고 1. 

즉, 3:1이다. 선생님께서 아무리 체육을 전공하셨다지만, 건장한 사내 3명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당신들 우리 춘자 방금 납치하려고 했지?”




선생님께서 불량배들에게 먼저 첫마디를 건네셨다. 그런데 방금 ‘우리 춘자’라고 하시지 않으셨나? 

‘우리 춘자’, ‘우리 춘자’. 

끄아악! 우리 춘자라니!! 

마음이 붕 뜨는 것이 날아서 전 세계일주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춘자? 걔가 누구야? 우리는 춘자라는 여자 말고 춘아라는 애랑 놀 거라고.”




제일 어깨가 넓은 불량배가 한 팔로 내 목을 끌어안았다. 숨이 막히지는 않지만 팔이 너무 굵어서 갑갑하다. 

꼭 구렁이 한 마리가 내 목을 감싼 기분이다. 아니 그 기분이 바로 이 기분일 것이다.(겪어본 적이 없어서 바로 말 바꾸는 춘자.) 




“춘아? 얘는 춘자지, 춘아가 아니야. 그치?”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시지 짚고 넘어가시는 선생님이다. 여기서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이름을 바꿨다는 것이 들통 날 텐데…. 

벌써부터 창피해 얼굴이 초장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난 내 입장 때문에 선생님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수는 없었기에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깐 분명히 자기 이름이 춘아라고 하지 않았었나?”


“맞아. 나도 똑똑히 들었어.”


“진짜 웃기다. 왜 그런 걸로 뻥을 치냐?”




불량배 셋이서 자기들끼리 수근거린다. 심히 부끄럽다. 

드릴이라도 손에 쥐어져 있다면 땅을 뚫어서 숨어버릴 텐데. 이게 다 우리 아빠 때문이다. 

왜 하필 내 이름을 ‘춘자’로 지으셔서 날 이렇게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걸까?(뭐든지 잘못 되면 조상 탓이라더니….) 



“그 팔 풀고 춘자는 나한테 줘.”


“순순히 돌려주면 우리 체면은 뭐가 되냐? 그리고 꼬마아가씨도 우리랑 놀고 싶어 하는데 네가 뭔데 참견이야?”




손을 내민 선생님께 내 목을 끌어안은 불량배가 대꾸를 했다. 그의 말을 들은 선생님께서 나를 응시한다. 

마치 사실이냐고 묻는 듯이…. 


아니에요!…이 사람들을 따라가려고 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호기심에서 그랬던 거라고요! 

만약, 이 사람들과 선생님 중 한쪽을 선택하라면 저는 주저 없이 선생님께 달려갈 거예요! 




“춘자는 너희들보다 내가 더 잘 생겼데.”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춘자는 외모지상주의거든.”




내 속마음을 읽지는 못하셨다. 하지만 선생님을 향한 내 간절한 눈빛은 알아보신 것 같았다. 

열 받은 불량배 한명이 선생님께 욕을 퍼부으며 주먹을 날리려고 했다. 




“이 병신새끼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잠깐. 내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간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될 지도 몰라.”




적어도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하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선생님이 어찌나 자신감이 철철 흘러넘치는 미소를 지으시던지 주먹을 쥐었던 불량배가 순간 움찔하며 주먹을 거두었다. 




“유인아, 대충 끝내고 와! 밖에서 사고 치면 형님이 가만 안 둔다고 했단 말이야!”




차안에서 선생님의 친구로 추정되는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 때문인지, 그의 대사 때문인지 불량배들이 뒤로 주춤거리는 것이 포착되었다. 

내 목을 감싸 안았던 불량배도 스르르- 팔을 풀었다. 이들은 마치 고양이를 보고 깜짝 놀란 생쥐의 모습이다. 




“유인? 설마 쓰래빠의 신유인…?”


“그럼 저 쓰래빠는….”


“도, 도망가자!!!”




왜 저토록 꽁무니를 빼고 죽자 사자 달아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선생님의 이름 석자에 많이 놀란 것처럼 보였다. 

선생님의 이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투. 그리고 선생님이 신고 계신 슬리퍼에 꼭 무슨 이유라도 담긴 것 마냥 당황해하였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불량배들이 선생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차안에 있던 남자가 ‘형님’이라는 단어를 꺼냈었는데…. 


에, 에이! 설마! 선생님이 건달이거나 그럴 리는 없잖아. 건달이 미쳤다고 선생 짓을 하겠어? 너무 안 어울리잖아. 하하하. 




“가버렸네.”




작아져가고 있는 불량배들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선생님께서 중얼거리셨다. 왠지 많이 아쉬워하는 눈빛이다. 




“유인아! 거기 서서 뭐해? 얼른 가자!”


“아, 응! 춘자야, 너도 타.”




나도 차에 타라니…. 아니 타도 되는 건가? 미치도록 타고 싶기는 한데. 




“저도요? 전 지금 집에 가려고 했는데.”


“그래! 당연히 집에 가야지. 데려다줄게. 어서 타.”




오늘이 바로 오춘자의 행운의 날인가 보다. 

선생님께서 불량배들에게 잡혀 있는 날 구해주시고 게다가 고급승용차로 집까지 데려다주시다니. 

이게 꿈이라도 좋으니까, 이런 행복한 꿈을 매일매일 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24시간 잠만 잘 텐데. 


선생님을 따라 탄 차안은 정말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 내가 몇 억이나 하는 자동차를 타게 될 줄 그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나는 뒷좌석에 앉은 체 선생님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황홀감에 젖어들었다. 

아쉽게도 룸미러로는 운전을 하고 있는 선생님 친구 분의 얼굴만 살짝 보일 뿐이다. 




“집이 어디야?”




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 걸까? 친구 분이 룸미러로 나를 힐끔 보시며 물으셨다. 

나는 우리 집이 있는 위치를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옛말에 끼리끼리 논다던가? 친구 분도 꽤 멋쟁이다. 

타고 있는 차는 벤츠에 차안의 시트는 밍크로 만든 것이요, 입고 있는 옷도 명품, 모자도 명품. 

두 분은 분명 엄청난 자산가의 아들임에 틀림없다. 

아아…나또한 나름대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건만 왜 이렇게 기가 죽는 걸까? 어깨가 다시 작아진 기분이다. 




“설우는? 아까 설우랑 같이 나갔었잖아.”




선생님께서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보셨다. 




“갔어요. 친구들한테.”


“친구? 설우 친구들은 별로더라. 깡이 없어 보여.”


