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04월21일(일요일) 연천군 [재인폭포&성산&동막계곡&연천풍혈&고인돌공원&임장서원&연천차탄리고인돌&연천향교] 탐방일정
06:00~08:10 구산역에서 6호선을 타고 동묘앞역으로 가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전곡역으로 이동 [2시간10분 소요]
08:10~08:17 전곡역에서 농협사거리 정류장까지 도보로 이동 [7분, 380m 이동]
08:17~08:40 농협사거리 정류장에서 재인폭포 정류장으로 가는 70-3(주말) 버스 승차 대기
08:40~09:14 70-3(주말) 버스를 타고 농협사거리 정류장에서 재인폭포 정류장으로 이동 [34분, 25개 정류장 이동]
탐방지 : 연천군 [재인폭포&성산&동막계곡&연천풍혈&고인돌공원&임장서원&연천차탄리고인돌&연천향교]
탐방코스: [재인폭포 버스 정류장~(810m)~재인폭포~(3.2km)~성산 정상~(1.9km)~동막골 유원지~(1.3km)~연천풍혈~(3.9km)~고인돌공원~(2.7km)~임장서원~(1.6km)~연천 차탄리고인돌~(832m)~연천향교~(1.1m)~연천역 1번 출구] (17.3km)
탐방일 : 2024년04월21일(일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6시간31분 소요)
09:14~09:26 경기 연천군 연천읍 부곡리에 있는 재인폭포 정류장에서 탐방출발하여 경기 연천군 연천읍 부곡리 193 번지에 있는 재인폭포(才人瀑布)로 이동 [12분, 810m 이동]
09:26~09:40 재인폭포(才人瀑布)를 탐방
[재인폭포(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소재지 :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부곡리 192
재인폭포는 한탄강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곳으로 오래 전부터 명승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재인폭포는 북쪽에 있는 지장봉에서 흘러 내려온 작은 하천이 높이 약 18m에 달하는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으로 쏟아지는 것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또한, 재인폭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어름치와 멸종위기종인 분홍장구채 등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폭포의 이름과 관련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재인폭포에서는 다양한 현무암의 특징들을 관찰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주상절리를 비롯하여 하식동굴과 포트홀, 가스튜브 등을 볼 수 있다. 높이 약 18m에 달하는 폭포는 계속해서 폭포 아래를 침식시켜서 수심 5m에 달하는 포트홀을 만들었다. 포트홀이란 하천에서 암석의 오목한 곳이나 깨진 곳에 와류(물이 회오리 치는 현상)가 발생하여 깊은 구멍이 생겨난 것을 말한다.]
[재인폭포에 관한 전설.
줄거리
옛날에 새로 부임한 원님이 우연히 이 고을에 사는 재인의 아내를 발견하였다. 원님은 재인 아내의 미모에 반하여 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재인의 아내는 “쇤네는 주인이 있는 아낙입니다.” 하고 강력히 거절하였다. 색욕에 사로잡힌 원님이 “네 서방이 뭐하는 놈이냐?” 하고 물으니, 여인은 대답하기를 “이 고장에서는 제일 소문난 외줄타기 재인입니다.” 하고 자랑스럽게 답하였다. 이에 원님은 재인을 죽이고 그의 아내를 차지하려는 생각으로 줄타기 대회를 열기로 하고, 재인을 죽이기 위해 밧줄에 칼집을 내서 폭포 위의 절벽에 매어 놓고는 줄을 타게 하였다.
재인이 떨어져서 죽으니 원님은 여인에게 “이제는 네 남편이 없으니, 나와 같이 살아도 되지 않겠느냐?” 하고는 강제로 수청을 들게 하였다. 재인의 아내는 원님의 강압을 이기지 못해 수청을 들지 않을 수 없었지만, 원님이 밤에 범하려고 접근하자 원님의 코를 물어뜯고 자결하여 절개를 지켰다. 이 일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재인과 아내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폭포를 ‘재인폭포’라 하였고, 그들이 살던 마을은 ‘코문이’라고 하였다. 코문이는 다시 고문리(古文里)로 정착되었다.
