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년 전이다. 다큐멘터리 PD가 장편 극영화를 만들겠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시실리’란 제목의 영화다. ‘시실리’는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이란 뜻의 얼치기 한문 조어다. 이주노동자와 2년 동안 안산의 원곡동에서 함께 살았던 적이 있고, 인도를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시놉시스였다. 눈 쌓인 강변의 마을 귀퉁이에 사는 부녀가 있다. 아빠는 27살의 인도인으로 이주노동자다. 딸은 7살로 인도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이의 엄마는 부재중이다. 아빠는 영주를 위한 F1 결혼비자로, 농공단지의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합법체류자다. 하지만 F1비자는 노동허가가 없는 비자다. 체류는 합법인데, 한국에서의 노동은 불법인 인도인 아빠. 아이의 아빠와 엄마는 7년 전, 인도 바라나시에서 만났다. 당시 28살의 여성 혜미는 98년 연초의 어느날 직장을 잃는다. IMF 긴급금융구제이후, 생긴 구조조정의 결과다. 젊었지만, 여성이었기에 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실직한 혜미는 어차피 그만 두고 싶었던 직장이었기에, 그다지 큰 충격 없이 재충전의 의미로 여행을 떠난다. 10대 부터 꿈꿔왔던 정신주의의 모국 인도로의 여행이다. 20살의 인도 청년 마헤쉬는 바라나시 메인 가트에서 불의 의식을 집행하는 브라만(힌두교 성직 신분)이다. 신비적 모호함에 빠진 혜미는 아루띠 뿌자(불의 의식)을 집행하는 마헤쉬의 모습에 반한다. 어느덧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이 된다. 한 달 일정으로 떠났던 혜미의 여행은 장기로 바뀐다. 그러는 동안 혜미는 임신을 한다. 귀국길 방콕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시도하려했지만, 마헤쉬의 설득으로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다. 한국에서 혜미는 딸 아이 마야를 낳는다. 이후 결혼비자를 통해 마헤쉬는 한국으로 들어온다. 마헤쉬는 인도 힌두교의 브라만 가문 출신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명문가의 장남이다. 불의 의식 집전자로, 바라나시 힌두 대학의 인도철학과 입학을 희망하고 있었다. 허나, 마야의 태어남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까르마(업보). 대학 졸업자는 아니지만 브라만의 준수한 외모에 능통한 영어 실력으로 한국에서 마헤쉬의 직장을 쉽게 얻을 것으로 혜미는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마헤쉬는 가죽 염색 공장에서 일한다. 숭고한 브라만이었기에 종교적인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가죽 염색 공장 일이었다. 가장의 책임감은 종교적 한계를 넘어선다. 가난했지만 어찌됐든 단란한 가정의 꿈이 그저 달콤하다. 그러나, 혜미는 결혼 생활에 싫증을 낸다. 페미니스트인 그는 한국의 남성보다 더 가부장제적인 성향이 강한 마헤쉬와 종종 충돌한다. 공장에 다니는 마헤쉬의 수입으론 생활이 빠듯해 혜미는 직장을 잡을려고 했지만 IMF 이후의 한국 경제 상황은 정규직으로서의 안정적인 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편의점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시 인도 여행을 꿈꾼다. 그것은 막막한 현실의 일상으로 부터 비일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마야(환상)이었다. 결국 여행사의 길잡이로 인도 여행을 떠나고 혜미의 부재는 장기화 된다. 인도인 마헤쉬는 한국에서 딸 아이와 함께 살고 한국인 혜미는 인도에서 방황한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시놉시스 준비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국적을 바꾸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설정이다. 한국인 남성이 인도 여행지에서 인도 여성과 연애를 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남성과 여성의 국적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은 전형적인 인종영화의 문법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에서 백인 영화감독이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그리는 게 여전히 꺼려지는 일 중 하나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나름 준비를 많이 했지만, 현실적인 장벽(제작비 확보)을 넘지 못해 실질적인 제작에 들어서지 못했다. '언젠가는 꼭 해야지' 하는 막연한 바람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현재 후반 작업을 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오래된 인력거>의 진행이 예상 보다 많이 늦어지고 있다. 서 버린 컴퓨터가 어제서야 정상적인 작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작업실 환경을 싹 바꿨다. 가능하면 철야 편집은 하지 않기로 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후반 작업이다 보니, 밤에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남는 시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곤 하는 요즘이다. 조금 전엔 신동일 감독의 영화 ‘반두비’를 봤다. 2 천원을 지불한 다운로드를 통해 본, 영화 '반두비'에서 만난 남녀 주인공은 17살의 한국 여고생 그리고 29살의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남성이다. '반두비'는 방글라데시어로 '친구'란 뜻의 여성형 명사다. 남성형 명사는 '본두'다. 자칫하면 '여자친구'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방글라데시 인도 네팔 파키스탄과 같은 인도어권에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명사를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구분한다. 