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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정리:2002.9.8
06:00밤머리재-06:25도토리봉-07:30동왕등재-09:20서왕등재-09:45외고개-10:10새재-12:00독바위-12:50쑥밭재-13:40조갯골본류-14:10윗세재마을-14:30중땀-15:00밤머리재
이번 지리산행은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산행이었다. 지난 7월 중순 피아골-뱀사골 산행 이후 여름 휴가가 끝나갈 무렵 1박 2일의 설악산 수렴동-가야동 산행이 있었고, 지난주에는 태풍 '로사' 때문에 지리산을 가지 못하고 관악산에 올라 마음을 달래기도 하였다. 오늘 주말은 날씨가 매우 화창하다. 우리 인간들이 그렇게 아름답고 곱고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건만 '로사'는 끝내 마녀의 악의적 심술을 부려 큰 피해를 주고 말았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지구의 자정 운동이고 지구 자체의 건강함을 위해서 태풍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인 존재인 것이다.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테니스장에서 두어 시간 동안 녹슬었던 몸을 풀었다. 어느 운동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테니스는 고도의 다양한 기술과 두뇌가 필요한 운동이다. 거기다 빠른 발을 갖추어야 하고, 상대방의 마음도 읽어내야 한다. 요즘 운동량이 적어 강력한 포핸드와 백핸드 드라이버 샷을 치고 났더니 몸이 젖었다. 전임 교는 운동장이 매우 넓었고, 테니스장 2면이 있어서 자유롭게 운동을 할 수가 있었다. 빛고을 광주에서는 마을과 학교에 테니스장이 거의 다 갖추어있어 테니스를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천국이었다.
집에 돌아와 산행에 필요한 먹거리를 챙기러 마트에 나갔다. 김밥 2끼분과 복숭아, 초코파이, 육포와 햄 등을 준비하였고 지리산으로 떠날 시간만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밤 11시가 넘어 송내역으로 향한다. 송내역에 도착하니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 곧 홍 선생이 나타나겠지. 하지만 12시 20여 분이 되고 송내역사의 불빛이 냉정하게 꺼지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이 양반이 혹시 남부역에서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홍 선생은 약속 시각을 칼같이 지키는 사람인데. 핸드폰이 고장으로 먹통이라 통신은 두절 상태이다.
송내역에서 택시를 잡고자 줄지어 있는 취객과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젠 홍 선생이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에 쓸쓸하고 고독해진다. 홍 선생이 내 마음속에 그렇게 크게 자리 잡았나 보다. 아까 낮에 통화하다가 끊겨 약간의 착오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시간을 기다린 후 더 지체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홀로 산행을 떠나기로 한다.
밤이 깊어 가는 고속도로는 차들의 빠른 질주로 소음이 가득하다.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차츰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한다. 지금의 시각이 오전 2시가 되어간다. 정상적인 운행이면 오전 5시면 밤머리재에 도착할 수 있다. 5시쯤이면 요즘은 깜깜할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손전등을 빠뜨리고 왔다. 무주 덕유산휴게소에서 1시간가량 잠을 잔 후 아침 6시부터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따라서 시간은 널널하니 과속할 필요는 없다. 평균 시속 100km를 고수한 끝에 덕유산휴게소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3시 40여 분. 시트를 젖히고 졸린 눈을 감았다. 한 시간가량을 그렇게 있었나 보다. 문득 시각을 보니 오전 5시가 다 되어간다. 여름철만 하더라도 지금의 시각이면 훤할 시간인데. 지금은 해가 짧아져 아직도 캄캄한 밤중이다.