변이
재인폭포란 이름은 줄타기 재인이 폭포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유래에서 비롯한 것이다. 여기에다 폭포의 소재지 고문리가 ‘코문이’로 구전되면서 두 개의 화소(話素)가 하나의 이야기로 정착되어 지금의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분석
<재인폭포전설>은 <춘향전>, <도미전>과 같은 전형적인 관탈민녀형의 이야기이다. 권력으로 여성을 빼앗으려는 권세가의 탐욕을 비판하는 내용이 <재인폭포전설>의 요점이다. 지체가 낮은 재인의 부인은 권력에 굴하지 않고 탐욕스런 관리의 코를 물어뜯어 적극적으로 대항한다. 폭포의 이름을 ‘재인’이라 명명하는 한편, 관리의 코를 물어 저항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코문이’라는 지명이 하나의 전설로 구전되면서 이 설화의 주제의식을 더욱 부각하고 있다.
의의
폭포에 관한 전설은 명칭의 유래를 설명하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재인폭포전설>에서는 부패한 관리의 폭정과 천대받는 광대의 한이 당대의 실상을 풍자하는 듯이 생성되고 구전된다. 여기에다 재인 아내의 절개까지 부연하고 있어 교훈적인 기대치를 내포하고 있다. 위정자의 실정에 대해서는 질책을 하는 한편, 천민층의 도적적 관념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는 심리가 <재인폭포전설>의 전승을 더욱 굳건히 하고 있다.]
09:40~11:00 경기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 산 35 번지에 있는 성산(520m) 정상으로 이동
[성산(520m)은 연천읍 동쪽에 동막리에 걸쳐서 위치해 있다. 크게 세 개의 등산코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파르지 않은 능선을 이용하여 정상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다. 다만 정상 부근은 급경사 지대가 있어 로프가 설치되어 있으며 각 코스는 약 2시간 정도의 코스로 조성되었다. 등산로 초입부터 태실 등이 위치해 있으며 정상 부근에는 병풍바위와 쌍둥이 바위, 남근 바위 등의 명소가 있어 연천군의 새로운 등산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11:00~11:15 사진촬영 후 간식
11:15~12:05 경기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 635 번지에 있는 동막골 유원지로 이동
[동막계곡(東幕溪谷) :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에 있는 계곡.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수심이 얕은 소(沼)가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피서지로 적당하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조용한 피서를 즐기기에 좋다. 계곡 중류에는 깊이 16m, 높이 2.2m의 천연동굴(풍혈)이 있어 여름에는 얼음이 녹지 않을 만큼 찬 공기가 나오고, 겨울에는 따뜻한 김이 나온다. 동쪽으로 10㎞ 거리에 재인폭포가 있다. 찾아가려면 3번 국도를 타고 의정부시·동두천시·전곡을 거쳐 연천읍 재인폭포 입구를 1㎞ 지난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동막리가 나온다.]
12:05~12:25 경기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 산 35 번지에 있는 연천풍혈(漣川風穴)로 이동
[풍혈(風穴)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천연 동굴(길이 16m, 높이 2.2m)은 무더운 여름철에도 얼음이 녹지 않을 정도로 찬 공기가 흘러나오고 반대로 겨울철에는 얼음이 얼지 않고 따뜻한 김이 솟아 오르는 기 현상을 보이고 있 다.
동막동 남쪽에 위치해 있는 이 바위굴은 지난 60,70년대까지만해도 무더운 여름 철에 접어들면 남녀노소 가리지않고 찾아와 옛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더위를 쫓았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잠종(蠶種) 1천여점을 저장했다고 전해진다.]
12:25~12:30 사진촬영
12:30~13:30 경기 연천군 연천읍 통현리 197-6 번지에 있는 고인돌공원으로 이동
[연천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을 조사한 다음, 원형 보존이 어려운 고인돌을 효율적으로 보존,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지금의 장소로 옮겨와 2003년 11월부터 2004년 6월에 걸쳐 복원하여 고인돌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총 16기의 고인돌이 이전, 복원되어 있으며, 그 중 2기는 발견 당시의 위치에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 연천군의 고인돌은 임진강, 한탄강, 차탄천 등의 물줄기를 따라 2~3기씩 군집하여 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대부분 낮은 구릉지대나 평지에 자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짜임새는 대부분 개석식이지만 일부는 탁자식으로 된 것도 있다.]
