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이건희 자택' 설계 탈락했던 건축가,
스티븐 홀
이번엔… '물에 녹아드는 건물' '대양역사관'으로 대박
'현상학 건축'의 세계적 스타, 현대음악 악보에서 영감얻어…
55개 천창에서 매시각 다른 빛… 진정한 건축, 디테일에서 완성
김미리 기자/조선일보 : 2012.06.06.
“이 디테일(detail) 좀 봐요. 디테일이야말로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지요.”
그가 계단 손잡이가 바닥으로 연결되는 부분을 가리켰다. 직각이 아닌 곡선 형태로 바닥에 부드럽게 떨어지는 모양이다. 풀색 뿔테 선글라스를 머리에 올려 쓴 채 휴대전화 카메라로 건물 곳곳을 찍어댄다. 계단 손잡이 지지대, 문 손잡이, 작은 천창, 창문 틈.
작은 카메라 안에 건물의 전경 대신 작은 디테일을 채워가는 이 사람. 지난달 미국 최고의 건축가에게 돌아가는 ‘미국건축가협회(AIA) 금상’을 받은, 세계적 건축가 스티븐 홀(65·미국 컬럼비아대 건축학과 교수)이다. 그는 다양한 빛의 표현, 중첩된 공간 등으로 건축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현상학적(phenomenological) 건축론’을 주창해 세계 건축계에 영향을 미쳐왔다. 미국 MIT 기숙사 ‘시먼스 홀’, 중국 베이징의 주상복합 ‘링크드 하이브리드’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첫 한국 프로젝트가 최근 완공됐다. 서울 성북동의 ‘대양역사관’(대지 1760㎡·연면적 995㎡, 지상 1층·지하 1층). 대양상선이 회사 역사관 겸 아트홀로 쓸 건물이다. 지난 3일 역사관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1박2일의 짧은 일정으로 방한한 스티븐 홀을 현장에서 만났다.
―대양역사관의 디자인 콘셉트는 무엇인가.
“음악 홀과 게스트하우스, 이벤트를 위한 다용도 공간이었다. 6개월 고민 끝에 연못 위로 3개의 건물이 뚫고 올라온 듯한 디자인을 생각해냈다. 물과 건물이 ‘융합’(merge)된 형태다. (그가 손가락을 아래위로 깍지 끼며 ‘융합’을 시각적으로 설명했다.) 연못 아래로 콘서트홀과 전시장이 들어가 있다. 지하 1층 입구로 들어가면 콘서트홀이 나오고, 그 중앙의 계단으로 올라가면 바깥으로 물과 함께 내부와는 전혀 다른 작은 우주가 펼쳐진다. ‘유토피아의 미니어처’라고 보면 된다. 한 러시아 건축 저널리스트가 나에게 “여전히 유토피아가 존재한다 믿느냐”고 묻더라. 나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작은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한다.” (3개 동의 외부 마감은 동판으로 했고, 출입구 쪽은 대나무로 찍어낸 노출 콘크리트를 썼다.)
서울 성북동의‘대양 역사관’. 수심 15㎝의 얕은 연못에 세 동의 건물이 솟아있다. 왼쪽 건물은 게스트하우스, 중앙은 라운지 겸 지하로 내려가는 연결 통로, 오른쪽은 이벤트홀로 쓰인다. 연못 아래로 콘서트홀과 갤러리가 들어서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영감은 어떻게 얻었나.
“전위음악가인 존 케이지를 좋아한다. 도형악보를 다룬 그의 ‘악보들(Notations)’이란 책에 작곡가 이스트반 안홀트가 쓴 ‘심포니 오브 모듈스(Symphony of Modules)’라는 악보가 나온다. 난해해서 한 번도 연주되지 않는 곡이다. 악보에 3개의 매스(덩어리)가 나오는데 그 형태를 대양역사관 건물에 대입시켰다.”
―음악을 종종 건축에 비유하는데.
“나는 건축과 음악에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건축은 음악처럼 우리가 느끼는 방식을 바꾼다. 둘 다 우리 주위를 감싸고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슬플 때 음악을 들으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점에서 건축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다. 또한 건축은 음악처럼 ‘하나의 언어’다. 건축에 담긴 심오한 철학을 굳이 알 필요가 없다. 그냥 느끼면 된다.”
