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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들어서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지수로 표시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염지수라든가, 자외선 지수나 오존지수 그리고 황사의 지수, 후쿠시마 오염수를 측정하는 지수라든지 이렇게 생활이나 환경에 대한 지수들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표현하는 지수에는 무형적인 요소들도 지수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행복지수라든가 혹은 불쾌지수라든가 아니면 고객만족지수라든가 이렇게 심리적인 부분에까지 수치로 표현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사람의 정신적인 것까지 어떤 수치로 계산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좀처럼 높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것은 돈 많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반드시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위가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것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반드시 더 행복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복지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정이라는 말에는 아무도 異議를 가지지 않습니다. 가정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고 가정이 불행하면 나도 불행하다는 말은 사람의 행복지수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가정이라는 뜻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에덴동산의 한 가정에서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장 먼저 가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가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가정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밀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인생의 가정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행복하게 살던 인생의 첫 가정이 행복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벗어난 가정에는 어김없이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볼 때 한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터전 위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가 가정에 들어 온 후에 가정은 모든 관계가 하나하나 불행을 주는 관계로 변해버렸습니다.
먼저 말씀을 벗어난 부부의 관계 속에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고 아내는 남편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말씀을 벗어난 부모와 자식의 관계 속에도 불행이 왔습니다.
그래서 여인이 죄를 지은 이후 해산의 수고를 통해서 자녀가 태어난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떠난 형제와 형제 사이에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부부 관계가 행복해야 하는데, 부모와 자녀 사이가 행복해야 하는데, 형제가 서로 화목해야 행복한데 오히려 서로를 불행하게 하는 관계로 변질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다른 관계는 저절로 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관계의 원리입니다.
엘리바스는 고난받고 있는 친구 욥에게 구체적인 해결책을 줍니다.
(욥 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하면 복이 임할 것이고, 잃어버린 복을 회복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전능자에게 돌아가면 새롭게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잠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는 “기독교의 위대한 업적은 나라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가정에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신앙생활의 열매는 무엇보다 가정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느 사회에서나 그 시대의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가정들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으로 행하신 이적은 한 가정을 말씀 위에서 치유하시고 행복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서 역사하셨던 대상도 한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한 가정이었던 사실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삭게오의 가정을 찾아가셨고 베드로는 고넬료의 가정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지상교회는 바로 가정에서 출발했습니다.
이것은 가정과 교회는 공동의 터전 위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도 행복한 가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낫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말씀을 보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행복한 가정의 비결을 배우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일까요?
1.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루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잠15:16절).
(잠 15: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가정의 기초는 바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정을 만드신 분이니까요.
가정에 자녀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의 축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어도 가정이 존재할 수 있지만, 하나님 없이 이룬 가정은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행복한 가정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가산이 적어도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하나님을 섬기는 원리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먼저 가족들이 주일을 거룩하게 잘 지키는 것입니다. 십계명에 보면 “너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라 제 칠일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출20:8~12)
여기 계명에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은 개인적인 계명이 아니라 가정에 주신 계명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족이 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혼자만 지킬 수 없습니다. 가족이 함께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무엇보다 가족이 주일성수 하는데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이나 가정에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사 58:13, 쉬운) “너희는 주일에 관한 나의 가르침을 지켜야 한다. 그 거룩한 날에 너희 사업을 멈추고, 주일을 기쁜 날이라 부르고, 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날에는 너희 마음에 드는 일만 하지 말고, 너희 멋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사 58:14, 쉬운) 그러면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릴 것이다. 나 여호와가 땅 위의 높은 곳(명예, 권세)으로 너희를 이끌고, 너희 조상 야곱이 물려준 땅(물질의 복)의 작물로 너희를 먹이겠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다음으로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가정의 사명입니다.
(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도 길을 갈 때도 누워 있을 때도 일어날 때도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치고 물려주는 것은 부모의 사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일날 학원 보내지 말고, 행사 보내지 말고 교회로 와서 예배드리게 가르쳐야 합니다.
주일날 학원 가는 학생은 시험에 떨어질 것이고, 예배드리는 학생은 합격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가정을 통해서 자녀에게 말씀을 물려준 가정은 복을 받은 가정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물려주지 못한 가정은 불행한 가정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세 가정 가운데서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지 못한 가정들이 있다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가 한 사람은 들림을 받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사람이 함께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은 들림을 받고 한 사람을 버림을 받고 두 사람이 함께 밭을 갈다가 한 사람은 들림을 받고 한 사람은 버림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삶의 공동체로써의 가정은 많지만 믿음의 공동체로의 가정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건전한 인간관계를 이루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잠15:17).
