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幻想痛)
김신용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나무도 환상통을 앓는 것일까?
몸의 수족들 중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한, 그 상처에서
끊임없이 통증이 배어 나오는 그 환상통,
살을 꼬집으면 멍이 들 듯 아픈데도, 갑자기 없어져버린 듯한 날
한때,
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
뼈였다
목질(木質)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된
등뼈.
언젠가
그 지게를 부수어버렸을 때,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돌로 내려치고 뒤돌아 섰을 때
내 등은,
텅 빈 공터처럼 변해 있었다
그 공터에서는 쉬임 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런 상실감일까? 새가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떨리는 것은?
허리 굽은 할머니가 재활용 폐품을 담은 리어카를 끌고
골목길 끝으로 사라진다
발자국은 없고,바퀴자국만 선명한 골목길이 흔들린다
사는 일이, 저렇게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라면 얼마나 가벼울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창 밖.
몸에 붙어있는 것은 분명 팔과 다리이고, 또 그것은 분명 몸에 붙어 있는데
사라져버린 그 상처에서,끝없이 통증이 스며 나오는 것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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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들린 삶의 초상
─ 김신용 시인이 7년 만에 펴낸 네 번째 신작시집
2005년 3월 29일.
평생 처참한 일상을 살아온 김신용 시인의 네번째 시집이 출간된 날 그는 회갑을 맞았다. 7년만에 출간된 이번 신작시집이 나오기 얼마전 시인은 부랑의 삶을 지속해온 도시를 떠나 충북 영동의 시골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서울 대림동 반지하 단칸방에서 몇년째 수의(囚衣)를 만드는 시인으로 살아온 그는 불현듯 회갑을 맞아 도시에서의 밑바닥 삶을 청산했다.
그토록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부랑의 삶 속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며 입는 마지막 옷 수의를 만들기 위해 아내는 미싱을 돌리고, 시인은 재단을 하며 삶의 굳은살이 깊이 박혔다.
도시를 떠나며 시인은 이번 시집을 수의처럼 입고 떠난 것은 아닐까?
시인 김신용은
1945년 부산에서 태어나 14세의 나이에 부랑을 시작했다. 지하도나 대합실에서 노숙하며 매혈로 끼니를 해결했다. 더 팔 피가 없으면 걸식, 꼬지꾼, 하꼬치기, 저녁털이, 뒷밀이, 아리랑치기, 급기야 펠라티오 아리랑치기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소년원을 시작으로 해서, 감방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곳쯤으로 여기며 드나들었으며 재생원, 갱생원 등을 두루 섭렵하는 동안 별을 5개 달았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서 읽어치운 독서량은 우리 교도소 문화를 비추어볼 때 가히 기적에 가까우리만큼 방대하고 놀라운 것이다.
그는 1988년 당시 무크지였던 『현대시사상』 1집에 「陽洞詩篇」 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나이 사십이 넘어 시단에 얼굴을 내밀게 된다.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을 내며 시단에 일대 충격을 주었으나, 출판사와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출간 두 달 만에 절판되는 곡절을 겪고, 재출간되어(천년의시작) 호평을 받았다. 이어 두 번째 시집 『개 같은 날들의 기록』(세계사), 세 번째 시집 『몽유 속을 걷다』(실천문학사)에서 예의 “부랑의 미학”을 통한 악마적인 삶을 묘사해 집중조명을 받은 바 있다.
[김신용 시인 약력]
1945년 부산 출생. 1988년 『현대시사상』 등단. 시집 『버려진 사람들』 『개 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장편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전 2권) 『기계 앵무새』 등.
[추천글]
고통은 김신용의 일관된 시적 주제이다. 그의 시는 처음부터 고통과 더불어 씌어졌다. 무소유의 변두리 삶을 살아온 그에게 시는 그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의 시는 고통에 들린 자신의 초상을 그려내려는 고통스런 작업의 산물이다. 많은 이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시를 선택하는 것과 달리 그는 고통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 그의 개성은 바로 이러한 시적 지향에서 비롯한다.「드므가 있는 풍경」에서 그는 시쓰기를 “언제나 가시처럼 못 박혀 오던 그 맑은 물거울에 몸 던져, 스스로 피흘리는 일”이라 규정하고 있다. 고통에 직면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을 유발한다. 상처를 덧나게 하기 때문이다. 기억으로든 현실로든 고통은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어느 경우든 그것에 직면하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김신용은 고통의 삶을 살면서 그에 대한 시적 대면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고통에 들린 삶의 초상이다.
─ 구모룡, <해설>중에서
천년의 시작 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