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종주 트레킹 참가 준비물
1. 여권
해외 여행시 여권 지참은 기본이므로 당일 자택 출발시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본인 여권을 지참하셔야 합니다.
-구 여권으로 예약하신 경우 신, 구 여권을 같이 가지고 나오세요.
-구겨지거나 오염, 훼손, 사증란이 부족한 경우는 입국이 거절되는 경우가 있으니 미리 재발급 받으시기
바랍니다.
-비상시에 대비하여 여권의 인적사항 복사본과 여권용 사진 1매를 별도 지참하시는것도 좋습니다.
2.출발복장
- 출발당일은 버스 이동거리가 상당합니다. 가벼운 복장과 샌달이나 운동화를 신고, 등산화는 싸 가지고 가는것이 편합니다. 샌달은 현지에서 이동 중이나 산행이 없을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반팔 티셔츠 정도로 입는 것이 좋겠으며 윈드자켓은 소형배낭에 넣어 가지고 감.
3.가방
- 여행용 가방 이외에 약 20~30리터의 당일용 소형배낭을 별도 준비바라며 여행용 가방은 소형 자물쇠를 준비하여 꼭 잠그시는 것이 좋습니다. 선박에서는 비행기와 달리 자기 모든 화물을 선박내 본인 자리 주변에 두게 됩니다.
4.트레킹 복장
세째날 백두산 종주 트레킹 출발시에는 큰 여행용 가방은 버스에 두고 트레킹시 또는 트레킹후에 필요한 짐만 20~30리터 정도의 소형 배낭에 넣고 출발합니다. 전용버스는 다음날 아침 통화에서 기다립니다.
백두산 인근은 우리나라 기후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해발고도가 높은 백두산 위에서는 기후의 변화가 심합니다. 이에 알맞은 복장으로 준비하시면 일정 진행에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의는 기능성 하계용 긴바지 상의는 반팔 셔츠에 긴팔 남방을 걸쳐 입는것이 좋음(반팔 티셔츠는 일별로 1장씩. 약간 두툼한 긴팔 티셔츠나 폴라플리스 긴팔을 준비하며 긴팔 남방은 1장이면 됨)
*반팔 셔츠나 반바지만 착용시에는 우천시나 강풍시 체온 보호가 어렵습니다. 반드시 긴팔,긴바지를 착용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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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자켓은 천지 외륜봉 종주 시 능선상에서 바람이 불거나 휴식을 취할 시 필요하므로 꼭 준비 바람(꼭 등산전문 의류가 아니더라도 방수,방풍이 되는 제품이면 되고, 두터운 겨울용 파카는 필요치 않음)
-백두산 지역은 일기가 고르지 못해 소나기, 우박 등이 수시로 올 수 있으므로 방수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비옷은 필수이며 예비로 여벌의 옷을 꼭 준비 바랍니다. 또한 신발이 젖으면 트레킹에 지장이 있으므로 방수되는 신발을 준비하기 바라며 방수 신발이 없을 경우에는 방수액을 뿌리거나 신발에 양초를 발라 주면 임시방편은 됨. 아울러 배낭이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배낭카바를 꼭 준비 바라며 배낭 내부에 비닐로 물품을 싸고 특별히 젖어서는 안될 품목은 별도의 비닐(지퍼락 등)로 잘 싸 주기 바랍니다
-트레킹 시 양말은 두장을 덧 신는 것이 좋으며, 종아리 이상 올라오는 양말은 종아리를 조여 혈액순환에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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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랜턴이나 소형 손전등은. 야간에 움직일 일은 없으나, 만약의 비상용으로 준비
-그외 준비물은 하산후 사우나후 갈아입을 내의류,행동식, 비상용 랜턴, 장갑, 챙 넓은모자, 스틱(관절이 많이 안 좋으신 분들 외에는 없어도 무방),무릅보호대, 스프레이파스 등.