13:30~13:50 고인돌공원 탐방
13:50~14:30 경기 연천군 연천읍 동막로25번길 170 번지에 있는 임장서원(臨漳書院)으로 이동
[임장서원(臨漳書院) :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에 있었던 조선후기 주자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1700년(숙종 26)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주자(朱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주자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13년에 ‘임장(臨漳)’이라 사액되었다. 1801년(순조 1)에 송시열(宋時烈)을 추가 배향하였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강당·동재(東齋)·서재(西齋)·전사청(典祀廳) 등이 있었으며, 원내에는 정조가 편찬한 《양현전심록 兩賢傳心錄》의 각판을 소장하고 있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뒤에 복원하였다.
1950년 6·25동란으로 다시 소실되어 건물은 복원하지 못하고 서원터에 단(壇)을 마련, 매년 9월보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제품(祭品)은 2변(籩) 2두(豆)이며 재산으로는 논 2,000여 평과 임야 1정보 등이 있다.]
14:30~14:40 임장서원(臨漳書院) 탐방
14:40~15:05 경기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 228-3 번지에 있는 연천 차탄리고인돌로 이동
[연천 차탄리 고인돌(漣川 車灘里 고인돌)은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에 있는 청동시대의 고인돌이다. 2005년 10월 10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차탄리고인돌은 연천읍내의 연천군청을 조금 못 미쳐 왼쪽 주택가의 평평한 대지 상에 위치한다. 이 고인돌은 1950녀대까지만 하여도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하여 고사를 지내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일부 주민들의 치성 장소로만 사용되고 있다.
고인돌은 현재 덮개돌 밑에 굄돌로 보이는 넙적한 돌이 놓여 있어 탁자식일 가능성이 높고 주변에서 지석으로 추정되는 대형의 석재가 2012년 발굴조사 결과 확인되어 탁자식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새롭게 발견된 지석과 현재 덮개돌이 약 1.5m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기 때문에 주변의 차탄천의 범람에 의해 고인돌이 무너져 덮개돌이 원위치에서 약간 남서방향으로 이동되어 현재 위치로 옮겨진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덮게돌은 주변 산지에서 채석한 응회암으로 조성되었으며 가장자리는 손질한 흔적이 관찰되지만 표면은 풍화되어 박리현상이 매우 심하다. 상석의 크기는 380*320*20~60cm이며,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장축은 남북방향이다. 현재는 남서편으로 40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데, 굄돌이 무너지면서 동에서 서로 밀린 것으로 보인다.
덮개돌의 윗면에는 상당수의 구멍이 관찰되는데, 특히 남동편에서 7개(직경 7~12cm, 깊이 3cm 내외) 정도의 뚜렷한 구멍이 집중적으로 파여 있다.]
15:05~15:10 연천 차탄리고인돌을 사진촬영
15:10~15:22 경기 연천군 연천읍 지혜로117번길 20 번지에 있는 연천향교(漣川鄕校)로 이동
[연천향교(漣川鄕校)
소재지 : 경기도 연천군 지혜로117번길 20(연천읍 차탄리 345)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향교(鄕校). 연천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1398년(태조 7)에 설립한 향교로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車灘里) 345에 있다. 본래 연천읍 읍내리(邑內里)에 있었으나 6·25전쟁 때 파괴되어 1965년 현재 위치로 옮겨 세웠다. 건물은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 학업을 위한 명륜당(明倫堂), 숙소인 동·서재, 홍살문, 외삼문, 내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공자탄신일에 석전제(釋奠祭)를 올리며, 매월 음력 1일과 15일에 분향을 한다.]
15:22~15:30 연천향교(漣川鄕校) 탐방
15:30~15:45 경기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 34-504 번지에 있는 연천역 1번 출구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3분, 176m 이동]
15:45~16:30 연천역에서 동묘앞역으로 가는 1호선 전철 승차 대기
16:30~18:50 연천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동묘앞역으로 가서 6호선으로 환승하여 구산역으로 이동 [2시간20분 소요]
연천군 [재인폭포&성산] 산행지도
연천군 성산 산행지도
연천차탄리고인돌 위치도
연천 풍혈 위치도
연천군
[연천역&연천향교&차탄리고인돌&임장서원&고인돌공원]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