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저동항. 저동항 왼쪽의 도동항이 여객선 뜨고 내리는 관광객의 항구라면 저동항은 오징어 배 불 밝히는 울릉도 사람의 터전이다. 손민호 기자
울릉도에 관한 흔한 오해 중 하나. 오징어내장탕·홍합밥‧따개비칼국수 같은 전통의 울릉도 별미가 아직도 울릉도 사람의 주식(主食)일 것이란 생각이다.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도동과 저동에 몰린 울릉도 향토식당의 고객 대부분은 사실 관광객이다. 중국집 아들딸이 짜장면을 지겨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울릉도 젊은이가 즐겨 찾는 식당은 사실 중국집이고, 피자집이고, 분식집이다. 울릉도 유일의 패스트푸드점인 도동 ‘롯데리아’의 손님도 대부분이 현지인이다.
현지인이 즐겨 찾는 숨은 맛집을 찾는 것도 울릉도 여행의 묘미라면 묘미다. 이를테면 저동항 인근 ‘고맨디즈’ 같은 식당이다. 호주에서 10년 넘게 요리 경력을 쌓은 전진(42) 셰프와 아내 배누리(38)씨가 2021년 문을 열었다. “한국적이면서도 호주처럼 대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울릉도까지 들어오게 됐단다.
'고맨디즈'의 대표 메뉴 유린기와 치즈온울릉. 치즈온울릉은 지역 특산물 부지깽이와 오징어를 활용한 먹거리 퓨전 피자다. 백종현 기자
“다국적 식당”이라는 부부의 말처럼 음식 종류가 다채롭다. 산동식 마늘 닭요리 ‘산동쇼기’를 비롯해 파스타와 피자, 하몽 샐러드로도 모자라 수육전골·등갈비찜에 나가사키 짬뽕탕까지 낸다. “육지에서는 한 음식만 잘해도 전국에서 손님이 몰려들지만, 섬에서는 신메뉴를 지속해서 개발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부부는 설명했다.
울릉도 사람이 즐겨 찾는 메뉴는 퓨전 피자 ‘치즈온울릉’(3만5000원)과 유린기(3만5000원)다. 피자 이름에 울릉도가 들어간 건 멋을 부려서가 아니다. 오징어먹물로 반죽을 빚고, 울릉도 부지깽이로 페스토를 만들고, 텃밭에서 키운 루콜라가 들어간다. 나물향 머금은 페스토가 피자와 잘 어울린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손님의 80%가량이 현지인인데, 요즘은 육지까지 소문이 퍼져 바다 건너온 손님이 늘고 있단다.
💬 여행정보 : 울릉도 여행법
2018년 12월 울릉도 일주도로 완전 개통으로 울릉도 여행이 빠르고 쉬워졌다. 렌터카를 빌려 마음껏 섬을 누빌 수 있다. 저동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 이상 돌아가야 했던 삼선암이 지금은 10분 거리다. 백종현 기자
울릉도 여행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렌터카 여행, 일주버스 단체 투어, 유람선 투어. 렌터카 여행부터 보자. 2018년 12월 울릉도 일주도로(전체 길이 44.55㎞)가 완전 개통한 뒤 렌터카를 이용한 자유여행이 크게 늘었다. 2012년 울릉도 전체 렌터카는 54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9개 업체에서 렌터카 429대를 운영한다. 렌트카는 언덕길이 많은 울릉도 특성상 SUV차량이 주를 이루는데, 투싼을 기준으로 하루 빌리는데 대략 7~8만원이 든다(성수기 11~14만원).
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약 1시간30분이 걸린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시속 40㎞ 제한속도에 묶여 있다. 단속 카메라는 없지만, 비탈길과 굽이가 많아 과속은 금물이다. 울릉도는 택시 투어도 활발하다. 관광버스보다 코스가 자유롭고, 음주 걱정에서 자유롭다는 게 장점이다. 보통 2시간30분에 7만원, 5시간30분에 18만원을 받는다.
독도의 동도 정상부에 있는 망양대. 울릉도 저동·도동·사동 항구에서 독도 여객선이 뜬다. 백종현 기자
일주버스 투어는 단체여행객이 주로 이용한다. 해안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 A코스(도동~통구미~태하동굴~현포항~추산~나리분지~삼선암~관음도~도동, 약 4시간), 내륙을 중심으로 도는 B코스(도동‧저동~내수전 전망대~봉래폭포~촛대바위~도동‧저동, 약 2시간30분)로 나뉜다. 개인도 예약할 수 있다. 어른 기준 A코스는 3만원, B코스는 2만원이다.
유람선 투어도 종류가 다양하다. 섬 둘레를 돌아보는 일주 유람선(1시간50분), 독도 여객선(왕복 4시간), 죽도 관광 유람선(왕복 2시간) 등이 있다. ‘울릉도 여행의 꽃’ 독도 투어는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여객선이 떠도 독도에 상륙하지 못하고 독도 주위만 선회하다 돌아오는 경우도 꽤 된다. 독도 여객선 운임 어른 기준 6만원 선.
현재 울릉공항 건설이 한창이다. 울릉읍 사동 앞바다를 매립해 활주로를 까는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인데, 2026년 개항이 목표다. 2년 뒤엔 육지에서 1시간이면 울릉도에 닿는 하늘길이 열리는 셈이다.
