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14
죽기를 구한 엘리야 / 마경훈 목사
1. 영적침체에 빠진 엘리야
목사가 가장 힘들어 할 때는 돈 문제나 대인관계의 문제를 만났을 때가 아닙니다. 목사 자신이 영적인 침체에 빠졌을 때입니다.
선지자 엘리야의 일생 가운데 가장 힘들었을 때는 아합을 피하여 숨어 지냈던 3년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영적인 침체에 빠졌을 때입니다.
본문은 엘리야의 영적 침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리야를 목자로 삼고 엘리야를 따랐습니다. 백성들에게 영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엘리야에게 찾아와서 해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엘리야 자신에게 영적인 문제가 발생하자 엘리야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엘리야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엘리야는 영적 침체에 낫선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지금까지 영적 침체에 빠져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그 시간이 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 낮선 영적인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죽기를 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 같은 위대한 사람이 영적 침체에 빠져서 죽기를 구하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할 것입니다. 엘리야가 어떤 사람입니까? 선지자 중의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를 대표하는 선지자입니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행했습니까? 왕상 18장에서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영적인 싸움을 했고, 그 싸움에서 승리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높였던 선지자 아닙니까?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늘의 문이 닫혔고,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시 기도하자 하늘이 문을 열고 비를 내려주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사역을 했던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영적 침체가 찾아왔습니다.
혹시 이 설교를 듣는 분 중에 "나는 절대로 영적인 침체에 빠지지 않는다"고 확신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겸손해져야 합니다. 혹시 실수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절대 저런 형편없는 행동은 하지 않아"라고 장담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겸손해져야합니다.
우리는 가끔 목회자의 실수를 목격하거나,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될 만한 사람이 엉뚱한 일을 하는 경우를 목격합니다. 이런 겨우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지나치게 정죄하지 맙시다. 그가 혹 엘리야라 할지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2. 침체의 이유
왜 엘리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가 이런 침체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엘리야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엘리야가 위대한 일들을 행했지만 그도 분명히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도 역시 사람입니다. 사람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약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신기할만한 일들을 하며 놀랍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도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다 약한 것입니다.
둘째, 큰 일 후에 오는 심리적 허망감을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보통 큰 일을 할 때는 그 일을 하느라고 잘 모르지만 그 일이 끝나면 일로 채워졌던 것들이 비워지게 되면서 심리적인 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엘리야는 치열한 영적 싸움을 치뤘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3년 6개월의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그 영적 싸움에 승리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 찾아오는 심리적 허전함을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셋째, 엘리야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악한 왕인 아합을 이겨낼 정도로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엘리야 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입니다. 엘리야가 강하지만 엘리야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이세벨은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 엘리야에게 이세벨이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했습니다. "내가 내일 이맘때에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이 말은 엘리야를 죽이겠다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엘리야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 두려움이 그에게 영적침체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넷째, 잘못된 두려움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생명의 주권자가 하나님임을 망각했던 것입니다. 그가 올바른 지식 위에 견고하게 서 있었다면 이세벨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10:28에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이세벨로 인하여 느꼈던 두려움은 거짓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거짓에 속았던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거짓된 두려움의 가라지를 성도들의 마음에 뿌리고 다닙니다. 막연한 두려움, 거짓 지식에 근거한 잘못된 두려움의 씨를 뿌립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매십시오. 진리에 올바로 서야 거짓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섯째, 더 깊은 영적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찾아오는 영혼의 어두운 밤입니다.
이 사건이 있고 난 후에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산에 세우시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의 징조를 보이시고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임재를 경험한 엘리야는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게 됩니다. 정말 놀라운 체험입니다. 신자라면 이런 체험을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 신비로운 체험이 있기 전 엘리야에게 영혼의 어두운 밤이 있었습니다. 마치 새벽이 오기 전에 밤이 더 어두운 것처럼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좌절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아시고 그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할 때 신자가 느끼는 감정은 절망입니다. 소망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혹 영혼의 어두운 밤과 같은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치 앞도 짐작할 수 없고, 소망을 찾을 수 없는 캄캄함 속에 있지는 않습니까? 잊지 마십시오. 곧 새벽이 옵니다. 당신의 터널도 하나님의 역사로 끝이 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대합시다.
3. 어떻게 침체를 이겨낼까요?
엘리야는 어떻게 침체에서 벗어났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편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몇 가지 비결이 있더군요.
첫째, 휴식입니다(5-8절).
지친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 누어서 잠이 들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깨웠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주면서 먹고 마시고 다시 눕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그것을 먹고 다시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와서 자는 엘리야를 깨우고 다시 먹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실컷 쉬었습니다. 휴식을 취한 후 엘리야는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을 향해 갑니다. 그는 40주 40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나 항상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과 정신은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만약 휴식이 필요치 않다면 하나님은 안식일을 재정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밤을 주시고 잠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육신을 입은 사람들에게 쉬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휴식하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전도를 마치고 돌아온 12제자에게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6:31)
휴식하라는 말은 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고 지치면 쉬라는 말입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졌을 때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저도 목회를 하다가 지치면 휴식을 합니다. 휴식하는 시간은 마치 나무를 패는 나무꾼이 도끼 날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쉬는 것을 불경건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절대 사람을 기계로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휴식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휴식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지혜롭게 휴식하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그렇게 되면 지금 보다 더 효과적인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산에 가십시오(8절).
엘리야는 휴식을 취한 후 하나님의 산을 찾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산을 찾아 간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엘리야는 푹 쉬고 난 후에 하나님의 산을 향하여 갈 때는 무섭게 갔습니다. 40주야를 걸어서 호렙산에 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분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여 어디든지 계시니 꼭 특별한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막과 성전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자기 백성들과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엘리야도 꼭 호렙에서만 하나님을 만났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영적인 침체에 빠졌을 때 그는 하나님의 산 호렙을 찾아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온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시온에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했던 것 처럼 말세르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특별한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이 이뤄져야합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9-14절).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 호렙을 찾은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바람과 지진과 불의 징조 가운데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과 같은 엄청난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찾기보다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귀로 들리지 않을지라도 마음속에서 희미하게 들리지만 양심의 기능을 통해서 분별이 가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세미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민감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고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당신의 지친 영,혼,몸에 새힘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