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68코스 제2부
까막재임도-남성마을-익근마을-석수포-중산마을-도화복지관-도화버스터미널
20220426
1부에서 이어짐
1.비내리는 마복산 임도와 안개 피어나는 다도해 풍경
봉암삼거리를 출발하면서 이슬비가 조금 굵어지더니 봉암고개를 넘어가는데 비가 제법 많이 내리면서 바람까지 분다. 우산을 받치고 가지만 등산화에 물이 살짝 들어오고, 옷자락은 비에 젖는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운무에 덮인 마복산 자락길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에 푹 젖어 그런 일에 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봉암길에서 비의 낭만을 마음껏 즐겼다. 그 낭만의 환희는 봉암길이 끝나고 까막재 오르막 임도에서 더 고조되었다.
돌길을 걷는 발걸음 소리, 우산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 풀과 나무에 듣는 빗방울 소리, 자연과 일체가 되는 감동에 흠뻑 젖어서 몸은 내 몸이 아니고 마음 또한 내 마음이 아니었다. 삼라만상과 호흡하여 자연에 동화되었다는 느낌도 없이 스스로 자연이 되어 있었다. 이 마음, 이 감동, 이 느낌을 언제 어디서 맛보았는가? 먼 시절이었다. 어느 늦은 가을날 낙엽 쌓인 깊은 산길을 걸으면서 이 감각에 젖었었다. 최근에 이런 감각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남파랑길 탐방의 국토순례가 자연에 동화되는 순간으로 승화되면서 탐방의 목적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현실은 엄연한 현실, 그 환각 속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남성리 대곡저수지와 남성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다도해와 나로도 섬을 떠올렸다. 자연과의 동화는 여기서 멈추었다.
남성마을 입구 체육공원에서 자라는 두 그루의 나무는 명품이었다. 다복솔 모습을 한 나즈막한 후박나무가 굵은 줄기에 가지를 펼치며 자잘한 연둣빛 꽃망울들이 부풀어 있었다. 반면에 팽나무는 줄기에서 갈라진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후박나무와 팽나무, 두 그루 나무는 함께 서서 수평과 수직의 조화미를 아름답게 보여 주었다. 이 아름다움을 남성마을 최고의 명품으로 손꼽고 싶다.
비는 잦아들었다. 남성3길을 따라가면서 남성마을의 인상적인 두 모습을 만났다. 개선문 같은 우람한 대문이 세워진 주택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떠오른다. 대문을 이렇게 구상한 분의 의도가 무엇일까? 위풍당당한 대문, 공적 건물의 큰 정문을 방불케 하는 개선문을, 시골 마을에 건축한 주인부부의 참뜻이 길손에게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또 한 곳은 주택 담장 안벽에 그려진 인상적인 벽화와 글씨다. 김홍도의 '상박(相撲, 씨름)' 그림의 부분그림과 달리는 말(走馬) 그림이 그려져 있고, '어려움이 지나야 상서로움을 이룬다'는 의미의 '과난성상(過難成祥)' 사자성어가 적혀 있다. 주인부부의 의도가 무엇일까? 이 그림과 문자를 연결해 생각해 보면, 씨름의 끈기와 역주(力走)의 노력이 있어야 이루고자 하는 꿈을 이룬다는 뜻을 표현한 것 같다. 집안의 가훈을 저렇게 그림과 문자로 벽화에 담았다고 생각한다.
남성마을에서 가슴을 뭉클하게 한 것이 있다. 그것은 남성청년부녀회관에 남성마을공부방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을 위한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길손은 이 공부방은 학생공부방이라기보다는 마을의 청년과 부녀들이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마을의 청년과 부녀가 교양, 문학과 역사와 예술 등 부족한 것을 공부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농작과 어업 관련 신기술을 습득하는 대단히 중요한 공부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남성마을을 나와 천마로를 따라 익금마을로 향한다. 비는 그친 듯하다. 천마로 남성저수지 위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풍경이 운무에 가려 흐릿하다. 이번 탐방에서는 이곳에서의 다도해, 특히 나로도 섬을 포함하는 풍경이 멋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그 풍경을 감상할 수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익금마을 해안, 익금마을 위 천마로, 석수포에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조망하지만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 섬들이 활짝 열려 있는 풍경이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의 '섬' 전문) 갈수록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단절되어 소외감이나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시인은 그 소외감을 극복하는 공간으로 섬을 설정하여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 섬이 오늘 멀리 숨어서 보이지 않는다. 길손은 그 섬을 보고 싶다. 그 섬의 이름을 알고 싶다. 그 섬들이 하나 둘, 그래서 모든 섬들이 활짝 열리기를 바라며 길손은 바다를 떠난다.
