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밀을 베셨다고 하셨다. 해산 후 며느리가 끓여주는 첫국밥을 먹고나니 영광읍내에서 자정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아버지 오십(1910) 어머니 마흔넷(1916)에 낳은 막내 아들이다 어머니의 큰아들은 막내 동생을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 보고만 갔다고 한다. 내 아들이 둘이나 걸어 다니는데 어머니가 동생을.. .
둘만낳아 잘 기르자고 피임과 중절수술이 성행하던 70년대에 어머니 중학교 다니는 막내아들에게, 요즘세상 같으면 너는 태어나지 못했다고 하셨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린나이지만 진학하지 못하고 농사를 지었다. 기르던 송아지가 중소가 되자 아버지께서 영광 읍내로 팔로 가자고 하셨다. 이른 새벽에 소를 몰고 읍내로 가는데 정류장마다 중학교 동창들이 가방을 메고 등교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주치는 친구들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소를 팔고 와서 부모님께 고등학교 진학을 얘기 했다.
형님 두분이 이리(익산)에서 살고 계셔서 고등학교 시험을 보고 큰형님 댁에서 눈치밥 얻어 먹으면서 3년을 지냈다. 토요일이면 완행열차로 장성에 와서 시외버스를 타고 영광 고향을 매주 다녔다. 일요일 오후 돌아오는 시외버스가 사라질때 까지 하염없이 바라 보시던 어머니가 그리울 뿐이다.
대학(원광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에서 행정직원으로 32년을 근무하고 지금은 아들이 운영하는, 재가노인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행복한 생활을 한다 어찌다행 세계유일의 아티스트 조명섭 가수님의 팬덤이 되어 살아가니 천상락이 여기 이순간일 뿐이다 가수님의 신곡 "꿈꾸는 고향열차"는 나를 위해 만들어 주신 곡이라고 본다 에밀스로 오래도록 가수님과 함께 할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형산(전북머슴) 형산님 노래 꿈꾸는 고향열차 각인되네요~~찐팬 형산님 을 존경합니다 ~~내년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전북방 날로 발전있으시길 빕니다~~
이제부터 우리 가수님 고향열차 노래를 들으면 형산님이 떠오를 것 같아요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