“네?”


“응? 아냐. 아무것도.”




선생님은 가끔씩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신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캐묻고는 싶지만, 괜히 참견하는 것 같아 그럴 수가 없다. 




“야, 신유인. 안전벨트 왜 또 안 매?”


“우혁이 널 믿으니까.”


“웃기고 있네. 빨리 매. 나도 내 자신을 못 믿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믿어?”


“싫어. 귀찮아.”




선생님, 앞에 앉으셨으면서 안전벨트도 안 매신 건가? 위험할 텐데. 친구 분도 많이 걱정을 하는 모양이다. 

저런 친구라면, 나도 한명쯤은 갖고 싶다. 그게 원한다고 갖게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임마, 그딴 게 귀찮으면서 선생은 어떻게 했냐? 빨리 매. 순경한테 걸리면 네가 벌금 낼래? 

너 때문에 한달에 내는 벌금만 해도 50만원이나 돼!”




내가 잠시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친구 분은 선생님의 안전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교통경찰의 검문에 걸릴까봐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로인해 내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친구에 대한 환상도 깨어져버렸다. 




“아이씨, 자꾸 구박하면 뒤에 앉을 거야.”


“마음대로 해! 후우- 신유인, 그리고 내가 웬만해서 참으려고 했는데 머리 좀 감아라! 냄새가 왜 이렇게 지독하냐?”


“냄새? 무슨 소리야? 나 오늘 아침에 머리 감았어.”


“그럼 도대체 이 냄새는 뭐야? 너 찌글이(개)샴푸로 머리 감냐?”


“내 머리는 소중해서 로로알로 감아. 우혁이 너야말로 파마 약으로 머리 감는 거 아니야? 이거 아줌마 파마 약냄샌데?”




그러고 보니 내 머리에서 나는 약냄새가 어느새 차안을 가득 메웠다. 

두 사람은 냄새의 근원지가 나라는 것은 의심조차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다투고 있는 두 사람에게 이제 와서 나 때문이라고는 말 할 수가 없었다. 단지, 그들 몰래 창문을 조금 내릴 뿐이다. 


끼이익-. 


쿵쾅쿵쾅. 들킬 까봐 조마조마해하던 내 가슴이 진정을 되찾았을 때는 차가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두 사람은 20분 내도록 냄새 때문에 티격태격하였다. 그때 나는 숨죽인 체 자는 척을 하였다. 

얼른 차에서 내렸다. 




“태워줘서 고맙습니다. 두 분 모두 조심해서 가세요.”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는 잽싸게 돌아서서 대문을 열었다. 



“잘 자! 월요일에 보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대문으로 시선을 향한 체 고개를 끄덕였다. 

철컹.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까지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은 걸로 봐선 집 앞에 선생님이 계신 걸로 보인다. 

차가 출발할 때까지 대문에 등을 붙이고 있었다. 아쉬워서일까? 아니면, 나 때문에 두 분이 싸워 미안해서였을까? 

그렇게 가만히 서있으니 대문 밖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선생님과 친구 분이다. 




“네 제자 되게 웃긴다. 우리가 냄새 때문에 싸우는 거 뻔히 다 알면서 어떻게 끝까지 아닌 척 시치미를 뗄 수가 있어?”


“그럴 사정이 있겠지. 근데, 파마냄새 진짜 지독했어. 그치?”


“그러게. 아직도 차안에 냄새가 배어있어서 들어가지를 못 하겠어. 웩-.”







....................






우…우째 이런 일이. 

그들의 말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그런 거였어? 내가 시험에 들었었다니. 

내 눈가엔 창피함에 눈물이 일렁이었다. 그나저나 내 머리에서 나는 냄새지만 정말 후각을 마비시킨다. 

(스트레이트)파마라는 거 두 번은 못할 짓이다. 



지친 마음으로 어떻게 주말을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요일이 지나고 또 다시 한 주가 시작되었다. 

학교. 나는 짧아진 치마 때문에 선도가 지키고 있는 교문으로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아이들이 붐빌 때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몇 분 뒤 드디어 양 방향에서 아이들이 몰려오는 순간이 발생하였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이들 틈에 섞여 교문을 들어섰다. 

난 선도부의 눈을 피해 무사히 교문을 통과했나 싶었는데 이게 웬일? 




“어이! 거기! 잠깐 이리 와봐.”




3학년 선도부장의 예리한 눈썰미까지는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역시나’라는 생각에 3학년 선도에게 힘없이 걸어갔다. 

앞에 선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던 선배가 수첩에 볼펜 끝을 붙인다. 



“치마가 짧잖아. 몇 학년이야?”


“2학년요.”


“몇 반?”


“5반요.”


“이름?”


“오춘자요.”


“뭐?”




못 들었는지 다시금 물어온다. 하지만 이상하다. 전교생 대부분은 나를 알고 있을 텐데 왜 굳이 묻는 걸까? 

나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발음해주었다. 




“오 · 춘 · 자예요.”


“뭐어? 네가 춘자라고?”




선배가 화들짝 놀래더니 두 눈을 크게 떠보였다. 그럼 내가 춘자지, 누가 춘자란 말인가. 

나는 선도부 선배의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춘자고교 왕따 오춘자※






[13]





선배는 내 얼굴을 몇 번이고 확인하더니 그제야 믿는 건지 수첩에 내 이름을 끄적였다. 

이름 한번 적는데 왜 이리도 오래 걸리는 건지 하품이 다 나올 지경이다. 




“춘자 너 일요일에 뭐 잘못 먹었니?”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난 오히려 선배가 정신 이상해지는 음식이라고 먹었냐고 묻고 싶었다. 




“잘못 먹은 거 없는데요? 왜 그러세요…?”


“너 머리도 했니? 바람났구나?”


“바…바람이라뇨? 이건 설우가. 아니, 이만 가볼게요.”




꾸벅. 머릴 숙여 인사를 짧게 하고선 허둥지둥 교실로 달려갔다. 

교실까지 올라오는 내내 아이들의 시선에 눈을 어디에 두어야 될지 모를 정도였다. 이런 내 모습이 많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하긴, 나도 지금 적응이 안 되는데 남들은 오죽하겠어? 아이들의 반응도 가지각색이었다. 



“춘자, 오늘 좀 이상하지 않아?”


“쟤 뭐니? 재수 없어.”


“하하. 오춘자, 진짜 엽기다!”



이렇게 날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는 가하면, 



“춘자도 꾸미니까 귀엽다.”