석수포에서 바다와 이별하여 봉산 들녘 농로를 따라간다. 건너편 봉산마을 뒤쪽에 마복산 산줄기가 뻗쳐 내리는 능선이 부드러운 듯 기상이 넘친다. 그 능선에 안개가 피어오르는 장면은 샹그리라처럼 보인다. 범속한 것들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아무도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는, 오직 그 속에서만 자유로운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축사 군집 지역에서 건너편 덕중저수지제방이 보인다. 제방벽에 저수지 이름을 조성해 놓았으면 좋으련만.
중산마을 고개 느티나무 아래 쉼터정자에서 일행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중산마을 고개에서는 가야할 면소재지 당오리 시가가 멀리 보인다. 중산마을 아래에 펼쳐진 넓은 들녘길을 걸어 도화면 사덕리로 넘어가 국도 77번 천마로로 나갔다. 천마로에서는 당오리 끝마을 당곤마을이 보인다. 천마로에서 사덕리 농로로 들어가 사덕리 넓은 들녘길을 걸었다. 논에서는 백로들이 먹이를 찾거나 한가로이 쉬고 있다. 비 내린 뒤의 들녘이 생기가 넘친다. 이 들녘에 곧 모내기하는 풍경이 돌아오겠지.
도화면 당오리로 넘어가 천마로의 당오교차로에서 신오치마을 방향으로 천마로를 따라가면 도화면복지관이 나온다. 도화면(道化面) 당오리(堂烏里) 도화면복지관 정문 왼쪽 문기둥에 적힌 '道化面老人會館' 글씨를 누가 썼을까? 서체가 예사롭지 않다. 낙관의 글자는 읽을 수 없고, 정유년 청명절(丁酉 淸明節)에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정유년이 언제일까? 아름다운 글씨체에 감복하면서 복지관 뜰안의 비석군들을 살폈다. 뜰 오른쪽 벽 앞의 '도화면향약사력비(道化面鄕約事歷碑)'와 맞은편 뜰의 이 지역 유명인사들의 공덕비들 중앙에 있는 '도화면사출판기념비(道化面出版紀念碑)', 두 개의 비석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 지역이 빛나는 전통과 도덕의 고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화천의 당오교를 건너 팔마로와 당오리 중심길이 만나는 모롱이로 들어서니서 남파랑길 이정목과 남파랑길 69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남파랑길 이정목에는 68코스 종점이 이곳에서 100m 지점에 있음을 알린다. 남파랑길 68코스 종점이라고 하는 도화공용터미널로 갔지만, 이곳이 남파랑길 68코스 종점이라거나 69코스 시작점이라고 하는 어떠한 표지물도 찾을 수 없다. 종점을 찾아 도화면사무소 앞까지 갔으나 잘못이었다. 종점은 도화공용터미널이 맞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흥 베이볼파크 건너편, 천마로와 당오리 중심길이 만나는 모롱이에 남파랑길 69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남파랑길 68코스 종점이라고 바로잡는 게 옳다.
2.걸은 과정(1부에서 이어짐)
직진하지 않고 왼쪽으로 꺾어 잠시 올라간다.
포두면 옥강리에서 포두면 남성리로 넘어왔다.
오른쪽으로 꺾어 남성리 들녘으로 내려간다.
푸른 마늘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앞의 섬들이 이름이 무엇일까? 안개구름 때문에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
남성(南星)마을은 옥강리를 연결하는 성(城) 터(지금의 마목성馬牧城)가 있고, 이 성(城)을 옛날에는 남포성(南浦城)이라 부르다가 남성(南城)으로 바꾸어 불렀는데, 조선말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쪽 하늘의 노인성(老人星)이 비춰주어 장수(長壽)하는 이가 많다는 뜻에서 남성(南星)이라 부르고 있으며 남성리의 중앙 마을로서 포두면내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고흥군청)
김홍도의 '상박(相撲, 씨름)' 부분 그림과 말 그림 그리고 '어려움이 지나야 상서로움을 이룬다'는 의미의 과난성상(過難成祥) 사자성어가 적혀 있다.
