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초신자를 벗어난 기독교인 입니다. 기독교의 교리중에서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내용을 알고 싶은데, 삼위일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여 주는 곳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료를 수집하거나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A
1. 삼위 일체(trinity)에 대해서 신학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연구하는 분야를 "신론"이라고 합니다. 신론에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연구합니다.
1) 하나님의 본질: 신지식, 하나님의 존재증명,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지식 2)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들과 그 의미 3)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만이 가지신 속성과 인간과 함께 공유하는 속성들 4) 삼위일체 5) 하나님의 사역 1) 작정 2) 예정 3) 창조 4) 섭리
위를 보면 네 번째 항목에 "삼위일체"라는 주제가 포함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기독교의 신론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독특한 용어입니다.
물론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이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기독교인들이 이 말을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2. 신적 본질과 영광을 가진 세 인격: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성경을 연구하다 보면 성경에서 신적인 본질과 영광을 소유하신 인격이 셋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세 인격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서 이 세 인격은 순서나 사역에서 서로 구별되면서, 모두 신적인 칭호와 영광과 속성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신적인 영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자와 성령께서 신적인 영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에 있는 성경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자와 성령님께서도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1.성자의 신성에 대한 증거
가) 성자의 신성에 대한 증거(요1:1,20:28, 롬9:5, 빌2:6, 딛2:13, 요일5:20) 나) 성자에게 신적 명칭을 돌림(사9:6,40:3, 렘23:5,6, 딤전3:16, 욜2:32, 비교 행 2:21) 다) 성자에게 신적 속성을 돌림 * 영원성(사 9:6, 요 1:1-2, 계 1:8, 22:13) * 편재성(마 18:20, 28:20, 요 3:13) * 전지성(요 2:24-25, 21:17, 계 2:23) * 전능성(사 9:6, 빌 3:21, 계 1:8) * 불변성(히 1:10-12, 13:8) * 성부에게 속한 모든 속성(골 2:9)
라) 성자께서 신적인 사역을 행하심 * 창조(요 1:3,10, 골 1:16, 히 1:2,10) * 섭리(눅 10:22, 요 3:35, 17:2, 엡 1:22, 골 1:17, 히 1:3) * 사죄(마 9:2-7, 막 2:7-10, 골 3:13) * 부활과 심판(마 25:31-32, 요 5:19-29, 행 10:42, 17:31, 빌 3:21) * 만물의 마지막 붕괴과 갱신(히 1:10-12, 빌 3:21, 계 21:5)
마) 성자께 신적 영광을 돌림(요 5:22-23, 14:1, 고전 15:19, 고후 13;13, 히 1:6, 마 28:19 등)-이 구절들을 읽어보면 성경에서 성자께 성부와 동등한 신적 영광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2. 성령의 신성에 대한 증거들
가) 성령을 하나님과 동일시 함 * (행 5:3-4): 성령을 속인 것=하나님을 속인 것 * (고전 3:16): 성도-하나님의 성전=성령이 안에 거하심 * (딤후 3:16): 하나님의 감동-성령의 감동 나) 성령을 예수님과 동일시 함 * (행 16:6-7): 예수의 영=성령 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속성을 소유하심 * 편재성(시 139-7-10) * 전지성(사 40:13-14-롬 11:34, 고전 2:10-11) * 전능성(고전 12:11, 롬 15:19) * 영원성(히 9:14) 라) 성령께서 신적 사역을 수행하심 * 창조 사역에 참여(창 1:2, 욥 26:13, 33;34) * 하나님의 섭리 사역(시 104:30) * 중생 사역(요 3:5-6, 딛 3:5) * 죽은 자를 부활 시킴(롬 8:11) 마) 신적인 영광과 존귀가 성령께 돌려짐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 * 3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도함(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3. 한 분이신 하나님 성경은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해 모두 하나님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3분의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하고 있을까요?(3신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분의 하나님만이 존재하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유일신론).
우리는 앞에서 신적 본질과 영광을 가진 인격이 셋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이 세상에 하나님은 오직 한 분만이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1) "3분의 구별되는 인격을 가지신 2) 한 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터툴리안이라는 사람은 "한 실체-세 인격(Una substantia-tres persona)이신 하나님"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에서 "3위일체"란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해서 분명히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모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한 실체-세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관은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신관이며,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신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삼위 하나님의 관계 성경에서 3위 하나님은 언제나 성부-성자-성령의 순으로 기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3위 사이의 질서와 논리적 순서를 밝힌 것이지, 어느 한 위가 다른 위에 대해 지위와 능력과 기원이 종속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 존재론적 순서 3위 하나님은 존재론적인 면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부는 다른 위로부터 발생하지 않으셨고, 성자는 성부로부터 영원히 발생(generation)하셨으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방출(procession)하셨다."
2) 경륜적 순서 3위 하나님은 경륜적인 면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만물이 "성부로부터"(out of) 나오고, "성자로 말미암고"(through), "성령 안에"(in)있다(요 1:3,14)."
3) 구원 사역적 순서 3위 하나님은 인간의 구속 사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부는 구속을 계획하셨고(요 17:6), 성자는 죽음을 통해 구속을 성취하셨으며(롬 5:8), 성령은 구원의 효과를 각 개인에게 적용하신다(고후 3:18)."
