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은산(575m). 둥지봉(430m)
일주일을 못 넘기고
KS와 Dr.최와 함께 옥순봉을 산행했던 산 기운이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또 산 생각이 나 몸이 덜썩거려 집을 나섰다. 제천 가은산을 목표로 새벽 5시 반이 못되어 제천 옥순교주차장에 도착했다.
새벽이라 옥순교를 지나는 차량은 한 대도 없었고 넓은 주차장에도 차 한대 없었다. 옥순교주변의 산과 호수 사람들 모두 새벽 잠에 빠져 있었다.
가장 빠르게 터지는 뷰
가은산은 청풍호에 그 자락을 담그고 둥지봉을 안고 있었다. 산은 575m로 높지 않았고 산행거리 3.6km도 적당하였으나 이름과는 달리 정상부근에서는 까칠한 산이었다.
옥순교주차장에서 옥순교 왼쪽으로 들머리가 바로 보였다. 데크계단을 5분 오르니 전망대가 나왔다. 정자로 된 전망대에서는 청량한 청풍호의 새벽 뷰가 터졌다. 산길 어디도 없는 가장 빨리 나타나는 뷰다. 가성비가 아주 좋았으나 정상을 올라야 하는 다급한 마음이 앞서 슬적 보고 나와 오른쪽 등산로로 길을 잡았다.
겸손한 마음과 체력의 안배로-
산을 정복하겠다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 이 산을 통하여 무엇 하나라도 느끼고 배워가야지- 첫 발을 내 디뎠다.
숨을 깊게 들어 마시고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정신도 가다듬었다. 허물어진 오르막 돌길과 부드러운 육산길을 20분 오르니 청풍호의 2차 전망이 살짝 터졌다. 청풍호에서 솟은 옥순봉과 청풍호를 가로 지르는 옥순교가 보였다. 또 전망이 터지니 몸도 마음도 가뿐해져 오늘 산행에 자신감이 더해졌다.
법을 지켜야지-
또 20여분을 오르니 비탐삼거리가 나왔다. 오른쪽 비탐방길에는 출입금지의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출입금지의 줄도 처져 있었다. 그러나 산객들은 모두가 비탐길을 가는것 같았다. 길이 뚜렷하게 옆으로 나 있었다. 제천시에서는 알고도 그냥 넘어 가는 것 같았다. 알고도 넘어갈 일이 따로 있지- 행정관청에서는 그러면 안되지-
오늘 가은산 산행에 이 비탐구역을 법을 지키기도 하고 위험해 가지 않으려 했는데 현장에 오니 마음이 변했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변할 수 있는 것- 변하는 것- 스스로 위로했다.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 하였지만 나 역시 그들과 한 통속이 되어 버렸다. 비탐길로 방향을 잡아 다시 20여분을 오르니 아름다운 청풍호의 풍광이 본격적으로 펼펴졌다.
아름다운 청풍호의 아침
청풍호에 자락을 담그고 바위마디로 우뚝솟은 옥순봉- 호수를 가로지르는 붉은 두 교각의 옥순교- 산자락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하얀 띠-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 막아 우뚝솟은 검고 푸른 산등성이- 날카로운 능선사이에 남아 있는 하얀 구름조각들-겹겹이 출렁이며 하늘끝에 닿아 있는 산맥들- 이 모두가 한꺼번에 눈앞에 펼쳐졌다. 아!- 아름다운 청풍호의 풍광- 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 웅장함- 언제 다시 보겠는가- 이른 아침의 청풍호는 고요하였고 산은 적막하였다.
신기한 새바위
산속의 모든 생명들과 물속의 모든 생명들이 그들의 삶터에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새소리에 산등성이의 새바위는 더 크게 더 선명하였다. 어미새와 새끼새가 산등성이 꼭지에 않아 있었다. 언제 어떻게 누가 그 새같은 바위를 능선위에 얹혀 놓았을까- 아름답고도 신기하였다.
벼락맞은 바위
가은산의 또 하나의 명물은 벼락맞은 바위이다. 벼락맞은 바위는 산자락 끝에 인접해 있었다. 가는 길은 험하였다. 안전시설이 없는 급경사 하강구간이었다. 산자락 끝까지 하강하여 물을 건너가야 했다. 호수물이 많이 차면 건너기가 어렵다. 호수바닥까지 겨우 내려와 비탈 길을 조금 오르니 벼락맞은 바위가 나타났다. 3층 높이의 큰 바위가 두동강 나 있었다. 벼락을 맞았다 한다. 그 큰바위가 위에서 아래로 날렵하게 갈라져 있었다. 벼락을 맞았다 하니 그렇게 알 수 밖에 없었다.