“앞머리 내니까 훨 낫네.”


“가방 이쁘다.”



변신한 나를 옹호하는 입장도 있었다. 비율로 치자면 6:4? 

그래도 아직까지는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교실에 도착했을 때에도 아이들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보며 모두들 삼삼오오 모여 속닥거리기에 여념이 없다. 

괜찮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설우가 내게 사주었던 노란가방을 의자에 걸었다. 




“진짜 조금 있던 재수까지 다 털린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졸라 역겨워!”




내가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반장이다. 나는 못 들은 척 자습시간에 공부할 문제집을 책상서랍에서 꺼내었다. 

호박에 검은 줄을 그어도 호박은 호박일 뿐이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꾸며봤자 예쁘지도 않을 내 자신을 손대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살아가던 것이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짧은 치마와 예쁜 가방, 긴 생머리도 나에겐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인 교복을 입고 예쁜 가방을 매고 또 머리를 풀고 온 이유는 나를 위해 애써주었던 설우에게 실망을 안겨다주긴 싫어서였다. 




“뭘 모르나본데. 호박을 녹색으로 색칠하고 검은색 세로줄을 그으면 수박이 돼. 적어도 겉모습은 말이지.”




옆자리에 낯익은 가방 한 개가 놓여졌다. 설우가 교실에 들어온 지도 모르고 있었다. 

근처에 앉아있던 반장은 설우가 나를 감싸고돌자 입을 꾹 다물었다. 




“비록 속은 아직 호박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겉과 속이 완벽한 수박으로 변해있을 거야. 그렇지?”




살짝 미소 지으며 윙크를 해 보인다. 설우의 미소는 전혀 거짓되지 않은 것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의 미소에 나까지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도 설우는 내 등 뒤에 서서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난 시원한 목소리로 크게 대답했다. 




“맞아!”




호박이었던 오춘자, 수박이 되다!






***************





아직 출근시간이라 학생들의 교실과 마찬가지인 어수선한 교무실로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여학생은 보는 선생님들마다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인사를 받은 선생님들도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어, 그래. 지혜도 안녕?”




춘자고교 2학년 9반의 반장이었던 지혜는 반 아이들에게서 거둔 프린터 물을 담임선생님의 자리에 놓아두기 위해 교무실을 찾았다. 

담임의 자리가 깨끗이 비어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출근 전인 듯 했다. 살포시 프린터 물을 책상 위에 놓았다. 

담임의 옆자리를 보았다. 그곳도 비어있었다. 




‘체육도 아직이네?’




그렇다. 지혜가 담임의 옆자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곳이 체육선생님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지혜는 교무실 뒤 벽면에 넓게 차지하고 있는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칠판에는 이번 주 생활목표 및 한 달 행사들이 줄줄이 적혀있었다. 

지혜는 날짜와 행사내용을 살펴보다가 문득 칠판 한 구석에 적혀있는 이름에 시선이 갔다. 

신유인. 그 이름 위에 적혀있는 것은 ‘금일당직’이라는 문구였다. 

지혜가 칠판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체육선생이 오늘 당직이란 말이지? 후후, 이게 웬 떡이야?’




지혜는 오늘이야말로 얄미운 체육선생의 콧대를 꺾어 주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학교 모든 수업이 끝이 나고 5시. 교실에 남아있는 지혜에게 소천이 찾아왔다. 

이 둘은 2학년은 거의가 다 아는 춘자고교 공식커플이다. 책상 위에 앉아있는 소천의 허리를 감싼 지혜가 입가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오늘은 반드시 체육을 사로잡겠어. 지도 남잔데, 설마 안 넘어오고 배기겠어?”


“이렇게 예쁜 여자한테 안 넘어오면 사내놈도 아니지. 눈도 깜짝 안 하면 그 새낀 분명 계집일 거야.”




소천이 지혜의 뺨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졌다. 그 손을 또 지혜가 어루만진다. 

교실은 조용하다. 가끔씩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남자들의 축구하는 소리가 전부이다. 




“오늘 체육이 당직이니까, 학교에 혼자 있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너무 잘해주지는 마라. 연극이라도 질투 나니까.”


“아이참. 난 소천이 너뿐인걸? 쿡쿡.”




지혜가 소천일 달래기 위해 그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저녁노을이 교실 유리창으로 비친다. 

그렇게 철없는 두 남녀가 사랑을 속삭일수록 노을은 짙어져만 갔다. 



여기는 놀이터.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미끄럼틀에서 조금 떨어진 철봉 앞에 설우와 춘자가 있다. 

설우는 일명 ‘춘자 왕따 탈출기’ 두 번째 교육을 하기 위해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김에 놀이터로 왔다. 

모래 속에 반쯤 파묻힌 타이어를 따라 걷던 춘자가 한 자리에 멈췄다. 폭이 좁은 타이어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두 팔을 벌린다. 

그녀의 앞에 설우가 섰다. 




“겉모습을 바꾸는 것만으론 안 되겠어. 너도 오늘 봐서 알겠지만 변화된 너를 좋게 생각하는 녀석들이 생겼냐하면 

아직까지도 너를 싫어하는 녀석들도 많이 남아있어. 그렇다는 건 그 녀석들이 널 따돌리는 이유가 겉모습이 아닌 

다른 것에 있다는 거지. 이번 시간엔 그걸 생각해보자.”




춘자는 설우의 두 눈을 응시하며 머릿속으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이유. 얼마 전 춘자도 이런 문제로 고민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결론은 단순한 ‘그냥’이었다. 




“넌 네가 왜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 하냐?”


“그냥인 것 같아.”


“뭐? 그런 어이없는 대답이 어딨어? 잘 좀 생각해봐.”


“솔직히 나보단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너도 날 따돌린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으니까.”


“어? 야, 난.”




설우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질문을 했던 자신이 도리어 질문을 받게 될 줄이야. 그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한때 춘자를 괴롭혔기는 했지만 적어도 본심은 아니었다. 자기 마음과는 달리 행동하는 자신을 스스로가 제어할 수가 없었으니까. 

춘자는 그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대답을 기다렸다. 




“난…원래 그래!”


“…….”


“난 어릴 때부터 짝꿍은 무조건 괴롭혀!”


“그런 게 어딨어.”


“버릇이야! 고칠 수 없는 버릇이라고.”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으로 황당한 대답이었다. 

순간 균형을 잃은 춘자가 좌우로 비틀거렸다. 춘자는 타이어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어어어….”



