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성 조선족자치주의
중국에서 유일한 조선족자치주의의 주도 엔지(延吉), 인구의 40%이상이 조선족으로 이루어진 연길은
백두산으로 가는 관문이자 조선족자치주의의 행정, 문화의 중심지이다.
자치구역내 거리의 간판은 한글병기가 의무화되어 있어 마치 한국의 지방도시에 온듯한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연길로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2시간30분 걸리는 인천-연길 간 작항로를 이용하는것이나 이
구간은 독점로선이라 항공료가 인근도시에 비해 월등히 비싸다.
그러한 이유로 많은 조선족들은 대련으로 들어가서 15시간 기차를 타고 연길가는 방법을 이용한다.
( 인천에서 연길까지 항공료가 인천에서 대련으로 가는 항공료보다 무려 3배정도 비싸다 )
중국55개 소수민족가운데 조선족의 교육열은 최고수준으로 삶의 질 역시 소주민족중 최상위 수준이다.
학창시절에는 조선족 동포 대부분이 학교에서 외국어 선택을 일본어로 한다는게 특이하고 영어 선택한
사람은 찾아볼수가 없는데 이는 대학진학시험에서 일본어가 고득점을 얻는데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라고하며 실제로 대학진학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높다고들 말한다.
조선족자치주의는 지린성 동부에 있는 소수민족자치주로 주도인 연길외에 훈춘,도문,용정,화룡,돈화의
6개市 와 안도, 왕청 2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근래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로 빠져나가고
한족의 숫자가 점점 증가되면서 자치주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에 처해 있다.
비근한 예로 백두산관광구역도 조선족자치주에서 관리했었으나 최근 들어 지린성 성정부로 넘어갔으
며 조선족의 인구 비율도 최근들어 30% 미만으로 감소추세며 젊은이는 모두 대도시로 빠져나가고
나이많은 노인층만이 남아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연길 기차역 플랫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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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기차역앞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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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에서 가장 사람의 왕래가 많은 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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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에는 버스터미날이 2곳인데 용정.화룡등의 근거리는 역전터미날을 이용하고 장거리인 하얼빈,
장춘,길림 등은 연길중심버스터미날을 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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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시내 정경
연길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40분쯤 달리면 항일독립운동의 성지 용정에 도착한다.
가곡 선구자에 등장하는 일송정과 혜란강이 실존하는땅,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이자 19세기
간도로 이주한 한인들이 처음 개척한 땅이기도 하다.
실의에 찬 한인들에게 교육과 민족의식 고취만이 살길이라는 이념아래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던곳
시인 윤동주, 문익환 목사등이 이시기에 민족교육을 받았던 대표적인 인사이다.
연길과 거리가 불과 23킬로 떨어져 있어서 발 빠르게 움직이면 하루에 둘러 볼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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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개척시 한인들이 최초로 발견한 우물로 간도 개척사의 산 증거인 용두레우물.
용정은 용두레의 한자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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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윤동주의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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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중학교
민족주의를 이념으로 내건 교육의 산실 1921년10월에 설립한 대성중학교 사진이다.
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배출해낸 대성중학은 1946년에 용정시내 5개 중학교와 통합되어 현재는
용정제1중학교 로 호칭되고 있다.
대성중학 구관과 윤동주의 시비가 눈에 들어오고 대성중학이 배출한 자랑스런 동문 을 소개하는 4개의
자료실이 있는데 제 4 전시실은 윤동주박물관이라고 불릴만큼 그의 생애와 문학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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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용정중학교 (구 대성중학교) 모습
위쪽 사진은 문익환목사와 윤동주 시인의 학창시절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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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용정에서 남쪽4킬로 떨어진 비암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조선이 멸망한 이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회합의 장소로 쓰이면서 항일의 의지을 불태웠던곳이다.
용정에서 택시로 10분거리 왕복요금이 40위엔하며, 화룡행버스를 타고 일송정근처에서 하차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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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선구자에 등장하는 혜란강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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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시내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을 마주보고 있는 국경도시, 좁은 두만강폭 때문에 북한의 모습을 가깝게
볼수있어서 한국여행자들이 많이 들리는 곳. 연길에서 버스르 타면 50분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10위엔.
기차의 종착,시발점으로 기차표구입이 무척 쉬운곳이기도 하다.
조선족들이 많은 기념품가게를 하고 있으며, 북조선 그림이나 화페,주류, 잡다한 어 기념품도 같이 팔고 있어 한국관광객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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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시 외곽의 주택가 모습으로 옛정취가 그대로 묻어 있다.
동절기엔 에너지원을 석탄을 때서 난방을 하기때문에 집집마다 지붕위로 솟아있는 굴뚝들이 우리의 60년대 풍경을 연상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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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조변방
두만강위로 설치되어 북한으로 연결되는 100 미터 길이의 두문대교이다.
붉은색으로 변계선이라고 표시된곳 까지가 중국땅이고 그 뒤부터는 북조선 남양시이다.
낮에는 다리건너 집단농장에서 일하는 북한 주민들을 육안으로 볼수있다.
위쪽사진의 정자가 있는 중조변경은 기념사진 촬영장소로 도문다리를 배경으로 북조선 남양시를 넣고
촬영을 하는데 자기카메라로 촬영을 해도 돈을 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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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패쇄되어 유람선이 뜨질않치만 예전에 여기서 유람선을 타고 두만강의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유행가에 등장하는 "두만강 푸른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상상하고 도문을 방문하여 이곳 두만강을 찾는
사람들은 크게 실망할것이다. 7~8년전에도 이곳을 방문하여 두만강물에 손이라도 적셔보려고 강가로
나갔다가 악취와 각종 오염물질, 썩어버린 두만강물에 크게 실망을 했었다.
중국과 북조선 양국 다 아직 먹고 살기에 급급한것인지 환경보전엔 도무지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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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시내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은 3국 국경연접점에 위치한 변경마을로 장고봉전투 발발지. 국내는 물론 해외
까지 이름이 알려지고 있지만 정작 많은 관광객들은 방천마을 외곽을 스쳐 지나갈뿐 방천마을을 빠뜨리
고 간다.
19세기 중엽부터 조선 이주민들에 의해서 "헤무즈" "양관평" 으로 불리우던 이곳 방천은 20 세기
초엽에 다시 이름을 찾고 항일 저항조직과 독립군들의 러시아 극동지구로 오가는 길목이였다.
연해주로 통하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중,러 관계가 냉각된 시기에는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초긴장지역이 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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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방천과 북조선을 잇는 물자교류 다리.
방천촌에서는 조선과 러시아에서 닭우는 소리,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생겨난 곳이다.
출입금지하는곳이 많고 사진 촬영도 금지하는곳이 너무 많아 여행객은 불편함을 많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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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보이는 하얀건물이 북조선 세관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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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이 중국땅, 우측이 북조선땅, 좌측이 러시아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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