뒤 건물 왼쪽은 남성리 청년부녀회관, 오른쪽은 남성리경로당. 남성리 청년부녀회관에 남성마을공부방이 설치되어 있다
남성3길을 따라 국도77번 천마로로 나가면 남성보건진료소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남성보건진료소 앞에서 남성3길을 따라 천마로로 나와 남파랑길 이정목과함께 진행 반대 방향을 바라본다. 맨 뒤에 보이는 길게 누운 섬이 나로도일까?
남파랑길은 남성리 익금마을 입구까지 천마로를 따라 이어간다.
농지 너머 바다의 두 섬 이름이 무엇일까? 소룡도와 대룡도가 맞을까?
오른쪽 뒤 까막재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 남성마을 명품나무를 만났다.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 뒤에 남성마을의 명품나무 후박나무와 팽나무가 보인다.
남성보건진료소, 남성리사무소와 남성경로당이 중앙에 그리고 그 오른쪽에 남성교회가 보인다.
맨 뒤쪽 나로도 방향을 가늠해 보지만 흐릿하여 분명한 위치를 찾아낼 수 없다.
작은 섬이 소룡도이고, 그 오른쪽 뒤에 살짝 보이는 섬이 대룡도일까?
남파랑길은 천마로를 따라 고개를 넘은 뒤 천마로에서 왼쪽 익금마을로 들어간다.
멀리 왼쪽 끝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나로도를 가늠해 본다. 앞쪽의 섬은 소룡도와 대룡도가 맞을까?
왼쪽 익금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왼쪽 길은 익금마을에서 남성 방향으로 가는 차량이 천마로로 올라오는 도로이다.
남파랑길은 왼쪽으로 진행하여 익금마을 앞 해안길을 오른쪽으로 돌아 나온다. 단축하려면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된다.
남파랑길은 후박나무가 무성한 해안길을 오른쪽으로 따라나가 다시 천마로로 나간다.
익금마을은 산 아래쪽에도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남파랑길은 해안에 형성된 익금마을 앞으로 나아간다.
날씨가 맑으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을 조망할 수 있을텐데 일기가 불순하여 그 기회는 다음으로 미룬다.
익금교를 건너 해안길인 익금중앙길을 따라 진행한다.
남성리(南星里) 익금(益金)마을은 마을 앞에 모래가 많이 쌓이는 해안이 있어 장사리(長沙里)라고 부르다가 어촌 지명으로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여 뒷산 지형이 육구미(六拘尾, 여섯 마리 개의 꼬리가 모인 형국)이라는 뜻에서 ‘육구미’리라 하였으며 그후 개 모양에 의한 지명으로 인재가 배출되지 않는다 하여 발음이 비슷한 익금(益金)으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포두면의 가장 남쪽 끝에 있는 마을이다.(고흥군청)
남파랑길은 익금마을을 한 바퀴 돌아나왔지만, 단축하고자 하면 익금마을 동쪽 입구의 표석에서 오른쪽 도로인 천마로(사진에서 왼쪽 도로)를 따라오면 익금마을 서쪽 입구인 이곳에서 남파랑길과 재회하게 된다.
앞에 보이는 섬이 개도와 오형제도 섬일까?
저 섬이 개도이고, 맨 뒤쪽의 섬이 나로도일까?
개도와 오른쪽은 오형제도, 왼쪽 맨 뒤는 나로도일 것이라 추정해 본다.
포두면 남성리에서 도화면 봉산리로 넘어간다.
아름다운 펜션은 도화면 봉산리에 속한다.
앞쪽 석수포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봉산마을로 이어간다.
석수포 왼쪽에 석사방파제, 바다의 섬들은 이름이 무엇일까? 지도를 통해 추정해 보면, 왼쪽부터 개도, 오형제도, 나비좌도와 나비우도, 그 오른쪽에 삐죽 나온 섬은 수락도라고 추정하는데 분명히 확정할 수 없다.
오른쪽 도화면 봉산리 봉산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석수포의 특산품은 꽃게와 굴이라고 표석에 적혀 있다.
남파랑길을 벗어나 천마로를 따라 석수포삼거리를 지나서 바라본 도로표지판을 확인하고, 봉산마을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석수포삼거리에서 천마로와 헤어져 봉산로를 걷다가 왼쪽 농로로 들어가 길게 왼쪽으로 돌아간다.
왼쪽으로 돌아 농로를 따라 멀리 중앙 앞쪽 산모롱이로 이어간다.
앞에 보이는 산줄기는 왼쪽 오솔바위고개로 이어지는 마복산 줄기로 뒤쪽은 포두면 차동리 지역이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풍경이 멋지다.