(잠 15: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행복한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다음은 가족이 서로 사랑하는 가정입니다.
가정의 심각한 문제는 사랑해야 할 가족들이 서로 미워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은 많은 삶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기도 하지마는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살면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대상이 있다면 자기 가족에게 받은 상처일 것입니다. 가정에서 인간관계를 바로 세우려면 사람을 보면 안 됩니다.
사람의 교훈을 따라 살면 잘 못 될 것입니다. 말씀의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가정생활에서 인간관계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초의 가정이 말씀을 순종치 않는 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아서 깨어진 가족 관계를 말씀을 지키므로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능력의 말씀으로 문제를 치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행복 하려면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가정의 인간관계를 특별히 몇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것을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로 묘사하시면서 순종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는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아들로서 순종의 본을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 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엡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했습니다.
셋째는 부모와 자녀에게 주신 계명입니다.(엡6:1~4)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옳게 행하는 일입니다.
십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약속이 보장된 첫 계명입니다.
그 약속은 “네가 하는 일이 다 잘 되고 이 땅에서 장수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는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돋우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잘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고 했습니다.
3. 물질생활이 건전한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잠15:16,17).
(잠 15: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 15: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기 물질생활을 언급하는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재물이 없어도 여호와를 모신 삶이, 많은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 문제가 많은 것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채소만 먹어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쇠고기로 잔치하면서 싸우는 것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가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가정의 기초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인간관계는 가정의 골격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은 가정의 삶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가정에 물질은 중요한 것이고 가정의 삶은 물질에 철저하게 의존하게 됩니다.
그래서 물질을 모으기 위해서 온갖 열심을 다합니다. 물질 만능주의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말씀은 크게 부한 자라도 불행할 수 있고 가난한 가정도 크게 부한 가정보다도 더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살진 소고기를 먹으면서도 불행한 가정이 있고, 채소를 먹는 가정도 살진 소를 먹는 가정보다도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상황 속에서도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행복한 가정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물질이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가족들의 사랑입니다.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사람보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채소를 먹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살진 소를 먹으며 미워하는 사람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가족들의 사랑은 물질적 가난을 극복하고 그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멘.
***인도에는 1년에 수백 명의 아내들이 결혼할 때 지참금을 적게 가져왔다고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지참금이 적다고 아내에게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죽였던 사건도 있었고, 심지어 임신한 부인을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불태워서 살해한 사건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물질이 하나님이 되고 사랑도 대신하게 된다는 것을 정말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물질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정직하게 벌어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결론과 적용
북한에 다녀오신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남한과 북한의 삶을 묘사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못 사는 것을 모르고 남한 사람들은 자신이 잘 사는 것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은 생활 형편으로 본 인간의 행복지수와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유엔개발계획에서 행복지수를 조사하는 내용이 인간개발지수 즉 HDI 인데 이 지수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수치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평균수명, 교육지수, 성인 문맹률, 국민소득 등을 기초로 하여 국민들 생활의 질로 사람의 행복을 표현하는 지수입니다.
조사 결과 1등이 노르웨이 그리고 스웨덴 캐나다 벨기에 호주 미국 아이슬란드 네들란드 일본 순이고 한국은 OECD 회원 38국 중에 27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엔이 조사한 생활지수 내용이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행복지수는 그것과는 매우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국의 어떤 교수가 150개국 국민을 상대로 스스로 느끼는 행복도를 조사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가 1등을 했고 미국은 46위를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생활지수와 행복지수는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요점은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둘째,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야 행복한 가정입니다.
셋째, 물질생활이 건전해야 행복한 가정입니다.
우리 모두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철저한 주일성수로, 말씀 중심의 순종과, 기도하는 삶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감싸주는 삶으로 좋은 인간관계를 이루십시오.
내게 주어진 물질이 많던 적든 그것이 건전하게 사용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가정을 세우시고 행복한 가정의 기초가 되시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아멘.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좋은 가정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좋은 가정에서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먼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이루게 하시고, 가족 구성원들이 건전한 인간관계를 이루게 하시며, 허락하신 물질을 건전하고 복되게 사용하여 행복한 가정, 가정 천국을 이루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의 행복을 주관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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