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궁정 알현
서울에 도착한 직후 왕을 알현했다. 궁정 알현은 분명 중대한 사건은 아니지만, 유럽인들에게는 그것이 최초의 사건 중 하나인 땅에서는 굉장한 사건이 된다. 그래서 적어도, 동정심 많은 내 가속들에게는 관심거리였다.
나의 일상적인 일을 돌봐주는 관리들은 시간이 되면 그들 각각에게 무엇이 닥칠지 예언적인 미래를 보았고, 하인들에게는 그들의 왕을 바라볼 운명인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광이라는 표정이었다. 그 결과, 나는 마치 사교계에 처음 나가기 위해 옷을 입고 첫 무도회로 떠날 중요한 순간을 기다리는 여성 같았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갑자기 거의 경건한 존경의 대상이 된 사람으로서 나를 올려다보고, 살피고, 감탄하고, 급기야 진심으로 우러러보았다. 그들의 소박한 황홀경은 본능적으로 사랑스런 가족구성원, 심지어 나이든 의녀까지 모두를 특별히 소환하여, 그녀의 예전 애인이 소녀 시절의 번데기에서 한 시간 후에 화려한 색깔의 나비가 되는 것을 보게 했다.
출발할 순간이 다가와서, 나는 마당으로 내려갔다. 내 가마가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내 가족은 계단위에 모여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시선을 느끼며 가마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가마꾼들은 나를 땅에서 들어 올렸고, 우러러보는 듯한 시선을 뒤로 하고 대문을 통해 거리로 나갔다.
궁전의 바깥문까지 거리는 1/4마일도 넘지 않았다. 바로 궁 밖에 가마가 내려졌다. 나는 기어 나왔다. 내가 나오자, 궐문 양 옆에 서 있는 보초가 보였고, 그 문 쪽으로 가자, 한 관리가 안 쪽에서 나와 나를 마중했고 바깥 정원의 너른 땅을 가로질러 호위하는 역할을 했다. 이 정원은 수 에이커 되어 보였으며, 그 한가운데에는 많은 작은 돌덩어리로 만들어진 넓은 포장길이 나 있었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걸었다. 광장주변에는 그 너머의 다른 뜰로 출입할 수 있는 문을 제외하고 벽돌을 쌓아 만든 높은 담이 있었다. 한 무리의 군인이 모여 있는 가운데, 우리는 이 문들 중 멀리 있는 문을 통과했다. 군인들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정렬하지도 않고, 비번인 것처럼 제 각각으로 모여 있어, 행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그들의 임무인 듯싶을 정도였다. 그들은 모두 비무장 상태였고, 장교도 없었다. 줄 사이를, 아니 분대 사이를 지나, 우리는 또 다른 궁정으로 들어갔는데, 그 끝에는 안에는 관리들과 바깥에는 하인들로 가득 찬 건물이 서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관리 몇 명이 계단을 내려왔는데, 나는 그 중에서 내 친구들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모두 관복을 입고 있었다. 이 의상은 특이하지만 어떤 그림 같은 아름다움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우선, 모자는 앞쪽이 계단식이고 등근 원뿔 모양으로 정교하게 짠 비단으로 된 형태다. 양쪽은 돌출된 날개는 마치 거대한 귀처럼 왕관을 쓰면 꼭 맞을 것 같으며, 이 날개는 직각으로 돌출되어 있다. 그것들은 왕의 명령을 즉각적으로 받드는 것을 상징하는 부착물이라고 한다. 옷은 긴 비단 통옷으로 되어 있었는데, 엷은 분홍색 또는 고르게 옅은 파란색으로 되어 있었고, 발목까지 닿았고, 오른쪽가슴 위에 나비 모양으로 묶였다.
그 밖에는 직사각형의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몸체의 옆면과 가장 짧은 지름에 맞으며, 앞뒤로 수인치 정도씩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비단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가슴 바로 아래 통옷에 봉합된 것은 금실로 수놓아진 가슴받이이며, 이는 두 마리의 학이 나는 모습을 나타내며, 한 마리는 뒤집어져 서로 맞닿는다. 하위 관리들에게는 한 마리만 허용된다.