―모던한 형태로 설계했는데 건물이 들어선 곳의 지역성을 간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역성을 어떻게 반영했나.
“1994년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창덕궁 후원(비원)을 구경했다. 그곳에서 느낀 심오한 내적 정신 세계(deep inner spirit)를 프로젝트에 반영했다. 가득 채워진 중국 정원과 달리 ‘열려 있는’ 한국식 정원도 반영했다. 정원이 이웃으로 연장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풍경이 안과 밖으로 연장된다. 21세기 건축에선 조경과 건축이 결합된 형태의 건축 유형이 중요해졌다. 친환경 건축을 점점 더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을 고려해 이 건물은 지열로 냉난방을 해결했다. 땅과 깊숙이 연결되고, 창으로 밖과 소통하는 건물인 것이다. 땅, 하늘, 물과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건축이다. 어반(urban) 빌딩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다.”
―대나무로 찍은 노출 콘크리트 마감이 인상적이다.
“난징 예술박물관 프로젝트에서 한번 써본 방식인데 이렇게 완벽하지는 못했다. 이번엔 한국 대나무를 썼다. 정원에 돌담을 썼는데 비슷한 자연의 질감의 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첫 프로젝트다.
“한국에 15번 정도 왔다. 1995년 삼성 이건희 회장 자택 프로젝트(결국 장 누벨이 설계했다)를 비롯해서 한국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풍수 공부도 했다. 그런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땅에서 한국의 하늘, 빛을 제대로 반영한 작품을 지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이런 집을 LA에 짓지는 않았을 거다. 디테일이 완벽하게 구현된 프로젝트라 자부한다. 한국 파트너(건축가 이인호)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꼭 와서 이 집을 봤으면 한다. 요즘 학생들은 엄청난 인터넷의 정보의 바다에 살지만 지식의 깊이는 1인치도 안 된다. 깊이가 없다. 진정으로 공부해야 하고, 집중해야 한다. 이 건물에는 그들이 알아야 할 깊이가 있다.”
―프로젝트를 해오며 느낀 한국 사회는 어떤 인상인가.
“한국은 과거와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다. 긍정적이라고 본다. 한국의 옛 문화는 좋아하지만 요즘의 비즈니스 문화는 별로다.(웃음) 한국의 현대 건축도 좋아한다. 어제 짬을 내서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사옥와 경동교회도 가봤다. 인상적인 건축물이었다. 한국에는 현대 건축의 역사가 있는데, 중국은 그 부분이 비어 있다. 마오쩌둥 시절에 건축의 맥이 끊긴 느낌이다.(그는 베이징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한 국내 건축가를 만났더니 이번 프로젝트가 당신이 과거 이건희 회장 자택 프로젝트 때 냈던 안과 비슷하다더라.
“(발끈하며) 그가 이곳에 와 봤는가. 보고 난 뒤 말하라고 해라. 그건 그냥 아이디어 스케치로, 구체화되지 못한 프로젝트였다.”
―일련의 작품에서 다공성(多孔性·표면에 구멍이 뚫린 형태)과 빛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여기에도 55개의 작은 직선형 천창이 있고 연못 바닥에도 창이 있다. 창을 통해 매 순간 다른 빛이 들어온다. 아침부터 밤까지, 계절에 따라 다른 빛이 공간을 풍요롭게 한다. 때로 빛이 산란해 반사되면서 다양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MIT 기숙사 시먼스 홀에서는 외피의 구멍을 통해 외부와 소통하는 건물을 추구했다. 각기 다른 요구를 가진 건축주(학생) 350명을 한꺼번에 만족시켜야 하는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다.(웃음) 균일하게 구멍이 뚫린 콘크리트 외벽을 썼는데 모든 기숙사 방에 9개의 창문이 나있다. 밖에서 보면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scalelessness) 신비한 건물이다. 한 달 전 가봤는데 여전히 잘 사용되고 있더라. 종종 내가 지은 건물이 있는 도시에 갈 기회가 생기면 꼭 그 건물에 가 본다.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사람들은 좋아하는지 살펴본다. 모두 돌봐야 하는 자식이고 사랑하는 자식 같다.”
