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떨어지는 동거란?
남자 구미호와 21세기 여대생이 사랑에 빠진다! 한마디로, "전설의 고향, 로코버전"
여기, 고고하게 999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견뎌온 한 수컷 구미호가 있다. 그는 인간이 되려는 목적 아래 큰 굴곡 없이 하루하루를 몇 세기에 걸쳐 살아왔는데.. 목표를 코앞에 두고 그만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휘말린다. 바로, 999년간 인간의 정기를 모아 온 구슬을 웬 인간이 우연히! 실수로! 삼켜버린 것. 그리하여, 고려 현종 13년생 남자 구미호 신우여와 1999년생, 요즘 것들의 표본인 21세기 여대생 이담은 전례 없었던 동거를 시작하는데... 구미호와 인간의 로맨스, 조상님과 후
손의 로맨스, 갓 나온 달걀찜처럼 몽글몽글 뜨끈뜨끈 뜨거워서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본의 아니게 999년을 기다려버린 그런 로맨스가 펼쳐진다. 그리고, 또 하나. 인간의 정기를 탐하는 것이 본디 구미호의 습성이고 그것은 인간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목숨이 달린 문제니. 때로는 인간이 짐승보다 더 사악한 세상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구미호. 그 험난한 여정 속에, 신묘하고도 미스터리한 사건이 일어나 버리는데... 얼떨결에 구미호와 한 집 살림! '간 떨어지는 동거'가 시작됩니다.
간 떨어지는 동거연출남성우출연장기용, 혜리, 강한나, 김도완, 배인혁, 박경혜, 최우성, 김도연방송2021, tvN.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꽤 이것저것 너무 남발하는게 아닌가 싶을 생각이 들 정도의 시대이다. 나는 웹툰을 안보기 때문에 사전 정보 취합 때는 대강 시놉시스, 설정값 정도만 알고 가는 편이다. 그런데 <간 떨어지는 동거>는 내가 진짜 하나도 모르고 보게 된 작품이었다. 처음부터 웹툰연출과 구미호의 등장까지. 가벼워 보였다. 제작발표회를 보
고 '생각보다 가벼운 작품인가보네. 코미디 로맨스 (줄여서 코.로)라고 부르는 것에서 느껴지는 머리 안쓰는 작품인가~ 서사도 간단하겠군.' 이렇게 생각한 내 자신을 조금은 반성했다. (가볍게 보는 걸 사실 추천한다.) <간 떨어지는 동거>는 코미디 로맨스가 우선적으로 나오지만 생각보다 멜로 부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오후 10시 30분에 시작하는 드라마라 끝나면 딱 새벽감성을 즐기기 좋은 시간인데 그 시간들을 잘 건드릴 수 있도록 엔딩을 꽤 감성적으로 잘 뽑아냈다.
1화 초반부터 우여에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무의미했다고. 진심인 나날들이 없었다는 걸 나레이션을 등장으로 그 기반을 다진다.
우연히 명치를 쳐 구슬을 삼켜버린 이담 때문에 만나게 됐고 그와 만나며 서로의 아픔을 이겨내보자며 위로하는 과정의 적절한 고구마가 멜로감정의 사이다로 풀어버리는 그런 과정이 흥미로웠다.
그러면서 4화의 대사가 등장하게 되는데...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구절을 인용하여 낭독하는데 가슴이 '쿵' 내려앉는 그 기분.
「사랑에는 언제나 약간의 망상이 담겨있다. 」
사랑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궁금한 사랑의 감정을 사랑이라는 걸 겪게 되고 아픔만 남았던 여우가 말해준다는게 흥미롭고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5화의 데칼코마니 나레이션.
특별하지 않다.
ㅡ
특별할거 없다.
ㅡ
나도. 나에게도 담이씨가 특별해요.