*세째날 점심은 도시락으로 현지에서 개인별로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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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세면도구, 카메라, 배터리, 썬크림, 구급약과 상비약, 휴지, 접이우산 (백두산 산행 시에는 낙뢰의 위험이 있어 지참하실 수 없습니다), 샌들, 고글 또는 선그라스, 기록구, 간식, 개인기호식품(김치, 고추장, 깻잎, 김, 일회용 커피믹스, 컵라면, 팩소주 등)
*세째날 서파산문 이동시 차내서 썬크림 꼭 발라 주세요
5.비상식
-산행시 약간의 체력소모가 있을 수 있으므로, 당질이 풍부하고 먹어서 금방 열량화 시킬 수 있는 간이 음식물(행동식) 준비. 예를들어 쵸코릿,사탕,건포도,영양갱,건과일,치즈,소시지,육포 등
6.음식
-매끼 식사가 제공되고 트레킹 시에는 도시락이 준비됨. 식성이 까다로운 분은 개인 기호식품을 준비하시는것도 좋음. 예를들어 볶은 고추장(인천공항에서 튜브형태로 된것을 판매 함)이나 참치 캔,구운 김 등을 준비하면 됨.
-백두산 지역은 중국의 변방으로서 정통 중국음식이 아닌, 조선족식과 중국식이 섞인 음식이 제공 됨니다.
7.환전
-특별히 돈 쓸 곳은 없으나 개인적으로 쓸 돈을 약간의 중국돈으로 환전 해 가시기 바랍니다. (약 2~3백위안(한국돈 5~6만원)이면 충분하며,카드와 한국 돈은 일부 상점에서 통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8.기타
- 핸드폰이나 카메라 밧데리용 충전기(현지호텔에는 대부분 100V 및 200V겸용임)
-여행용 베개(버스이동시간이 길므로 유용함).
-세면도구는 호텔에 전부 준비되어 있으므로 지참 않으셔도 됩니다.
남자의 경우 면도기는 별도 준비하세요
여자의 경우 생리대 준비
여권 챙기는 것, 잊지 마시구요~~~ 여권이 가장 중요합니다!!
[백두산 개요]
양강도(량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성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2,744m로 북위 41˚01´, 동경 128˚05´에 있으며 한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백색의 부석(浮石)이 얹혀 있으므로 마치 흰 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한국의 기본 산줄기로서 모든 산들이 여기서 뻗어내렸다 하여 예로부터 성산(聖山)으로 숭배하였다. 또 단군(檀君)이 탄강(誕降)한 성지로 신성시해왔다. 중국 금대(金代)인 1172년에는 영응산(靈應山)이라 하여 제사를 지냈으며, 청대(淸代)에는 이곳을 왕조인 애친각라(愛親覺羅)의 발상지라 하여 숭배하였다.
북동에서 서남서 방향으로 뻗은 창바이산맥[長白山脈]의 주봉으로 최고봉은 병사봉(장군봉:2,744m)이다. 2,500m 이상 봉우리는 16개로 향도봉(2,712m), 쌍무지개봉(2,626m), 청석봉(2,662m), 백운봉(2,691m), 차일봉(2,596m) 등이 있다. 남동쪽으로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이 뻗어 있다.
휴화산으로 고생대부터 신생대까지 여러 시대의 지층들이 발달하였으며, 특히 중생대와 신생대의 구조운동에 의해 형성된 단열구조, 파열구조 단층이 발달하였다. 화산분출은 쥐라기(약 6억 년 전)에서 신생대 제4기까지 지속되었는데 특히 신생대 제3기부터 활발히 진행된 화산활동으로 현무암질 용암이 대량 유출되어 약 5,350㎢의 넓은 백두용암대지가 만들어졌다.
약 200만 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약화되어 지금의 산세를 형성하였다. 화산활동 후기에는 대연지봉, 소연지봉, 대각봉, 무두봉, 베개봉, 청봉 등 부속화산들이 형성하였으며 이들은 적갈색 다공질현무암용암의 분출로 생겼다.
최근의 분출은 1597년·1668년·1702년에 있었다고 문헌에 전하고 현재는 백두산 주변 50km 내외에 진도 2∼3의 약한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화산폭발시 용암이 잘게 부서져 쌓인 부석층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천지 부근의 부석층은 두께가 20m 가량 된다. 화산재, 화산탄, 화산모래 등의 층도 남아 있다.
토양은 여러 해 동안 동결층의 영향과 한냉한 기후에서 형성된 토양, 평탄한 현무암대지 파습조건에서 형성된 토양과 수평대성을 띤 포드졸성 갈색산림토 등이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전형적인 고산기후이며, 한국에서 기후변화가 가장 심하다. 연평균 기온은 6∼8℃, 최고기온 18∼20℃, 1월 평균기온 -23℃(최저 -47℃), 1월의 평균 일교차는 7.5℃, 7월의 평균 일교차는 4.8℃이다. 연평균 상대습도는 74%이며 여름에 가장 높고 겨울에 낮다. 북서풍과 남서풍이 강하게 불고 최대 풍속은 40m/s, 연중 강풍일수는 270일이며, 천지 부근은 강한 돌개바람인 용권이 자주 일어난다.
