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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영남알프스 준봉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뒤로는 나즈막한 화장산이 다소곳이 물러 앉아 지켜봐주는 살기 좋은 고을이었다. 거기다 태화강 상류인 남천은 사라호 태풍처럼 무서우리 만치 심하게 우리들을 할퀴어 큰 아픔도 주었지만, 평소에는 아무말 없이 우리들에게 포근한 자리를 내주었던 정든 곳이 아니었던가 한다. 까마득한 옛날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외지에서 언양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관문은 남천다리 뿐이었다.
물이 불어나 넘칠라 치면 그 물문에 긴 각목을 한개 또 한개씩 쌓아 올림으로써 그나마 홍수피해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비가 오기 시작하면 하천 둑으로 우르르 몰려가 물문이 몇개 올라갈 것인가를 놓고 실랑이 하고 어른들은 물문 개수에 따라 강수량을 측정하곤 했었다. 여름날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누가 불러내지 않는데도 하나 둘 남천다리 위에 모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남부 안골목에서 한약방을 하는 할아버지께서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긴 담뱃대를 물고 다리위에 자리를 펴고 않으셔서 온 동네 사람들에게 <삼국지> 이야기로 혼을 쑥 빼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그 할아버지의 <삼국지>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으며 어제의 뒷이야기가 궁금해 집에 도저히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긴 여름밤이 어쩜 그렇게 짧기만 했었는지…. 지금도 입담 좋은 그 할아버지의 구수한 항우장사의 힘자랑 이야기며 신출귀몰한 제갈공명의 활약상이 귀에 쟁쟁히 남아있다. 동네 꼬마 녀석들이 눈을 말똥이며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서로 밀치고, 넘어지고 야단법석을 떨었던게 엊그제 같이 기억에 새롭다.
낮에는 수영장이요, 밤이면 사랑방이 되어 어린 동심에 꿈을 심어 주던 그곳 남천. 지금은 그냥 보잘것 없는 하천이 되어 아무도 찾지 않는 곳으로 변했다.
무더운 여름날 언양읍성 안에 있는 옥샘에서 찬물을 길어다가 꽁보리밥을 말아먹으면 더위는 금방 식어버리곤 했다. 냉장고가 없었던 때라 점령하는 쪽이 이기는 놀이였는데 동족상잔의 6·25가 어린 동심마저도 멍들게 한 서글픈 옛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역사가 숨쉬고 추억이 깃든 그 읍성이 지금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니 그 흔적조차도 하나둘씩 소멸되어 가고 있다. 그게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져보기전에 고향을 잘 지켜내지 못한 내탓이란 생각에 자꾸만 뒤통수가 따가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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