⑦ 울릉도 사람이 줄 서는 초밥집 -이사부초밥
'이사부초밥'의 장덕수(42) 셰프. 서울 특급호텔 일식 레스토랑 출신의 베테랑으로 2019년 울릉도에 가게를 열었다. 스시 요리 위 태극기가 눈에 띈다. 백종현 기자
울릉도에도 초밥집이 있다. ‘이사부초밥’이라는 이름의 아담한 초밥집이다. 동네 초밥집이라고 얕봤다간 큰코다친다. 서울 파르나스 호텔의 일식 레스토랑 ‘하코네’ 출신의 장덕수(42) 셰프가 차린 초밥집이어서다. 2019년 문을 연 이사부초밥은 현재 “울릉군청 직원들과 젊은 현지인 사이에서 가장 예약 경쟁이 치열한 식당”으로 통한다.
'이사부초밥'의 모둠회와 스폐셜 초밥, 그리고 울릉도 특산물을 활용한 광어대황무침. 백종현 기자
모둠회(대 6만5000원)와 스페셜초밥(12개, 1만8000원)을 주문했다. 울릉도 피문어를 올린 초밥과 갓 잡은 띠볼락 회를 비롯해 대왕한치, 참치 뱃살, 소고기 초밥 등 스시 요리가 올라왔다. 장덕수 대표는 “울릉도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이 다양하지 않아 육지에서 건너온 해산물을 쓰기도 한다”면서 “문어‧무늬오징어‧메바리(도화볼락)‧부시리‧대방어 같은 재료는 최대한 울릉도 자연산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사부초밥’은 자리가 15석이 안 된다. 예약 손님으로 늘 금세 찬다. 준비한 재료가 소진돼 일찍 문 닫는 날도 많다. 점심에 한정해 판매하는 초밥 도시락(1만5000원)은 여행자에게도 인기다. 가게 이름은 우산국(울릉도의 옛 이름)을 정벌해 우리 땅으로 만든 신라 장군 이사부에게서 따왔단다. 일식당답지 않게 한국 술만 취급하는 것도 특징. 모둠회를 시키면 음식 한가운데 태극기 소품을 꽂아준다.
⑧ 울릉도스러운 한 끼 –홍합밥과 따개비칼국수
울릉도 홍합밥의 명가 '보배식당'에서 맛본 홍합밥. 향긋하고 고소한 맛이 난다. 손민호 기자
독도새우가 울릉도 바다의 귀족이라면 홍합과 따개비는 서민이다. 울릉도에서 홍합과 따개비가 들어간 음식을 먹자고 하면 대번 “돈 내고 굳이?”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 너무 흔해서였다. 요즘은 예전처럼 많이 잡히지 않는다지만, 울릉도다운 한 끼를 먹어야 한다면 홍합과 따개비는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강원도 산간지역에서 곤드레 같은 나물을 넣고 밥을 짓듯이, 울릉도에서는 홍합을 넣어 밥을 지었다. 그만큼 홍합이 흔했다. 요즘은 아니다. 가장 아쉬운 건 홍합이 작아졌다. 20년 전 어른 손바닥만 한 울릉도 홍합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한데, 지금은 육지 홍합과 별 차이가 없다. 홍합밥은 양념간장에 비벼 먹는다. 밥이 향긋하면서 달다. 도동 ‘보배식당’이 집에서 해먹던 홍합밥을 내다 팔기 시작한 원조집으로 통한다. 밥을 안치는 데 시간이 걸려 꼭 예약해야 한다. 1만8000원.
울릉도에서 맛본 따개비칼국수. 시커먼 국물이 눅진하다. 손민호 기자
제주도에 오분자기(떡조개)가 있다면 울릉도에는 따개비가 있다. 다행히 따개비는 아직도 흔하다. 갯바위에 나가면 쉬이 볼 수 있다. 푹 끓일수록 따개비는 담백한 향과 맛이 우러난다. 밥에도 넣고 죽에도 넣는데, 역시 으뜸은 칼국수다. 시커멓고 눅진한 국물이 보약처럼 든든하다. 요즘은 보통 한 그릇에 1만5000원을 받는다.
💬 반짝 TIP : 울릉도 식당은 1인분을 안 판다고?
울릉도 식당 메뉴판에 '1인 식사 가능’ 스티커를 붙이는 장면. 사진 울릉군
울릉도에서 ‘혼밥’이 될까. 울릉도 자유여행을 계획한다면 으레 드는 걱정이다. 2023년 여름 한 유튜버와 방송사에서 울릉도 식당문화를 꼬집는 방송을 내면서 1인 식사가 어렵다는 논란이 커졌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울릉도는 입도객의 50% 이상이 단체여행객이다. 4∼6월 초순, 9월 중순∼10월 중순 같은 성수기에는 단체여행객 비중이 70%까지 치솟는다. 관광객이 몰리는 도동과 저동에 단체 손님에 특화한 식당이 모여 있다. 이 중에는 1인 손님을 꺼리는 식당도 있고, 2인분 이상만 주문을 받는 식당도 있다.
2024년 4월 초순 울릉도에서 나흘간 머물며 여남은 개 식당을 가 봤는데, 혼밥을 거부한 식당은 한 곳도 없었다. 울릉군청 관계자는 “단체 손님만 받는 일부 식당의 사례가 와전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단체관광객 전문 식당도 손님이 몰리는 입항‧출항 시간대를 피하면 대체로 혼밥이 가능하다고 한다. “혼밥이 안 되면 울릉도 인구 9000명이 끼니마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다녀야 한다는 건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인 울릉도 사람도 있었다.
2023년 여름 혼밥 논란이 커지자 울릉군청과 상인회가 식당을 현장 조사하고, 이른바 ‘친절 코칭’에 들어갔다. 울릉도 식당 메뉴판에 ‘1인 식사 가능’ 스티커를 부착해 혼밥 메뉴를 찾는 여행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으니 참고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