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재극인에서 벗어나는 순간 발재(發財)하기 시작한다
時 | 日 | 月 | 年 | 대운42 | 건 명 |
편재 | 일간 | 편재 | 식신 | 정인 | 六 神 |
戊 | 甲 | 戊 | 丙 | 癸 | 天 干 |
辰 | 辰 | 戌 | 辰 | 卯 | 地 支 |
편재 | 편재 | 편재 | 편재 | 겁재 | 六 神 |
▶ 사/주/분/석
72 62 52 42 32 22 12 02
丙 乙 甲 癸 壬 辛 庚 己
午 巳 辰 卯 寅 丑 子 亥
이 사주는 갑목(甲木)일간이 주변에 편재(偏財)를 두루고 있으므로 재다신약(財多身弱)한 명조가 됩니다. 종재(從財)가 불가능한 이유는 진중 계수가 3개 모여 암(暗)중에서 수기(水氣)를 분출하므로 인수의 귀를 암암리에 취하기 때문이고 또한 동방목운에 크게 득비(得比)하여 발재한 점으로 미루어 보면 종재(從財)는 아닌 것입니다. 고로 이 사주는 암(暗)중에서 발현이 된 인수를 취하는데 곧 문서이므로 문서를 활용한 사업이 유리합니다. 그런데 주변의 무토(戊土) 편재(偏財)는 부동산이므로 이 사람은 부동산 혹은 건물을 개발하여 임대하는 사람으로 암(暗)중의 문서를 활용하는 사람으로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초년 해자축(亥子丑) 북방수(北方水)에서는 재다(財多)한 토(土) 태왕(太旺)으로 재극인(財剋印)을 당한 즉, 인수가 귀물(鬼物)이 되어 대흉(大凶)한 것이며, 계수(癸水)대운 부터는 무계합거(戊癸合去)로 귀물(鬼物)제거(除去)로 인해 발재(發財)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인묘진(寅卯辰) 동방목운(東方木運)에 크게 성공하고 갑을(甲乙)목 대운에 득비리재(得比理財)를 얻으니 무토(戊土)편재(偏財)의 부(富)를 모두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병오(丙午)대운에 다시 재다신약(財多身弱)한 명조로 회귀(回歸)하였는데 오화(午火)는 갑목의 사지(死地)궁(宮)이므로 신약한 명조가 사지궁에 임하면서 쇠락해졌는데 병자년(丙子年)에 자오충(子午沖)을 당하게 되면 사지궁(死地宮)을 충하는 것이라 신약한 즉, 일신(日身)이 충극(沖剋)으로 크게 쇠락하면 사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
명주가 발재하기 시작한 운이 왜 임인(壬寅) 대운이 아닌 계묘(癸卯) 대운이냐 하는 점입니다.
【답변】
지지에 진토(辰土)가 3개가 되면 진중(辰中)의 계수(癸水)가 모여[이를 회(會)한다고 함]수기(水氣)가 크게 발현이 됩니다. 고로 인수가 암(暗)중으로 강해서 종(從)하지 못하는 겁니다.
만약 종재(從財)라면 동방목운(東方木運)에 파재(破財)해야 하는데 동방목운(東方木運)에 크게 발재(發財)한 것으로 보면 역시 종재(從財)는 아니죠. 그러므로 종(從)하지도 못하는 갑목(甲木)이 해자(亥子)수와 임수(壬水)에 의지하려 하는데 토극수(土克水)로 인수(印綬)를 재극인(財剋印)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어려서 가난하여 고생한 까닭은 태왕한 다토(多土)가 해자(亥子)수를 재극인(財剋印)하는 연유(緣由)이고 임수(壬水)대운에는 토극수(土克水) 당하니 재극인(財剋印)의 상(像)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계수(癸水)대운부터 발재(發財)한 이유는 무계합거(戊癸合去)로 계수(癸水)가 제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근황】
정시봉 전 국회의원입니다. 서울대학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민자당의 제12대 국회의원과 제13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서 먹을 끼니가 없어 굶기를 밥 먹듯 했고, 남의 머슴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계묘(癸卯)대운 초반부터 발재(發財)하여, 시유지 땅을 불하받아 상가를 지어 분양하여 날로 번창했습니다. 동승그릅의 창시자이며 그는 동대문 종합상가, 동화빌딩 등의 부동산계발로 성공한 기업의 주인공입니다. 1988년 현재 재산이 수천억입니다.
병오(丙午)대운/병자(丙子)년 80세 1996년 12월 1일에 사망했습니다.
[출처: 팔자, 윤태현 저]
① 갑목대운[52~56]: 인생 최대의 부동산기회가 찾아오다--목이 희신
② 진토대운[57~61]; 인생 최대의 파산 위기에서 고생하다-토가 기신
③ 을목대운[62~66]: 을목운에 수조원 자산가로 변신하다-목이 희신
④ 병오대운[ 72~81]:병오운, 병자년에 사망하다.
--병화는 길신이고 지지 오화궁은 사지궁이라 흉신이 됩니다.
[종재가 될 수 없는 점입니다]
-주간조선에 나온 기사에는 1970년도[55세] 12월 23일에 동대문종합상가 건립 개관식입니다. 박정희대통령과 영택식 서울시장도 참관했다하니 역사기록은 분명한 것이겠죠. 그러면 동대문 땅을 불하(拂下) 받고 토건(土建)작업 시작한 것은 1970년 이 전인 것이므로, 약 1967년[52세] 정도 될 겁니다. 시정부로부터 땅을 불하받아 건축을 시작한 시기이죠. 그래야 약 4년 정도 후[1970년]에 완공할 수 있겠죠. 이 시기는 갑목대운입니다[52~56]
-시장 설립 초기에는 인근 광장시장과의 경쟁 때문에 점포 분양이 안 돼 고생을 많이 했다"[주간조선 참고]
1970년 55세 개점식을 했으므로 미분양으로 고생한 시기는 "시장설립초기"에 고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점포분양이 안되어 고생한 시기는 진토대운입니다[5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