이윽고 앞으로 떨어지는 춘자였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두 팔을 뻗었다. 그에 앞에 서있던 설우의 가슴을 밀어버렸고, 

끝내는 쿵! 그를 쓰러뜨리고서 그의 가슴 위로 엎어지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얏…미안해.”




춘자가 사과와 함께 머리를 들자 그녀의 긴 머리칼이 설우의 양쪽 뺨에 떨어졌다. 부드러운 감촉이다. 

설우가 정신을 차리고 정면을 응시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춘자와 눈이 마주쳤다. 

눈과 눈 사이의 거리는 불과 5cm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참으로 묘한 자세여서 그런지 두 사람의 볼에 홍조가 띠었다. 

두근두근. 설우의 심박수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도 알아챘는지 당황스러워한다. 

설우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 터질 새라 춘자의 시선을 피해버리며 크게 고함을 쳤다. 




“뭐해? 안 떨어지고!”


“앗. 미…미안해.”




춘자가 깜짝 놀라 설우의 몸에서 내려갔다. 설우가 간신히 가슴을 진정시키며 바닥 위에서 일어났다. 

머리와 옷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설우는 더 이상 여기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쯤에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속 있다간 춘자에게 이상한 감정을 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만약, 그러한 감정이 생긴다 하더라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미안해. 화 많이 났어?”




춘자는 그가 화라도 났을까, 그것이 두려웠다. 




“됐어. 집에 가서 이유나 잘 생각해봐. 난 갈래.”




설우는 춘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돌아섰다. 

아직도 뺨에 닿은 머리칼의 감촉이 남아있는 것만 같아 그는 손끝으로 뺨을 만져보았다. 

두근! 그때의 상황을 다시금 떠올리니 심장이 곧장 반응을 한다. 

설우는 고개를 심하게 흔들어대었다. 




“미쳤어? 내가 왜?!”




그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고자 스스로에게 인정할 수 없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오늘도 역시 해가 지고 달이 떠올랐다. 

소천이를 보낸 지도 3시간이 지났다. 밤의 학교는 무서울 만도 하건만 지혜는 긴장 한번 하지 않았다. 

사실 가장 무서운 건 그녀일지도 모른다. 




‘교무실에 있겠지?’




지혜는 슬슬 체육선생을 유혹하기 위해 교무실로 향했다. 하지만 교무실에 도착한 그녀는 체육선생을 볼 수가 없었다. 

불은 켜져 있었다. 교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가보았다. 

텅 비어있는 교무실. 

그녀는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자신이 잘못 알았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오늘 당직은 신유인. 바로 체육선생이라는 것을. 

퇴근 전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체육선생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책상은 너무나도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선생의 가방은 보이지도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느새 지혜의 머릿속엔 ‘체육은 집에 갔다.’,‘체육은 지금 학교에 없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화가 나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또 한번 체육선생에게 무너지는 구나하고 분해했다. 

그러게 망연자실한 체 그만 돌아가자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덥썩! 누군가가 자신의 두 다리를 잡아버리는 게 아닌가! 




“꺄아악!!”




지혜는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쿵하고 넘어졌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체 정면을 응시한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시선은 책상아래에 꽂혀있다. 그리고 그녀는 또 한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선…선생님?”




책상아래에 쭈그려 앉아 놀란 자신을 보고 뿌듯한 미소로 씨익- 웃고 있는 체육선생. 

입가에 미소가 진 체 말을 한다. 




“깜짝 놀랐지?”









※춘자고교 왕따 오춘자※






[14]





어벙해진 지혜가 얼어붙어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머릿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하지만 한편으론 여려 면에서 다행스러웠다. 

첫째는 없다고 여겼던 체육선생이 학교에 있어서이고 둘째는 자신의 발목을 잡은 이가 귀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이 말이다. 

책상 아래에 숨어있던 체육선생이 엉금엉금 기어 밖으로 나왔다. 엉덩이를 탁탁 털며 경직되어 있는 지혜를 쳐다본다. 




“많이 놀랐어? 미안.”




선생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지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시 긴장되었던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긴장이 풀리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바닥에서 일어나 유인을 노려본다. 




“선생님, 뭐예요?! 거기엔 왜 들어가 있었던 거예요??”


“발소리가 나길래 심심해서 놀래켜 주려고 그랬지. 작전은 아주 대성공이었어. 괜찮아. 진짜 만족하니까.”




의자에 앉으며 여전히 뿌듯해하는 그였다. 지혜는 그런 그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입을 벌려 하품을 하는 선생의 모습이 눈 안으로 들어온다. 




“우하암-, 진짜 따분하다.”




책상 서랍을 열어 이곳저곳을 뒤진다. 그러다가 찾는 물건이 없는지 서랍을 세게 닫아버리곤 지혜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뭔가를 바라는 눈빛이다. 




“먹을 거 없어?”




지혜는 또 한번 기가 찼다. 

대게 (밤중에 학생이 교무실에 있는)이런 상황이 되면 왜 여태껏 집에 가지 않고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거늘 선생이라는 작자가 태연하게 먹을 것부터 찾으니 기가 차지 않겠는가. 

지혜는 그런 선생이 한심해보이기까지 했다. 아니 선생이 맞는 지 의심스러웠다. 




“선생님은 제가 왜 아직까지 학교에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으세요?”




체육선생은 전혀 궁금하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충 수업하잖아.”




하지만 완전 잘못 알고 있었다. 지혜는 그의 대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 학교는 보충이고 야자고 그런 거 없어요.”




그렇다. 사립고인 춘자고교는 타 학교와는 다르게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 교장은 남들과는 차별화된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자고교는 계절마다 소풍을 가고 개교기념일은 양력, 음력 모두 쉰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이건만 얼마 전에 부임한 체육선생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럼 왜 집에 안 가고 있어?”




선생은 지혜가 물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 한번 물어봐주었다. 

지혜는 이제야 자신이 생각해왔던 전개로 상황이 흘러가자 열을 식히며 화를 풀었다. 

선생이 앉아있는 가죽의자를 자신의 방향으로 돌리며 빙긋 웃어 보인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지혜. 

또래아이들보다 모든 면에서 성숙한 그녀는 아주 매혹적인 표정으로 선생을 응시했다. 




“그런 건 중요치 않아요. 안 그래요? 오 ∙ 빵♡”




오빠도 아닌 오빵. 다소 닭살 돋고 소름 끼치는 말투였지만 선생은 별다른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감기에 고생하는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것 정도로만 보였다. 