5화의 감정선은 이담이 가지고 있던 우여에 대한 마음을 솔직하게 내뱉게 된다. 그리고 그 대답에 우여가 응답하는 회차였는데, 특별하다고까지 말한건 진심이었다. 하지만 이 만남을 계속한다면 나 자신만 생각했다가 이담이 위험하다고 이미 경험으로 느꼈다. 특별한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널 보내주겠다며 구슬을 빼내야만 하는 우여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그러나 구슬을 빼면 기억이 지워져야하는데 담이 엄마를 등장시켜 미리 도술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기억이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 라는 설정을 미리 잘 깔아놓았기에 시청자로써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이라 본의아니게 훌륭했다고 박수쳤다. 그리고 그 담이 엄마 등장씬은 주변인물, 가장 가까운 인물에게 이담의 위치, 그리고 그녀가 받는 신뢰도가 충분하게 드러난 장면이라서 좋았다.
7~8화에 간동거에 진심이 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7화에는 행복한 시간들을 보낸 후 구슬을 뺀 후 이어지는 8화의 여우담의 감정선. 특히 8화에서 내가 감히.라는 나레이션이 들어간 엔딩 시퀀스의 나레이션은 임팩트가 깊게 남았다.사실 감히라는 말은 감히 네가 이럴 수 있겠느냐, 함부로 대하지 말아라. 금수밖에 되지 않는 신우여가 이 어린 인간 아이를 주제넘게 '좋아한다'라는 자각을 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매우매우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가 무엇일까 고민했지만 '감히'라는 단어는 그에 너무 찰떡같이 잘 들어맞았고 '신우여'라는 캐릭터 서사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하나의 단어이지 않았을까.
자각 이후 고백 나레이션은 많은 간동거팬들에게 회자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9화 나레이션 모두가 좋으니 글이 너무 길어질거 같으니 내 블로그의 나레이션 글을 봐달라.) 9~10화의 감정선이 좋긴하다. 서로 이제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고 나서의 과정이기도 하고. 붉은 실이 나오자마자 이것도 빨간색이야? 를 외쳤는데 아직 운명에 거역할 수 없다는 뜻 같기도 하고. 그런데 참 웃기다, 붉은 실은 후반부의 맥락에서 딱히 위기감을 조성하지 않는다. 후반 회차들에서 다소 위기감 없이 진행되는 과정을 거치며 인간적인 모습으로 발돋움하는 신우여를 보고 있자면 그냥 웃음이 난다. 오히려 붉은 실은 메인커플의 운명으로 엮어주는 좋은 설정이 됐다.(최종화 엔딩장면에 신우여와 이담이 붉은실로 엮인다.)
11~12화는 전체적으로 신우여가 인간이 될 이유를 부여해줄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에 필요한 회차였다. 서로 여우담이 원앤온리 꽁냥꽁냥거리면서 '너의 평범한 미래이고 싶어졌다.' 라고 하며 신우여는 누구보다 인간을 꿈꿨다. 그러면서도 이담과 계선우를 이은 붉은실의 주인이 본인이였음 하면서 칭칭 손으로 감고 다닐 정도로 운명에 기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금수로 태어난 운명을 거르스지 못했다는 것이 흠이었다. 본능을 참지 못해 정기를 위해 교수님을 이용했던 일화를 원작에서 차용해서 갈등을 조장했다. 솔직히 교수이용할 때까진 약하다고 생각했다. 에이 뭐 교수쯤이야..... 그런데 12화 엔딩의 이담대사가 뇌리에 박히는거
다. "날 대신해 다른 사람을 위험하게 했다." "나한테 이 연애는 모든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사는 이담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드라마 시작 지점의 서사부터 모든 것에 들어맞는 말이었다. "신우여가 구미호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슬을 품어버렸네, 동거? 동거는 안되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있어야겠네. 와 단이랑 도재가 어르신을 알아버렸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서야지."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는거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견뎌가며 했던 담이의 사랑이었는데. 이를 신우여가 져버린 것이다.