용이 중국의 상징인 것처럼 학은 일종의 조선의 공식 상징이다. 목둘레에는 통 옷이 타원형으로 잘려져 있고, 이것을 안에 꿰매어 넣었는데, 하얀 무명 깃이 달려 있다. 그들은 보통 낮은 신발 대신 높은 장화를 신었는데, 그 위쪽은 통옷으로 인해 안 보인다. 이런 복장은 악천후를 암시하는 다소 괴상한 외양이다. 궁정의 길들을 지켜본 후에야 비로소, 우리가 보기에 이렇게 일의 자연적 질서가 뒤바뀐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돌계단을 오르자 나를 환영하기 위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서, 나를 접견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여러 궁정 고위 인사들 중 미국공사가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악수를 하고 내가 처음 보는 일행들에게 소개되자마자, 탁자 위에 간식이 제공되었고, 탁자는 결코 크지는 않지만, 방을 거의 가득 채웠다. 의자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외국산으로 외국에서 왕께 바치는 선물이었다. 탁자와 의자를 사용하는 옆 나라 중국과 달리, 타타르 혈통의 가장 강한특성 중 하나로 타타르 혈통은 그것들을 사용하기를 오래 동안 꺼려왔다.
아직 공급이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오직 왕과 외무부만이 가지고 있다. 그것과 관련된 문제에서도 의자가 휴대용 장신구의 일부가 되어 필요한 경우 이곳저곳 옮겨 다니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가끔 그 가구들은 확실히 개인적으로 친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일행들 중에는 시종장이 앉아 있었다. 그는 관직 이 자주 바뀌는 것으로 유명한 게 아니라, 왕비의 친척 관료로 유명한 나라에서 그는 최초의 공식적인 강도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바라바스 민은 딱딱하고 교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동족을 등쳐먹는 것인 일인 사람들이 겪는 운명에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그는 또한 그의 관계로도 유명했다. 사실, 그는 이 중 가장 중요한 것, 즉 왕비의 아저씨뻘인 덕에 자신의 지위를 얻었고 유망한 사업도 챙겼다. 하지만 왕비의 친척 관료들 중 다른 한 명은 나의 감탄을 자아냈는데, 이는 명백하게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그의 조카의 아버지였다. 실제로 그는 궁중의 총애를 받는 젊은이의 양아버지다. 그런데 다들 보통 말투로 입양 부분을 생략하고, 숨도 쉬지 않고 바로 젊은 민씨 아버지라고 알려 줬고, 젊은 민씨 아버지는 죽었다고 말하고, 더하길, 이 사람은 죽은 동생과 매우 다르다고 말하였다. 아주 잠시 후, 나는 그 연관성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는데, 조선에서는 아무 것도 급하게 하는 일이 없다. 잠시 후, 마침내 왕이 있는 곳으로 나를 불러들이기 위한 전령이 도착했다. 우린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줄지어 계단을 내려가 안 쪽 정원으로 들어섰다. 홍영식, 미국공사, 나 이렇게 세 명이었다.
이 순서에 따라 우리는 엄숙한 행렬로 한 궁정을 가로질러 두세 개의 문을 지나 다른 열린 공간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홍씨의 긴 보폭의 궁정 행보, 즉 옛 비극인들의 무대 걸음걸이인 공식적인 의식 걸음걸이는 우리 걸음에 어떤 연극적 인상을 주었다. 그는 연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 효과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의 걸음은 조선인들에게는 상당히 다른 것을 연상시켰을 것이다. 그의 긴 보폭은 걸을 때 학의 위풍당당한 행군과 같이 리듬감 있는 동작을 주었다.
