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아씨 오시는데 / 이원규
섬진강 첫 매화가 슬슬 지면서
그 기운을 이어받은 우리 집 백매도 많이 피었다.
그 산 그 골짜기엔 변산바람꽃도
복소초에 이어 얼굴을 내민다는데
도대체 신명이 나지 않아 아직 가보지 못했다.
세상 곳곳이 지뢰밭이니
꽃(花)이 피는 게 아니라
화(禍)만 피어나고 울화통이 터진다.
숨 가쁜 호흡을 잠시 가다듬고
9년 전 설중 변산아씨 사진을 들여다 본다.
2014년 2월6일 새벽,
눈 보기 힘든 여수에 함박눈이 내렸다.
미끄러지며 새벽 눈길을 달려가
돌산 그곳의 설중 변산아씨를 격하게 만났다.
불과 30분만에 눈이 다 녹아버렸지만
나의 첫 설중화는 순백의 변산아씨였다.
남도 여수에 거짓말처럼 눈이 내리고
때마침 예년보다 일찍 변산아씨가 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여수의 설중 변산아씨’는 전무후무한 전설이 되었다.
물론 그 이후 순천과 함평의 골짜기에서
두 번 더 설중 아씨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런데 꽃을 들여다보는 저 남자,
변산아씨에 홀린, 저 음탕한 청년은 누구신고?
아조 아조 낯이 익으니,
더 늙기 전에 기어코 만나러 가야겠구나.
변산바람꽃
봄꽃삼총사 노루귀 복수초 변산바람꽃
2023.2.11. 변산 지나 강화도 가는 길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