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줄+12의 단상 <7>
스투키의 기적
미르
무심하다는 것은 대상에 관하여 아무런 관심이나 감정이 없음을 의미한다. 정말 무심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자세히 살피지 못하는 관찰력 부족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놀랄만한 끈기와 인내의 생명력을 볼 수 있었던 기회가 최근에 있었다. 별걸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심했던 대상이 열렬한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변했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서재 창가에는 조그만 화분이 하나 놓여 있다. 작년 가을 애들에게 생신 선물과 함께 받은 것이라 늘 가까이 두고 지냈다. 볼 때마다 부모라고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애들한테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어 늘 미안했다. 잘 만들어진 카네이션과 빨간 하트가 몇 그루의 스투키와 함께 꽂혀있는 앙증맞은 화분이었다. 보면서도 실물과 다름없는 모양에 ‘참 잘 만들었다.’라고 늘 감탄을 하곤 했다. 인조모형이라 생각했으니 당연히 물을 줄 리가 만무했다. 어쩌다 물수건으로 먼지만 가볍게 닦아 줄 뿐이었다. 가끔씩 책상의 위치에 따라 자리도 이리저리 옮겨가며 그렇게 동거를 해왔다.
해를 넘기고 지난여름 바닷가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주워온 조약돌을 버리기가 뭐해 화분 바닥에 깔려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인조라 여겼던 스투키 주위로 푸른색보다 더 푸르게 돋아난 새싹이 빤히 올려다보는 것이 아닌가. 마치 알아봐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순간 ‘흡!’하고 숨이 멎었다. 대체 얼마를 갈증에 시달리며 이 생명을 틔워 냈다는 말인가. 작은 우주의 경이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물이 없는 척박한 땅에서도 견딘다는 선인장이지만 무려 10달을 버티며 싹을 틔워 내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었다. 스투키의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부끄럽고 미안했다. 쉽게 화내고 좌절하며 포기하는 이 세태가 아닌가? 묵묵히 견디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희망의 날이 온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 것 같았다. 갑자기 물을 주느라 호들갑을 떨었다. 좁은 화분이 답답할까 봐 너른 화분으로 옮겨 심으니 한결 보기에도 좋았다. 얼마 전 딸들이 보고 무척 즐거워하였다. 살면서 경이로움은 언제나 곁에 있다. 세상의 악인 무관심을 경계하라고 스투키가 다시 알려주는 것 같았다.
첫댓글 사소한 일상에서도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미르님께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살면서 경이로움은 언제나 곁에 있다
세상의 악인 무관심!!!
공감합니다.^^
저도 세심한 손길 없이도 잘 자라는 듯 해 무심히 봐오던 스투키 화초에 관심을 더 갖고 들여다 보고 물을 줘야 겠어요. 생명의 경이로움과 무관심에 대해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옛날 어르신들께서 논에 벼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씀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식물도 관심과 사랑의 정도에 따라 자라는 것이 다른줄 알면서 우리집 식구들에게 관심과 애정이 부족했음을 돌아봅니다.
대단하십니다.
"스투키" 이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