하지만 오빠라고 불리는 건 왠지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이곳은 학교고 자신은 엄연한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오빠 아니고 선생님.”


“왜 그래요? 오빠. 절 학생이 아닌 여자로 봐주세요. 예?”




지혜는 강아지 마냥 선생의 무릎 위로 올라가 앉았다. 그의 목을 두 팔로 감싸 안고서 입술을 가까이 가져다대었다. 




“무거워. 내려.”




키스하려는 그녀에게 매정하게 한마디 하는 체육선생이다. 깨진 분위기에 지혜가 입술을 떼었다. 




“웬만하면 살 좀 빼.”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교내에서 몸매가 제일 예쁘다고 자부하던 그녀였기에 충격은 더 크게 와 닿았다. 

선생의 무릎 위에서 내려와 뚱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무슨 그런 실례되는 말씀을! 전 45kg밖에 안 나간다고요!”




키 170cm에 몸무게 45kg이면 날씬하다 못해 마른 체구이다. 그건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건만 

살 좀 빼라는 선생의 말은 도무지 이해할레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도 45kg인데.”




또 한번 생각 없이 내뱉은 선생의 말은 그녀에게 두 번째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성인 남자가 45kg이라니, 말도 안 된다. 




“선생님이 45kg이라고요? 웃기지 마세요!”


“맞아. 중학교 1학년 때 몸무게를 재었는데 45kg이었어. 지금은 모르겠지만.”




다행이었다. 남자가 자신의 몸무게와 같은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지혜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자신의 본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인식시켰다. 

선생의 페이스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지혜는 선생에게서 등을 돌린 체 교복단추를 한 개 한 개 풀어나갔다. 

선생을 한 방에 보내자는 생각으로 말이다. 단추를 모두 푼 그녀가 또 다시 코맹맹이 소리를 내었다. 

속옷을 훤히 드러낸 채 뒤를 돌았다. 




“오빵, 학교에서 이러는 것도 꽤 스릴이.”




그녀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눈앞에 있어야할 선생이 뿅 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앞문으로 걸어가고 있는 선생이 눈에 띠었다. 

그녀는 허둥지둥 단추를 잠그며 선생을 불렀다. 




“오빠! 아니, 선생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집에 갈 거야. 여긴 재미없어서 있기 싫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쪽 손만 흔들어 보인다. 




“선생님은 당직이시잖아요! 당직이면서 어떻게 집에 간다는 거예요?!”


“그럼 네가 대신 좀 남아줄래? 그냥 도둑이 드는지 안 드는지만 감시하면 돼.”




문밖에서 고개를 내밀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선생을 보자 지혜는 덜컥 겁이 났다. 

정말로 자신을 혼자 두고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닫으려는 체육선생이었다. 




“잠깐만요! 저도 갈래요!!”




지혜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달려 교무실에서 나왔다. 




“흐응- 겁쟁이.”




선생의 말투엔 놀리는 느낌이 역력했다. 지혜는 자신의 유혹이 통하지 않아 분했지만 꾹 참으며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당직인 체육선생은 정말 집으로 갈 모양인지 학교 주차장으로 나갔다. 주차장에는 승용차 한대만이 유일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그 승용차가 바로 체육선생의 것이었다. 



‘삑-!’



선생이 리모컨으로 차문을 열자 지혜가 당연하다는 듯이 조수석에 올랐다. 유인이 운전석에 앉으며 지혜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왜 타?”


“어머머. 선생님도 참? 선생님은 이런 밤늦은 시간에 학생 혼자 보낸단 말이에요?”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체육선생은 하는 수 없이 차문을 닫고서 안전벨트를 매었다. 

평소 조수석에 앉을 때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그였지만 자신이 운전을 할 때만큼은 꼭 벨트를 매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방향치인 자신을 못 믿어서이고 둘째는 경찰에게 걸릴 경우 자신이 벌금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집이 어딘데?”




체육선생이 지혜에게 물었다. 왠지 꽤나 달갑지 않은 목소리다. 




“짱높아빌딩 근처예요.”




지혜는 차근차근 위치를 설명해주었다. 심한 길치였던 체육선생은 낯선 곳을 목적지로 정했기 때문일까? 

지혜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목적지까지 가는데 3시간이나 걸렸다. 그것도 체육선생 자신이 사는 곳에 말이다. 

하지만 체육선생은 지혜의 집에 간다고 간 것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랬다. 지혜가 말한 위치는 자신의 집이 아닌 선생의 집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포기할 수가 없었던 그녀는 선생의 집에서 결판을 짓기 위해 미리 알아놓았던 선생의 집을 가르쳐주었고, 

위치를 뒤죽박죽 빙 돌려대며 설명을 했던 터라 체육선생은 그곳이 자신의 집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지혜의 작전이 성공했다. 선생은 3시간 만에 겨우 도착한 곳이 자신의 집이자 어리둥절하였다. 

하지만 곧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생은 이런 거짓말을 하는 지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왠지 (아까운 기름을 쓴 것 때문에)짜증이 밀려와서 지혜를 버려두고 차에서 내려 대문으로 걸어갔다. 




“오빠! 같이 가요!”




지혜도 그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체육선생이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알바가 아니었다. 

화는 풀어주면 그만이니까. 지혜가 애교를 떨며 유인의 팔에 매달린다. 




“에이, 오빠. 화났어요? 죄송해요. 오늘은 제가 사정이 있어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래요.”


“떨어져.”




유인은 그녀를 떨쳐내며 대문을 열었다. 

철컹. 대문을 열고 정원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따뜻한 공기가 느껴진다. 

정면을 응시하자 정원 한가운데에서 불을 피워놓고 있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대문이 열린 것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 

다정하게 껴안은 체 키스를 하고 있는 친구들. 




“지금 뭐하는 거야?”


“키스하고 있는데요?”


“나도 알아.”




선생은 친구들에게 물었건만 지혜가 쓸데없이 대답을 하고 나선다. 




“오빠,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오빠 아니고 선생님.”


“에이, 아무렴 어때요?”


“너네 집에 가.”


“아, 알았어요. 선생님! 됐죠?”




선생의 친구들은 두 사람의 목소리에 그제야 깜짝 놀라며 떨어졌다. 

지혜의 눈에 비친 선생의 친구들은 잘생긴 남자와 몸매가 예쁜 여자였다. 어디에 둬도 눈에 띨만한 커플이다. 