5. 삼위일체 문제는 세상에 똑같은 모델이 없기 때문에 예를 들어 설명하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을 모두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마도 이 문제는 우리가 천국에서 하나님을 뵙게될 때에 완전히 해결될 수 잇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
1. 신성에 대한 교리를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가? 니케아 회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점은 "예수님께서 정말로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가지신 분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니케아 종교 회의를 열게 된 배경과 과정은 제 홈페이지 중간에 있는 "성경 질문에 대한 답변"란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이 메뉴를 클릭하신 후에 그 안에 있는 157번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biblenara.org/q&a/Q157.htm )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325년 5월 20일에 소아시아 북서부에 있는 니케아에서 최초로 세계 전체 교회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때에 기독교 교회는 하나였기 때문에 이 회의에는 당시에 알려진 세계의 교회 대표자들이 모두 참석했습니다(페르시아, 스키티아, 동방 교회들, 로마, 카르타고, 코르도바, 고올 등...). 이 때에 참석한 감독은 약 300명 정도였습니다.
교회 대표들은 기나 긴 회의를 통해서 결국 "성자께서 성부와 동일한 신적 본질을 가지신 분"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기독교 신조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에 이 결정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사람이 2명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교회에서 파견된 교회 대표들이 결정한 것을 두 사람은 끝내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결정을 거부한 아리우스와 2명의 감독은 파문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때로 다수보다 소수가 옳은 주장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2명의 생각이 진리였고, 전 세계의 교회 감독들이 내린 결정이 거짓이었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 2명은 칼빈과 루터처럼 후에 많은 지지자들을 얻었을 것이며, 또한 역사가 그들이 옳았다고 인정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제 2차, 3차 교회 회의에서도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는 신조가 정식으로 체택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교리는 성경적인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2. 우리와 예수님은 동격인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양자로 받아들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롬 8:13-14).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롬 8:17).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되, 예수 그리스도를 맏아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롬 8:29). 가족 관계로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맏형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낮아지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될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셨지만 여전히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다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의 왕과 주로서 영광을 받아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양자를 얻는 경우, 양부모는 양자가 자신과 같은 인격을 갖기를 원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양자가 된 우리들이 주님을 본받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3. 삼위일체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말인가? 삼위일체란 말이 구약과 신약이 연관성을 갖게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답변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3위의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신 것은 신약 뿐 아니라, 구약 성경에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창세기-출애굽기만 해도 다음과 같은 예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하나님이라고 표현된 말도 3위의 하나님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창조 사역: 성부 하나님: 창조 계획, 시행 성자 예수님: 창조 사역 참여(지혜) 성령 하나님: 창조 사역에 직접 참여(운행하며 함께 하심).
2) 출애굽 사역 성부 하나님: 출애굽 사건 주도, 모세를 보냄, 10대 재앙을 내리심 성자 예수님: 유월절 어린양으로 상징된(구속) 성령 하나님: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상징(보호와 인도)
3) 성막 사건 성부 하나님: 성막 건설 지시, 설계도 주심 성자 예수님: 성막의 원형, 희생 제물(구속) 성령 하나님: 성막을 짓는 일꾼에게 은사와 지혜를 주어 완성케 하심.
4.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버리셨는가? 이러한 주장은 흔히 "양태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양태론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계시와 구원 역사에서 여러 가지 양태(형태)로 나타난다고 하는 입장입니다. 이 입장은 한 사람이 자녀들에게 아버지로 나타나고, 아내에게는 남편으로 나타나고, 회사에서는 사장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사벨리우스라는 사람이 주장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창조 사역에서는 창조자로, 구원 역사에서는 구원자로, 그리고 구원을 적용하는 일에 있어서는 성령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본질적으로 한 하나님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 "일신론적인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삼위일체론은 성부 성자, 성령이 한 하나님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그 인격과 사역과 특성에 있어서는 분명하게 구별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터툴리안은 이것을 "한 실체-세 인격(Una substantia-tres persona)"이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으며, 이 말로부터 3위일체란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관에서 보면 "십자가 사건"에서 성부와 성자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한 분이기 때문에, 십자가 사건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버리셨으며, 성부가 받는 고통은 성자께서 받으신 고난과 동일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신관에서 보면 아들을 버리신 성부 하나님은 성자와 분명히 구별되며, 또한 성부와 성자가 받는 고통 역시 서로 구별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몰트만과 같은 신학자는 십자가 사건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 사건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당하는 고난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버림받은 가운데 아들이 당한 고통과 죽음은, 아들의 죽음에 대해 느끼는 아버지의 고통과는 다른 고통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을 단순히히 성부께서 수난을 당한 것으로 보고, 이를 '하나님의 죽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와 아버지 사이에 일어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사건을 삼위일체론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아들은 죽음의 고통을 당하셨고,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 때문에 고통을 받으셨다. 여기에서 아버지께서 당하신 아픔은 아들의 죽음만큼이나 큰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들이 당하는 고통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고통과 상응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신다면, 아버지 역시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고통을 당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지 않으면, 삼위일체론은 일신론적 배경을 극복할 수가 없다."
- 몰트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한국신학연구소, p.25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