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보고서, 기획⑦]
"학생에 돈 요구하는 선생은 기본"…재래식 화장실 쓰고 손 못 씻는 학교
탈북민 508명 증언 '2023 北 인권보고서'… 심각한 수준의 학생 교육환경
부모 출신성분에 따라 학생 차별… "난방비 못 내면 난로에서 가장 먼 곳에 앉혀"
사회보장 취약… "농장원이 탈곡기에 사망했는데도 유가족에 대한 보상은 없없다"
▲ 수해 피해를 당한 북한의 한 지역 병원에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 어린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다. 이 사진은 '머시코' 등 미국의 5개 구호 단체 대표들이 지난 2011년 9월 4일부터 10일까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찍은 것이다. ⓒ연합뉴스 |
편집자주
정부가 2017년부터 비공개로 작성해온 북한인권보고서를 처음 공개했다. 2016년 북한인권법이 채택된 후 정부는 2018년부터 해마다 북한인권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굴욕적인 친북(親北)행보로 일관했던 문재인정부는 북한의 거센 반발과 탈북민 신상 보호를 이유로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반면 윤석열정부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널리 알리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보고서 공개를 결정했다. 김정은정권에서 고통받는 북한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보고서는 총 450쪽 분량이다. 2017년 이후 탈북한 북한이탈주민 508명이 증언한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시민적·정치적 권리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취약계층 △특별사안(정치범수용소·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등 4개 부문으로 구성됐다. 세계 최악의 인권 사각지대 북한의 현실을 충실히 담아냈다는 평이다.
본지는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출범 10년, 북한인권결의 채택 20년을 맞아 처참한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 1997년 자료사진.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 아이들. ⓒ연합뉴스 |
[교육권]
사회권 규약은 제13조에서 모든 사람의 교육권을 인정하며, 교육권 실현을 위해 규약 당사국에 다음과 같은 이행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당사국은 "인권과 자유의 존중, 포용과 평화의 증진이라는 규약상의 교육목표에 따라 교육이 이뤄지도록 보장하며(제13조 제1항), 초등교육을 모든 사람에게 무상의무교육으로 제공하고, 중등 및 고등교육에도 무상교육을 점진적으로 도입해 중등교육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고등교육은 능력에 따라 이용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제13조 제2항)"고 했다.
북한은 2012년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6차 회의에서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 집행명령'을 채택해 '12년 무상의무교육제'를 도입했다. 사회주의헌법 및 보통교육법은 이를 보장하고 있으며, 해당 기간 모든 교육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이러한 법적 보장에도 북한에서는 실제로 학령기의 아동들이 무상의무교육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교육에 해당하는 북한의 소학교는 물론 고급중학교까지, 학교에 다니면서 학습에 필요한 제반 비용뿐만 아니라 학교 운영 비용, 꼬마계획(군·당의 운용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방학 때 학생들에게 토끼 가죽 몇 매, 파철 몇kg 등을 제출토록 하는 것) 등 다양한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는 증언들이 수집됐다.
또한 '학교·교실 꾸리기'라고 칭하며 학교 시설의 유지·보수에 필요한 비용을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번 교장실 꾸리기, 교실 꾸리기, 연구실 꾸리기, 컴퓨터실 꾸리기 등의 명목으로 담임선생이 학생들에게 현물이나 현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또 겨울철에는 난방비 명목으로 매년 돈을 거뒀다고 한다.
한 증언자는 "선생님이 '학교에서 도색작업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학생 한 사람당 석회가루 500g씩을 내거나 일정 금액을 내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요구하는 돈이나 물품을 내도록 교원에 의해 사실상 강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증언자는 "담임선생이 학교에서 요구한 돈을 낼 때까지 매일 반 친구들 앞에서 이름을 불러 일어서게 한 뒤 언제까지 낼 것이냐고 다그쳤고, 돈을 낼 때까지 교실 칠판에 적어둔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결국 경제적 부담으로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선택을 한다"고 이 증언자는 전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출신성분에 따라 교육 기회에 차별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학생은 "2018년 학교에서 추천하여 소년궁전 스키부에 선발됐으나 체육종합지도원이 출신성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선발 명단에서 제외했다"고 진술했다.
뿐만 아니라 수집된 증언에 따르면, 교사들이 경제적 이유로 학생들을 차별대우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증언자는 "담임선생이 난방비를 많이 납부한 순서대로 학생들의 교실 자리를 배치하면서, 난방비를 내지 못한 학생들은 따뜻하게 지낼 자격도 없다며 난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앉혔다"고 말했다.
한 증언자는 북한의 교육여건과 관련해서도 "소학교에 다닐 때 학생들에게 돈을 걷어 학교 현대화작업을 했는데, 화장실은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놔둬 2019년에도 학교 밖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했고 손 씻는 시설도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증언자는 "다니던 중학교에 2019년에도 수도시설이 없어 학교 밖에 있는 우물을 계속 이용했다"고 진술했다.
