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세워진 '해운대 엘레지' 노래비. 가사 '흐르고'와 '있게나'는 잘못돼 '기울고'와 '있거라'로 고쳐야 한다. 이진우 인턴기자
대한민국 8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해운대에 관한 노래가 28곡에 이른다. 1936년 일제 강점기 포리돌레코드에서 낸 편월 작사·형석기 작곡의 '조선 팔경가'가 해운대를 주제로 한 노래의 효시다. 선우일선이 부른 이 노래의 끝 부분에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해라'는 가사가 나온다.
1958년 손인호가 부른 '해운대 엘레지'(한산도 작사·백영호 작곡)는 해운대와 관련된 노래 가운데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노래다. 가사 한 대목를 음미해 보면 '울던 물새도 어디로 가고 조각달도 기울고 바다마저도 잠이 들었나 밤이 깊은 해운대 나도 가련다 떠나 가련다 아픈 마음 안고서 정든 백사장 정든 동백섬 안녕히 잘 있거라'로 이별의 애절함이 담겨 있다. '해운대 엘레지' 노래비가 2000년 해운대해수욕장에 세워졌다. 그러나 노래비의 가사 두 곳이 잘못됐다. 노래비의 조각달도 '흐르고'는 '기울고'로, 안녕히 잘 '있게나'는 '있거라'로 바로잡아야 한다. 이 노래를 부른 손인호 선생에게 물어본 결과 노래비 가사가 잘못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가수 이미자 현철 조용필이 해운대에 관한 노래를 부르며 부산과 인연을 맺었다. 이미자가 1968년 '비내리는 동백섬'을 불렀고, 현철이 1971년 '태현철'이라는 이름으로 '추억의 해운대'를 노래했다. 이후 이름을 태현철에서 현철로 바꿨다. 조용필은 1972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다. 이 노래의 원곡은 1970년 김해일이 부른 '돌아와요 충무항에'이며 작곡가 황선우가 개사해 조용필이 재취입한 노래다. 조용필이 처음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를 당시 가사는 '꽃피는 동백섬에~그리운 내 님아'였다. 1975년 남북의 냉전 기류로 고향을 찾지 못하던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고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가사가 '그리운 내 형제여'로 바뀌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국민 가요로 떠오른 셈이다.
1970년 '해운대 연가'와 '해운대야 말해다오'를 작곡한 김종유 씨는 1933년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서 태어난 부산 출신이다. 2008년 작고할 때까지 부산의 원로 악단인 '늘푸른악단'의 악단장을 맡으며 한평생 가요를 친구처럼 지내며 살았다. 대중음악연구가
※네이버 카페 '옛날가요 보존회'(//cafe.naver.com/chonguk49)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 가사와 제목에 해운대가 들어간 노래
1936년 선우일선 조선팔경가
1958년 손인호 해운대 엘레지
1962년 후랑크백 한 많은 해운대
1963년 남정일(남국인) 해운대 소야곡
1964년 김태수 저무는 해운대
1967년 윤성아 동백섬 옛 노래
1967년 태일 추억의 동백섬
1968년 이미자 비내리는 동백섬
1968년 문주란 찾아온 해운대
1970년 신진아 해운대 연가
1970년 신가야 해운대야 말해다오
1970년 선우영아 해운대의 밤
1971년 태현철(지금의 현철) 추억의 해운대
1971년 김일하 해운대
1972년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원곡:1970년 김성술 작사, 황선우 작곡 '돌아와요 충무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