13~14화는 담이를 위한 회차같았다. 왜 신우여가 이담이여야만 했는지 되돌아보기에 적절한 회차이기도 했다. 이담은 정말 사랑스럽게도 놀랍다.(?) 13화에 붉은 실을 억지로 끊어 산신을 만나 어떻게 인간이 되는 지 듣고 결국 딜까지 해버리고 거기에 다시 동거를 요청하는 당찬 99년생이었던 것이다.... 14화는 이제 우여가 인간의 삶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담이가 조력자의 역할로 든든히 곁에 있어줬다는 거. 심지어 담이는 본인이 먼저 곤란한 상황을 겪자 오히려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본보기가 됐다. (물론 15화에서 예쁜 말 하는 일은 못지켰다....) 14화 엔딩....은 직접 보길 권장... 15화도 여전히 꽁냥꽁냥 풀충전이다. 꼭 보길 권장.... 그리고 인간의 삶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우여를 보고 있자니 괜시리 웃음이 난다. 인간성이 이젠 절로 넘친다. 고백씬도 너무 산뜻하고 예쁘게 나왔다.
담아
난 이 세상에서 내가 소리 없이 사라져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너 때문에 살고 싶어졌고
누군가 함께 있는 게 불편했는데
네가 옆에 있는 게 좋고 너 다친 거 보면 화가 났고
이렇게 취한 너를 데리러 가는 것도 전혀 귀찮지 않고
그래 이게 나한텐 사랑한다는 말이야
그의 고백은 담백하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서 더 진하게 다가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소멸'이라니................................. 이럴 수가. 15화 엔딩에서 소멸의 징조가 나타나게 되는데 솔직히 소멸을 잊고 있었다가 갑자기 맞닥들이니까 누가 뒤통수를 후려갈긴 기분이었다. 마지막 소멸 에피소드에서 가장 중요한건 오히려 산신의 나레이션이었다.
천년, 즉 꼬리가 9개를 넘기기전에 인내를 알고 사랑을 알고 희생을 알아 마침내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된다면 너의 생을 간절히 원하는 이가 기다리고 있다면 금수가 인간이 되리라.
인간이 되는 조건에서도 편지부분에서도 그렇고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도 필요로 하니까'라는 맥락을 온전히 부여해줬다. 이담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그러면서 인간이 되자마자 바로 로맨틱 코미디를 챙겨가는 센스까지 더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푸른 조명들 사이에 붉은 실로 엮이고 집에 가자며 말하는 대사는 그래, 딱 <간떨어지는동거>의 진수가 느껴져서 좋았다. <간떨어지는동거>는 인간만이 선택하는 운명이라는 주제에 대해 로맨틱 코미디로써 다뤄본 작품이었다.
운명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운명의 길로 나아간다.
선택에 책임과 시련이 따른다. 하지만 나아간다.
인간은 본디 그런 존재로 태어나 그렇게 죽는다.
이게 뭐라고. 우린 인간이기에 이걸 갖고 태어나니까 별거 아니라고 느껴진다. 우여와 혜선에겐 이것만큼 원하는 것이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데 사람들처럼 살 수가 없다는 고통을 <간 떨어지는 동거>에선 잘 보여줬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인고해 결국 이뤄내는 이야기를 16부작 한 가득 담아 보여줬다. 우연이 운명으로, 운명이라 느끼며 '사랑'하고 '사람'이 되면서 운명을 만끽하는 신우여의 서사. 흥미롭고 즐거웠다.
<간 떨어지는 동거>는 보는 사람에 따라 조절이 가능한 작품이다. 가볍게 보고 싶으면 가볍게 볼 수 있고, 무겁게 보고 싶으면 무겁게 보는 것이 가능하다. 무겁게 보고 싶은 사람들은 연출, 작가의 대사의 데칼코마니를 곱씹어가며 돌려보는 걸 추천한다. 그 외에도 빨강-파랑의 조명대비, 풍경의 의미 등등 다양한 숨을 거리들을 제공한다. 또한 캐릭터들의 서사가 전부 개연성있게 부여되어 메인/서브커플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치가 있으니 되려 복습할 때 더 수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볍게 보고 싶은 사람들은 그냥 쭈욱 무난하게 보면 된다. 웃기고 재밌는 건 이 작품이 알아서 다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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