사투벌린 위험구간
벼락바위부터는 급경사 산길을 올라야 둥지봉이 나온다. 안전시설이 전혀없는 초 위험한구간이 4개나 있는 긴 오르막이었다. 4m정도의 절벽구간이 첫 번째로 나타났다. 돌아갈까 망설이다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 용기를 냈다. 다행히 돌출된 부분이 띄엄뜨엄 있어서 오를 수 있었다. 이내 또 6m가 넘을성 싶은 긴 절벽이 앞에 나타났다. 이제는 되돌아 갈 수가 없었다. 어느 산객이 매어 놓은 가느다란 줄 하나가 있었다. 그 줄을 믿을수가 없었으나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줄은 다행히 끊어지지 않았지만 배낭과 몸이 좁고 긴 바위틈에서 빠지질 않았다. 가는 줄은 끊어질것처럼 늘어졌다. 끊어지면 낭떠러지다. 악전고투끝에 그 위험한 구간도 빠져 나오니 허리높이의 바위광장이 나타났다. 발 올릴 틈도 잡을 모서리도 없는 바위가 앞을 막고 있었다. 배를 바위에 붙이고 손 바닥을 꺼칠한 바위바닥에 밀착하여 다리의 탄력으로 팔에 힘을 주어 한 번에 올라야 했다. 실수하면 가물가물 낭떠러지 행이다. 기가 차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오를수도 내려갈 수도 없었다. 후회가 막심하였다. 왜 괜한 욕심을 냈는지- 이 나이에 이런꼴로 어떻게 되면 무슨 창피지- 망설이고 망설이다 오를 태세를 취했다. 오르지 않으면 않되었기에-
땀에 땀이 흐르고 허벅지가 후들거렸다. 앞을 쳐다보니 나무가 바로 보였다. 아슬아슬 그야말로 천만다행으로 다 올라왔다. 신이 도운것 같았다. 청풍호의 전망은 보이지 않았고 가슴만 뛰었다. 정신을 차리고 올라온 바위절벽을 내려다 보니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 아득한 절벽- 이제야 살았구나- 이제 다시는 비탐구간은 안 가야지- 법을 지켜야지- 이제 산도 그만 둬야지- 이 나이에 무슨 산을? ! - 벌써 쫑 냈어야 하는데-
은인을 만나다
가까워진 둥지봉 산길은 가팔랐고 험했다. 바위로 이어진 오르막 길이었다. 바위길에는 발자국이 없었다. 길이 갑자기 없어져 한 참을 헤메니 당황 되었다. 평일 이른 아침이라 산객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찿았으나 길은 내 눈에 없었다. 마침 불쑥 바위위에 사람이 서 있었다. 다행이었다. 길을 물고 그 은인뒤로 둥지봉을 올랐다. 오늘 두 번째 행운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남에게 베푼적이 있었는가- 은인이 된 적이 있었는가-
드디어 가은산 정상
둥지봉에서 0.7k 하강하니 가은산 주 등산로가 나타났고 가은산 1.1k의 이정표도 나타났다. 남은 1.1k는 본격적인 오르막 구간이었다. 7도의 철계단과 급경사 바위길로 이어져 있었다. 40분을 허물허물 오르니 가은산 정상석이 나타났다. 정상석은 평탄한 길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 가은산 정상- 만만하게 보았던 가은산- 고운 이름의 가은산은 성깔있는 잘생긴 사람 같았다. 4시간 38분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긴 산 정상은 없다. 햄버거로 아침식사를 하니 이제야 입맛이 돌아왔다. 꿀맛같은 햄버거-
나이를 묻지 마세요
하강은 1시간 40분이 걸렸다. 옥순교 주차장에서 산중에서 만났던 은인을 또 만났다.
나이는 묻지않고(산중에서 모자를 벗은 내 모습을 보았음) 그 연세에 대단하시다- 멋있다고 칭찬해 주었다. 좋은 말은 들을때 마다 기분 좋은 법- 내가 멋있는 사람인가~?
청풍호의 산과 봉
청풍호 주변에는 3산 5봉이 있다. 월악산, 가은산, 두악산과 제비봉, 옥순봉, 구담봉, 둥지봉, 악어봉이다.
장회나루터에서 유람선을 타면 날 샌 제비같은 제비봉, 바위가 죽순같이 쌓아진 옥순봉, 호수에 잠긴 산 자락이 거북등같은 구담봉, 호수에 잠긴 산 자락이 악어같은 악어봉, 새둥지 같은 둥지봉들을 볼 수 있다. 사람은 속을 봐야 하고 산은 외모를 봐야 한다. 산 이름은외모에서 따오기 때문이다.
인접한 옥순출렁다리를 건너면 0.7k의 트레킹코스도 있다.
끝
2024. 6. 28 백산 우 진 권 拙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