학은 다른 조류들과 비교했을 때, 존재감이 있다고 여겨져, 조선인이나 중국인 모두가 크게 감탄한다. 나는 그의 가식적인 태도를 충분히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일렬종대로 걷는 것이 가장 안심되는 제식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거리낌이 없이 고백하건대, 최선을 다 했지만 내가 허무하게 흉내 내려고 했던 품위도 없었고, 편안하지도 않았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걷는 것이 가장 어려운 성취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나는 적어도 품위에 관한한 힌두교 철학자의 격언을 정신적으로 지지했다. 서 있는 것보다는 앉는 것이 낫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에 긴 장화가 관복의 일부분이 되고, 다른 곳에서는 보편적으로 낮은 신발을 신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땅의 특징을 잘 모를 수가 없었다. 포장이 안 된 곳마다 진흙투성이였다. 다른 사람의 처신에는 미안하지만, 때로는 앞사람의 발자국을 디디며 걷는 것이 상책이다. 그 진흙은 수수께끼처럼 보였던 것을 풀었다. 그것이 신발의 명백한 독단주의의 진정한 원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리에는 충분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었다. 궁궐 안에서는 관리들이 모두 걸어서 가야 하는 반면, 궁궐 밖에서는 항상 가마를 타고 다닌다. 궁궐에서만 장화가 필요했고, 다른 때에는 사치스러운 신이 필요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정원의 시련을 무사히 통과했을 때, 우리는 맞은편 끝에 있는 계단 한 칸에 다다랐고, 왕이 우리를 훑어보고 있던 열린 정자로 이어졌다. 이 한가운데 융단이 깔려 있었는데, 우리 장화는 진흙투성이여서 대신 돌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으며 그것을 피해갔다. 이렇게 위험한 방법으로 우리는 왕이 앉아있는 높은 곳에 올랐다. 앞이 완전히 열려 있다는 것만 빼면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였다. 탁자가 앞에 있고, 여러 관리들이 양 옆에 뒤쪽으로 중앙에는 왕이 앉아 있었다.
우리가 계단 꼭대기에 오르자마자 홍씨는 거의 엎드렸다. 왕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선의 절이다. 우리는 교대로 앞으로 나가 세 번 절을 하고, 탁자 먼 편으로 안내되었다. 그에 대한 응대로 왕이 일어섰다. 그는 약 30세의 남자였다. 그는 조선 사람의 평균 키를 넘기보다는 오히려 이하였다. 신발 없이 키가 5피트 7인치 정도 되어 보였다. 신을 신으면 1인치 더 크다.
왕은 일반적 인 궁중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세부 사항만 달랐다. 그의 모자는 관리들의 모자와 다소 비슷했지만, 검은색 대신 매우 짙은 파란색 이었다. 날개가 달려있기도 했지만, 마치 접힌 것처럼 바로 뒤에 묶였다.
외양은 그들의 관리들 관복과 비슷하고, 앞을 끈으로 여민 그의 통옷은 조선에서 왕의 색인 밝은 빨간색이었다. 허리띠는 고급스러워 보였으나 모양은 비슷했고, 학 대신 용을 수놓았다. 그는 장화 대신 보통 신발을 신었다.
이것은 진흙에 대한 일종의 나의 이론과 들어맞았다. 그는 혼자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당신이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그런 얼굴들 중 하나였다. 그를 알게 된 후에 나는 그의 얼굴이 그의 성격의 진정한 거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그의 미소는 귀여웠다. 그가 내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서 있자니, 그가 말로도 그렇지만 나를 보고 기뻐한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알현에는 대화가 많지 않았다. 사실은 그 자체로 최고의 대우다. 오래 걸린 준비가 그러하듯이, 알현은 빠르게 지나갔다. 안 그러려면, 일을 어느 정도 더디게 하는 수밖에 없다. 몇 마디 말로 알현은 끝났다.
