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역사 탐방 성벽길 걷기
< 2022년 10월 2일 >
제4354주년 개천절을 하루 앞둔 10월 2일, 남한산성 문화탐방에 나선다.
남한산성 지킴이 절친의 안내에 따라, 남한산성 행궁 ~ 침괘정 ~ 영월정 ~
숭렬전 ~ 연무관 ~ 현절사 탐방 후, 남한산성 성벽길을 아주 적당히 걷고
산성로타리 부근 [두부공방]에서 능이전골, 두부보쌈에 더덕구이,
막걸리에 소주. 더 이상 무얼 더 바랄쏘냐! 행복 만땅!!!
산성로타리
방문자센터
기념품점
지붕 위, 까치 한쌍의 희롱.
기념품점 뒤로 보이는 기와집은 [인화관], 우측 멀리 [남한산성 행궁].
[남한산성 종각] 고려 현종 1년(1010년)에 주조된 천흥사(고려 태조 때 천안시에 창건한 절)의 동종이 있었는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2년 원형의 문양, 형태를 재현하되 실제보다 3배 정도 크게 만들었다.
남한산성 탐방로 5개 코스
1코스 (거리 3.8Km / 소요시간 1시간 20분)
산성로터리 – 북문(0.4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산성로터리(0.7km)
2코스 (거리 : 2.9km / 소요시간 : 60분)
산성로터리 – 영월정(0.4km) – 숭렬전(0.2km) – 서문(0.7km) – 수어장대(0.6km) – 산성로터리(0.9km)
3코스 (거리 : 5.7km / 소요시간 : 2시간)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현절사(0.1km) – 벌봉(1.8km) – 장경사(1.5km) – 망월사(1.1km) – 동문(1.0km) –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4코스 (거리 : 3.8km / 소요시간 : 1시간 20분)
산성로터리 – 남문(0.7km) – 남장대터(0.6km) – 동문(1.1km) – 지수당(0.5km) – 개원사(0.3km) – 산성로터리(0.6km)
5코스 (거리 : 7.7km / 소요시간 : 3시간 20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동문(0.6km) – 동장대터(1.1km) – 북문(1.6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동문(1.7km) –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인화관(人和館)]
** 인화관은 행궁의 객사(客舍)로 인조 2년(1624)에 건립, 건물 규모는 68칸이다.
2009년 발굴한 인화관 터는 동서로 길게 놓여 남향을 하고 있어, 동향을 하고 있는 행궁과는 대조적이다.
성인 입장료 2천원, 경기도민이나 경로는 무료.
행궁 안내도
남한산성행궁 (Temporary Palace of Namhansanseong, Namhanhaenggung) 사적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행궁이라 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 행궁은 1909년까지 잘 남아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다.
1999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2002년에 상궐에 해당하는 내행전을 준공하고 2004년 행궁 좌전을 준공하였다.
[한남루(漢南樓)]
*** 한남루는 상, 하궐을 포괄하는 행궁 외곽 담장의 정문에 해당하는 행궁 외삼문의 누각이다.
정조 22년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한남루라는 누문을 대문으로 세웠으나 20세기 초반에 붕괴되었다.
한남루란 한강 남쪽 성진(城鎭)의 누대라는 뜻이며 프랑스 영사 프랑뎅(Hippolyte Frandin)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2011년 같은 위치에 한남루를 복원하였다.
[외행전(外行殿)]
*** 외행전은 하궐의 중심 건물로 인조 3년에 준공되었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상궐 내행전과 동일한 전체 28칸
건물이지만 바닥 면적이 내행전 보다 작고, 내행전에 비해 6m 정도 낮은 곳에 지었다.
병자호란 당시 왕이 병사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호궤를 이곳에서 행하였으며, 한봉에서 청나라 군이 홍이포를 쏘아
포환이 외행전 기둥을 맞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좌승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광주부 유수의 집무실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외행전은 2010년에 중건된 것으로, 발굴과정에서 통일신라 관련 유구들이 확인되어
건물지와 기와를 쌓은 곳 일부를 보존하고 있다.
[일장각(日長閣)]
*** 일장각은 행궁 하궐에 있던 광주부 유수가 사용하던 건물이다.
일장각은 수어장대가 위치하고 있는 청량산의 다른 이름인 일장산을 건물의 이름으로 한 것이다.
하궐 내부담장 밖에 있었던 여러 건물 중 하나로서, 순조 29년에 광주부 유수 이지연이 세운 건물이다.
1900년대에 촬영한 사진에서 일장각의 모습은 확인되지만 행궁지에 있었던 광주군 청사가 철거되는 과정에서 함께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 과정에서 건물지의 일부를 확인하였으며 현재 일장각은 2010년에 중건되었다.
[내행전(內行殿)]
*** 내행전은 왕이 잠을 자고 생활하던 공간으로 인조 2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전체 28칸의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을 되어있고, 좌우 2칸씩은 온돌방과 마루방이다. 대청을 제외한 3면에는 퇴칸을 두었고 내행전의
기동 위쪽 공포는 새의 날개처럼 생긴 부재를 두 개 겹쳐 쌓은 이익공 형식으로 행궁 내 건물 중 가장 격식이 높다.
