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끄니
박경주 朴景珠
“집에 가면 이녁 서방 땜에 못 살겠고, 학교 오면 남의 서방 땜에 못 살겠고.”
젊은 시절,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나이 지긋한 여교사들은 쉬쉬 하며 이런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 ‘남의 서방’이란 사람이 바로 ‘꼭끄니’였다. 꼭끄니는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교감이었다.
나이는 오십대 후반 정도였다. 수학 전공이던 그는 큰 키에 성정이 까다로워 남의 실수를 결코 용납하지 않고 융통성 없는 답답한 사람이었다. 나와 함께 근무했던 3년 내내 한 번도 웃는 얼굴을 한 적이 없었다.
새까만 테의 안경을 올렸다 내렸다, 매사가 불만인 듯 직원조회 때마다 주번 교사며 담임교사, 각 활동부서의 담당교사를 계속 질책만 했다. ‘칭찬은 없다’가 그의 신조인 듯 보였다.
“3학년 1반 화장실은 그게 뭡니까. 꼭끄니 치워주시기 바랍니다.”
“여러 선생님들은 용변을 보실 때 조준을 좀 꼭끄니 해주시기 바랍니다.”
“2학년 5반은 저금을 왜 넣다 뺐다, 넣다 뺐다 합니까? 뺀 금액을 다시 꼭끄니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말 마다엔 ‘꼭끄니’가 꼭 들어갔고 듣다보면 희소적이어서 은근히 재미도 있었다. 그를 흉보는 재미로 우리 여교사들은 고달픈 하루를 견디곤 했다. 우리끼리는 그를 교감선생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모두 ‘꼭끄니’라고만 불렀다.
꼭끄니의 책상과 내 책상은 사선으로는 2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늘 신경이 쓰이는 것은 수업이 끝나면 퇴근시간 전에 육아문제로 사라져야할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땐 쉬는 시간에도 잠깐씩 집에 들러 수유를 하고 와야 했다. 그는 내가 근무 중 몰래 외출하는 것을 잘도 아는지 신발장 앞에 서 있다가 나를 기절시키기도 했고, 내가 외출할 기색이 보이면 내 책상 앞에 떡하니 서서 나를 감시하곤 했다.
나는 당시 젊다는 이유로 담임 말고도 그 큰 학교의 교무일지를 담당해야만 했다. 교무일지란 게 여간 복잡하지 않아서 가로와 세로의 시간표 숫자가 잘 맞지 않는 날이 허다했다. 수판알을 튕기며 그걸 맞추는 게 수업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꼭끄니는 눈을 부라리며 나의 조그만 실수도 용서치 않았다.
3교시가 끝나면, 당시엔 ‘급사’라 불리는 아이가 종이와 볼펜을 들고 교사들 앞에 가서 점심 주문을 일일이 받곤 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남자교사들은 주로 중국음식을 시켰다. 중국음식이라 해야 짜장면 아니면 우동이었다. 꼭끄니의 메뉴는 하루는 짜장면, 하루는 우동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주문을 할 때마다 매일 아주 신중하게 생각을 하곤 했다. 어제 짜장면이었으니 오늘은 틀림없이 우동인데 뭘 그리 생각하는 건지⋯.
꼭끄니의 그 아량이라곤 전혀 없는 성품은 우리 모두를 질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승진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꼭끄니가 사라져주기를 고대했지만.
그해 전보발령도 끝났을 때 우리는 또 꼭끈이와의 지긋지긋한 일 년을 걱정했다. 또다시 일 년을 그와 보내야 하다니.
때마침 당시 교장 선생님의 정년 퇴임식이 있게 되었다. 그날은 꼭끄니 교감 선생님으로서는 아주 바쁜 날이 되었다. 전 학생이 운동장에 집결했고 교사들도 앞에 도열했다. 정년 퇴임식. 교장 선생님의 가족들도 자리했다. 누군가 훌쩍거리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교장 선생님의 퇴임 인사와 학생들의 송별사가 이어지자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고, 모두 엉엉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내 눈시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어서 “기념품 증정!”하고 훈육교사는 마이크에다 외쳤다.
꼭끄니는 곱슬머리임에도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늘 입던 감색 양복을 반질반질 다려 입고, 빨간 넥타이를 매고 단상에 올랐다.
그는 기념품이 적혔지 싶은 흰 봉투 한 개를 손에 들고 있었다. 부스럭부스럭 마이크 앞에서 봉투를 개봉하더니 큰소리를 내 읽는 것이었다.
“광주여고 동창회 일동 金指環(김지환) 5돈,
광주여고 교직원 일동 金一封(김일봉), 이상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훌쩍대던 운동장 안의 울음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키득키득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한자로 적혀있는 ‘金’(금)을 ‘김’으로 읽은 것이었다. 교사들은 모두 돌아서거나 땅에 고개를 깊숙이 박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학생들의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그날의 주인공인 교장 선생님의 폭소가 터지면서였다. 교사들의 참던 웃음도 폭발하면서 엄숙한 정년식장은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눈물이 나도록 웃고 말았다. 그가 평소 까다롭지만 않았다면 그토록 웃진 않았을 것이다.
그 후, 꼭끄니는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사람이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일까. 아니면 꼭끄니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날 실수를 한 꼭끄니가 측은했다. 너무 완벽했던 꼭끄니보다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있었다는 것이 더 인간적이고 매력으로 느껴졌다.
얼마 후 그가 전근을 했다. 여교사들은 모두 섭섭해 하며 그에게 ‘김일봉’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