―모든 ‘자식’(작품)이 사랑스러운가.
“딱 하나 골칫덩어리(black sheep)가 있었다. 워싱턴에 있는 한 뮤지엄인데 재정난에 빠지면서 건물이 방치돼 버렸다. 한때 10대들의 마약 소굴까지 갔는데 요즘은 좀 나아진 것 같더라.(웃음)”
―항상 수채화로 밑그림을 그린다. 빛을 수용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어서라던데.
“(그가 테이블 위에 놓인 베이지색 커버의 스케치북을 펼쳐보였다. 그 안에는 수채화와 메모들이 빼곡했다.) 언제나 세로 5인치(12.7cm)·가로 7인치(17.8cm)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닌다. 이 사이즈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이 크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수채화를 그린다. 이걸 아이폰으로 찍어 사무실로 보내고 사무실에서 모델을 만든다.”
왼쪽 사진은 입구의 모습. 건물 아랫부분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곳 안쪽에 아트홀이 있다. 위로 지상 1층을 구 성하는 3개 동이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중앙동에서 밖을 내다본 모습. 아래 계단 끝에 서면 물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하다. /사진가 이완 반, 김미리 기자
―당신이 생각하는 건축은 무엇인가.
“나는 학생들에게 건축은 ‘또 하나의 세계’라고 한다. 진정한 건축은 ‘디테일’에서 완성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현시기는 건축의 위기다. 대형 디벨로퍼(시행사)들이 건축가를 떠밀어 대형 빌딩을 마구 ‘생산’한다. 디테일이란 전혀 없는 컴퓨터 그래픽에 모든 걸 맡긴다. 이런 건물에 가보면 경악하게 된다. 장인정신은 온데간데없다. 유리창이 안 맞고 조명도 엉망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팬시한 형태만 따를 뿐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경험’에 대한 배려라곤 없다. 그러니 대중은 무엇이 건축인가를 잊게 된다. 건축가의 문제라기보다는 ‘과정’(process)의 문제다. 디테일의 관점에서 한옥이야말로 진정한 건축인 것 같다. 한옥은 완벽한 디테일의 집합체다. 최상의 목재, 좋은 창호지를 발라 만든 문, 완벽한 공간 구성. 요즘 한국의 일반 건물에선 이런 디테일을 정말 보기 어렵다.”
―‘조각 같은 형태’를 즐겨 쓰는 이유가 있는가.
“기본적으로 공간 그 자체가 우리가 점유한 조각이다. 공간과 조각, 예술의 경계가 없다. 같이 있는 거다. 이 공간도 밖에서 보면 조각 같지만 들어오는 순간 공간이 되는 것이다. 건축은 조각, 공간, 예술을 융합한다.”
―당신의 건축에선 왠지 동양의 합일(合一)사상이 느껴진다.
“맞다. 강판 제작 기술자였던 아버지가 1946년에 일본에 1년간 계셨다. 어렸을 때 기모노와 젓가락 같은 일본 문화에 둘러싸여 지냈다. 특이하게도 유럽 대신 동양을 동경하며 살았다. 당시 ‘노스웨스턴 오리엔트’라는 항공사가 있었는데 시애틀과 도쿄 직항이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스웨스턴~ 오리엔트~’(그는 동심으로 돌아가 추억 속의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어릴 때 친구들과 이 노래를 따라부르곤 했는데, 그러면서 자연히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싹튼 것 같다. 어머니 쪽으로 인디언 혈통이 약간 있어서인지 아시아 사람처럼 생겼다고도 하더라.(웃음)”
스티븐 홀은 인터뷰가 끝난 뒤 시애틀행 비행기에 올랐다. 올해로 아흔둘이 된 아버지를 찾아뵐 예정이라 했다. 시애틀의 아버지 집은 1974년 5만9000달러를 들여 지은, 그의 첫 주택 작품이다. “그동안 집에 문제는 없었냐”고 묻자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딱 두 번 지붕 수리를 했다. 정말, 정말 오래된 집이란 걸 감안해 달라”면서.