기단은 장방형으로 가공한 돌을 3단 쌓아 경사가급하고 평지가 협소한 약점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장엄한 외관과 안정감을
주도록 하였다. 팔작지붕에는 용문양과 봉황문양의 막새기와를 사용하였다. 현재 내행전은 2002년에 중건되었다.
[좌승당(坐勝堂)]
*** 내행전의 북쪽, 담장의 밖에 있었던 좌승당은 광주부 유수의 집무용 건물로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 심상규가 건립하였다.
뜰로 나서면 좌우 문이 있는데 왼쪽문은 좌숙문이라 하여 북쪽 담밖으로 나무다리를 놓아서 통했다.
오른쪽 문은 의정문이라 하여 하궐 뒤로 통했다. 좌승이란 ‘앉아서도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건물의 기초부분이 잘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고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된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복원 완료.
[재덕당(在德堂)]
*** 재덕당은 내행전 뒤편 언덕에 있는 건물로 숙종14년(1688)에 유수 이세백이 정면 3칸, 측면 2.5칸의 규모로 건립.
옆에는 반석(磐石)이라는 암각문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느티나무
[행궁(行宮)]은 왕이 항상 기거하는 궁궐을 떠나 임시로 머무는 별궁으로 '행궁제도'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시행.
조선시대에는 여러가지 목적에 따라 많은 행궁이 건립되었으며, 남한산성 행궁은 전란 상황에 대비하여 건립.
[침괘정]으로 가는 길
서양등골나물 꽃
[침괘정(枕戈亭)]
*** 무기제작소라 알려져 왔으나 온돌과 마루방, 회랑처럼 된 툇마루 등 건물 구조로 보아 집무실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은 영조 27년(1751)에 광주유수 이기진이 고쳐 짓고 ‘침괘정’이라 명명하였다.
‘枕戈'(침과)란 戈, 즉 ‘창을 베개삼는다’는 뜻이다. 현재는 침괘정으로 통용되고 있으나 정확한 표기는 ‘침과정’ 이 옳다.
왜냐하면 ‘戈’ 는 ‘괘’ 로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의 호칭대로 적는 지명관례상 ‘침괘정’ 이라 표기 하였다.
화약을 찧었던 돌절구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무기제작소의 사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숭렬전 가는 길에 만난 [영월정(迎月亭)]
[숭렬전(崇烈殿)]
숭렬전 (Shrine Sungryeoljeon)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 장군의 영혼을 모신 사당으로 매년 음력 9월 5일 광주 유도회에서
제를 지낸다. 인조 16년(1638)에 지었으며 정조 19년(1795)에 왕이 ‘숭렬전(崇烈殿)’이라 이름을 지어 내려주었다.
신분이 다른 왕과 신하를 함께 모신 것이 특이한데 이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꿈과 관련이 있다.
본당은 좌우측에 아래 단이 둥근 형태를 한 방풍벽을 갖은 맞배지붕 형식을 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내부의 천정은 연등 천정으로 하였다. 2동의 부속 건물은 맞배지붕으로 방풍판이 없는 대신 측면에도 창을 내지 않고
회벽을 도리까지 올려 바람과 비를 막았다.
연무관 가는 길에 만난 [영락수련원]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배추가 금값이라 한 컷.
[연무관(演武館)]
*** 연무관은 군사들의 훈련을 위하여 건립한 곳으로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무관은 규모가 크고 육중하여 높은 기단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멀리서도 그 자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건물 내부 가운데에 있는 대들보에는 전, 후면에 용을 그렸고 측면 쪽 대들보에는 봉황을 그려 넣은 것이 특이하다.
연무관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비교적 규모가 크고 높이가 높은 육중한 건물로서 멀리서도 그 자태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인데 정면 쪽은 2단의 기단을 축조한 이중 기단 형태이다. 이중 기단의 중앙에는 화강석 계단을 1개소 놓았다.
'숭정기원'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의 즉위년인 1628년이니, '崇禎紀元 後 三 壬午'면 1762년, 계산 참 복잡하다.
휴식 및 간식
[현절사(顯節祠)]
현절사 (Shrine Hyeonjeolsa)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4호
병자호란 때 적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했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삼학사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청나라에 강제로 끌려가 곤욕 끝에 참형을 당한 삼학사의 영령을 위로하고자 숙종 14년(1688) 유수 이세백의 주도로
세워졌으며 후에 김상헌, 정온의 위패도 함께 모셔졌다. 죽어서도 임금을 향한 강직한 선비정신의 상징적 건물로 여겨진다.
지붕 양식은 홑처마를 두른 맞배지붕이며,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크기이다.
남한산성 성벽길 걷기.
오후부터 비 예보는 있지만, 그런대로 조망은 좋은 편이네.
북한산(삼각산)의 봉우리를 비롯한 북한산국립공원 능선이 그려내는 멋진 파노라마, 비록 희미하긴 하지만 ~~~.
맛있는 오찬, 늘 느끼는 거지만, '걷는 재미 반, 먹는 재미가 반'이다.
SET남한, 능이전골 + 두부보쌈 + 더덕구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