산청 I.C를 지나 밤머리재를 오른다. 밤머리재를 향하는 길가에는 아침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고, 웅석봉 능선과 왕등재 능선을 가르는 밤머리재가 남쪽 하늘에 선명한 푸르름으로 한껏 다가와 있다. 아! 드디어 지리산에 들어왔구나. 밤머리재로 오르는 이 지방도는 지난 태풍 '로사'의 영향으로 산사태가 일어나 긴급 복구한 흔적이 역력했고, 도로 자체는 크게 유실된 곳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머리재 꼭대기를 향하여 고개를 돌고 오르면서 힐끗힐끗 바라보니 왕산과 필봉이 흰 구름 속을 뚫고 뾰족이 치솟아 섬을 이루었다. 밤머리재에 도착하니 비로소 어둠이 벗어진다. 밤머리재 공터에는 나보다 이른 새벽에 산행을 시작한 산님들이 있었던지 서너 대의 차량이 이슬을 호복히 맞아 주차되어있다. 일단은 도토리 봉을 향하여 오른다. 밤머리재에서 도토리봉까지는 상당한 된비알이다. 이슬을 흠뻑 먹은 숲 사이를 헤치고 올라가자 바지와 재킷이 금세 젖는다. 5분을 걸어 올라가자 아늑한 장소에 고어텍스 텐트 1동이 쳐져 있는데, 간밤에 한잔하셨던지 조용하다. 가파른 고도의 도토리봉을 치고 오르기 위해서 등산로는 곡선을 그리며 갈지자로 이어지다가 냅다 직선으로 길이 바뀐다. 얼마 걷지 않았지만 등허리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비에 맞은 듯 흘러 상의를 완전히 적시고 말았다. 도토리봉에 올라 더위와 땀을 이기지 못하고 재킷을 벗어 배낭에 매단다.
어젯밤 홍 선생을 애타게 기다리며 뻑뻑 피워댄 담배가 목구멍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시원한 음료로 목젖을 한동안 적신다. 그리고 조망에 들어간다. 우선 남쪽을 바라보니 홍계리와 시천면 덕산마을 일대가 구름 속에 잠겨 있다. 남동쪽의 웅석봉은 청명한 날씨 덕분에 손을 벌리며 내 품에 들어올 듯이 무척이나 가깝다. 서쪽을 바라보니 멀리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피우고 비상하려는 듯 천왕봉이 보였고, 천왕봉에서 뻗어 내린 장쾌하고 강렬한 능선이 인상적이다. 그 앞으로는 오늘 내가 걸어야 할 여정. 왕등재(깃대봉)와 여러 크고 작은 봉우리를 지나 서왕등재(왕등재 습지)가 서북쪽으로 보였고 쑥밭재로 이어지는 동부 능선이 조망되기도 한다. 지리산 동부지역에는 유난히도 고개도 많다. 밤머리재, 왕등재, 외고개, 새재, 쑥밭재. 이렇게 고개가 많다는 것은 지리산의 남과 북으로 산청과 함양의 물물교역과 사람들이 자주 왕래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도토리봉에서 바라본 왕등재는 급격히 고도가 떨어지는 고개를 정점으로 다시 V자로 치솟아 올라 자신의 위용을 맘껏 자랑하고 있다. 왕등재도 도토리봉에서 바라보면 저렇게 멋지다. 도토리봉에서 바라본 왕등재 능선이 두타산에 올라 청옥산을 바라보는 능선과 비슷하다. 아래쪽 계곡에서는 숲 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 보니 지리산은 이제 완연한 가을이구나.
일단은 오늘의 목적지 독바위와 쑥밭재를 가려면 일단 서왕등재를 올라야 한다. 가야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신라의 강력한 힘에 밀려 지리산에 쫓겨 왕등재에서 성을 쌓고 항전하다가, 끝내는 왕산으로 쫓겨가 최후를 맞게 됐다는 전설이 어린 곳이다. 그 왕산에는 구형왕이 살았던 궁터가 있으며 지리산의 동부 자락에는 구형왕과 관련된 지명이 여러 곳에 많이 남아 있다. 왕산, 수정궁 터, 국골, 왕등재, 두지터, 성안 등이 바로 그 구형왕과 관련된 지명이다. 하지만 문명의 시대인 지금도 이곳은 이렇게 지리산의 오지인 곳인데 구형왕이 이곳에 들어와 성을 쌓고 신라에 복수의 칼을 갈고 저항했는지는 전설일 뿐 의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 이제 왕등재를 가기 위해서는 고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좁은 숲속 길의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걸어 내려간다. 우측으로는 금서면의 마을들이 숲 사이로 비쳤으며 왕산과 필봉 자락도 간간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새 평탄한 안부를 지나 왕등재를 향해 오른다. 왕등재를 오르면 조망은 한결 달라진다. 대원사 계곡의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며 세재 마을도 지척일 것이다. 뒤에 두고 온 도토리봉을 바라보며 오름길을 재촉한다. 산행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났으니 몸은 정상적으로 풀린 듯하다. 뱃속이 출출하여, 일단 아침 식사는 이곳에서 하기로 한다.
