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끄는 사람들
배를 끄는 사람들, 물결이다
배는 물의 방향
키는 더 이상 풍향의 흔적이 없다
물결의 낯빛엔 거칠고 투박한 바다가 묻어있다
백 년 전의 노동이
색 하나 바래지 않고 이렇게 남아있다니
노동의 풍경이 명작이 될 수 있다고
백 년 동안 배를 끄는 사람들,
액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이다
밧줄이 물결을 지시하고 있다
뭉쳐져 이끄는 것은
간절한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배가 물결을 탄다
물은 울퉁불퉁한 근육을 지녔고
왁자지껄한 선술집의 목소리를 가졌다
구령 소리가 붙어있다
방향이 막힌 곳과 부딪히는 또 다른 물결은 부푼다
뭍으로 올라온 부분은 물의 선두가 되고
부력이 빠진 배는 물의 위
물의 속도가 사라진 배는 지친 노동이고 부력이다
고장 난 물의 바닥을 수리하기 위해
배를 끄는 사람들
먼바다 물결이 얼룩처럼 보인다
흔들리는 물결 위에서는
어느 것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 일리야 레핀의 작품 – 볼가강의 배를 끄는 사람
안은숙, 『정오에게 레이스 달아주기』 , 2022년
이 시는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Ilya Repin, 1844~1930)의 작품「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 그림에는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배에 연결된 밧줄을 자기 가슴에 걸고 힘겹게 배를 끌어 올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열한 명의 인부들은 표정과 태도가 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체념한 듯 앞만 응시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지쳐 쓰러질 듯 고개를 떨구고 있다. 한 젊은 사람은 반항하듯 밧줄을 손으로 잡고 있다. 비평가들은 레핀이 볼가강의 인부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얼굴에서 절망만 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흔적과 인간적인 아름다움, 강인한 육체의 힘을 보았다고 해석했다.*
“노동의 풍경”은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다. 나의 가장 “명작”이었던 시절 또한, 일터에서 열심히 땀 흘리던 시절이었다. “밧줄이 물결을 지시하고” “뭉쳐져 이끄는 것은/ 간절한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에는 합목적성이 있다. 그 목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자신의 맡은 일을 수행하고 있다. 그 일은 “고장 난 물의 바닥을 수리하기 위” 함이자, 삶의 “얼룩”을 지우고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부”풀리기 위함이다.
“고장 난 물의 바닥을 수리하기 위해” 저마다의 “배를 끄는 사람들”, “흔들리는 물결 위에서는/ 어느 것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배를 물결에서 건져내 뭍에 두어야 움직임이 멈추고 그래야 수리할 수 있다. 그래야 얼룩을 고칠 수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고 완성되는 날, 어떤 식으로든 “노동”하는 우리들은 더 이상 세파에 “흔들리” 지 않게 될 것이다. 노동자가 잘사는 나라야말로 진정한 문화 대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원한 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절절한, 그들의 가난하고 아픈 삶에 절로 숙연해진다. (홍수연)
* 이숭원 문학평론가
< 안은숙 시인 >
🦋 다시, 시작하는 나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