선생이 무뚝뚝하게 친구들을 지나 현관으로 걸어가자 그 뒤를 지혜가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녀는 선생의 친구들 옆을 지날 때 낭창한 표정으로 한마디 해주었다. 




“하던 거, 마저 하세요.”





..............





어처구니가 없었다. 교복을 입은 애송이가 그런 말을 하다니. 황당해 뒤로 넘어갈 뻔 했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지혜를 보며 남자가 말한다. 




“쟤 뭐냐?”


“글쎄…유인이 제자 같은데?”


“제자? 별 희한한 걸, 달고 다니네.”




지혜가 바라본 집은 아주 큰집이었다. 2층까지 이어진 저택에 문이 여러 개 있는 것으로 보아 방이 몇 칸이나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나 큰 집에 남자 혼자 산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지혜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선생에게 물었다. 




“선생님! 여기 혼자 사세요?”


“아니. 얹혀사는 거야.”


“네? 얹혀산다니요. 그럼 누구 집인데요?”


“우리 형님 집.”




주방으로 들어가는 그에게 대답을 마저 듣기 위해 지혜는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형님이라…자신의 형을 말하는 것일까? 하고 그녀 나름대로 추측해본다. 하지만 ‘형님’은 그 ‘형’이 아니었다. 




“아까 정원에서 뽀뽀하던 여자애가 우리 형님이야.”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여자가 형님이라니…그렇다는 건 ‘형님’이라는 단어를 가족의 뜻으로 말한 게 아닌 

조직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는 건가. 거짓말 같았다. 아니 거짓말일 것이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조폭이라는 건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전혀 그렇게 보이지가 않는다. 




“선생님이 조폭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아까 그 언니가 오야붕이고요? 뻥쟁이. 

제가 무슨 바본 줄 아세요? 진짜랑 거짓말로 구분 못하게.”




그녀는 반장이었지만 체육선생에겐 바보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진담과 거짓말도 구분 못하기 때문이다. 

체육선생의 말을 사실이었다. 그는 흔히들 말하는 조폭이었고 정원에 있던 여자는 조직의 보스였다. 

그리고 그녀와 키스를 하던 남자는 그녀의 애인이자 왼팔이었다. 하지만 나이는 모두 같았다. 

조직의 이름은 ‘쓰래빠’. 국내 최대 규모의 전국구 조직이다. 조직 쓰래빠는 웬만한 건달들은 다 아는 조직이었다. 

그런 큰 조직의 중심이 되는 이들이 또래라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었다. 이야기하자면 아주 길다. 



우유팩에 든 우유를 통째로 마시던 선생이 식탁 위에 우유팩을 놓으며 지혜를 보았다. 




“너 집에 안 가?”


“벌써 새벽이에요. 어떻게 가요? 저 그냥 여기서 잘래요.”





지금 지혜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다. 

선생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짧게 내쉬며 지혜를 2층으로 안내했다. 2층에는 방 4개가 마주 보고 있었다. 

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는 방안에 지혜를 집어넣었다. 




“앗! 선생님, 전 혼자 못자요. 선생님이랑 같이 잘래요!”




지혜는 이게 아니라는 생각에 방에서 나가려고 했지만 방문은 냉정하게 닫히고 말았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가 하며 허탈함에 울상을 짓는다. 그녀는 침대에 힘없이 걸터앉았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소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소천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 




“그래! 어떻게 됐어?”


“나 지금 체육 집이야.”


“그 새끼 오늘 당직이라며? 뭐야? 널, 집까지 데리고 가든? 역시 그 새끼도 남자라고 별 수 없구만? 사진은 찍었냐?”




알지도 못하면서 혼자 들떠있는 소천이의 목소리를 듣자 왠지 화가 났다. 




“사진은 무슨 사진이야?! 체육은 분명 여자인 게 틀림없어! 그리고…그리고….”


“…왜 그래? 혹시 맞았냐? 내 이 새끼를 그냥!”


“조폭이래!”


“…뭐? 방금 뭐라고 했어?”


“알고 보니까 조폭이었다고!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예감이 안 좋아. 좀 더 알아봐야겠어. 끊어!”





탁! 


불안한 그녀는 전화를 끊은 뒤 손톱만 물어뜯었다. 아직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거짓말일게 분명하다. 

지혜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날 새벽, 지혜는 제대로 잠 한 숨도 못잔 체 뜬 눈으로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음날 아침. 


방에서 나온 지혜는 체육선생을 붙잡고 빨리 학교에 가자며 재촉을 했다. 

그에 선생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일찍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일찍 가네?”




신발을 신고 있으니 1층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온 남자가 선생에게 말했다. 어젯밤 정원에 있었던 그 남자였다. 

이름은 새신. 본명은 한신이다. 




“자기야! 잘 다녀와!”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낯선 남자가 선생에게 소리쳤다. 지혜는 그 남자의 시선이 자기를 향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니 분명 노려보고 있었다. 




“누구더러 자기래? 징그럽게.”


“아잉. 왜 그러셩? 자기도 ‘우혁쒸, 잘 놀고 있어. 돈 많이 벌어올게.’하고 대답해줘야지.”




멀쩡하게 생겼는데 상태가 조금 안 좋아보였다. 

지혜는 이곳을 빨리 벗어나자는 생각에 후다닥 먼저 나와 버렸다. 뒤따라 현관을 나온 선생과 함께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랬더니 밖엔 고급 승용차와 함께 덩치 큰 남자 5명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지혜는 흠칫 놀라 제자리에 발이 붙어버렸다. 




“형님! 밤새 편히 주무셨습니까요?”




제일 험악하게 생긴 남자 한명이 우렁차게 외쳤다. 선생은 아주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부하가 열어준 차문 안으로 들어갔다. 

선생이 멀뚱히 서있는 지혜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안 타? 학교 안 갈 거야?”




이로서 지혜가 밤새도록 고민했던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덩치들의 시선을 회피해버리며 잽싸게 차에 올랐다. 

차 밖에 있던 한 남자의 손길에 의해 차문이 닫히고, 선생을 바라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이 사람,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춘자고교 왕따 오춘자※






[15]





체육선생님이다! 오늘은 또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는 지 아침부터 선생님을 봤다. 

오늘도 여전히 삐까번쩍한 자가용을 타고 등교, 아니 출근을 하셨다. 

나는 차에서 막 내리고 계시는 선생님을 보자 반가운 나머지 그에게로 달려갔다. 




“선생….”