교원에게 적절한 경제적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학생과 학부모가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이다.
한 증언자는 "북한 당국이 교원에게 제공하는 월급과 식량은 생계를 유지하기에 부족해 교원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학부모에게 비공식적으로 수업료를 요구하거나, 불법적인 과외활동을 하거나, 자신의 텃밭에서 학생들을 동원해 농사일을 시킨다"고 했다.
무엇보다 북한은 보통교육법 및 교육강령시행법에서 일반교육보다 정치사상교육을 앞세울 것을 명시하고 있다. 수집된 증언에 따르면, 12년 학제 개편을 통해 김정은 우상화교육이 추가됐다고 한다.
2011~19년 양강도에서 학교를 다닌 한 증언자는 "소학교 때는 김일성·김정일·김정숙의 어린 시절을 배우고 초급중학교에서는 혁명활동을 배우는데, 김정숙과 김정은의 내용을 학기마다 번갈아가며 배웠다"면서 "정치과목 수업은 결석하지 못하도록 하고, 시험도 꼭 봐야 하며, 시험에서 모든 과목을 만점 맞아도 혁명역사에서 시험을 못 보면 최우등이 될 수 없다"고 진술했다.
북한은 고급중학교 교과과정에 실탄훈련이 포함된 붉은청년근위대라는 의무적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한 증언자는 "2019년 붉은청년근위대 야영소에 입소해서 10일간 훈련을 받았는데, 군사교육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해서 불참한 학생은 없었고, 교육과정에서 실탄 3발을 쏘는 사격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사회보장권]
사회권 규약 제9조는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이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에 관한 권리를 갖는 것을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북한에서 연로연금은 근속기간이 25년 이상인 자 중 남성 60세 또는 여성 55세 이상에게 지급되는데, 여성의 경우에는 근속노동연한 요건을 채우기 어려워 연로연금을 수령하는 경우가 드문 것으로 파악됐다.
2019년 연로보장연금으로 700원을 지급받았다는 증언이 있었다. 같은 시기 쌀 600g과 현금 60원을 받았다는 증언이 수집되기도 했다. 또 질병 등으로 6개월 이상의 노동능력 상실 판정을 받으면 지급되는 연금의 구체적인 액수는 수집되지 않았으나 아주 적은 금액이었다고 한다.
한 증언자는 "2011년 군대에서 상급자에게 폭행 당한 후유증으로 제대한 후 사회보장 대상자로 등록됐는데 당국으로부터 연금 등의 경제적 지원은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증언자는 "근무 중 산업재해로 팔이 절단돼 사회보장을 받은 경우에도 당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이 없어 개인적으로 장사를 하며 생계를 해결했다"고 증언했다.
유가족에 대한 연금 지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 증언자는 "2005년 함경남도의 협동농장에서 탈곡작업을 하던 농장원의 머리가 탈곡기에 빨려 들어가 즉사했는데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회권규약위원회의 일반논평19호에서는 건강이 나빠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현금으로 소득상실 기간을 보전해 줘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에서 정한 바와 달리 북한에서는 보조금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 증언자는 "2010년 임산산업소의 한 작업소에서는 겨울철 벌목작업을 하다 동상에 걸렸는데도 치료 지원이나 보조금 지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연로자보호법 제12조에 따르면 "부양의무자가 있더라도 연로자의 요구에 따라 국가의 부양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양로원에서 숙식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입소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증언이 수집됐다.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껴 인맥·뇌물 등을 이용해 부모를 양로원에 입소하도록 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 '올바른시민인권법을위한시민모임'(이하 올인모)이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해 지난 2015년 1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15차 화요집회를 갖고 북한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데일리DB |
김태훈 '북한인권' 이사장 "북한 무상의무교육은 겉과 속이 달라"
사단법인 '북한인권'은 정치권에만 의존해 재단 설립을 기대할 수 없어 시민사회가 중심이 돼 북한인권운동의 최후의 보루를 만든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다.
김태훈 '북한인권' 이사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도입했다는 '12년 무상의무교육제도'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며 "북한의 '무상의무교육'은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르다"고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무상의무교육이라고는 하지만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돈을 요구한다"며 "선생들에게 월급 지급도 제대로 안 하고, 학교 유지를 위해 들어가는 돈도 지원을 안 해 주니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 이사장은 "북한은 부모의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낮은 아이들의 교육 기회를 박탈하고 차별을 유발하는 사례가 많다"고 꼬집었다.
김 이사장은 북한의 비합리적인 연금제도와 관련해서도 "연금을 받아봐야 담배 한 보루 정도 살 수 있는 금액이라 생활비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장태훈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