남쪽의 더운 공기와 몽골지방에서 오는 찬 공기가 마주치면서 안개가 많이 끼는데 7~8월에 안개가 끼는 날수는 33일 가량 되며, 구름이 많고 천둥현상이 잦으며 주로 눈·비를 동반한다. 벼락회수는 연간 48회이고 그중 60∼70회는 6∼7월에 있다. 연평균 강수량은 1,500mm이며, 겨울 날씨가 연중 230일 정도 계속된다.
백두산에 서식하는 동물은 검은담비, 수달, 표범, 호랑이, 사향노루, 사슴, 백두산사슴, 산양, 큰곰 등 희귀동물이 많고 204종의 조류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삼지연메닭(348호)·신무성세가락딱따구리(353호) 등이 있으며, 특별보호대상 조류로 메닭, 세가락메추리, 북올빼미, 긴꼬리올빼미, 흰두루미, 재두루미, 원앙, 청둥오리, 붉은허리제비, 숲새 등이 있다. 북살모사와 긴꼬리도마뱀 등의 파충류와 무당개구리·합수도룡뇽 등의 양서류가 있으며, 천지에 어류는 살지 않는다.
300과 2,70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는데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종비나무, 잎갈나무, 좀잎갈나무, 백두산자작나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비교적 분포속도가 빠른 식물종이 다른 지역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화산 분출에 의해 피해를 받기 전의 식물종들이 정일봉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 자란다. 이 지역에서는 백두산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흰병꽃나무·구름꽃다지·백리향·만삼·왜당귀 등이 자란다. 빙하기 이후 고산조건에 적응한 담자리꽃나무, 시로미, 물싸리, 두메김의털, 장군풀, 산할미꽃, 두메아편꽃, 큰산싱아, 각씨투구꽃, 끈끈이주걱, 두루미꽃, 눈사버들, 구름국화, 바위구절초, 만병초 등 한대성 식물들이 자란다.
또 매저지나무·들쭉나무·백산차 등의 냉대성 관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금방망이·삼잎방망이·자주꽃방망이·무수해·황기·부채붓꽃·손바닥란·동의나물·분홍노루발풀·왕바꽃·메바꽃·구름범의귀풀·물매화 등 냉대성 초본식물들이 있다.
산 정상에는 칼데라호인 천지(天池)가 있는데 면적 9,165㎢, 평균수심 213m, 최대수심 384m이다. 천지의 물은 높이 67m의 장백폭포(長白瀑布)가 되어 얼다오바이강[二道白河]으로 떨어져 쑹화강[松花江]으로 흐른다. 천지에 시원을 둔 폭포는 백두폭포·사기문폭포·형제폭포·백두밀영폭포 등이며 압록강 상류, 두만강 상류, 산다오바이강[三道白河]으로 흘러들어간다. 천지에는 백암온천과 새로 개발된 백두온천이 있으며, 주변에 장백온천과 제운온천이 있다.
허항령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삼지연(三池淵)은 대소 4개의 얕은 호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위 길이가 4.5km, 수심 3m인 천연호수로서 주변 경관이 뛰어난 휴양지이다. 문화재로는 1712년(숙종 38)에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세운 백두산정계비가 있다.
[天池]
백두산 산정에 있는 자연호수.
용왕담(龍王潭)이라고도 한다. 면적 9.17km2, 둘레 14.4km, 최대너비 3.6km, 평균 깊이 213.3m, 최대 깊이 384m, 수면 고도는 2,257m이다.