하지만 몇 걸음 만에 멈추고 말았다. 선생님의 차 반대편 차문이 열리며 여자가 내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우리 학교 학생이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서지혜가 말이다. 




‘저 애가 왜 선생님이랑 같이 오는 거지?’




라는 의문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지혜가 선생님과 나란히 학교로 들어간다. 나는 망연자실한 체 그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걸었다. 

지혜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내 눈매가 매섭다. 




‘오는 길에 만났을 거야.’




아무리 좋은 쪽으로 생각해봐도 질투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아…좋겠다. 


탁! 머-엉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때렸다. 

돌아보니 설우다. 어제는 갑자기 가버려서 화라도 난 줄 알았는데, 먼저 아는 척을 하는 걸보니 화는 다 풀린 모양이다. 




“뭘 그렇게 멍청하게 보고 있냐?”




아니야. 멍하게 봤지 멍청하게 보진 않았어. 

하지만 설우의 눈엔 내 모습이 멍청하게 보였나보다. 아무래도 거울을 보고 표정연습이라도 해야겠다. 

설우는 내가 응시하고 있던 정면을 보더니 크게 소리쳤다. 




“어이! 체육!!”




그의 목소리에 선생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혜도 함께…. 




“가자.”




설우가 내 손목을 잡아당기며 선생님이 계신 곳까지 달려갔다. 

얘가 왜 이래? 선생님만 보면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대던 녀석이 선생님을 반가워할 리도 없고. 그럼 설마 지혜를? 

아니야. 소천이랑 사귀고 있는 앨 좋아할 리가 없어. 그리고 평소 하는 행동으로 봐선 소천이와 연관된 지혜도 

엄청 싫어하는 것 같았으니까. 하여튼 오늘 설우가 이상한 건 확실하다. 

선생님께선 설우를 아주 많이 반기셨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내가 인사를 드리자 선생님께서도 인사를 해주셨다. 그것만으로도 왜 이리 기분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선생님께선 오늘 블랙 셔츠와 새틴 팬츠로 멋을 내셨다. 역시 다른 선생님들과는 뭔가 차별화되신 분이다. 

그의 패션감각을 그 어떤 선생님이 따라오리오! 살짝 눈을 돌려 지혜를 보았다. 왠지 표정이 애매하다.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랄까? 못 볼 거라도 본 표정이랄까? 하여튼 좀 그렇다. 




“선생님, 저 먼저 갈게요.”


“그러든지.”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라도 있는 걸까? 지혜는 급하게 학교 현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까 보니까 같이 내리던데, 어떻게 된 거야?”




내가 가장 궁금해 하고 있었던 것을 고맙게도 설우가 물어주었다. 난 질문을 한 설우보다 더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눈을 반짝였다. 

선생님의 대답을 기다렸다. 





“우리 집에서 잤어.”





띠잉! 박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선생님께서 태연하게 하신 말씀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너무나 큰 충격에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자 설우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왜 그래?”


“응? 아니. 그냥.”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마음을 다 잡고서 발을 움직였다. 지혜가 선생님의 집에서 잤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지혜도 학생이기 이전에 엄연한 여자이거늘 어디 다 큰 처자가 남자 혼자 사는 집(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다는 것인지. 보수적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이건 이해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감히 선생님의 집에서 잠을 잤다는 것부터가 용서되지 않는다. 게다가 선생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시는 점이 

나를 더욱 더 화나게 만들었다. 내가 화가 나봤자 거기서 거기겠지만…그래도 화가 나고 슬프다. 

그러고 보니 지혜가 먼저 들어간 것도, 표정에 수심이 가득 찬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설마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아악! 안돼. 선생님을 믿자! 선생님을 믿어! 




“그럼 네 정체도 다 알았겠네?”


“그렇지.”


“아예 ‘나 조폭이요!’하고 광고라도 내지 그러냐?”


“그건 좀 쑥스럽다. 푸훗.”




설우와 선생님의 대화를 듣던 난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설우가 방금 ‘나 조폭이요!’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선생님이 조폭이라는 뜻?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기는 있었지만, 그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나는 또 혼자 오해를 하고 있는 지도 몰라 두 사람에게 확인을 해보았다. 




“선생님이 조폭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들었냐?”




이봐. 다 들리게 말해놓고선 다 들었냐는 말이 어디 있어?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고개는 끄덕였다. 




“체육, 깡패 맞아.”


“깡패는 아니야.”


“아니긴 개뿔.”




이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유인 즉, 학교 건물 안엔 몇몇 선생님들과 많은 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선생님의 정체가 교내에 떠도는 건 좋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폭이 왜 선생님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아까 지혜의 표정이 굳어있었던 것도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애가 선생님의 정체를 알아챘기 때문일까? 

온통 궁금한 것투성이다. 학교 교과서나 참고서에 이런 궁금증의 해답도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딴 짓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


“체육이야말로 졸지 말고 수업이나 잘 가르쳐.”




한 층을 오르자 선생님께서 교무실이 있는 우측 복도로 걸음을 옮기셨다. 

설우와 내가 2학년 교실로 가기 위해선 두 층으로 더 올라가야만 한다. 

선생님은 내가 설우의 등 뒤에 가려 보이지 않으셨던지 설우에게만 인사를 해주곤 가버리셨다. 

그 때문에 아주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과 헤어진 후 설우와 단 둘이서 계단을 올라갔다. 

선생님과 있을 때만 해도 잘만 떠들어대던 설우가 침묵을 지킨다. 이상하다. 그에 나까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한 층을 올랐으니 이제 딱 한 층만 더 오르면 된다. 교실에 도착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을 것만 같던 설우가 이제야 입술을 떼었다. 




“생각은 해봤냐?”


“응?”


“어젯밤에 말야.”




어젯밤. 

놀이터에서 설우는 내가 따돌림을 당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했었다. 일종의 숙제였다. 

물론, 잠자기 전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를 고민한 뒤 내린 결론은 




“너무 내성적이어서 그런 가봐.”




성격이었다. 

평소 인기가 많은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열이면 열, 모두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설우도 내가 내린 결론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그래. 성격이 문제기는 하지. 좋아! 오늘부터 너의 그 소심한 성격을 아주 확 뜯어고치는 거야. 

야, 여기서 얘기할 필요 없이 빨리 교실로 가자!”




가끔씩 느끼는 거지만 설우는 내가 변화를 시도하거나 조금씩 변해갈 때마다 굉장히 들떠하는 것만 같다. 