그리고 퇴정하기 시작했다. 접근방식과 정확히 유사하게 모든 것을 거꾸로 수행해야 했다. 왕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우아하게 뒤로 물러났고, 신비로운 세 번의 목례를 함과 동시에 계단 꼭대기에 도착했다. 그 사이 홍씨는 입장할 때처럼 몸을 엎드렸다. 계단에서 우리는 다시 줄을 서서 우리가 왔던 순서대로 줄지어 내려갔다. 그리고 우리의 초근엄한 행렬이 뜰을 가로질러 행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최대한 인상 깊게 걸어야 했다. 비록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많은 여자의 눈이 집의 창호지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인정전의 관리들과 군인들 몇 명이 우리를 쳐다볼 뿐이었지만, 사실은 창호 뒤에 모여 있는 열성적인 미인들의 집단이 우리를 훑어보고 있었다. 잔인한 관습 때문에 그들은 그 의식을 더 이상 공개적으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여성의 호기심을 이기는 것은 없다. 이 점에서 그들의 성에 대한 보편적인 유산에 더해, 불만족스러운 과거부터 전해 내려온 오랜 억눌림이 누적된 세월을 기억한다면, 불투명한 창호지가 그들의 독창성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더라면, 보기 편하게 섬세한 손가락들이 창호지를 뚫은 구멍들에 대해 우리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 총알 세례 속에, 다시 한 번 정겨운 연회용 정자의 가림막에 다다를 때까지 광장을 가로 질러 퇴정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무자비한 조사로부터 질서정연하게 탈출하는데 열중했다. 정자 안으로 들어가서야 우리는 곧 보다 확실한 은둔의 기쁨 속에서 눈 화살의 불편함을 잊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임시휴전 일 뿐, 의식을 위한 전투 사이의 휴전은 반밖에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왕세자 알현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에 통옷을 입고 터벅터벅 걸어 다니던 어색함에 더해, 끔찍하게 추웠고, 내 근육은 평상시보다 훨씬 더 다루기 힘들어질 것 같았다. 너무 독해서, 감기 증세가 두려웠던 미국공사가 이 새로운 시련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나와 홍 단 둘이서 동행했다.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갔다. 우리는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돌아섰지만, 그것만 빼면 정확히 30분 전의 경험을 반복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한 줄로 늘어서는 것이 세 사람보다 훨씬 덜 어색하다. 같은 수의 뜰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관습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겨울날에 통옷을 두텁게 입지도 않은 채 엄숙한 행렬로 진흙을 헤쳐 나가서 열성적인 조사를 받는 것이 나의 평범한 취미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왕세자가 우리를 맞이했는데, 아버지가 했던 방식을 따라, 자신의 정자에서 예를 차렸다. 그는 열 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은둔과 그의 지위에 걸맞은 강요된 품위는 그에게 나이를 뛰어넘는 외양을 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버지의 아름다움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젊음을 알지 못하고,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것은 불공평할지도 모른다. 아직 그게 뭔지 모르는 얼굴이다. 안색은 특이하게 무색했지만, 그 중 상당부분, 그러니까 그 표시가 된 것은 극동의 흔한 관습인 분필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양인치고는 눈이 매우 가늘어 잠이 덜 깬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의 옷은 아버지의 것과 매우 흡사했다. 그는 같은 종류의 모자, 같은 종류의 통옷, 비슷한 허리띠, 그리고 가슴장식을 달았고 그의 발은 비슷하게 낮은 신발에 싸여 있었다. 통옷의 색깔 자체에서만 뚜렷한 차이가 있어, 왕의 그것보다 더 밝은 색이었다. 그의 얼굴표정을 보니 다람쥐 쳇바퀴 같은 그의 삶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키 큰 두 관리들 사이에 서 있었는데, 관리들은 허리를 굽혀 그가 말하기 전에 할 말을 상기시켰다. 그는 그들의 속삭임에 동상처럼 수동적으로 귀를 기울다가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가르친 말을 되뇌었다. 대답을 듣고서야 그는 다시 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는 위엄과 무력함이 뒤섞인 모습을 보였다. 그 시련은 그에게 다소 무리였다.
그는 다음 경우에서처럼 항상 조용하지는 않았다. 그가 나를 접견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뒤 쪽 창문이면 그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한 그곳에서 내 사진기를 훔쳐보고 있는 것을 알고 내가 올려다보았는데, 그는 병풍 문을 섬광처럼 닫아버렸다. 이 사건에서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처신했고, 접견이 무사히 끝났을 때 틀림없이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내가 퇴정하는 길에 뜰을 횡단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다시 기다림의 안식처로 가서 차를 더 마셨다. 이것으로 절차가 끝났다. 우리는 자욱한 담배 연기에 덮인 채 출발했고, 거대한 외곽 정원을 한 번 더 걸어 내려가 가마에 들어갔고, 집으로 실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