그러기에 '반두비'를 '여자친구'로 해석하면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친구'로 번역하는 게 맞다. 영화 '반두비'에서 여성 명사를 사용한 것은 한국 여고생 민서를 방글라데시 청년으로 나온 카림의 입장에서 본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청년과 한국 여고생의 소통을 다룬 영화다 보니, 일부에선 '반두비'가 방글라데시(뱅골)어로 '성적으로 깊은 관계에 있는 여자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타문화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반두비'는 한국사회에 드리워진 불편한, 혹은 불쾌한 진실에 대해 ‘NO’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사회의 거짓말 같은 진실은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영어인재’가 되기 위해, 여고생이 부도덕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로지 행복을 위해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이 정당한 임금은커녕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접도 받지 못하는 편견의 사회라는 것이다. 계층간의 벽이 더 없이 높아진 이 사회에 성별, 국적, 피부색의 다름 앞에 “마음을 열어!”라고 진심을 건네는 영화 '반두비'는 소통부재의 시대에 무엇이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지 단도직입으로 묻는다. '반두비'는 타자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동시에, 그 질문의 답을 제시하고 그 부수적인 증거로 두 주인공의 성장한 모습을 비추는 성장영화다. 그 영악함이 일정 수위를 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끝끝내 들지 않는 것은 이 영화 속 서사들이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며 소통과 이해에 대한 개론서 역할까지 충실히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사실 '반두비'를 봐야겠다는 생각은 이택광 교수의 글에서 출발한다. 이주노동자란 소재 그리고 인종영화의 전형적인 틀을 벗어났다는 점은 5년 전 제작을 준비했던 '시실리,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과 많은 면에서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소재는 흡사했지만, 이야기 전개 방식이나 주제는 많이 다르다.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살짝 있는 영화이긴 했지만, 내게 있어선 2009년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깊게 각인된 영화다. 이주노동자 청년과 한국 여고생 간의 '소통'을 다룬, 그래서 뭔가 불편할지도 모를 거란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 '반두비'는 지극히 상식적인 영화다. 너무도 상식적인 영화이기에 비상식적인 틀에 갇혀버린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이 영화의 백미라면 너무도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알레고리가 빛나는 주옥 같은 대사들이다. 그것은 2008년 촛불에 대한 오마쥬다. "마음을 열어. 마음을" "친구를 웃게 만드는 사람은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 "왜 한국인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쥐라고 부르나요?" "이딴 걸 보니까 니가 개 같이 살잖아" "나. 쇠고기 장조림 먹고 싶어" 영화관의 스크린을 통해 감상하지 못했던 게 가슴을 친다. 하지만 다운로드를 통해서라도 흥행이 실패한 2009년 최대의 문제작 '반두비'를 볼 것을 적극 권유한다. "닫치고 다운로드 받아 보삼" 2천원이면 인터넷을 통해 합법적인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는 영화다. 남들 다 보는 영화만 볼 것인가? 그래서 유행의 같은 줄에만 설 것인가? '반두비'는 소통을 꿈꾸는 21세기의 한국인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영화다. 2010년 1월 8일 여의도 618에서... |
첫댓글 소통, 서로에 대한 이해에 작은 답을 주는 영화예요. 기회되시면 다들 보시면 좋을 듯. 그나저나 남자 주인공 마붑 알엄씨 다른 영화작업은 또 안하시나..선덕여왕 초반 덕만의 서역 상인 친구들 중 하나로도 나왔었는데..^^;
반두비 보고 저는 갑자기 한우 장조림에 삘을 받아서...ㅋㅋㅋ 고기를 너무 삶은 탓에..아직도 식탁에서 찬밥대접이라는 ^^;;;아! 언니 묘하게 입흐시다능....
반두비의 민서는 촛불소녀에 대한 오마주란 생각이 들었던 영화였습니다. 상업영화의 대중성이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기존의 상업영화가 백반과 자장면이라면, 봄나물 씀바귀 무침 같은 영화입니다. 입은 진보 몸은 보수 일 수 밖에 없는 이들은 반드시 봐야 할 영화입니다. 내 안의 보수와 충돌하면서 말이죠.
신동진 감독이... 재미있는 아저씨죠. ㅋㅋ '리얼보수'라는 달력을 만들어서 재작년에 시사인에 함 나왔었고... 작년엔 '애국공감'이라는 타이틀로 달력을 만들었죠. '공화주의'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꽤나 많이 하고 있기도 하고...
크크 반두비의 신동일 감독과 영월 동강과 칼기 사건의 의혹을 다큐로 만든 신동진 감독은 다른 사람임... 신동진은 지난 대선 때 문국현씨와 함께 활동했던 다큐 감독임..
윽... 헷갈렸다는;;;
똠방님! 퍼갑니다.
상업영화의 흥미는 비록 없습니다만,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가 단순히 오락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란 생각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계신다면 꼭 봐야 할 영화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반두비'입니다.
그냥 할일없어서 dvd방에 갔다가 본영화였는데 ...영화 보는내내 친구랑 웃다가 정색하다가 그랬지요
영화가 보고 싶어지네요........꾹 참다가 말경에 울산 가서 봐야겠어요........이왕이면 시골집 보다는 깨끗한 화질과 쬐금 큰 화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