앞쪽에 태양광발전소 집열판이 조성되어 있다. 건너편 오른쪽 마을은 도화면 봉산리 봉산마을이다. 이제 도화면 봉산리에서 덕중리로 넘어간다. 중뫼산은 봉산마을 왼쪽 동그마한 낮은 산인 듯, 그 왼쪽에 덕중저수지가 있다.
봉산마을은 뒤쪽에 마복산 줄기, 오른쪽에 청룡등야산, 왼쪽에 중뫼산 사이에 자리하여 앞쪽으로 넓은 들녘을 바라보고 있다.
도화면(道化面) 봉산리(鳳山里) 봉산마을은 조선 초기에 소지명을 포천 또는 포내라고 하였으나 마을이 비봉산 줄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새가 봉황 같다고 하여 1836년 현종 때 조양 선생이 마을이름을 봉산으로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음.(고흥군청)
도화면 덕중리 덕중저수지의 제방이 오른쪽에 보인다.
농로에서 왼쪽에 보이는 도화지구 용배수로 수리시설 공사사무소 방향으로 들어간다.
공사사무소 앞을 통과하여 도화면 덕중리 중산마을 쉼터정자로 오른다.
중산마을에서 남서쪽 방향, 앞에 보이는 고개를 넘어가면 도화면 발포리 발포해안으로 이어지는 듯.
남파랑길은 중산마을에서 북서쪽 방향 도화면 면소재지로 진행한다.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남파랑길은 반대 방향 중산마을회관 방향으로 진행한다.
덕중리(德中里) 중산(中山)마을은 앞산의 산형이 개어미의 젖줄에 해당된다 하여 육금이라 불리어 오다가 일정시대에 마을 양쪽에 산이 있고 산 사이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중산이라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음.(고흥군청)
맨 끝에 남파랑길 68코스 종착지인 도화면 당오리 면소재지 마을이 보인다.
멀리 도화면 당오리 지역이 보인다. 남파랑길은 들녘 왼쪽을 돌아 도화면 사덕리 국도 77번 천마로로 나간다. 오른쪽에 보이는 마을은 도화면 당오리 당곤마을이다.
도화면 사덕리 수덕마을 방향. 남파랑길은 반대방향 도화면 당오리 방향이다.
남파랑길은 천마로를 따라가지 않고 천마로에서 도화면 사덕리 농로로 들어간다.
68코스 종점까지 1.8km, 오른쪽 천마로를 따라가지 않고 왼쪽 농로를 따라 진행한다. 뒤쪽에 보이는 마을은 도화면 당오리 당곤마을이다.
당곤(堂昆)마을은 동쪽에 ‘섭밭골’이란 마을이 있어 마을 뒷산에 당산터를 마련하고 당산제를 지냈으므로 당곤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마을에 동백정, 고사정이 있고 독립지사 기산도의 유적지가 있다. 당오리에 속한 당곤마을은 1956년 분동 단일마을로 형성하여 변함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음.(고흥군청)
도화면(道化面) 당오리(堂烏里) 신오치(新烏峙)마을은 면소재지에 정기시장(5일)이 생긴 이후 동오치 1반에 속하였으나 1963년 10월 당오천(도화천)을 중심으로 동오치에서 신오치로 분동된 후 1981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새로 생긴 오치라 하여 신오치로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음.(고흥군청)
도화면(道化面) 당오리(堂烏里) 도화면복지관 정문 왼쪽 문기둥에 적힌 '道化面老人會館' 글씨가 멋지다.
도화천을 건너 동오치마을로 넘어간다.
천마로와 도화 중심길이 만나는 오치 입구 모퉁이에 남파랑길 69코스 안내도와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이정목 표지에 남파랑길 68코스 종점은 100m를 더 가야한다고 적혀있는데, 남파랑길 69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곳을 남파랑길 68코스의 종점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동오치(東烏峙)마을은 조선말기인 1885년(고종22) 지방제도 개편에 의하여 동오치라 불렀으며 마을 뒷산의 지형이 까마귀와 같다 하여 오치라 하였는데 1934년(일제강점기)에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오치로 분동한 후 1963년 리동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동오치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고흥군청)
남파랑길 68코스 종점이나 69코스 시작점 표지물을 찾지 못하여 이곳까지 왔다가 도화공용터미널로 되돌아갔다.
이곳이 남파랑길 68코스 종점이라고 하는데 어떠한 표지물도 찾을 수 없다.
백세갈비집에서 동행한 송다래님과 함께 수제갈비에 소주 각1병을 허겁지겁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