웅석봉과 그 능선을 바라보며 김밥을 먹는다. 역시 혼자 먹는 식은 김밥 덩어리가 맛있을 리 없다. 그러면서도 나의 시야는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부지런히 사위를 조망하기에 여념이 없다. 아직도 홍계리와 덕산마을 쪽은 구름 속에 갇혀있다. 가까이 대원사가 보이고 계곡을 따라 시야를 올리면 멀리 윗세재 마을도 보인다. 왕등재에서 습지가 있는 서왕등재까지 가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봉우리를 여러 개 넘어야 한다. 시간은 대략 2시간 정도 소요. 왕등재를 출발하여 대원사 계곡을 바라보며 산비탈 사이에 옹색하게 난 등로를 따라 걸어 나간다. 오솔길 같은 산길이며 삼림욕을 즐기기에 적합한 길이다. 어느새 왕등재 능선의 첫 번째 봉우리에 닿는다. 뒤를 돌아보니 두고 온 왕등재가 황금능선의 구곡산과 비슷하기도 하다. 내리막길에서 희미한 옛길을 만나기도 한다. 좌측의 떨어지는 길은 유평리 쪽 대원사 방향인데, 우측은 어디로 떨어지는 길일까? 지도가 없어서 자세히 알 수가 없으나 대략 금서면 수철리 쪽이라고 생각만 해본다.
지금의 시각이 9시가 다 되어간다. 좌측의 지리산정을 보니 천왕봉과 중봉이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아래로는 써리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뻗었고, 치밭목능선과 황금능선도 조망이 된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시계방향으로 크게 우회하는 원을 그리며 산행을 하여야 할 테니 천왕봉이 지척에 보이기는 하나 실제로는 상당히 먼 거리이다. 숲속의 길을 걸을 때는 시원했으나 간간이 오른 봉우리와 능선에서는 땡볕이 강력하게 내리쬐어 아직도 여름이 물러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왕등재 능선은 동부 능선과 같이 사람이 귀하다. 웅석봉에서 시작하는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사람과 태극 종주를 하는 산님이 걸을 뿐, 길도 험하고 다소 난해하기도 하다. 왕등재를 출발한 지 두 시간 남짓 물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서왕등재 습지이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이름 모를 풀벌레가 울고 있는데 무척이나 평온하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지리산에 이러한 곳이 있다는 것도 신기할 뿐이다. 서왕등재는 생태계가 다양한 습지가 있는 곳이다. 해발 1,000m 고지대에 대규모 늪지대가 있다는 사실도 서왕등재의 신비함을 더한다.
너비 70m가량에 2백여m가량 길게 펼쳐진 왕등재의 늪. 사철 물기가 서려 나무는 한 그루도 자라지 못하고 풀밭만 펼쳐져 있다. 물과 진흙 위에 펼쳐진 풀밭은 발목까지 질퍽거리게 하는 고산지대의 늪지대인 것이다. 왕등재 일원은 이 늪지대를 중심으로 또한 광활한 분지형 지대를 이뤄 마치 세석평전과도 흡사하다. 광활한 산상과 평원은 억새와 싸리나무로 뒤덮여 가을 분위기를 한층 더하고 있는가 하면 평원 저 멀리에는 천왕봉과 중봉이 우뚝 솟아 있어 색다른 운치를 자아낸다. (한중기님 글)
사실 왕등재 구간과 이 습지도 출입통제 구간이다. 지리산에는 통제구역과 휴식년제 구간이 많이 있지만, 사실적으로 말하면 실제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서 통제하고 관리하기가 어렵다. 이 엄청난 지리산자락을 아무리 쌍불 켜고 지킨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가끔가다가 소수의 전문 지리 산꾼이 찾는 이 동부지역을 온종일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이시여. 안심하시라. 지리산을 찾는 산꾼들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훨씬 더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며, 곤충 하나, 이름 모를 풀꽃 하나 절대 건들지 않는다. 지리산이 좋기에 그저 지리산을 오르는 것이다. 다른 욕심은 없다.
