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당신에게 (24)
요즘 여기도 꽤 더워요. 30도나 된답니다. 사우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올여름은 덥고 길대요. 당신 요새는 좀 어떠하신지요. 부모님과 동생 애들
그리고 저 모두 잘 있어요. 그런데 여보 일본뇌염이 발생했다고 야단이에요.
뇌염 주사는 맞혔지만 우리 애들은 모기를 잘 타서 걱정이에요.
여보, 우리 지원이는 사내아이라 그런지 날이 갈수록 장난이 더 심해요.
뭐 잘못해서 야단치면 식식대고 지가 잘했다고 큰소리에요. 아이들과 놀면서
심술이 나면 너 이리와 너한테 오줌 눈다고 바지를 벗고 쫓아다녀요. 방에서도
아무 그릇에다 오줌을 눠요. 욕심도 어찌 많은지 밥 먹을 때마다 많이 달래요.
밥그릇이 비면 안 돼요. 꽉 차야 해요. 그래도 요새는 생일 축하한다는 노래를
부르고 다녀요. 이웃집 사람들은 지원이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온대요. 지원이는
당신 고집을 닮았나 봐요. 자기가 하고 싶어야 하지 싫은 것은 매를 맞아도 안
해요. 지난번에 마당에서 누워있길래 일어나라 했더니 싫다고 노래까지 부르면서
이리데굴저리데굴 해요. 어느 때 보면 꼭 집 없는 아이 같아요.
어머님이 심어놓은 꽃을 뽑아버리지를 않나 밭에 들어가서 밟고 다니지를 않나
어느 때는 어머님 아버님 보기가 미안해요. 그래도 주원이보고 꼬마래요.
주원이는 살살 다니면서 말썽을 부린답니다. 방의 벽지는 다 찢어놓고
할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시면 기어가서 텔레비전의 양쪽 문을 닫아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하고 웃으면서 뒤를 돌아다봐요.
한번은 밥이 끓을 때가 되었는데도 끓지 않아서 보니 불이 꺼져 있지 않겠어요.
요 꼬마가 언제 와서 꺼놓은 거예요. 어떻게나 켰다 껐다 하는지 하지 말라면
더 해요. 여보, 밥을 먹을 때 보면 전쟁터에요. 당신은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조금 극성맞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이 안 봐도 당신 자식들 여간 극성맞은 게 아니에요
오죽하면 앞집할머니가 거지같이 두 아들딸을 낳았대요.
그래도 지원이 아름이 많이 컸어요. 당신 애들 잘 자라는 거 생각하면서 계세요.
여보, 그럼 몸 건강히 안녕히 계세요.
16일 밤 11시 2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