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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화제목:부친
"딸. 내일 나갈거니깐 약속잡지마"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간지 30분이 지난 새벽 12시 30분. 엄마가 샤워후 수건을 머리로 비비며 던지 듯 말한다. 약속은 없다. 하지만 쉽게 허락하고 싶지 않다.
"뭐야 엄마. 무슨일인데"
"아빠가 이쪽 동네로 이사왔어. 같이 밥 먹기로 했으니깐 준비해둬"
아빠라.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에게 들은 말은 4살때 헤어지고 아빠는 행적을 감췄다고 한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보고싶어서 견딜수 없던 것도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친구들과 외모얘기를 나누는 도중 갑자기 한 또래 남자가 물었다. "넌 엄마 닮았어 아빠 닮았어?"라고 묻자 나는 "엄마가 아빠 닮았다고 하는데 난 아빠를 아기때만 보고 본적이 없어." 그러자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질문한 친구가 "미안하다. 괜한걸 물어봐서"라고 했다. 속으로 드라마에서 들어봤을 법한 대사군. 이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빈자리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거리에서 엄마와 아빠사이에서 손을 잡고 아이를 붕 뜨게 하는 것을 보고 내심 하고 싶었으니깐. 나중에 삼촌의 도움으로 하게 되었으니 큰 미련은 없다.
경제적으로도 힘들지는 않았다. 외가쪽에 큰삼촌은 건축으로 유명했고, 작은 이모는 대학교 교수였으며, 외삼촌은 소방사다. 외할머니는 이유는 모르지만 돈이 많았다.
예전에 엄마가 했던 말중에 아빠는 잘 퍼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결혼했고, 잘 퍼줘서 헤어졌다고 한다. 아빠에 대한 추억은 당사자는 존재하지 않고, 주변사람들의 반응으로 존재했다.
내일이 되었다.
샤워하고 옷을 고른다. 긴장 된다. 나를 창조하는데 씨앗을 제공한 사람인데. 동네 친구 만나러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갈수는 없었다.
집근처 우장산역에 있는 샤부샤부집에서 오후1시에 만나기로 했다. 엄마와 나는 12시 30분에 나왔다.
걸으면서 엄마에게 말을 건다.
"엄마. 부녀가 상봉하는 감격스러운 만남인데 최소한 일주일전에는 말해줘야지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겠어?"
엄마는 정면을 보고 있다. 햇빛때문에 눈을 찡그리면서 말한다.
"이벤트처럼 전날 말해야 긴장감 있잖아. 널 위해서 내가 일부러 그런거니깐 고맙다고 말해"
우리는 정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눴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 주절주절 떠들어봤지만, 가슴의 두근거림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샤부샤부집 입구에 들어서니 "어서오세요. 두분이신가요?"하고 종업원이 묻는다. 내가 "3명이에요"라고 대답하고 쿠션처럼 푹신한 4인용 의자에 앉는다. 나랑 엄마는 연인처럼 둘이 붙어앉았다. 앞에 아버지 자리를 남겨두어야 했다.
우리는 1인분 19,000원 짜리 모듬 샤부샤부 3인분을 주문했다. 긴장을 풀기위해서 소주가 최고지만, 차선으로 먹을 것을 많이 먹기로 했다. 채소를 넣고, 익기를 천천히 기다린다. 그렇게 끓고 있는 샤부샤부를 바라보다보니 엄마가 누군가를 발견한듯 무릎을 펴서 살짝 일어나 손을 올린다.
"어이. 여기야"
나는 테이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채소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막상 이 상황이 오니 나도 쑥스러운가보다. 인사는 해야지 하면서 턱을 억지로 위로 올렸다. 얼굴을 보는데 낯이 있다. 삐쩍마른 몸과 혈기없는 눈빛. 편의점에 오는 손님인가? 아니다. 누구지. 4초정도 고민하다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저번에 버스에서 봤던 아침놀 인간이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 꽂히듯 털썩 앉았다.
정신이 멍해졌다. 남자는 조용히 앉아있다. 어색한 듯 한번 쳐다보더니 '오랜만이네'라고 혼잣말 하듯이 한다.
난 그 남자를 5초정도 쳐다봤다. 남자는 조용히 고기를 먹다가 내가 쳐다본 것을 눈치챘는지 눈이 마주쳤다. 내가 기억 안나요?라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미안하다. 직장이 이쪽이다보니 이사를 오게 되었어. 아무튼.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구나" 라고 말한다.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나의 입모양을 못알아들엇고, 나를 기억못하는 것 같다.
"당신 더 마른거 같아. 아줌마! 여기 김치좀 더 주세요!"
엄마가 큰소리로 쩌렁쩌렁 말한다. 아빠는 앞에 있는 고기만 계속 만지작 거린다.
"동생은 어떻게 지내?"
엄마가 부친에게 묻는다.
"응. 지금 제주도에서 살고 있어. 한 2년정도 된 것 같아."
부모 둘은 계속 가족얘기만 한다. 이번에 누구와 누구 결혼한다더라, 사업이 잘 안되어서 요즘 힘들어한다 등등. 궁금해서 서로 근황을 물어본다기보다는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서 말하는 것 같다. 어느 순간 둘이 얘기가 끊기고 먹는 소리만 우리 테이블에 꽉 찼다. 부모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만남에 어색해하고, 난 아침놀 인간이 부친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밥 비벼줄께요"
정적을 깨며 종업원 아주머니가 오셨다. 국물을 빼고 계란을 넣고 주걱으로 휘저으니 볶음밥이 만들어졌다. 마지막 볶음밥까지 먹고 계산은 남자가 했다.
남자가 던힐라이트를 담배를 꺼내서 라이터 불을 붙인다. 이때다 싶어 옆에가서 말했다.
"어이. 나 진짜 기억안나요?"
남자가 놀란듯 담배를 뒤쪽으로 숨긴다.
"저번에 버스에서 봤잖아요. 기억 안나냐고요"
남자는 갸우뚱하며 눈이 동그랗게 되어서 쳐다본다.
"아니. 제가 밤에 그쪽한테 말 시켰잖아요."
남자 눈동자가 오른쪽으로 향하면서 그때야 기억났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 귀가하는 길에 책 물어본 사람이 너구나. 이런 우연이 다있네"
이런 우연이 다 있네라고 말하는데 영혼없는 목소리다.
"기억은 하시네요. 전화번호나 줘봐요"
남자는 내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적어줬다.
"묻고 싶은거 있으니깐 나중에 전화할게요"
이후 엄마는 아빠랑 할얘기있다면서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한다. 되짚어 생각하니 비현실적이다. 내가 찾고 있던 사람이 내 부친이었다니. 이상한 기분. 부친이 저 사람이어서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뭔가 부자연스러운 상황인 듯 하다.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부친의 휴대폰번호를 한번 검색해본다.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때 울었는지. 무슨 내용을 보고 어떤 감정으로 울었는지. 그것만 물어보면 된다. 다음에 기회댈때 연락해보기로 하면서 컴퓨터를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