서왕등재에 왔으니 비둘기봉 산장과 조갯골 산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새재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우회하여 내려가면 만나는 외고개를 지나야 한다. 외고개 좌측 아래로는 외곡마을이 보였으며, 우측의 급경사 길은 아마 오봉마을로 떨어지는 길일 것이다. 외고개는 비교적 넓고 평탄한 산자락을 이루고 있어 작은 세석평원을 연상케 한다. 일단은 작열하는 태양 빛을 피하고자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땡볕의 외고개를 지나 도착한 곳이 새재. 윗새재 마을에서 북쪽을 올려다보면 능선 사이의 안부가 옴팍한데 그곳이 바로 새재이다. 새재 마을에서 직접 치고 올라가면 불과 30여 분 거리이다. 새재에서 독바위까지는 계속 힘든 된비알. 얼마 걷지 못해 더위와 땀과 갈증에 숲길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오늘 산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산님을 한사람 만나는데. 그 역시 힘에 겨워 지친 모습의 오르막의 숲길에 앉아있다. 70L급의 대형배낭에 검정 선글라스에 트렉스타 샌들을 신고 있다. 헐. 지리산행에 샌들이라니.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어제 지곡사에서 웅석봉을 지나 서왕등재에서 1박하고 중봉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가 또한 나에게 묻기에 오늘 밤머리재에서 출발해 예까지 왔노라고 하니 놀라워하는 눈치다. 배낭이 가벼운 것을 톡톡히 덕 본 셈이다. 이십 분 가까이 같이 쉬다가 먼저 자리를 일어선다. 그 산님의 일정은 어차피 느긋하지만. 나는 산행 후 한양천리를 달려야 한다. 안전 산행을 하라는 입에 발린 격려를 남기고, 그의 출발도 지켜보며 길을 떠난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설악을 찾았었다. 우여곡절 끝에 용대리에 도착한 시각이 약간 늦은 듯했고, 내친김에 점심을 먹고 백담산장을 거쳐 중청 대피소를 향하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찾은 수렴동 계곡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른쪽 종아리에 근육통이 발생하였고 쌍폭을 지나 봉정암까지 두 다리를 질질 끌고 올라갔었다. 배낭이 무거웠다고는 하나 산행을 하면서 그렇게 곤욕을 치른 것은 처음이다. 좌우지간 산행을 할 때는 배낭이 가벼운 것이 최우선이다. 꼭 필요한 물건만 챙기고. 간단히 짐을 꾸리는 것이 상책이라면 상책인 것이다. 옛날 이십 대 때에는 텐트와 장비까지 지고 내 키만 한 배낭을 들쳐 메고 지리산 주능을 뛰어다녔는데. 세월은 흘러 이제 그때의 체력이 이미 전설이 되었다. 지난 설악산행 때 나 자신을 알았고 이젠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이름 모를 중간 암봉에 오르니 가슴이 탁 트인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오호라. 지금까지 걸어왔던 왕등재 능선이 모두 보이고. 조갯골의 속살이 완전히 파헤쳐 들여다보인다. 저 멀리 왕등재 능선 너머로 희미하게 아까 올랐던 도토리봉이 조망이 되었고 웅석봉과 달뜨기 능선은 까마득하다. 그리고 웅석봉 산정 너머 좌측으로 둔철산과 황매산도 보인다. 지금은 천왕봉과 중봉이 짙은 뭉게구름에 가려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북쪽을 바라다보니 지리산의 동부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으음. 정면 측의 능선이 벽송사에 뻗어 오른 빨치산 루트 능선이구나. 그렇다면 허공다리골의 물이 발원하는 1,300m급 봉우리와 독바위가 바로 이 근처일 텐데. 이곳에서 바라보니 빨치산 루트 능선이 평온하며 부드럽다.
약간의 오름길에 또 하나의 봉우리에 올라 마천쪽을 바라다본다. 아까 그 암봉에서는 마천쪽이 잘 보이지 않은 것 같았는데. 이 봉우리에 서니 창암산을 비롯해 백운산, 삼봉산, 법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천의 지리산자락들이 이번 태풍 '루사'와 폭우로 크게 손상되었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비로소 실감한다. 여기서 보아도 그 피해를 헤아릴 수 있는 정도인데. 가까이 가서 보면 무척이나 심각할 게다. 지난번 텔레비전에서 어떤 할머니가 매몰된 집을 바라보고 넋을 놓고 울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아픔을 느꼈는데 너무나 딱할 뿐이다. 아닌 밤에 홍두깨로 목숨까지 잃은 가족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할 것이다.