마치 점차 성장해나가는 자식을 바라보듯이 말이다.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책상 2개의 교차지점에 연습장을 펼쳤다. 

잠깐! 내가 아니라, 설우가 앞장서서 펼친 것이다. 그는 뭐 때문인지 매우 흥분된 상태였다. 

그러니까 열의에 불타올랐다고나 할까? 어쨌든 지금 이 모습으로 책을 편다면 모두들 그가 공부를 한다고 착각할 게 분명하다. 

설우가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SMILE]이라고 한 면 가득 크게 적었다. 


스마일? 




“내성적인 성격을 없애려면 일단 많이 웃어야 돼. 슬퍼도 스마일, 화가 나도 스마일, 짜증이 나도 스마일. 

무조건 스마일! 따라 해봐, 스-마-일.”


“스-마-일.”


“항상 웃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마. 속담에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이 있잖아. 

무슨 일이든지 항상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되도록이면 말을 많이 해. 

그리고 친구를 사귀고 싶으면 친구가 생기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네가 직접 나서서 만드는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OK?”


“응. 알겠어.”




설우가 가르쳐 준 건 뻔히 다 아는 얘기고 당연한 얘기였다. 그래서 예전에도 웃고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을 해봤지만 

그게 그리 쉬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설우에게 한다고 대답을 한 이상 힘들어도 또 한번 노력을 해볼 수밖에 없다. 

난 정말 최선을 다 했다. 자습시간에 수학과제물을 거두기 위해 부반장이 교실 안을 돌아다녔다. 물론, 우리 자리로도 왔다. 



“숙제 내.”



우리 반은 반장, 부반장 모두 여자다. 남자는 반장선거에 한 명도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리 꺼내두었던 과제물을 부반장에게 제출하였다. 웬일로 설우도 냈다. 부반장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하지만 오늘도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설우였다. 




“하나도 안 했니?”


“몰라.”




설우가 낸 과제물(수학 50문제가 적힌 시험지)은 전부 백지였던 것이다. 

나는 황당해하는 부반장을 돌려보내기 위해 반 억지로 웃으며 부반장에게 말했다. 




“모르나본데. 설우도 숙제 했어.”


“뭐? 답을 하나도 안 적은 게 네 눈엔 안 보여?”


“하나도 안 적다니? 다 적었는데? 봐. 한 문제도 빠지지 않고 모조리 답을 적었잖아.”




자기의 눈을 의심하며 시험지를 한 번 더 들여다본다. 하지만 다시 본다고 적혀 있지도 않은 답이 나타날 리가 없다. 

시험지가 백지인 것을 다시 확인한 부반장이 동그란 안경알 너머로 나를 응시했다. 




“너 미쳤니?”


“하하. 아니야. 난 안 미쳤어. 내가 깜빡하고 말을 안 했는데, 너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이야기 알지? 

그것과 똑같은 이치야. 착한 사람 눈에만 글씨가 보여. 난 보이는데 넌 안 보이나봐?”


“푸웃-.”




내 말에 웃는 사람은 설우였다. 난 부반장을 웃겨주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설우가 웃다니. 대 실패다. 

아니나 다를까, 부반장은 왠지 성이 난 표정이었다. 




“너 지금 나 놀리는 거니? 짜증나게.”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더니 곧 우리 뒷자리로 가 과제물을 마저 거두었다. 

내 유머가 그렇게 들렸을 줄이야. 울상인 얼굴로 설우를 보았다. 내 어깨를 토닥여준다. 




“괜찮아, 괜찮아. 그런 식으로 성장해나가는 거야.”




나는 이 말을 정말 철썩 같이 믿었다. 



점심시간. 복도며 교실이며 시끌벅적하다. 

교실 중앙에서 밥을 먹고 있던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중국음식을 시켜먹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자장면 먹을래.”


“그러지 말고 우리 돈 모아서 탕수육 시켜먹는 건 어떨까?”


“탕수육 시키면 군만두도 서비스로 주지 않냐?”




그들의 목소리는 제법 커서 대화소리가 다 들렸다. 의견수합에 한창인 그들을 보자 끼어들기엔 더없이 좋은 찬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에 팔을 번쩍 들었다. 




“나는 짬뽕!”




큰 소리로 외쳤기에 그들이 못 들었을 리 만무했다. 옆에서 (딱갈이에게 시킨)라면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설우가 

벙진 체 나를 본다. 내가 많이 오버를 했나…? 라는 생각에 조심스레 팔을 내리려는데, 




“난 짬뽕 곱빼기.”




하며 손을 번쩍 드는 설우가 아닌가. 

우리(정확히 설우)가 장난삼아 내뱉은 말에 아이들은 음식을 시키지도 못한 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5교시가 끝이 나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혼자 교실을 나섰을 때의 일이다. 

복도엔 체육수업을 마친, 혹은 나가는 몇몇 반이 오가고 있었다. 

화장실에 거의 다 당도했을 때쯤 남자아이 2명이 내 눈에 띠었다. 그들은 체육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이 친구의 바지를 내리는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었다. 타이밍이 얼마나 절묘했던지 내 두 눈 안으로 

남자아이의 팬티가 들어온 것이다. 파란색 줄무늬였다. 




“야아!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킥킥킥. 너도 해.”


“새끼야, 넌 체육복에 허리띠 했잖아!”




화들짝 놀라 바지를 올리는 남자아이. 나는 설우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남자아이에게 말했다. 

이번 역시 반 억지로 웃으며…. 




“훗, 팬티 예쁘더라?”







.............







……경직되었다. 아무도 못 봤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는 생각지 못한 나의 발언에 턱에서 이마 끝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의 친구는 겨우겨우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날 하루. 짧은 9시간 동안 나에 대한 새로운 소문이 교내에 퍼졌다. 소문의 주된 내용은 이것이다. 





‘오춘자가 미쳤다!’





결국 설우의 말을 믿는 게 잘못이었다.(춘자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방법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bluesky_]

진짜재밌어요> 0<ㅎ 전 춘자의변한성격이 매우맘에든다는 = _=;; ㅋㅋ

[목소린한예슬♡]

△위엣분 말대로 전적으로 맘에 듬. 특히 팬티 예쁘더라. ㅋㅋㅋㅋ ㅡ,.ㅡ

[wogml913]

성격은 맘에 드는데.. 팬티예쁘더라? 이건 좀.. 싸가지 없엇을듯..;;

[펄펙뜨민경]

나 파란색 조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