칼데라호(caldera 湖)인 천지 둘레에는 장군봉(將軍峰)을 비롯한 화구벽 오봉(火口壁五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이 화구벽에서는 남쪽의 불목[火項]이라고 하는 파극(破隙)을 통해서만 호반으로 내려갈 수 있으며, 호반 일대에 약간의 평탄한 땅이 있을 뿐 그 밖에는 깎아세운 듯한 절벽뿐이다. 여름철에는 사슴 ·곰 등의 짐승이 물을 마시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호수의 수온은 10℃ 내외이고 빈영양호(貧營養湖)이므로 식물성 부유생물 ·작은 곤충류 ·물속 이끼류가 살고 있으나 어류나 파충류는 서식하지 않는다. 호수 북쪽의 한 곳이 터져서 물이 흘러나가는, 달문(闥門)이라고 하는 화구뢰(火口瀨)를 이룬다. 호수는 여기서부터 흘러내려 650 m 북류하다가 용암벽에 막혀 길이 30m의 장백폭포를 이루면서 협곡을 만들며 쑹화강[松花江]으로 유입된다. 호반의 동안과 남쪽 산기슭의 쑹화강 상류인 탕수평(湯水坪)에서 온천이 솟아난다.
[장백폭포]
양강도 삼지연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백두산에 있는 장대한 폭포.
16개의 산봉우리가 천지 기슭을 따라 병풍 모양으로 천지의 삼면을 둘러 싸고 있다. 북쪽의 트여진 곳으로 물이 흐르며 물은 1,250m까지 흘러 내리며 물의 양은 많지 않으나 가파른 지형의 영향으로 물살이 빨라서 먼 곳에서 보면 하늘을 오르는 다리를 연상하게 하여 사람들은 이를 '승사하'라고 부른다. 승사하는 개활지를 통해 흐르다가 68m의 장대한 폭포를 이루며 90도 수직으로 암벽을 때리며 떨어진다.
꼭대기에서 36m 아래까지는 곧게 쏟아져 내리며, 그 아래에서는 비탈진 벼랑에 부딪쳐 물보라를 일으킨다. 떨어진 물은 송화강으로 유입된다. 200m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폭포 옆에는 천지를 향하는 계단이 있는데, 낙석이 많아 주의를 하여야 한다. 백두산에는 장백폭포 이외에 백하 폭포, 동천 폭포 등이 있다. 북방의 모든 폭포는 봄에서 가을까지 물이 있어 장관을 이루지만 겨울이면 물이 언다. 장백폭포만은 겨울에도 얼지 않고 계속 흘러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高句麗 遺蹟地
고구려는 고주몽(동명성왕)에 의해 졸본성(현재 요녕성 단동시 주변)을 수도로 하여 건국되었다. 1대 동명성왕으로부터 28대 보장왕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번성했던 동아시아 최대의 국가였다. 현재 중국 중원에서 발굴되는 유물에 비추어 볼 때 중국의 영토까지 자주 침범을 하였던 강국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로 인해 수나라 양제, 당나라 태종 때는 대대적인 공격을 받았지만 이를 슬기롭게 막아 내고, 오히려 수나라 멸망의 결정적인 계기를 주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 고종에 이르러 당과 신라 연합군에 의해 612년 114만의 수나라 군대 격퇴, 660년 80만의 당나라 군대 격퇴 이후, 668년 멸망하고 말았다. 그 후로도 몇 번의 부흥운동을 펼쳤으나 모두 실패로 끝나고, 당나라 조정의 대대적인 이주정책으로 고구려 지배계층이 중국의 남부와 서부로 분산됨에 따라 부흥운동의 불씨도 꺼져 버리고 말았다.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조선 민족은 중국을 위협할 만한 별다른 큰 세력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동북의 패권을 장악한 여진족이 청나라를 세우고 한족에 의해 흡수될 때까지 옛 고구려의 영토는 중국인들의 관심 밖이었을 뿐이다. 청말기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며 변방의 한 지역이었던 집안 시내도 전문 도굴범의 도굴과 일반 농민들의 무분별한 채취로 수 많은 고분과 산성에 있던 유물들이 도굴되고, 훼손당하게 되었다.
일본의 만주 진출 이후, 대대적이고 조직적인 고구려 문화의 약탈로 지금은 유물이 거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집안 지역에만 약 1만 2500기에 달하는 고분이 있었고, 지금은 약 8000기 정도가 남아 있다. 왕과 귀족들의 고분은 한때 번성했던 고구려 문화의 단편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고분 내 유물은 약탈되었지만, 벽화만은 남아 있어 그 당시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보탬이 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역사의 흔적이 있어도 그대로 방치되어 훼손되고, 소멸되어 가는 것을 보면 후손들이 힘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아마 머지 않은 시간, 집안 지역에 집중적으로 묻혀 있는 이 고분들의 흔적도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쉽게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