12시가 조금 넘어 독바위에 도착하였다. 독바위는 천왕봉과 중봉에서 보면 아래로 까마득히 낮게 보이지만. 실제로 만만치 않은 1,000m가 훨씬 넘는 고봉이다. 바위에 걸쳐진 밧줄을 타고 암봉에 오른다. 하봉은 오늘도 온통 구름바다이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과 장쾌한 능선을 바라보니, 험난한 지리산 중에 내가 갇혀있는 것 같은 생각에 갑자기 몸서리가 쳐지며 두려움이 몰려온다. 두류 능선 쪽을 세심히 들여다본다. 두류 능선 8부쯤에 보이는 향운대의 위치가 가늠된다. 바로 아래는 어름터 계곡이 길게 이어진다. 국골 사거리가 있는 말봉 쪽은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독바위에서 한참을 머문다. 남쪽을 바라보니 비둘기봉과 써리봉에서 뻗어내린 능선도 힘차게 보인다. 조갯골에서 흘러내려 가는 물소리가 쏴 하고 예까지 들린다. 독바위에서 쑥밭재 쪽을 바라보니 경치가 아름답고 산세가 특이하다.
독바위에서 쑥밭재까지는 내리막길. 쑥밭재의 위치는 산님들의 의견이 다소 분분하다. 1,300m급 봉우리 자체를 쑥밭재라 말하는 이도 있고, 광점동, 어름터와 연결되는 안부를 말하는 이도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어름터와 연결되는 곳을 쑥밭재라 생각한다. 광점동과 윗새재 주민의 말을 종합할 때 쑥밭재의 위치는 바로 이곳이다. 나에겐 자세한 지리전도가 없어서 확인할 길이 없으나, 관계지도를 살펴보면 하봉 근처와 허공다리골, 그리고 쑥밭재 근처의 지명이 애매하다. 그래서 지리산을 많이 오른 산꾼조차도 아리송하게 생각하는 곳이 지리산 동부 쪽이다.
독바위를 출발한 지 십 분도 안 되어 조갯골로 급격히 떨어지는 길을 만난다. 하지만 지나쳐 어름터에서 올라오는 길을 지나 조갯골로 하산하기로 한다. 곧 암반 위를 타고 내려가는 계류를 만나고 흐르는 물에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담그고 한동안 있었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온갖 잡념과 스트레스, 독이 되고 더러운 사바세계의 모든 것들이 깨끗이 씻길 수 있도록.
이제 윗세재 마을까지는 1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이곳에서의 조갯골 하산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오늘 걸어도 역시 낯설다. 그동안 폭우로 등로가 많이 손상되고 파헤쳐진 탓도 있겠지만 지리산의 길을 몇 차례 올라보았다고 감히 지리산을 잘 안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물소리를 들으며 너덜 길을 치고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니 이내 조릿대 숲길이다. 조개골 본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치밭목과 하봉으로 오르는 길을 우측에 버리고 좌측의 오솔길을 따라 하산을 이어간다. 우측의 조갯골은 지리산의 상류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량의 물들을 끊임없이 토해내고 있다. 조갯골은 통제구역이나 휴식년제 구간은 아니며 통제구역이라고는 하나 산님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진다. 산님들이 많이 찾는다는 그 증거가 윗세재 마을에 있는 많은 민박집이다. 만약 이곳을 강력하게 통제한다면 윗세재 마을의 수입과 생계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지리산의 오지 속에 있는 윗세재 마을은 언제 들러도 정겹고 평온하다. 가족 단위로 나온 휴가객들과 산님들의 차량도 보인다. 이곳에서 대원사가 있는 매표소까지는 8km. 오히려 지금까지의 산행보다 더 힘든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을 비웠다. 그동안 이 길을 나는 차량으로 자주 휑하니 편하게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오늘이야말로 느긋하게 걸어가며 계곡의 풍광을 즐기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내려가는 만큼 왕등재는 시야에서 멀어져 갔고, 태풍 '루사'의 강력한 태풍에도 불구하고 유돌골의 사과는 이쁘고 풋풋하게 나무에 매달려 나를 감동하게 했다. 이제 며칠 있으면 팔월 한가위로구나. 유돌골 과수원을 지나며 나는 지리산에는 이미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높아진 푸른 하늘과 함께 실감할 수 있었다.
* 윗새재 마을에서 대원사로 걸어 내려가다가 중땀마을 빨치산 아지트를 조금 지나 ‘다음카페 지리산 사랑' 의 지니형 님을 만나 택시를 부르는 수고를 덜고 승용차로 밤머리재까지 노마크로 나갔습니다. 지니형 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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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02년에는 담배를 피우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